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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 이재연

 

 

오늘 내가 믿는 것은

밤의 솜털에 성냥불을 붙인 사람들의 아침

조용히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은

날개를 접고 주위를 주시한다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새들도 습관적으로 줄을 지어 날아간다

높이가 다른 냉담한 건물들과 함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주의 한 구석에서

조금 경사진 길을 오르며 숨을 헐떡거리는 일

어디인가 무엇인가 아파도 많이 아파도

죽지 않는 영혼의 일 지루한 꿈의 일

그러니까 결국 새의 입장도

밤의 통증처럼 멀리 사라져가는

행인의 뒷모습과 같다

사랑을 취소하고 사랑을 꿈꾸는

새의 소리에는 인과가 없다

나를 생각하면 너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낡은 체제에 매달리는 동안

불쑥불쑥 밀고 들어오는 꿈도

폭력이라는 것을 새는 알지 못한다

종일 숲에 매달리다 겨울이 간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겨울이 간다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쉽게

네가 지나갈 줄 알았기 때문에

내일도 끝까지 허공에 취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저녁, 새에 편입되어 읽던 책을 덮는다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nefing.com

 

 

[수상소감]

 

꿈을 꿨다. 나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지만 그 바다와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다에 대한 나의 애정은 특별한 것도 특별하지 않은 것도 없다. 그런 바다에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가 점점 물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발 딛고 있는 모든 곳이 곧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래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이제 물에 잠기지 않은 공간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래벽을 타고 오르기를 시도했다. 바닷물은 모든 곳을 집어 삼킬 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르려고 버둥거렸지만 한 발자국도 올라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아우성이다. 이런 절벽을 잘 타지 못하며 기민하지도 못해 스스로 포기할지도 모르는 나 때문에 겁이 났다. 손도 발도 무디기만 하다. 도대체 쉬워 보이기만 하던 절벽이 몸을 내어 주지 않는다. 공포감이 점점 나를 조여 오는 순간 잠에서 깼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절망감과 공포감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민첩하지도 기민하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움직이는 일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움직인다. 그것도 혼자나 소수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부산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부산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내 천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오래되지 않는다. 단순해서 다행이다. 그 단순한 힘으로 시를 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여기까지 오게는 했다. 시는 현실과 가깝지만 현실경제와는 멀다. 물질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진 만큼 우리 삶의 질은 물질과 비례해지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물질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질의 가치가 그 밖의 가치를 잠식해버린 후 사람들이 그 물질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 삶의 형태가 건강할 수는 없다. 효율성과 효용성의 프레임 속에 갇힌 인간 삶은 피로할 수밖에 없다. 후기근대의 주체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며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도 주체들은 피로하다. 바다의 파도는 크게 일렁인다. 우리는 또 다른 입구 앞에 서있다. 예측이 분분한 미래의 입구 앞에 서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미래 속에 와 있는지 모른다. 에이아이가 그것이다.

 

이제 인간에게만이 인격이란 말이 주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일지 모른다. 감정과 감성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 우리는 복제인간과 경쟁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인간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꿈속에 있었을지라도 일렁이는 파도에 모든 인간이 수몰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든 어디서든 인간은 살아남으니까. 경제적 가치만이 효용인 시대에 경제적 가치가 없는 시를 쓰는 이유는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이야말로 경제적 가치가 전부인 현실의 모순과 부정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 가까이서 살았지만 바다와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새로운 파도는 태어날 것이며 미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모든 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움직일 것이다. 시는 육체를 입은 정신과 같은 것이니까. 시를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단순함의 힘으로 시를 밀고 나가고 싶다. 그런 내게 주어진 시산맥작품상은 소중하며 값진 것이다. 부족한 시를 선해 주시고 힘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시산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의 본령은 어디에 준거(準據)해야 타당한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혼란한 문화 속에서 매우 난삽해진 해체시의 진로 또한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재단해야 현명하다할 것인가. 근시안적인 편견을 접고 포용력 강한 눈높이로 작품을 아우르려면 어떤 자세, 어떤 노력이 배가 되어야할 것인가.

