[대상] 물의 잠을 묶다 / 이정희
하구의 갈대밭에
쌀쌀해진 물의 겹겹들이 든다
물을 밀리고 밀려와서
아래로만 흐르는 존재들 같지만
스스로 잠을 청하러 갈대밭에 들기도 한다
자박자박은 스스로 드는 물소리고
두덕두덕은 갈대밭이
물 갈피를 여며가는 소리다
좀체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수심은
뿌리들의 집이어서
한 움큼 모아져야 가뭇가뭇 흔들리는데
둑과 둑 사이 넘나드는 물소리를 들치면
구부정한 허리가 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 시침하듯
땅을 꿰어 놓은 들녘
여름 내내 물을 빨아들였음에도
엮으면 바짝 마른 것들이 되는 갈대
아버지는 만평 물의 잠을 돌보고
속이 비어 가벼운 것들로
줄줄이 남매를 엮었다
휘어지고 늘어지며
유유히 마른 꽃 피우는 것들
햇빛과 닯빛이 한 대궁에서 마른
그 한 묶음을 추스르는 아버지
물은 오래 잠들어 있으면
버석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쏟아질 것 같은 물의 귓속말을
단단히 묶는다
[최우수상] 거미인간 / 이용호
[우수상] 진도 벌포마을 / 김회권
함박눈이 송이송이 나리는 밤
벌포마을 사내 대여섯
노루꽁지만 한 하루해 싹둑 잘라먹은 선창가
폐선처럼 누운 선술집 뻘건 갈탄난로에 둘러앉아
시린 해풍에 저린 몸을 미역처럼 말린다
이따금 토해지는 굽갈래 기침 소리
갈탄난로 위 여린 꼬막들은
해소끼 같은 허연 거품을 내뿜고
먼바다 거센 파도 수만 번 접었다 폈을
늙은 사내는 구릿빛 마디 굵은 손
뚝뚝 꺾으며
누런 양푼에 찬 소주를 친다
바다의 삶이란 때론
만선의 깃발마냥 펄럭이던 것인가
맞바람에 시린 냉가슴 쓸어내는 일인가
때아닌 난파에 찢긴 걸그물 같아
저마다 순항치 못한 빛바랜 날들을 호명하며
짠기 밴 시린 눈을 연신 껌벅인다
막배 끊긴 벌포 선창가
눈은 허풍쟁이처럼 푹푹 나리고
여가 진도여
몇은 더 이상 비울 것 없는 가슴에
찬 술을 붓고, 또 몇은
오래전 목젖 깊숙이 삼켜버린
질기디질긴 뿌연 침묵을
밤새도록 찌개처럼 끓인다.
[장려상] 비질 / 박종익
노인의 왼팔은 몽당연필입니다
속심까지 바닥을 보입니다
멀리 쪽방들이 옆구리를 맞대고 있는 사이로
딸랑 손수레 하나
꼼지락꼼지락 털게처럼 세상에 대고
누런 먼지를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사용했는지
왼팔이 없어 슬퍼 보이는 그에게
불온함과 초조함이 가득한 그 길에서
투구게 갑옷같이 한없이 딱딱해져
꼼짝없이 화석이 되어 갑니다
그가 웃습니다
짧은 자라목을 보고 비웃습니다
이 몹쓸 이기적인 안도감을 향해
오른손마저 흔듭니다
보이는 건 온통 편린뿐
좁은 미간 사이로
위태로이 줄지어 서 있는 불길한 표지판
오 갈 데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마른 잎사귀들이 노인의 빗자루 위로 떨어집니다
노인은 길에게 오른팔을 마저 내주고
몸은 다시 강물 위로 떠돌고
멀어질수록 희미하게 들려오는
검은머리물떼새 울음
강은 노인을 부르고 그는 팔을 흔들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골목 너머로
괜한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담아내며
세상에 대고 마른 비질을 하고 있습니다
[장려상] 관 / 최교빈
[장려상] 고래는 달빛으로 눕는다 / 김인달
[장려상] 소금의 기억법 / 심은정
'국내 문학상 >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전국공모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회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전국공모전 당선작 (0) | 2021.05.11 |
---|---|
제2회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전국공모전 당선작 (0) | 2020.01.15 |
제1회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전국공모전 당선작 (0) | 2020.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