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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 김성규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올라가고

굴뚝 위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보이지요

굴뚝 위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흩어져 울었을 거예요

파업을 지지하러 몰려온 사람들도

이제 지쳤어 ,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기만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사람도

굴뚝 속이라도 들어가 손바닥을 쬐고 싶은 사람도

내려오면 안 돼요 끝까지 버텨 보세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사람도

내려오라 목이 쉬어 소리 지르는 가족들도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보이지요

하얀 구름을 찍어내는 굴뚝도 이젠 좀 쉬어야지

모두가 굴뚝 주변에서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울 때

이야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구름이 될 때

지나가던 구름이 굴뚝 위에서 쉬다

근심 많은 사람들 이마 위로 쏟아질 때

드디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고 공장도 지쳐 쓰러졌어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자야지

언제 우리가 굴뚝 위로 올라왔지

굴뚝 위의 사람들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고

내려가야 할 사다리마저 치워지면

굴뚝 위의 사람이 종일 뱉어내는 한숨으로 안개가 끼고

지상의 인간들은 가끔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눈이 멀어버렸나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먼 곳을 보며 노래하네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무언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박영근 선생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우연히 뵌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너무 가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시를 썼고 도시로 와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바뀐 세상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앞으로 저의 운명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삼십 대의 어느 날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시비가 건립되었고 혼자 시비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소주 한 병을 사서 시비에 술을 따르고 저도 한잔 마셨습니다. 공원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쓸쓸한 날이었습니다.

 

민중, 어머니, 혁명, 가난이라는 말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간절함은 사라지고 웃고 적당히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가려 합니다. 상처받고 미워하지 않으려 교양인이 되어 거리를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흘러 누가 이 시인을 기억해 줄까요. 기억이 점점 부서져 가고 있는데 누가 그 시절의 상처와 미움과 설움을 기억해 줄까요.

 

역설적으로 풍요가 우리를 더 가난하고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난함과 추위 속에서 누군가 다시 시를 찾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며칠간 혼자 박영근 문학상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상을 주시는 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 의미와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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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기 언어와 타자의 언어가 섞이는 접촉의 그물망

 

박영근 시인은 긴박한 현실과 삶의 에너지가 바로 시를 낳게 한다고 했다. 그 긴장 속에서 시는 대체할 수 없는 언어적 싱싱함을 얻는다. 삶의 언어가 시적 성취를 획득하는 그 자리는, 바로 팽팽한 긴장의 순간이다. 시는 순간의 서정이며, 삶을 품은 언어다. 박영근의 시 세계와 연결되는 작품을 선정할 때, 언어적 싱싱함과 더불어 삶의 언어로서의 현장감도 중요하게 고려하게 된다. 7회 박영근 작품상을 선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시적 성취와 더불어 언어적 현장감도 깊이 고민했다.

 

예심위원들이 추천한 총 14편은 모두 박영근의 시세계가 가지고 있는 미적 성취와 현실의 숨소리를 환기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그 중 안주철· 조말선· 김사이· 신철규· 김성규의 시를 놓고 숙고와 토론을 거듭했다.

 

안주철의 천변산책분노가 되기 전에 / 안타까움이 되기 전에” “남은 힘을 낭비하려고 천변을 걷는 모습을 그려 냄으로써 노동자의 모습을 해학적이고 반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수작이다. 조말선의 심야는 야간노동을 검정색이미지로 잘 형상화했으며, 작은 사물들을 내밀한 미의식으로 연결하는 시적 성취를 이뤄냈다. 김사이의 견고한 지붕 아래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체제의 억압을 단단해진 절망을 잘근잘근 씹는 분노와 함께 표현해냈다. 신철규의 인간의 조건은 우주적 상상력으로 코로나 19’의 위기에 처한 인간의 형상을 객관화하는 시대성을 획득한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2020년 한국 시문학의 한 성취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박영근의 시세계와 보다 더 긴밀하게 이어지는 작품으로 김성규의 굴뚝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한국 노동계의 아픈 풍경인 굴뚝 고공농성을 시적 언어로 포착해냈다. 2014년부터 2015년에는 구미 스타케미컬 노동자들이 408일간이나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고, 2018년부터 2019년에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이텍지회 노동자들이 서울 목동 열병합 발전소 굴뚝에서 장장 426일간이나 농성을 벌였다. 파업 농성 노동자들의 절박함은 75미터의 굴뚝만큼 높고도 위태롭다. 김성규 시인은 굴뚝에 올라가내려오는 극단의 긴장 속에서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를 대비시켜 그려냈다. 굴뚝 위 세상은 하얀 구름을 찍어내면서 먼 곳을 향하는 희망의 세계이고, 아래의 세계는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워내며 근심많은 사람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긴장하는 곳이다. ‘굴뚝 고공 농성을 둘러싼 긴장은 브레히트의 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이 팽팽하게 맞서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적 형상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로 표현된 아픈 감각이 돋보인다. 유례가 없는 장기 농성 투쟁 과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고단함을 시적으로 포착해낸 것도 소중한 성취다. 시인의 언어와 타자들의 언어가 섞이는 다중의 발성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성규 시인은 힘없는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시편들을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피력했던 적이 있다. 7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이 그 귀한 마음에 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성규 시인에게 깊은 존중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김해자(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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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시인-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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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목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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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 가엾다 / 권혁소

 


배롱나무를 좋아하는데,
감나무도 한두 그루 있다면 좋겠는데
주춧돌 세운 여기는 배롱나무도 감나무도
뿌리 내릴 수 없는 수목 한계선

알면서도 나무 탓을 한다
현주玄酒 같은 사랑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가여운 존재였을까,
잘라버리고 싶은 나무였을까
더 이상 뿌리를 뻗지 않는 나무를 뽑아내며
이제야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것이냐고

등 돌린 그대가 저만치 걸어간다
그대가 가서 숲이 된다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된다면 좋겠다,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 이라니

우리가 너무 가엾다

 

 

 

[수상소감]

 

양간지풍거세게 불던 날 밤이었다. 산골 이웃들과 봄바람 안주하여 술 한잔 걸치고 바람 너울대는 마당에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런데, 받았다.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입니다··· 모르는 전화를 반갑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시 ?우리가 너무 가엾다?가 제6회 박영근작품상에 선정되었습니다···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수상소감 등을···”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했던, 생각하면 늘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박영근 시인, 아니 영근이 형···, 그 영근이 형이 따라주는 상이라니···.

 

삼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19835월에 조태일 시인이 움직이는 시라는 부제를 달아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시 무크’ ??시인??을 복간했을 때 나는 아직 제일 싼 담배를 피우는 대학생이었다. 맘껏 책을 살 수도 없던 때, 춘천 청구서적한 귀퉁이에 기대어 서서 목차부터 찬찬히 읽었다. 거기서 처음 박영근이라는 이름을 만났고, 형의 시 ?앞날을 향하여??취업 공고판 앞에서?를 읽었다.

 

누렇게 바랜 책을 다시 열어 보니 ‘···어두운 소문들 부서지는 공고판 앞에서/살아있으므로 믿어야 할 앞날들···’에 밑줄이 쳐 있다. 그리고 나는 투고를 결심했던가.

 

1984민주·민중·운동·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시인?? 2집을 통해 나는 등단이란 것을 했고, 형은 같은 책의 특집 좌담회(바람직한 문학운동을 위하여) 토론자로 참석해서 본격적인 노동자 입장도 아니고 먹물끼가 든 노동자라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당시의 지식인 주도의 운동 양상을 드세게 비판했는데, 많이 공감했던 것 같다. 어쨌든 형은 그해에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를 청사에서 냈고, 나의 시는 조금씩 더 거칠어졌다.

 

형이 택시를 타고 춘천으로 왔던가 안 왔던가. 오라고 했던가 오지 말라고 했던가. 택시비가 있다고 했던가 없다고 했던가. 그런데 춘천 퇴계동 어디쯤에서 택시비를 계산하는 내가 보이는 환영은 뭘까. 지금은 배가 터지도록, 술집을 통으로 살 수도 있는데···.

 

형은 노동운동을 했지만 나는 고작 노동조합 운동을 한다. 형은 노동시를 썼지만 나는 고작 노동자 풍의 시를 흉내 낸다. 형은 기계와 여공과 가난한 과거에 맞서 치열했지만 나는 고작 시대와 불화하는 사랑을 불안해 할 뿐이다.

 

형과 이렇게 새로이 얽힌 것을 이제 어쩌겠는가. 형이 나를 다시 불러세운 것은 아마도 더욱 단단한 노동자로 살라는 뜻이겠지만, 내가 뭐라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힘차게 부르는 수밖에. 그렇게 함께 그리움을 달래는 일 밖에.

 

미욱한 졸작을 작품으로 격상시켜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졸시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민중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너무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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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세상에 대한 연민과 이해와 공생의 마음자리

 

박영근 시인은 시는 서정적 울림과 설득력 있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저한 사유가 있더라도 서정성에 가닿지 못하면 시의 울림은 꺾이고 만다. 현실을 길러내는 언어의 파문 또한 중요하다. 심사위원들은 울림과 현실을 새기며, 6회 박영근작품상 선정에 숙고와 토의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근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빼어난 작품 1을 선정한다는 것의 무거움을 절감했다.

 

예심에서 올라온 15편의 시들은 모두 박영근의 문학정신을 잇는 특성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들 중 김선우· 김효연· 조말선· 이창기· 이현승· 최지인· 황인찬· 권혁소의 시편에 주목했다.

