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순암順菴의 빛 / 조선의

새들은 내려앉는 자세로 텃골을 선회했다
고여 있는 시간이 안개로 일어서다가도
돌아서면 사라지는 방향으로 꿈틀거렸다
침묵의 겉옷에 가려진 상처처럼
쉽게 배설할 수 없는 감정의 조각들
한 뿌리 제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장마다
허기진 물음 같은 오래된 정설을 찾아
각기 다르게 예속된 수 세기 연대를 더듬었다
명분을 가진 꽃들의 과장된 수식어만큼
첨예한 빛깔로 대신할 수 없는 주장은
전지의 양날에 놓인 운명과 같았다
의례에 어긋나면 시비가 따른다*
야사는 무른 혀처럼 복선이 깔린 낭떠러지
정사를 펼쳐내는 힘은 가감 없는 기록에 있었다
하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대의大儀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순암의 일필휘지
순례의 첫발을 떼듯 어둠을 무릅쓴 빛이
새들의 날개보다 가볍게 떠올랐다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







[금상] 근본을 찾아가는 길 / 박성훈

이택재의 향기, 숨결 보란 듯 그대로일 테니
초서롱 저서롱 넓고 깊은 가르침 미쁘기 가없고
내어 준 밑동 잘리는 고통도 순순히 참아내면
몸뚱어리 차마 어쩌지 못해 새순은 그렇게 돋아날 테지

까치발로 들어 올린 위태한 세상 홀로 짊어진 채
존재하지 않던 길 정답 찾아 헤매던 날들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 곧게 걸었던 그 길 위엔
눈물 한 방울 없는 조문객의 서러운 곡소리

설핏 사람을 속여도 세상까지 속일 수 없듯
선뜻 선을 양보해도 인까지 양보할 순 없는 법
갈래갈래 알 수 없는 길, 배움의 길 걷다 보면
나를 이겨 도를 행함에 찾기지 않던 길 찾아낼 테지

속이지 못한 양심을 속인 우매함을 경계하나
묻고 또 물어봐도 누구 하나 올곧은 대답 없으매
본 것 없고 근본 없는 속물 될까 두려워
애오라지 글 밭 매고 일구어도 겉멋 드니
이녁은 어느 세월 오묘한 이치 깨칠 날 있을까.






[은상] 수택(手澤)*의 기록 / 이미영

희미한 과거는
종이에 묻은 사람의 지문을 닮았다
동심원 한 쪽이 무너졌기에
옛사람들의 행적을 찾는 일은
그래서 더 궁글고 아득하다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간을
일일이 백지에 옮겨 적는 선유(先儒)
중심에서 멀어지는 생각들이
조급해진 붓놀림을 재촉하고
종횡무진, 뻗어가는 이야기를 쫓느라
그의 낮과 밤은 점점 짧아진다
무뎌진 직관과 유순한 이성이
되살린 숨소리를 잡아두느라
붓의 깃이 닳고 벼루에 구멍이 났다
태도의 흐름을 안쪽으로 모으고
틀림과 다름의 갈래를 짚어내느라
대하의 방점을 한참동안 미뤄둔 지 오래
사료를 모으고 실증을 더할수록
근본 없는 속설은 갈피 밖으로 밀려나고
책 모서리마다 둥글게 닳은 지문이 생겼다
길고 긴 시간의 책장 속을
수없이 뒤채었을 순암*의 손자국들
20권 20책, 동사강목으로
역사의 오롯한 인장이 되었다

* 수택(手澤): 손이 자주 닿았던 책이나 물건에 손때가 묻어서 생기는 윤기
* 순암(順菴): 안정복의 호










[심사평] 

제2회 안정복 문학상은 총 845편이 공모를 하였다. 1차 내부심사에서 300편을 골랐고, 2차 외부 심사에서 100편을 골랐다. 그리고 최종 심사하에 대상 1명. 금상 1명. 은상 1명. 동상 5명 장려상 5명. 이렇게 13편을 골랐다.
심사 기준은
첫째.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은유와 상징을 통한 보편적인 진리와 가치를 담고 있어. 문학 수용자인 독자들이 공감하는 시여야 한다. 이러한 기존을 바탕으로 심사를 하였고. 함축적인 시어들의 유기적인 상호작용 없이 이미지들만 산만하게 조합한 시들은 배제하였다. 그리고 순암 선생의 업적을 잘 이해하고 소화하여 시로 형상화한 작품에는 가점을 주었다. 13편의 수상작은 중에 대상. 금상. 은상의 결정에는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이미영씨는 세 작품 중 <용정>이 두 작품과 차이가나 은상으로 결정 했으며. 박성훈씨는 세 작품 중 <거미집에 걸린 기억>이 자신의 언어 자체만을 직시하고 있는 느낌을 주어 금상으로 결정했다. 대상으로 결정한 조선의씨는 내재된 언어 감각에 충실한 점을 높이 평가 하였다. 앞으로도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화 하는 과정에서 모호한 자기 논리가 감지되지 않도록 경계하면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원동력을 꾸준히 가꾸어 나가기를 기대하며. 수상하신 분들 모두 진심어린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강정화 김영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