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홍어 외 41편 / 하종기(하린)
기억의 유속은 왜 이리 빠른가
끝까지 버티라고 참으라고 말한 사람까지 데려간다
그러니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며 밤새 과거를 더듬던
그는 한 마리의 홍어다
후일담을 위해 삭힐 대로 삭힌 분노의 맛
조절이 불가능한 어둠의 맛이 되어 취해간다
캄캄한 항아리 안에 날것의 기억 하나를 집어넣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그날의 심정, 한 줄기를 올려놓고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뚜껑을 닫고 지낸다
바깥은 내내 소란스러워도
어떤 기척도 쥐 죽은 듯한 시간 안쪽으로 흘러들지 못한다
잔인한 바다를 목격한 바람이 허청허청 지구를 떠돌다 돌아와
돌담집 마당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려고 할 때
기억의 살점들이 들썩인 건 우연이 아니다
변질도 변절도 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던 분노가
고개를 쳐드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럴 때 김빠진 소주는 맹물처럼 달다
녹아 없어진 줄 알았던 애간장에 피가 돌기 시작하면
삭힘은 썩음이 아니다 중독이 된다
남몰래 차려놓은 제삿밥을 먹으러 오는 자 누구인가
내장까지 통째로 넣고 끓인 톡 쏘는 맛 지닌
오욕이 둥둥 떠다니는 슬픔을 떠먹으려는 자 누구인가
바다와 대작하던 그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귀결점은 그믐을 닮은 한 사람 곁이지만
불콰하게 취한 시간과 시간이 만나
끝내 싱싱함을 잃지 않은 집착이 된다
숨죽였던 계절의 맨살은 다시 붉어지고
[우수상] 족보의 바다 외 62편 / 태동철
바다의 본관으로 이어진 형통을 해서체로 새겨
족보를 묶었다
조상들 이름을 매듭 하나하나로
그물망 짠 가계도가 펼친다
태초에 가문을 이룬 신화 속,
시조로 유영하는 흰수염고래가
해저에 심장 고동을 퍼트린다
고요한 파문이 뼈대를 일으킨
푸른 연대기로 높아진 수심에서
물고기들이 가벼운 부력을 헤엄치며
부족의 언어로 부레를 팽창시킨다 어골문으로
기포를 피워 올려 은비늘 빛나는 물길을 닦는다
관상이 유전된 서로 닮은 초상화로
아가미들이 선한 표정을 짓는다
태풍에 끊어지지 않는 수평선으로
힘줄을 뻗친 유선형 몸이 실정맥 잔잔한 파도결을 일궈
거룩한 생명의 울림을 대물림한다
세세연년 형련이 도달한 수면에 수명으로
끈을 묶어 띄운 부표를 순수한 정신으로 건져 올린다
부모가 혈육에게 온 몸을 내주듯
그물망을 엮은 족보 갈피에서
활어들의 눈부신 서체를 읽는다
[장려상] 북항로 그 푸른 동강을 보다 외 40편 / 김광자
[장려상] 귀로 외 39편 /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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