 

박영근의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와 깊이 닿아 있으며 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김선우의 천문, “보잘것없는 것들이 뭉치면 확성기가 되고 투쟁조끼가된다는 김효연의 지역뉴스, 심야식당, 야간분만 등 노동력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조말선의 야간조, “복지 생활자들의 숲이 된 작금의 변방과 소외를 다룬 이창기의 나쁜 꿈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더불어 우리는 여전히 아우슈비츠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쪽에 인간은 있다는 압축된 인간선언 이현승의 호모 사케르와 이 시대 절박한 문제인 고독사와 주거문제를 소외된 노동과 결합시킨 수작 최지인의 도시 한가운데, 성소수자 문제를 독특하고 현장감 있게 다룬 황인찬의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등으로 좁혀서 의논했다.

 

단 한 편의 시로 작품상을 결정한다는 데에 적잖은 부담이 있었고, ‘시 자체냐, 시 정신이냐라는 논란이 될 만한 고민도 없지 않았으나, 박영근의 생애와 시 정신을 동시에 감안하며 범위를 좁혀서 의논한 결과 권혁소의 우리가 너무 가엾다를 제6회 박영근작품상으로 선정했다. 2019년 하반기에 출간된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일반적인 저항시와 구별된다. 이 시는 대상과의 일체감을 이룬 채 시적 내면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타자를 부정하고 분리하는 세계 너머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품 넓은 사랑의 시학으로 채워진 시의 명징한 장소이기도 하다. 시인은 지치고 나뉘어 서로의 삶을 박탈하려는 갈라진 세상에 연민과 이해와 공생의 마음자리를 선물하고 있다. 밋밋할 만치 소박하게 독백하는 듯한 이 시는 언어라는 꽃에 인위적 데코레이션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기도 하는 현재 시단에서 드물게 담백하고 솔직하다. 광장과 투쟁이라는 용광로를 통과한 쇳물의 생애를 거쳐온 자가 존재 자체에 바치는 경외와 겸허한 연민의 목소리가 시의 진정성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등 돌린 그대가 저만치 걸어그대가 가서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이라해도, 그래서 우리가 가엾다해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비록 사랑이 환상일지라도, 백두대간 병풍 아래 사는 시인의 바로 이 사랑의 축복으로 하여 동과 서, 남과 북으로 나뉜 대관령 진부령 모든 령들을 넘어설 수 있길 빈다. 수상을 마음 깊이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박수연(평론가), 오창은(평론가), 김해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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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익숙해져 갔다 / 조성웅

 

 

끝내

그는 한 뼘 남짓한 H 빔 위에 모로 누워버렸다

그의 등 뒤에는 10미터 허공이 펼쳐졌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자세가 그래도 용접을 하기엔 최선의 자세

그는 허공조차 안전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몇 차례의 죽음을 넘어

오늘 하루분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까지

 

오로지

위험에 익숙해져 갔지만

그는 이 야만의 세계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했는 지도 모른다

 

난 한 뼘 남짓한  H 빔 위로 누운 그의 모습이

목숨을 살리는 방법 같고 삶의 안전을 위한 끈질긴 질문 같고

이판사판 한번 붙어보자는 고공농성 같았다

허공은 모로 누운 그의 모습을 닮아 수평을 이루었다

 

 

 

[수상소감]

 

아들 문성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 집에 놀러 온 문성이 친구들 중에 몇 명이 졸업하면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겠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회한이 통증처럼 일었다. 입덧을 시작하던 날, 아내는 현대자동차에서 해고 됐고, 문성이 돌잔치 하는 날, 난 현대중공업에서 해고 됐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그 고립된 바닥에서의 절규로 한 시기를 다 보내야 했다. 이 때 태어난 아이가 자랐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겠단다. 나와 아내가 목표로 했던 건 비정규직 처우 개선따위, ‘불법파견 정규직화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투쟁은 패배 했다. 이미 낡은 운동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참여했던 운동의 몰락은 아주 감각적인 통증으로 내 살에 박혀 있다.

 

여드름이 훑고 지나간 울퉁불퉁하고 쭈글쭈글한 내 얼굴의 거죽을 만지면 당분간 언어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오늘 이기지 못했지만 전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으로 변화는 가능하다고, 전망은 두꺼운 원전이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들의 감각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성이 등하교를 시켜주면서 짬짬이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렸을 적, 아들 문성이는 집회와 농성장이 자신의 놀이터였다. ‘비정규직 철폐머리띠를 묶은 투쟁 소년, 조문성이었다. 나보다 훌쩍 커 버린 문성이가 어느 날, “아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고 내 삶을 비평해줬다. 그래 내가 잘하지 못했던 것, 아들 문성이 세대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 자신을 민주주의로 조직하고 평등의 새 지평을 열어가기를, 허공을 안전지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드러누워 기울어진 생의 불안정성조차 수평을 잡을 줄 아는, 위험 작업은 언제든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시작해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했으면 좋겠다. 세계를 운영할 수 있는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비상했으면 좋겠다.

 

잠시 갈 곳 몰라 정처 없던 날, 박영근 시인 기념사업회에서 박영근작품상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영근작품상이 허명이 되지 않도록 살겠다. 살아내는 게 찌질해질수록 자본주의 밖을 상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남은 생애, 내 시의 역할이 있다면 문성이 세대의 새로운 투쟁과 혁명을 지지하고 조력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낡지 않는 것이다. 박영근 선배도 이 싸움에 함께 해주시리라 믿는다.

 

 

 

중심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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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고도로 응축되었으며 시적 압축성이 뛰어난 노동시

 

4455! 13년이라는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 콜텍(콜트는 투쟁 중임), 노사는 최근 부당해고에 대한 협상을 갖고 명예복직 등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암울한 노동 현실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할 사측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박영근 시인은 60년대 산업화 이후 암울한 노동 현실을 가장 먼저 직시, 노동시의 다양한 길을 열고 닦아놓은 시인이다.

 

노동 현실의 암울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왔고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 갈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문제 담론 전쟁에서 자본이 노동을 이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는 노동의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된다. 아울러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방법으로 노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확장과 질적인 제고, 유연성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독자와의 친밀성과 서정성을 더욱 받아들여야 한다.

 

추천위원들로부터 받은 추천작들에 대한 논의에서 지난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들이 너무 예리하고 직설적 경향이 있었다.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젊은이의 언어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좀 더 유연한 시 쪽으로 선정해나가는 것이 박영근의 시를 확대시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 등이 제시되는 등 논의와 고심 끝에 <위험에 익숙해져 갔다>를 수상작으로 합의, 결정했다.

 

수상작은 짧지만 고도로 응축되었으며 시적 압축성이 뛰어난 노동시다. 현장 노동시의 중요한 덕목인 체험과 경험을 최대한 살렸으며 노동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이 높다. 아울러 암울함이 짙어가는 노동 현실에 대한 공감대의 폭을 대폭 넓혔다.

 

- 심사위원 : 염무웅(평론가), 고형렬(시인), 정세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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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외출의 꿈 / 박소언

 

 

어머니의 맨몸이 비단처럼 곱습니다. 귀한 유리그릇 만지듯 조심스레 씻겨드립니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합니다. 바삭 오그라든 젖가슴은 푹 꺼진 풍선 같고 올곧던 부드러운 목선은 얄팍하게 힘을 잃었습니다. 손마디는 휘어진 활 같고, 뜰팡, 세숫대야에 물 한 바가지 떠 놓고 야무지게 발끝까지 씻겨주던 그 도톰한 손등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퀭합니다. 굳은살이 갑옷을 입고 껍데기만 꿈지럭꿈지럭 각질만이 연명 중입니다. 통증조차 감지 못하는 걸까요. 혹한 시절에도 한평생 자리를 지켜온 어머니의 굽은 등, 고된 표정 보이지 않던 강단 같은 모습이 방울진 물에 따끔따끔 빛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촉감과 따뜻한 체온은 정원 같은 휴식처이고 어머니의 귀한 풍경입니다. 정붙일 곳을 찾고 있는 걸까요. 속내를 보여주기 싫은 듯 있는 힘을 다해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다리 사이가 퍽 슬픕니다. 어머니와의 기억들이 깊숙한 곳으로 낮게 똬리를를 틀며 자꾸만 선명해집니다. 담홍색과 살빛이 눈부시던 몸피는 좀먹어 낡은 구멍만이 작은 소리를 냅니다. 쭈룩쭈룩 빠져나가는 수혈을 막을 수는 없는 걸까요. 물 마른 살갗이 개운하다고 꽃보다 더 환하게 수수한 냄새 번지며 미소 지으시는 어머니, 먼 곳으로 외출을 꿈구고 계시는 걸까요.

 

 

 

 

당신에게 불을 지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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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숫돌 / 오영록

 

 

그 어떤 보검이라도 날이 서지 않으면

머리카락 하나도 자를 수 없어

 

무딘 칼을 물려주기 싫은 아버지는 전 재산이었던

소를 팔아 무작정 버스를 태웠다

촌에서 등록금이랑 생활비를 꼬박꼬박 마련한다는 것은

물로 배를 채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

그러면서도 단 한 번 쇳소리를 내지 않았던 아버지

 

당당히 대기업에 취직하고 아비가 되어보니 그제야 겨우

금세라도 부러지고 말 것처럼

다 닳은 숫돌 같은 아버지가 보였다

 

숫돌에 물을 얹어야 칼이 갈리듯

날이 서는 동안 물로 배를 채워야 했을 저 숫돌

이제 장도는 고사하고 과도 하나 제대로 갈릴 것 같지 않는 숫돌

 

 

 

 

11회 백교문학상 대상에 대전에서 활동하는 박소언 시인의 시 외출의 꿈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배재록(울산)씨의 수필 귀소’, 오영록(경기 성남)씨의 시 숫돌’, 신수옥(서울)씨의 수필 엄마가 업어줄까’, 권혁무(강릉)씨의 수필 봄이면 더 그리워지는 아버지가 각각 뽑혔다.