 

우리 한국문단은 1908년 신체시 이후 올해로 꼭 110년을 맞는다.

 

실험 시에서 출발한 신체시 이후 본격적인 서구 poetry를 수용하기 시작한 지 어느새 1세기가 훌쩍 흐른 것이다. 우리의 근대시가 이렇게 다양한 양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커다란 획을 긋는 우리 문단의 흐름을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계간 시산맥은 전국의 시인들이 모여서 뜻을 이룬 시의 아고라이다. 이 담대한 집단은 근대시를 높은 안목으로 조망할 줄 아는 시인들이 이룩한 집성촌이자 시인들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단순히 시를 사랑하는 동호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시인들이 나름대로 개성을 뽐내며 전국적으로 모여든 커뮤니티, 현재 정회원 150명의 시산맥은 이제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그 손길이 닿는 거대 집단이 되었다. 규모뿐만 아니라 견고한 응집력과 활달한 활동 면에서 시산맥의 위상은 우리 문단에 가히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구랍 12월에 통권 32호를 내고 창간 10년을 코앞에 바라보는 시산맥이 이번에도 작품상을 뽑는다. 한해 4~5계절에 걸쳐 계간 시산맥에 게재된 작품들을 총괄, 거기서 좋은 작품을 골라내 선정하는 것으로 돼 있다.

 

예선을 거쳐서 이번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총 18, 전부 제목과 시만 있을 뿐 시인의 이름은 생략된 채 익명으로 된 원고를 들고 세 명의 본심 심사위원들(김추인, 이화은, 김영찬 등)이 각기 6편씩 서로 돌아가며 작품을 검토하게 되었다. 익명 처리된 18편을 읽고 또 읽고 신중히 재고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두 세 시간가량.

 

우리는 각자 자신이 선택한 6편의 작품에 최고점수 5점 만점의 점수를 부여한 뒤 셋이서 이들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수상작을 뽑기로 하였다.

 

점수 합산을 마치고 난 뒤에야 우리는 작품 뒤에 숨어있던 작가의 실명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결과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이은규 14, 나나너너」―서윤후 13, 녹은 이후」―이영주 13, 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 정진혁 11, 전복」― 김분홍 12,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이재연 14점 등 총 6편으로 압축돼 경합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1차 본심에서 가장 점수를 많이 얻은 이재연, 이은규, 서윤후, 이영주 등의 시가 2차 본심에서 최종 언급되었다.

 

약간 점수 차이가 났으나 우리들은 김분홍의 시, 전복이 완성도 면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작품이어서 아쉽다는 후일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경합한 서윤후의 시와 이은규, 이재연의 시를 두고 우리는 다시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분들 중에는 이미 큰 상을 탄 이력도 있어 가능하면 수상경력이 많지 않은 시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을 뒤로 하고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이재연의 시에 낙점한 것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리는 이재연을 선정하고 나서 자신들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이재연의 시,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는 매우 안정적이고 담백한 작품이다. “오늘 내가 믿는 것은/ 밤의 솜털에 성냥불을 붙인 사람들의 아침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난해하고도 난삽하기 짝이 없던 해체시로 인하여 한때 머리가 팽팽 아팠던 우리 문단에 시를 통한 위안, 시를 통한 마음의 평정이 아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차분한 것이다. 서정을 기조로 안정되게 흐르는 리드미컬한 문체도 가히 일품이다. 이 시가 매력적인 것은 일체의 고리타분한 비유를 배재하고 시종 일관된 주제 하나로 공중을 건너는 새의 일상을 인간사에 편입, 안정된 알레고리를 차분히 확보한 것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종일 숲에 매달리다 겨울이 간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겨울이 간다등 군데군데 경이로운 아포리즘 또한 읽는 이를 즐겁게 하는 시여서 기쁘다. 아마도 이런저런 요소가 알게 모르게 심사위원 전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김추인, 이화은, 김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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