 

현역 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백교문학상에는 많은 작품이 접수,1차 예심을 거친 시 29편과 수필 21편이 최종심에서 경쟁을 벌였다.

 

심사 결과 대상에 선정된 박소언 시인은 평범한 일상이 간절하게 그리운 제한된 생활 속에서 백교문학상의 당선은 환한 햇살만큼이나 기쁜 소식이었다달라붙은 내 마음을 시에 매달면 시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런 내 시에게서 위로를 받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후란 시인(문학의집 서울 이사장)은 박 시인의 대상작에 대해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이 갖는 비중의 크기와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어머니의 헌신적 생애와 고별을 앞둔 시간이 아픈 상처가 아닌 우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은 은유적 구성과 뛰어난 시적 표현력의 힘이라고 평했다.

 

이어 올해 특성은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를 주제로 한 작품도 많아 부모사랑의 비중이 균형을 잡아가는 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백교문학상 심사소감을 밝혔다.

 

효 사상 함양과 세계화를 위해 출범한 백교효문화선양회(이사장 권혁승)와 강릉문화재단이 공동주관하는 백교문학상은 효친사상을 주제로 한 시와 수필을 공모,매년 시상하고 있다.수상작품은 사친문학에 실린다. 시상식은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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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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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감천, 그 골목 / 김은혜

 

 

푸른 지붕 잎맥을 채우고 돌아오는 밤

낡은 벽화에 그려진 비릿한 물고기 비늘

붉은 가로등 불빛에 몸을 뒤척인다

좁은 골목들이 엮여있는 회로 사이에서

먼지에 덮인 방은 홀로 주파수를 맞춘다

아버지는 달팽이관처럼 등짝 웅크린 채

무음이 되어가는 허공을 듣는다

듬성듬성 빈틈이 보이는 정수리 위로

반질하게 새어나온 하얀 안테나들

공중에 온기 없는 숨들이 공명하자,

아버지가 얼굴 위로 느슨한 현을 당긴다

오래된 악보를 삼켜낸 아버지는 그저

낮은 한숨 몇 개를 음표처럼 달싹인다

알 수 없는 기호처럼 아버지의 글자들이

단 한번도 표음되지 못한 채 바스라진다

몇 개의 귓불들이 어둠 속에 차가워지고

아버지가 휘어진 안테나를 달고 뒤척인다

낡아가는 뒤통수에 수신되는 작은 음파들

재생되지 못한 말들이 파동을 타고 온다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어디쯤에서

작은 귓불을 따뜻하게 기울이고 있을까

 

빗금이 쏟아지고 전류가 흐르는

새치가 번뜩이는 아버지의 둥그런 뒷모습

그 꼭대기 마다 파동처럼 바람이 분다

멀리, 가로등 번진 어두운 골목 아래

허공을 삼킨 물고기가 아가미를 뻐금거린다.

새벽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온다

 

 

 

 

[최우수상] 을숙도가 온다 / 최형만

 

모래가 쌓일수록 갈대도 길어지는 곳

갈밭 길을 걸으면 놀란 갈게들이 흩어진다

지나온 시간보다 밀려온 날이 많은 을숙도는

갯바람에 그을려도 검어질 줄 몰랐을까

남새밭 너머 불어온 바람에도 메밀꽃을 피운다

흐르는 강물의 소리로 계절을 말할 때마다

고니는 오래된 저녁을 날았는데

큰기러기는 뭉툭한 부리로 갯벌을 파해쳤다

새가 많고 물이 맑아 을숙,

얼핏 개흙을 읽어가는 이름이다

천삼백 리 물의 여정이 하구에서 끝날 때

철새는 해 질 녘 어느 하늘을 날았을까

낙조에 물든 날갯짓 따라 사각사각 흔들리는 을숙,

둘러보면 떠밀린 에덴처럼 멀리 있다

갯내가 좋아 갯메꽃을 피우는 사하의 밤에

철새가 물고 온 울음도 모래탑을 쌓는데

싱싱한 강바람에 얼굴을 돌려온 세월

은빛 물살을 낚아챈 붉은부리갈매기가 떠나면

나는 어디에서 붉어질 수 있을까

세모고랭이 피면 상처도 연꽃이어서 을숙,

팽팽하게 걸린 현수막에는 생태체험이 적혀있다

바람 부는 날에 혼잣말을 해도

젖은 땅을 빼곡하게 기억하는 언어들

물그림자 그림처럼 걸리면 을숙도가 온다

 

 

 

 

[우수상] 쥐섬 솥섬 고리섬의 시간 / 고훈실

 

 

그 섬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안개바람이 일었다

몰운대 어디메쯤 긴 목을 빼고

시간의 지층이 단애를 이룬 섬과 섬의

꼬리를 본다

손 내밀면 잡힐 듯 지근한 거리에

점점이 떠 있는 그리운 여우족(族)

글썽이고 반짝이는 바다에

주둥이를 담그고 해당화 눈빛으로

섬과 섬을 넘나든다

고기잡이 배들이 돌아올 때면

갈매기보다 먼저 파도를 탄주하는

삼도귀범의 푸른 여우

물속 산맥을 내질러 바다의 내장을

성글게 끊어 먹고

머리만 우뚝한 태초의 시간을 내민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여우, 수평선을 지나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이음매가

자갈마당에 밀려온다

그 밤 여우가 삼킨 별들이

다대포 앞바다를 환하게 밝혔다

 

 

 

 

[가작] 고니와 새섬매자기* / 한승엽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

초록의 꽃대가 낙동강 하굿둑에서 하늘거린다

수십 센티까지 자라고 자라

꽃들이 갈색으로 익어갈 무렵이면,

국경을 월담하듯 찬 공기 뚫으며

날갯죽지의 근육을 달랠 틈도 없는

고니가족들의 긴 울음소리 들려오고

고비마다 구름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긴 목과 납작한 부리를 앞세워

매순간 타고난 집중을 펼치며 날아오는데

금방이라도 잡힐 것처럼

산과 강줄기가 멈추지 않고 흐르더니

모래톱, 아늑한 모래톱이

수천만 개의 눈빛으로 반짝이며 일어서고

차가웠던 뺨이 환히 달아오를 때

저 한복판 끄트머리에서

더 환하게 물들어 있는 것들이 보이자

견딜 수 없는 허기에 정신이 없다가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자세로

아니 무리지어도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서

사뿐히 내려앉고 있다

순간, 새섬매자기는 인연을 눈치 채고

꽝꽝 얼어붙는 혹한 속에서도

평화의 순례가 시작된 것을 알았을까,

무엇인가 춤추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새섬매자기: 고니가 먹이로 즐겨 찾는 다년생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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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아파트 / 박이레

 

 

장미 피었네

담장 위 철망까지 올라

붉은 장미 만발하네

 

101동과 111동은 직선거리 일이 분

담장 못 넘으니 돌아서 십여 분

지난봄, 가시철망 공사가 보강되었네

 

100동 사람들은 110동 사람들을 임대충*이라 하고

옆 단지 사람들은 100동 사람들을 주공 거지*라 한다는데

세상모르고 장미꽃, 자꾸 덤불을 이루고

 

전거지*와 월거지*

105동에 사는 나

저 덤불, 오래 바라보네

 

덩굴장미 더 피어오르네

아파트 값 오르고 내리는지 모르고

가시철조망 왜 더해졌는지 모르고

철망 위로 오르고 오르네

 

벌레와 거지의 눈길 난무하던 허공 사방으로

장미 덩굴 타오르네

자정 넘은 가로등 아래서도 온통, 붉네

 

혹한기도 길었는데

폭염기가 길고 기네

 

* ‘임대충’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주공 거지’는 ‘주공아파트 거지’의 준말로 쓰이며,

‘월거지’는 ‘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는 ‘전세 사는 거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걸어도, 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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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노동해방, 인간해방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제정된 전태일문학상2020년 올해로 28회째를 맞았다. 특히 올해는 19701113일 스물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청년 전태일이 50주기를 맞이하는 해이다. 많은 문학상이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전태일문학상은 모든 노동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전태일처럼 여전히 삶과 함께하는 문학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8회 전태일 전태일문학상은 309명이 1,208편의 시를, 소설은 134명이 170편의 소설을, 116명이 149편의 생활글을, 6명이 6편의 르포를 응모하였으며, 15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은 101명이 307편의 시를, 145명이 145편의 산문을, 14명이 14편의 독후감을 응모하였다.

 

시 부문 당선작은 시민의 삶을 축약된 언어로표현한 장미아파트4편이며, 소설 부문은 투박한 문장 속에 용솟음치는 진정성으로 묘사한 어금니가 선정되었다. 생활글 부문 당선작 걸어도, 걸어도는 평생 노동자로 산 아버지의 병간호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그렸으며, 특히 올해부터 생활글과 별도로 공모한 르포 부문 당선작 다크 투어는 아시아 곳곳을 찾아다니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기록은 그 자체로 연대의 한 방식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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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묵연墨硯 / 전양우

 

오로지 새벽 첫이슬 모아

이택재麗澤齋 교육백년대계

經世致用 修己治人

역사의 정통성 東史綱目에 새기니

만고불변 송덕비에 빛나는 목민의 뜻

말없는 수양으로 한없이 뿌리 내려

무성한 가지 광주 뜰에 펴고

영원히 푸른 향기 큰 가슴에 가득 담아

家和萬事成

身體髮膚受之父母

때로 가뭄으로 헐벗고

비바람이 눈을 가리고

눈서리가 오감을 마비시키고

삼복더위가 숨을 막아도

밤새 촛불로 타는 고지식한 진심

大器晩成

새소리 화합하고 신록 화려하니

향기는 사방에 나비 떼로 남아서

천고의 북소리 오늘까지 들려오니

정갈한 묵연墨硯 어제처럼 서늘하다

 

 

 

 

 

 

[금상] 記夢*(기몽) / 최재영

 

이택재에 저녁이 들자

뒷산이 먼저 내려와 눕는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어둠을 밀어내려

누군가 밤새 서책을 읽고 있을까

등촉 흔들리는 창틈으로

달빛은 수시로 들렀다 가고

사내의 형형한 눈빛이

길고 긴 역사를 통시한다

반도의 강역을 바로 알리고자

핏발 선 눈으로 써 내려가는 일필휘지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사내의 비범은

어디에서 읽어내는가

필생의 역작을 기억하는 노거수 느티나무는

켜켜이 바람을 접었다 풀며

뼈 속까지 환해지는 묵향 한 줌씩 내놓다

꿈에서라도 근심하여 찾아오시는지

한 획씩 힘있게 내리긋는 붓 끝엔

밤늦도록 적막이 머물다 간다

꿈을 더듬어 기록하는 내내

일생 강직하여 고단했던 그의 행적을 따라

아득히 번져가는 먹빛, 환하게 피어난다

 

*기몽: “꿈을 더듬어” “꿈을 적다”는 뜻으로 안정복의 시 제목

 

 

 

 

 

[은상] 가을, 이택재 / 김희숙

 

소슬바람이 계절의 손을 잡고 이택재에 당도한다

새들은 마당에 종종거리며 발자국 글씨를 쓰고

햇살은 눈을 반짝이며 문장을 읽는다

 

가을이 노랗게 내려 앉은

느티나무 아래 순암을 생각한다

수백 년 느티가 만들어준 그늘, 그 그늘의 심연

그렇게 세상에 한없는 그늘을 나누어 주고 떠난 사람

 

글자에 녹아든 영혼이 묵향으로 풀어지는 사숙당

텃골에 울려 퍼졌을 호연지기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유생들의 글 읽는 환한 소리, 새벽을 깨웠겠다

 

역사의 계통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느라

지새웠을 나날, 이택재는 묵묵히 지켰으리라

빗방울 불러와 노래 불러주고

깊어가는 하늘 위에 순암의 생각 받아 적었겠다

 

 

 

동상: 정철(이택재에서)

동상: 박종익(이택재의 별)

동상: 강명숙(순암을 읽다)

동상: 이영균(순암의 이택재를 나서며)

동상: 박봉철(대죽에 필사하다)

 

장려상: 서상규(꽃과 나비가 편찬한 역사)

장려상: 최형만(영장산객전)

장려상: 박혜정(순암의 말)

장려상: 윤두용(이택재 혼불)

장려상: 정형근(순암의 가르침을 읊다)

 

 

 

 

 

 

[심사평]

 

제3회 안정복 문학상에는 총 542명이 응모하였다. 제1차 심사에서 100편을 선정하여 제2차 본심에서 13명을 선정하였다. 대상 1명, 금상 1명, 은상 1명, 동상 5명, 장려상 5명이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뚜렷한 주제의식과, 다양한 수사법(Rhetoric)에 의한 표현의 형상화와 운율 등에 초점을 맞추어 심사에 임하였다.

순암 안정복 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실천과, 역사의식 등을 잘 이해하고 시로 승화시킨 작품에 가점을 주어서 선정하였음을 밝혀둔다.

전양우씨의 「묵연墨硯」은 뚜렷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며, 시의 형상화면에서도 순암의 생애와 역사의식을 충실히 표현해내고 있어서 대상에 선정되었다.

최재영씨의 「記夢기몽」은 주제의식과 시의 유기적 구조, 표현의 유려함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금상에 선정되었다.

김희숙씨의 「기억의 건축학」은 제의의식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 역사와 본질과 조우하는 과정을 심도있게 형상화해내고 있어서 은상에 선정되었다. 그 외에 동상과 장려상 등에 선정된 작품도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이 많아서 선정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심사숙고하였음을 말씀드린다.

수상자에게 축하드리며 선에 들지 못한 많은 분들께도 아낌없는 격려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안정복 문학상>을 제정하여, 많은 국민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데 기여해주시는 순암연구소와 현대시선문학사에 경의를 표한다.

 

심사위원

이혜선(시인 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김영미(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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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우수상]

 

 

 

[우수상] 미역 / 이석재

 

 

시간을 정지시키면 외롭지 않으리라 여겼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기를 떠나보내며

부드러웠던 몸이 딱딱해져가는

서른 세 살의 사내가 맞이했던 그 춥고 적막한 어둠처럼

불안을 깨물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네

차가운 눈발 불 켜진 유리창에 투신하며 눈물이 되는

속 쓰린 새벽에도 그랬었네

낯선 사랑이 끼어들 수 없도록

잘 수축된 힘줄과 근육과 혈관 속에서

한결 헐렁해진 기억들이 따뜻한 갈증으로 수런거릴 때

양푼에 담긴 한 바가지 물속으로 번지점프를 하듯

아아 그렇게 몸을 던졌다네

정지되었던 시간이 풀려나는 느낌을 아는가

그 간질간질하면서도 스멀스멀 찾아드는

묘한 부활의 쾌감은

첫사랑의 느낌처럼 찾아온다네

오래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의 숨결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네

혈관마다 연초록 피톨들이 콩콩콩 뛰어다니고

굳었던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내 안에 갇혀있던 두려움도 함께 풀려나

어디론가 재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네

바람의 손을 빠져나와 일렁이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펄럭거리며 사라지고 있었네

까닭없이 눈물이 핑 도는 맑고 시린 부활의 아침에 말일세

 

 

 

 

 

[우수상] 허수아비 / 이희경

 

 

알곡 여문 이삭이 바람을 묵상하는 동안

절정에 닿은 기운이 모자 위로 내려앉습니다

호흡 있는 이름을 누리며

고요의 언어를 통독한 목울대

신음도 묵음이기에 잠시 바스락거릴 뿐

참새의 간계를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궁티 나는 가슴을 그늘에 가둔 채

검불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르는 생애

좀이 슬지 않는 뼈대와 옷 한 벌은

비루한 영혼을 구원하신 주인의 증표입니다

황량한 아픔이 뼛속으로 스미는 저녁

들판에 흘린 외로움을 눈치챘는지

붉은 울음 만개하는 구름

화려한 옷이 최고라던 건너편 친구는

연신 마른기침을 합니다

바람을 타고 달아나 버릴까

곤고한 직립이 멍에처럼 버거워

볏단 속에 마른 눈을 구겨 넣고 돌아서다가도

헐렁한 육신으로 깨달을 수 없는 일체의 비결

혈연을 깨닫게 해준 말씀을 읊조리며

슬며시 고개 드는 겉사람을 밀어냅니다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라

십자가처럼 벌린 두 팔과 발목에

햇살이 대못을 박으면

고개 숙인 계절을 파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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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 통해 기독문화 지평 넓히려는 독자들 참여 열기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행사를 못해 작년 응모작품과 금년 응모작품을 더해 모두 4800여편을 심사했다. 한국문인선교회장 김연수 시인을 심사위원장으로 김수영 김원 김기동 석희구 신호범 심사위원 등의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50여편이었다.

최종심에선 심사위원장 이근배(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시인, 심사위원 김상길(전 신앙계 사장) 최규창(전 기독교신문 주필) 김소엽(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 회장) 김연수 시인이 지난 12일 최우수상에 이경은의 ‘어머니의 무릎’, 우수상에 이희경의 ‘허수아비’ 김태호의 ‘붉은 흙’ 이석재의 ‘미역’을 선했다. 최우수작 ‘어머니의 무릎’은 절박한 이 시대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모성에 투영, 시각화된 언어로 표현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응모해 신앙시에 대한 관심과 열망 그리고 시를 통해 기독문화의 지평을 넓혀 가려는 독자들이 많다는 긍정적인 면을 접했다. 하지만 영성과 예술이 일체를 이루는 완성도 높은 대상작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고 심사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 빈 자리에 우수작품 3편을 뽑아 아쉬움을 대신한다. 격려의 의미로 금년에는 장려상도 12명 선정했다. 김귀순의 ‘탁본’ 고명숙의 ‘봄동’ 길덕호의 ‘담쟁이의 기도’ 김해리의 ‘재봉틀’ 박수자의 ‘뜨게질’ 설봉수의 ‘어머니의 기도’ 양성진의 ‘나의 구들장’ 오윤석의 ‘그림자되기’ 오정순의 ‘혀밑에 숨겨둔 말’ 이동아의 ‘민들레에게’ 이혜정의 ‘가시품은 형틀’ 정대기의 ‘한줄기로 산다는 것’ 등이다.

- 심사위원 : 이근배, 김상길, 최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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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4호 동인지는 빛을 잃고 어둠에 갇혀 지낸 시간의 기록입니다. 외롭고 쓸쓸해서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평이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포착한 시를 읽으면 여전히 반짝임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열 명의 기발표작 혹은 신작시에 덧보탠 시작노트는 어쩌면 무디어지지 않으려는 감성의 몸부림일 것입니다. in동인지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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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아미 - 여덟 손가락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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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투합 시골시인K 주류 문단에 하이킥 - 경남도민일보

경상도 지역 시인 6명이 중앙 문단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들은 지역을 과소평가하고 중앙 문단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 문단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시 60편과 산문 6편을 묶어 내달 (걷는사람)

www.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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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김민지 기자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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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시인-K’에 관한 기사를 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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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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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합동시집(걷는 사람) 출간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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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논의를 하는 중이다.

.

시집은 4월 5일부터 시중에 배포될 예정이니

.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며

.

‘시골시인-K’와 함께 문학관련 행사를 원하시면

.

아래로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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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주소 : ksujin1977@hanmail.net

연락처 : 010-422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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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비정첩 / 안광숙(필명:안이숲)

 

 

문틈에 나비 한마리가 다소곳이 날개를 접고 있어요

놋쇠 장식으로 된 고운 나비로 태어나 제대로 한번 날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이

여름을 건너뛰려 하고 있네요

 

종손이라는 이름에 걸린 가문 한 채 간수하느라 공중을 떠돌아 잔잔한 이곳에 뿌리를 내린 당신

방문이 열릴 때마다 낮은 발자국 소리에 묻은 녹슨 고백 소리 사뿐히 들려옵니다

 

솜털이 시작되는 고향에서 나비무늬 박힌 치마저고리 입고 의령장에 구경 가던, 팔랑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날아오르던

어머니의 원행엔 연지곤지 찍은 꽃들마저 고개를 숙였던가요

 

얘야! 시집와서 빗장을 지키는 게 평생의 일이었단다, 느리게 접힌 쪽으로 아픈 고백을 쟁여둔 어머니

다음 생에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지 마세요

몇 겹으로 박제된 풍장의 어머니 쇳가루 떨어지는 서러운 날갯짓 소리 수없이 들었어요

 

빗장에 방청 윤활제를 솔솔 뿌리면 마당 귀퉁이의 세월에 퍼렇게 멍든 잡초가 피어오르고

당신은 눈코입이 삭아 자구만 떨어져 내립니다

붉은 눈물이 소리가 되어 공중을 묶어 놓고, 납작하게 접힌 마음을 일으켜 이제 편안하게 쉬셔요

여닫이에 꼿꼿한 등을 붙들린 지 수십 년, 뒷목부터 낡아가는 수의는 그만 벗으셔도 되요

 

염습을 마친 8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겹겹이 에운 문틈 사이로 녹슨 쇠 울음소리 선명하게 들려오는 밤

당신의 평생 그 어디쯤에서 터지는 발성법을 익혀 이리도 가늘고 긴 곡비를 준비했을까

 

우리 한번은 서로를 열어야 하는데

어머니, 어느 쪽이 제가 돌아갈 입구일까요

 

 

 

 

 

[심사평] 오래된 사물에서 찾아낸 아름다운 시심

 

제11회 천강문학상 시부문에 전국에서 응모한 작품이 무려 2,300여 편에 이른다고 하니 천강문학상의 명성과 그 명성에 걸맞은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 많은 응모작 중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이 140편이다.

 

본심에 넘어온 밀봉한 큰 봉투를 열었다. 작품에 응모자의 이름은 없고 접수 번호만 적혀 있다. 혹시라도 모를 정실에 따른 심사를 미리 방지하자는 뜻일 것이다.

 

모든 작품을 세 번에 걸쳐 되짚어가며 읽었다. 한 편이라도 허술하게 넘어가거나 오독하는 일이 없도록 한 구절 한 구절 곱씹듯이 읽었다.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이 많은 작품이 왜 모두 비슷한 성향, 비슷한 흐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유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머리로 쓴 시만 있고, 깊은 서정이나 감성으로 독자의 가슴을 물들이는 시, 새벽 종소리처럼 영혼을 울리는 시는 보이지 않았다. 수다스러운 사변 때문에 지루할 정도로 긴 시만 있고, 언어를 응축하여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정갈한 시는 보이지 않았다.

 

요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주문처럼 외우는 '낯설게 하기'에 너무 심하게 공감한 탓일까. 새롭고 기이한 표현이 넘쳐나고, 상상의 날개를 단 시상들이 관념의 세계를 종횡무진 횡행하는 시어들이 난무할 뿐,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의 세계로 우화하는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 작품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공감하고 어떤 새로운 세계를 보아야 할지 몰라 머뭇거려졌다.

 

그런 가운데서 골라낸 작품이 <일각고래> <저녁의 꼬리> <가정> <나비정첩> 등 네 편이다. 골라낸 네 편을 되짚어가며 열 번쯤 읽은 것 같다. 한 줄 한 줄의 시상이나 한 편의 시에 일관되게 흐르는 생각과 바탕에 깔린 정서와 오묘하게 감추어 둔 혜안을 놓치지 않으려 유의하면서 읽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정> <나비정첩> 두 작품을 놓고 고심했다. 두 작품 다 독자와 소통되는 언어로 이끌어 간 점이 맘에 들었고,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표현과 시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이 돋보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시상에 집중하는 사유의 일관성이 믿음직했다.

 

<가정>은 다문화 가정에서 김장하는 가족의 모습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장치만으로도 이 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현실 감각이 두드러진다. 뻣뻣하던 김장감에 소금을 뿌려 그 소금이 단단한 쪽과 부드러운 쪽을 오가면서 단단한 성질 절여질 때를 기다리는 시간을 거쳐 이국땅에서 온 저들도 곧 이렇게 버무려질까 하고 시상의 가지를 뻗어 가는 솜씨가 능숙하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까치놀처럼 물드는 서정의 침윤이 부족하여 끝내 <나비정첩>의 손을 들고 말았다.

 

당선작으로 뽑은 <나비정첩>은 시어가 생경하지 않고 시상이 난삽하지 않고 정갈하면서도 붓에 듬뿍 묻힌 먹물처럼 마음속에 번지는 발묵이 고운 선을 남긴 작품이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여닫이 옷장의 나비 정첩이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녹슬어 가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한 생을 보는 딸의 마음이 아련한 슬픔으로 젖어든다. "놋쇠 장식으로 된 고운 나비로 태어나 제대로 날아 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을 떠올리면서 "여닫이에 꼿꼿한 등을 붙들린 지 수 십 년"인 어머니의 생애를 돌아보며 "납작하게 접힌 마음을 일으켜 편히 쉬셔요"하고 어머니의 타계 앞에서 나비 정첩과 어머니의 생애를 하나로 융합한다. 비교적 긴 행으로 이어졌으면서도 운율이 흐트러지지 아ㅣㄶ은 것도 이 시에 내재한 정서의 흐름이 유연함을 방증한다 하겠다.

 

오래된 사물의 아름다움 속에서 새로운 시심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 세계를 끝까지 견지해 산봉우리 하나를 이루는 좋은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김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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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시선집중 / 황은순

 

 

등대불빛이 바람에 구르다 물의 나이테에 엎질러진 순간 내 곁엔 당신뿐이야, 갯비린내 애돌던 동백꽃, 시선 집중으로 붉은 입술 내민다 철없이 나근대며 꽃잎 흔드는 뺨이 감미롭다 물너울에 훅 끼쳐온 등대의 해조음, 축복된 봄날의 술래라서 둘만의 유희가 저리 꽁냥꽁냥 하는 걸까 우우- 별들도 손잡는 푸른 밤이 3월을 뛰어넘는 섬 기슭,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짓궃게 휘파람 불어대는 바람의 오동도 마당을 기웃기웃, 후비는 파도에 등대허리 쑤셔도 진득한 자세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 바로 너 때문이란 걸 아니? 멀리 두어도 언제나 꽃잠처럼 달려갈, 여보라는 듯 꽃잎을 부르는 여보!

 

* 꽃잠 : 신혼 첫날 밤의 잠

 

 

 

 

 

[우수상] 칼춤 / 길덕호

 

 

칼은 이곳 바다에도 있었다.

바다는 시퍼런 불씨를 하나 집어 들고

칼을 담글 때마다 하얀 거품을 울컥 토해낸다.

새털구름이 바다에 눈보라를 일으킨다.

 

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채낚기에서는 칼춤을 출 준비가 한창이다.

하늘은 바다와 쌍둥이의 얼굴을 하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고개를 기웃

눈빛을 반짝이며 햇살에 눈살을 세운다.

선장은 하늘같은 바다 위에서 너른 마당을 차지하고

얼쑤 한바탕 장단으로 춤꾼들의 손길을 불러 모은다.

흥에 겨워 손재주를 넘는다.

 

한길 품속에도 모르는 것이 바다의 옷깃이다.

푸른 저고리 하이얀 치마를 갈아입은 바다

푸르게 부풀어 오른 하늘을 가져다가 물풍을 내려치고

벚꽃 치마로 해풍을 불러다가 채낚기를 채근한다.

바다의 품안에는 번뜩이는 칼들이 있고

칼은 춤꾼들의 목숨

목숨들 도열해서 태양을 사모하는 노래를 벼린다.

칼날은 속 물살 되어 일렁이고 눈부신 춤을 깊숙이 추고 있을 터.

선장이 시퍼런 속살에 하이얀 막걸리로 고수레를 하면

막걸리의 향내가 푸른 저고리를 타고 무지개처럼 부서지고

춤꾼들은 얼음 한 조각씩 입에 물고 새파란 미소를 흘린다.

초승달의 비릿한 미소가 바다를 가른다.

 

상모의 긴 낚싯줄을 돌리며 춤꾼들은

하나둘 별빛을 들었다.

칼들은 별무리를 따라 이리저리 군무를 추고

바다는 새하얀 치마 마구 흔들며

푸른 저고리에서 은빛 칼들을 시퍼렇게 꺼내 들었다.

별빛에 번쩍이는 칼들의 춤

바다의 옷고름도 하늘에 가 닿았다.

춤꾼들의 거친 이마에는 칼자국이 깊이 배었다.

춤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숨결은 칼이 되어 폐를 찌르고

두 손은 칼들을 쥐고 허공을 베고 있었다.

온몸이 환한 은비늘 칼들의 춤이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밤이었다.

 

둥-둥뱃고동 같은 북소리가 울린다.

채낚기에서는 칼들을 겸손하게 내려놓고

파아란 저고리를 가만히 바다 위에 올려놓았다.

잔잔해진 바다는 길 떠나는 관객의 모습으로

선미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태양은 불 꺼진 무대를 환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뜨거운 땀방울로

깊게 베어진 이마를 꿰매던 춤꾼들은

만선의 어진 마음으로 저마다의

칼을 하늘보다 더 높이

치켜들었다.

 

 

 

 

[가작] 고진멸치 / 이성배

 

 

이리 잠 와보이다 뽀짝 댕겨안즈이다

이것 쬐깜 묵어보이다

지름이 솔차니 올라 노리끼리헌 거이 영 맛내요

으치요 짭짜름해도 겁나게 맛내지다

많이 잽히질 않은께

그물에서 살았을 때 바로 삶아

입 벌린 채 등이 오그라진 거이 진짜 멸치당께

어창에서 죽은 걸 삶으믄

빤듯빤듯허니 보기는 좋을랑가 몰라도

벨 맛태기는 없당께

여수 고진멸치하믄 최고로 알아주지다

요새도 장마당에 가믄 고진멸치라 속이서 포는디

영 맛이 다르당께

성 밖에서 나서 여숫머리로 시집 왔은께

평생 요 바다만 보고 살았지다

뭐라 해싸도 멸따구만한 게 없어라

볶아묵고 꼬치장에 찍어묵고

국수 삶거나 된장국 끼릴 때 육수로 제일이지다

심심헐 때 주전부리 삼아 묵으믄 더 좋코

큰 괴기 항개도 안 부럽당께

지 잘났다꼬 고개 빳빳이 쳐들고 거들먹거리는 놈

알고 보믄 다 허깨빈껜

꼬리 띠고 지느러미 짤라내고

억쎈 뻘다구 발라노믄 반도 없지다

 

대가리는 왜 띠고 똥은 또 왜 버리요

대가리하고 똥까지 묵어야 참맛을 알지

짭고 비리고 쓴 것 항꾼에 씹어야

나중에 달달허당께

사는 것도 똑 같애

쓴 맛 짠 맛 다 보고 마지막에 단맛이 나지다

작고 못났다고 세상 원망할 거 항개도 없당께

멸따구가 요 바다를 맛내게 허듯이

작고 못난 것들이 세상맛을 내게 항께

멸따구 맹키로 항꾼에 모여 부대끼며 사는 작고 못난 놈들이

서로를 따땃허게 보듬아주고

세상을 포근하게 안 헙디요

 

몇 년째 멸따구 보기 힘들더만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쬐깜 낫소

바다는 삼 년이란께

이 년 내리 허탕 쳐도 한 해만 잘 건지믄 살 수 있지다

물방에도 계속 그물을 던지믄 한 번은 만선을 허지라

맨날 만선 허믄 안 헐 놈 어디껏소

그물도 안 놔보고 괴기 없다는 놈 도둑놈 심보지

세상 바다도 마찬가지 아니겄소

고기 드는 디다가 부지런히 그물질 해야지다

 

샛바람이 터져부렀네

낚시 걷고 언릉 일어나이다

할아버지는 저 바람을 도깨비 씹허는 바람이라 하더만

밤 새 자도 않고 지랄용천 헌다고

긍께 금방 그칠 바람이 아니당께

사는 거이 바람 안고 물을 거슬러 가는 거랑께

심들다고 노 안 저스믄 밀릴 수밖에

포구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그러다 좌초되거나 침몰허는 거지다

 

에이다

이거 가꼬 가서 묵소

꼭꼭 씹어 묵으믄 바다의 참맛을 알꺼요

고진멸치 짠맛이 여수에 참맛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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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어 / 길덕호

 

 

해가 뜨기 전 골목은 깊은 바다가 된다.

어제 뜬 별이 성게처럼 유리창에 들어가 박히고

달빛 떠난 적막만이 청니 덮인 푸른 길을 내었다.

골목 어귀에는 바람의 물결이

아가미로 들썩이는 낙엽들을 이리저리 골목길로 내몰아

잠들지 않는 가로등을 등대 삼아

저마다의 항로를 향해 무겁게 철썩인다.

 

어두운 골목 바위틈에선 담배의 빨간 불빛이

야광석처럼 공기를 빨아들이고

빛을 보고 모여든 심해어 한 무리

크릴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추위에 오그라든 비늘을 깃으로 세운다.

해풍에 돛을 올린 사람들

삼삼오오 자신의 지느러미로 헤엄치며

집어등 밝힌 인력 사무소 앞에 묵묵히 모여 든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면서

깊은 해연의 푸르스름한 자궁 안

어머니의 따스한 첫 부름을 생각해 본다.

부드러운 물결 같은 그 한 마디가 탯줄을 타고 들어와

뼈를 세우고 심장을 뛰게 하였지.

양수 같은 새벽 공기가 바다의 모습을 한 채

사람들을 안개 속으로 이끌고 있었다.

 

파도 한 점 없는 갯벌 같은 해저의 광야

골목의 탯줄을 따라 출렁이는 한 무리의 물결

울먹울먹 꽃으로 뼈를 세우는

심해어 한 마리

굵은 몸짓의 자맥질로 깊은 바다를 유영하면

태양은 그제야 수평선에서 입질을 시작한다.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 당선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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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한탄강 물윗길을 걸어갑니다. 물은 발 아래로 흐르지만 소리는 늘 귓전을 맴돕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최상의 시어들입니다.

 

때때로 노을이 익어가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시상들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의 물줄기는 말라만 가고 메마른 시간들이 지나만 갔습니다. 동력이 떨어지고 지칠 때에 투데이신문에서 보내주신 기쁜 소식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된 듯합니다.

 

늘 옆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들, 우리 선생님들, 시문학 동아리 친구들 감사합니다.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던 귀한 친구, 또 그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글을 봐주던 소중한 친구들 정말 감사합니다.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은 잠시 책갈피에 넣어두고 기쁨의 꽃잎만 추려내어 감사의 꽃다발을 드립니다.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글이기에 더 열심히 쓰라는 채찍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산이 되고 바람이 되고 강물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예년보다 더 많은 직업군에서 더 깊은 직장 체험을 안고 시의 세계로 들어왔다. 196인의 총 919. 이 중 예심을 통과한 30인의 작품에서 수준이 좀 떨어진다 싶은 것을 빼고 나니 <심해어>(길덕호), <선인장>(황용녀), <연근조림을 먹지 않는 이유>(김종태), <문서 세단기>(김미향), <장미꽃무늬 팬티에 관한 소문>(오정순), <삼신할미의 고뇌>(김경희), <겨울로 가는 시계>(이정근), <울음이 흘러넘치는 날의 뒷면일지도>(김수수), <늦은 나라의 이상한>(박선영) 등이 놓였다. 이들을 두고 다시 오래 정독했는데 그 까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서라기보다 보다 완성도 높은 시 한 편을 찾기 어려워서였다. 대부분 체험을 비유하고 상징하는 표현을 즐기고 있었는데, 시의 전개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고 있었다.

 

최종에 남은 것이 <연근조림을 먹지 않는 이유>, <선인장>, <심해어> 3편이었다. <연근조림을 먹지 않는 이유>는 어릴 적의 아픈 추억을 되살리는 상징물로 연근을 내세운 구체성이 주목됐지만 경험을 설명하는 어투가 강했다. <선인장>메마른 세계를 건너가는 삶의 시간을 사막의 선인장에 비유하는 참신성이 목마른 내가 선인장 즙을 빨아먹는 서술로 잘 표현됐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시적 긴장을 잃어버렸다. 앞으로, 하나의 정황에서 시적 현실을 형상화하는 일을 과제로 삼는다면 크게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심해어>는 새벽 골목을 깊은 바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을 심해어로 비유하는 상황 설정을 끝까지 하나의 시적 정황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면서/ 깊은 해연의 푸르스름한 자궁 안/ 어머니의 따스한 첫 부름을 생각해 본다.”로 막노동 일터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담아내는 정서적 형상도 볼만했다. 함께 보낸 <대걸레의 인생>, <신쥐라기 시대> 역시 오랜 시작 과정을 짐작케 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시적 패턴이 다소 규격화돼 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하며 당선으로 올린다.

 

심사위원 박덕규(시인·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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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세 / 박용운

 

 

햇살도 비껴가는 골목 안, 쪽방

철새가 부리를 다듬고 있다

 

높이 날 수 없는 천성

매일 한 번씩 바라보는 새벽 별이 유일한 벗이다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납부할 청구서는 없고

계절을 품기엔 둥지가 허술하다

 

번식은 사치이고 미래는 무정란 같아

사랑 따윈 주고받지 않는다

 

높고 멀리 날아 용을 잡아먹는 가루다*가 되는 꿈을 매일 꾸는데

허약한 날개의 일상은 한 번도 끝에 다다라 본 적이 없어, 중천을 향한 힘겨운

날갯짓, 겨우 파닥임만 있을 뿐이다

 

매정하게 등짝을 할퀴는 그믐의 날카로운 손톱

깔세를 독촉하는 문자가 날아와 허술한 창문을 두드리는 시린 바람

철새 이마에 음산하게 서린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예보도 흐려 있다

 

먼저 살다간 새들은 어느 전망 좋은 우듬지에 둥지를 틀었을까

얼어붙은 생각까지 녹일 아랫목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허약한 부리로 허공 속 질문만 매일 쪼아댄다

 

양지쪽 햇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물 한 컵만으로도 한 달 넘게 살아가는 창틀 위의 선인장

끝까지 버티면서 가시 사이로 꽃봉오리를 올리는 끈기

기어이 불꽃같이 붉은 꽃을 펼쳐낸다

 

입안이 헐도록 생을 오독하던 철새

눈 속의 가시, 울어야 뽑힌다는 것을 알았다

 

* 가루다: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새.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야나를 태우고 용을 잡아먹으며 산다.

 

 

 

 

[당선 소감]

 

목마른 선인장에 꽃이 피었습니다.

 

사막에 엎드린 낙타의 무릎처럼 기도가 하늘에 닿도록 걸어온 길,

이제, 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모래바람이 험할지라도 쉬지 않고 오아시스를 향해 걷겠습니다.   

 

큰 영광을 안겨주신 NGO 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시를 포기하지 않도록 끝까지 

손을 잡아주신 선생님들께 큰절 올립니다.

 

함께 공부했던 문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두운 곳에 빛을 전하는 NGO의 깊은 뜻에 따라 더 노력해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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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NGO신문 시 부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박용운의 ‘깔세'가 선정됐다.

 

한국NGO신문(대표 김승동)은 지난 1월 말까지 전국에서 응모한 작품 1,000여 편을 놓고 신춘문예 운영위원(안재찬, 이오장, 김해빈, 김기덕, 김정현, 임경순, 김정범)인 시인들이 모여 공정한 심사 규정에 따라 예심을 실시해 그 중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 17편을 선정하고, 이어 본심에서 조명제 시인과 유성호 평론가가 최종 당선작으로 박용운의 『깔세』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진행될 예정이다.

 

본심 심사위원인 조명제(시인, 문학평론가), 유성호(문학평론가, 글) 위원은 이번 당선작을 "상상적 경험과 창조적 흔적"의 결과라고 평하고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했다. 

 

이번 2021년 제5회 한국NGO신문 신춘문예에는 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모두 202명이 다섯 편씩 출품하여 모두 천여 편이 모아졌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통과해온 열여섯 분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많은 작품들이 매우 공들인 시간을 축적해왔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 작품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경험들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오랜 습작 시간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도 예민하게 주목했다.

 

뛰어난 사례로 언급된 것들은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이고 있어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시어의 개성과 시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시편들에 호의를 가졌는데 그 결과 박용운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특히 박용운 씨의 당선작 「깔세」는 골목 안 쪽방의 철새를 서정적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처해 있는 내면의 고통과 그로 인한 실존적 반응의 연쇄를 진정성 있게 소환하고 있다. 생명성에 대한 예민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인간 실존의 난경(難境)들을 은유해가는 시인의 필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에 얹힌 철새의 날갯짓과 울음의 형식이 우리에게 비상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른 작품들도 균질성과 지속성을 예감시키는 수준작이라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그 점에서 박용운의 시가 가지는 공감의 능력은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좋은 신인을 얻어 마음 깊이 반긴다. 더불어 첫 걸음을 이렇게 뗀 박용운의 시가 더욱 공감의 상상력을 점증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기하고자 한다.

 

당선작에 들지는 못했지만, 개성적 사유와 언어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많은 응모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성취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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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꽃보다 꿈꾸는 사람이 아름답다.” 지상의 이름 없는 것들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말 걸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디카시를 좋아합니다. 내일이면 소멸해버릴 수도 있는 하나하나, 상상의 방에 넣고 입김 불어줍니다. 처음엔 프레임 속 단순한 사진과 글이지만 그 어울려 되살아난 생명들에서 우리는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누구나 이웃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추구합니다. 지긋하게 따라가는 눈동자를 발견해주고 싶습니다. 한 줄 시로 휘리릭~ 사람들 사로잡고 싶은 1인의 꿈을 꿉니다.

 

 

 

 

정은주

 

- 부산출생

- 2020<멀구슬> 창간 동인지로 작품활동 시작

- 6회 하동 국제 디카시 공모전 수상

- 제1회 이병주 소설 낭독대회 대상

- 현재 시 낭송가 및 심리상담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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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엉겅퀴, 고양이, 마저럼, 낙선작, 파나마모자, 냅킨, 구두 등 만질 수 있는 것들과 정성, 불면, 중독, 다짐, 의구, 시수Sisu, 맛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요소들이 다 함께 제레나폴리스를 지었다. 이십사 시간 입주 가능한 수제 집.

이 집을 보는 분들이 즐거워하는 가운데 문득 슬퍼지면 좋겠다. 아직 종이에 벤 손끝이 아리아리하다.

슬픔은 왕왕

기쁨을 초래한다.

제레나폴리스를 꾸리는 동안 많은 손길을 받았다. 마스크를 쓴 나를 척 알아본 분들. 일일이 호명하는 대신 그저 속삭인다. "감사합니다."

솔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드린다.

2021년 1월

마포중앙도서관 집필실에서

조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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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나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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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션현혹이론 / 김해리

 

 

어쩌다가 얼룩을 들여놨군요

온순하게 풀을 뜯던 계절을 지나면

어슬렁거리는 야생의 냄새를 맡게 되죠

 

치료는 단순합니다

얼룩이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되짚어 보세요

 

눈을 감고 동물원에서 보았던 얼룩무늬를 불러보세요

처음 본 무늬는 어댔는지 언제 가슴이 뛰었는지

흰색과 검정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서로 먼저라고 우기는 모습이 회색으로 보일 대는

그냥 웃어주면 됩니다

 

우울한 날에는 얼룩무늬를 걸치고 외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줄무늬는 날시에 민감하니까

굵거나 선명하게 혹은 가늘고 희미하게 바귀는

마치 시각을 교란하기 위한 모션현혹이론처럼

온기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달라지죠

 

검은색은 흰색보다 온도가 높다고 합니다

죽으면 더 깊어지는 사람처럼 말이죠

 

선생님, 그런데 이 말은 언제 멈추죠

말에게도 먹이와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제야 정신과 의사는 말을 멈추었다

 

검은 바지에 하야 ㄴ가운을 걸친 얼룩말

거침없이 달려와 표류 중인 보호색

갈기를 세운 열기가 주춤거리다가 숨을 고른다

 

 

 

[당선소감]

터널을 건너는 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함께 가던 그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번엔 타박타박 말없이 앞서가던 그가 허방에 빠졌다. 손을 내밀었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헛손질뿐이었다. 지쳐 눕고 싶을 때 병상에 있던 그가 멀거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일어서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허방 깊숙이 들어갔다. 그제야 그의 고른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절망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나를 꼭 잡아주던 시는 희망이고 구원이었다. 시가 있어 숨을 쉴 수 있었고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손짓하며 다가오는 빛 한줄기, 천천히 일어선다.

제 마음을 읽어주시고 부족한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넘어져 훌쩍거릴 때마다 마음 잡아주신 이경림 교수님 감사합니다. 가르침대로 시의 바른길로 걷겠습니다. 자상한 마음으로 이끌어주신 이종섶 선생님 감사합니다.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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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은 총 174명의 750편이었다. 신춘문예라는 성격을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내밀한 인식과 도전적 문체에 관심을 갖기로 하고 심사에 임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준은 높았으나 개성적인 목소리가 없어 선뜻 만족스러운 작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장윤덕의 「그늘의 역사」, 김종태의 「소행성 STGR」, 방미영의「고드름」, 김해리의「모션현혹이론」등 4편이었다.

먼저 장윤덕의 「그늘의 역사」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는 ‘그늘의 역사’를 고즈넉한 산문체에 담담하게 엮어내는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대적 풍경들을 묘사하면서 전제된 사유의 진술과 서사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김종태의 「소행성 STGR」은 시적 발상에 있어 독특함을 보여줬지만 후반부에서 평이한 낯익은 문법들로 인해 문장의 탄성이 떨어져 아쉬움이 컸다. 방미영의「고드름」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밀도 있는 접근으로 작품의 안정감과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소재면에서 새롭지 않고 문학적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김해리의「모션현혹이론」은 얼핏 시공을 뛰어넘는 사유가 난조를 보이는 듯하나 시적 압축과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곧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끝내 떨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가 사유의 세계로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응모작들도 선명한 이미지로 고른 수준을 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당선작으로 선했다.

- 심사위원 김동수, 김기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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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열차 그리고 고독 / 김안젤라

 

 

하얀 눈이 겨울바람에 제 멋대로 춤추며 흩날린다.

휘날리는 눈을 매섭게 몰아쳐가는 겨울바람은 무척이나 서슬이 퍼렇다.

 

서글픈 영혼의 가슴을 여지없이 풀어헤쳐 놓고

그나마 남아 있는 따뜻한 온기를 남김없이 빼앗아간다.

 

추워서 소름치는 겨울역 열차는 묵묵히 설 자리에 서서

혼란에 갇힌 가련한 영혼들을 무심하듯 기다려준다.

 

겨울열차는 헛헛한 영혼들을 태우고 윙윙 바퀴소리 내며

다른 이름이 달린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바람을 타며 흩날리는 하얀 눈은 씩씩대며 달리는

겨울열차의 코 잔등에 세차게 부딪치다가

 

아프기라도 하듯 갑자기 광활한 하늘을 날아 오르더니

맥없는 춤을 추며 흐트러져 왔다 또 흐트러져 간다.

 

뜻도 없이 장렬하게 부서지는 하얀 눈을

애처롭지만 그러나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는

 

고독한 영혼들은 까닭도 모를 속절없는 눈물에

어느 사이 두 눈이 흠뻑 젖고 마음도 흠뻑 젖는다.

 

외로운 영혼들을 무더기로 싣고

어딘가의 세상을 향해 달리는 적막한 겨울열차 안에는

 

기쁨에 찬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열차 안 스피커를 타고 흥겹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고독한 영혼들에게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오늘 이 밤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었던가?

회상하는 외로운 영혼들은 문득 심장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무심한 겨울열차는 자기 만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변함없는 소리를 지르며 절도 있게 잘도 달려나간다.

 

아프게 부딪쳐 오는 새 하얀 눈들의

소심하고도 거침없는 키스 세례를 무한정 받으며

 

무정한 심장으로 하얀 눈들을 하염없이 뒤로 제키며

광활하게 터져 있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암울한 영혼들이 담고 있는 제각기 다른 울림의 소리가

열차 안에 몸 담고 있는 고독한 영혼들의 귓가를 아프게 때린다.

 

여전히 세차게 채찍질하며 질주하는 겨울열차는

영혼들의 가슴 속 안타까운 사연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적지를 잃어버린 가엾은 영혼들을 한 묶음으로 싸잡아

신나는 괴성을 지르며 새로운 세상 밖으로 자꾸만 몰아간다.

 

[당선소감]

할렐루야! 먼저 삼위일체이신 전능의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느 구석지고 고독한 장소에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란 참으로 힘들다는 냉혹한 시련에 잔뜩 주눅이 들어 웅크리고만 있던 나의 삶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소망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믿음의 삶, 성결의 삶을 추구하고자 오늘도 열정의 마음을 쏟아 부으며 믿음의 여정 길을 재촉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를 가든지, 어느 곳에든지, 눈부신 빛으로 찬란하기만 하다. 주님의 숭고한 사랑과 구원의 빛으로, 각 사람의 심령을 생명으로 비추어주시고 강건한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시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가오는 새 해에는 좀 더 영과 진리로,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올려드리는 축복 받는 믿음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마음이다.

당선이라는 소식은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믿고 싶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한국기독공보사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면서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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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스케일이 큰 환상적 영상

시부문에 응모 인원은 현저하게 줄었으나 응모자들의 작품 수준은 월등히 좋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신앙에 들려주는 러브레터' '버려진 돌 하나가' '부끄러운 하루를 보낸 오늘 가을이 찾아왔다' '늦가을, 나뭇잎의 기도' '겨울열차, 고독을 싣고' 등이었다. 이 중에서 당선작으로 '겨울 열차, 고독을 싣고'를 골랐다.

서사구조에 담은 예수탄생의 드라마이다. 고독은 원죄(原罪)를 지고 태어난 자들의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모티브로 극화(劇化)한 것이다. 스케일 큰 환상적 영상을 보여준다.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고독한 영혼들에게는~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구절처럼 시적 화자는 좌절하지 않고, "영혼의 목적지를 잃어버린"자들을 겨울열차에 태워 "새로운 세상 밖으로 자꾸만 몰아간다"고 했다. 고난의 기관차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우리 고독한 영혼들을 하늘나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가?

'늦가을, 나뭇잎의 기도'는 '겨울 열차~'의 서사구조와는 궤를 달리한 순연한 서정시의 전범이 된 작품이다. 당선작에 이어 가작으로나마 올려 여러 경향을 선보이고 싶었다. 이 작품은 서정시의 요체가 되는 자연의 사물에 동화(同化)되어, 순명의 노래를 부른다. 자연에의 순명(順命), 그것은 신에의 순명이다. 화자는 나뭇잎이 되어 순진무구한 무심(無心)으로 자연 속에 녹아들어간다. 단순, 간결한 언어구사가 화자의 감정 노출을 억제하면서 인상적인 서정시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 외에 '언덕길을 오르며'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해 오르던 현장을 순례하는 장면을, 무겁고 침울한 감정이 아니라 소망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발을 씻고 신발을 신으세요"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본 것이다.

끝까지 선자를 고심케 했던 작품들 가운데 '신앙에 들려주는~'는 '그대'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해학적이고 우의적인 이야기로 전개된다. 잠자는 이의 모습을 보며 화자의 신앙적 고백을 끌어내는 작품이다. '버려진 돌 하나' 등의 작품들은 구상이나 쓰인 시어들의 짜임새가 시적 감흥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부끄러운 하루~'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자신의 내밀한 일상을 돌아보며 참회와 명상의 시간을 펼쳐 낸 작품이다. 또 '바다의 비명' '시를 짓다' 등도 기록에 남기고 싶은 작품들이었다.

- 심사위원 박이도 교수/전 경희대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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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의 내재율 /  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당선소감] 

당선 소식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쁘다. 올해의 기념으로 소양강이 내 품에 안기는 듯 했다. 카메라 속 한 컷이 마치 내 안을 담아낸 것 같아서 손끝이 아렸다. 하늘은 가만히 제 갈 길을 가는데, 나 혼자 별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눈비가 되었던 적 있었다. 강이 품을 만큼만 여울을 남기듯, 이제 나는 물속에 잠긴 나무에서 수심을 덜어내야 한다. 얼마 전 다친 아들의 손을 이슥하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푸른 건물 유리창 너머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그가 강물에 비친다. 당선의 기쁨이 아들과 나의 아픔을 천천히 거두어가고 있다고. 

초석잠 자는 저를 밖으로 끌어주신 이영춘 선생님, 덤벙주초에 맞춰 詩살이 하는 저를 격려해주시는 중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교수님들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윤성택 마경덕 이종섶 선생님께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시클 감사드리고,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 중대포엣 식구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글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남편과 주석 주화 고맙습니다. 전북도민일보, 제 부족한 작품을 심사해주신 소재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는 마음으로 시로써 따뜻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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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심사위원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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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고 / 황정현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

 

 

 

 

 

[당선소감]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이 자리에 제가 앉아도 괜찮은가요?"

 

미안해요 여기

당신이 앉았던 자리인가요

 

접혀 있는 페이지는

당신이 읽던 페이지였고

 

아무렴 어떤 가요 슬픈 페이지를 넘기면

또 다른 슬픔이 펼쳐지는 걸요

 

유리창은 햇빛을 쏟아내더니

이내 비구름을 몰고 오네요

 

책 귀퉁이가 닳도록

당신이 읽던 페이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줄 몰라서

다가가는 일도 제겐 큰 용기가 필요했지요

 

당신은 잠시 자리를 비운 걸요

이 자리엔 누구나 앉아도 괜찮습니다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삐걱삐걱 의자가 소리를 내면 제 뼈들도 뚜둑뚜둑 화답을 합니다. 그렇게 저도, 의자도 함께 낡아가겠지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출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겠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이신 김윤배, 김명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함께 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제게 피와 살을 주신 황의열·강신해님, 정숙광·선정선, 늘 저와 함께하는 김영형·김수민, 문전성시 최지온·서미숙·금희숙·김혜숙·염형기·박양미님, 문장강화 김산 선생님, 조재일님,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이승하 교수님과 문우님들, 파피루스 김혜정·김율관·이해민님, 시와 찻잔 김희광 선생님과 문우님들, 용산도서관 이승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유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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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 확장된 미학 눈길

 

이번 응모작들은 일상성에 노출된 실업, 가족, 반려, 생태 등을 소재로 한 사회적 문제에서부터 코로나19를 반영하듯 감염과 질병 등에 주목하며 삶의 보편적 중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도모하는 다채로운 경향의 시편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층위를 건드리는 시편들을 통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의 자리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모던한 시적 상상력으로 고유한 사물을 새롭게 견인하면서 긴장감 있게 구현하고 있는, 10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또한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은유의 한계를 유연하고 감각적인 발상으로 작동시키면서 시어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특질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평균화된 시작에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심 작품들 중에서 구체화되지 못한 묘사들과 관념어들이 오히려 번뜩이는 상상력에 균열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정현씨의 '핑고'와 강현주씨의 '고양이' 등 두 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려놓았다.

 

이 두 작품 모두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존재의 모순을 해체하여 시적 언어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와 확장된 미학을 끝까지 선보인 '핑고'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연하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핑고'는 담담한 어조로 '빙산'의 푸른 내부를 응시하면서 '무덤 속 얼음''흙을 밀어 올리는' 생명의 신생과 사멸에의 '언어적 밀행'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신예로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끝까지 입을 모았던 후보작 역시 공교롭게도 '빙하''너울거리는' 생명에의 내부조직을 '강렬한 축문'으로 읽어내는 냉담한 시선과 사물을 여과하는 치열한 시적 안목을 높이 평가했지만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거쳤다.

 

- 심사위원 : 문태준,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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