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묵연墨硯 / 전양우
오로지 새벽 첫이슬 모아
이택재麗澤齋 교육백년대계
經世致用 修己治人
역사의 정통성 東史綱目에 새기니
만고불변 송덕비에 빛나는 목민의 뜻
말없는 수양으로 한없이 뿌리 내려
무성한 가지 광주 뜰에 펴고
영원히 푸른 향기 큰 가슴에 가득 담아
家和萬事成
身體髮膚受之父母
때로 가뭄으로 헐벗고
비바람이 눈을 가리고
눈서리가 오감을 마비시키고
삼복더위가 숨을 막아도
밤새 촛불로 타는 고지식한 진심
大器晩成
새소리 화합하고 신록 화려하니
향기는 사방에 나비 떼로 남아서
천고의 북소리 오늘까지 들려오니
정갈한 묵연墨硯 어제처럼 서늘하다
[금상] 記夢*(기몽) / 최재영
이택재에 저녁이 들자
뒷산이 먼저 내려와 눕는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어둠을 밀어내려
누군가 밤새 서책을 읽고 있을까
등촉 흔들리는 창틈으로
달빛은 수시로 들렀다 가고
사내의 형형한 눈빛이
길고 긴 역사를 통시한다
반도의 강역을 바로 알리고자
핏발 선 눈으로 써 내려가는 일필휘지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사내의 비범은
어디에서 읽어내는가
필생의 역작을 기억하는 노거수 느티나무는
켜켜이 바람을 접었다 풀며
뼈 속까지 환해지는 묵향 한 줌씩 내놓다
꿈에서라도 근심하여 찾아오시는지
한 획씩 힘있게 내리긋는 붓 끝엔
밤늦도록 적막이 머물다 간다
꿈을 더듬어 기록하는 내내
일생 강직하여 고단했던 그의 행적을 따라
아득히 번져가는 먹빛, 환하게 피어난다
*기몽: “꿈을 더듬어” “꿈을 적다”는 뜻으로 안정복의 시 제목
[은상] 가을, 이택재 / 김희숙
소슬바람이 계절의 손을 잡고 이택재에 당도한다
새들은 마당에 종종거리며 발자국 글씨를 쓰고
햇살은 눈을 반짝이며 문장을 읽는다
가을이 노랗게 내려 앉은
느티나무 아래 순암을 생각한다
수백 년 느티가 만들어준 그늘, 그 그늘의 심연
그렇게 세상에 한없는 그늘을 나누어 주고 떠난 사람
글자에 녹아든 영혼이 묵향으로 풀어지는 사숙당
텃골에 울려 퍼졌을 호연지기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유생들의 글 읽는 환한 소리, 새벽을 깨웠겠다
역사의 계통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느라
지새웠을 나날, 이택재는 묵묵히 지켰으리라
빗방울 불러와 노래 불러주고
깊어가는 하늘 위에 순암의 생각 받아 적었겠다
동상: 정철(이택재에서)
동상: 박종익(이택재의 별)
동상: 강명숙(순암을 읽다)
동상: 이영균(순암의 이택재를 나서며)
동상: 박봉철(대죽에 필사하다)
장려상: 서상규(꽃과 나비가 편찬한 역사)
장려상: 최형만(영장산객전)
장려상: 박혜정(순암의 말)
장려상: 윤두용(이택재 혼불)
장려상: 정형근(순암의 가르침을 읊다)
[심사평]
제3회 안정복 문학상에는 총 542명이 응모하였다. 제1차 심사에서 100편을 선정하여 제2차 본심에서 13명을 선정하였다. 대상 1명, 금상 1명, 은상 1명, 동상 5명, 장려상 5명이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뚜렷한 주제의식과, 다양한 수사법(Rhetoric)에 의한 표현의 형상화와 운율 등에 초점을 맞추어 심사에 임하였다.
순암 안정복 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실천과, 역사의식 등을 잘 이해하고 시로 승화시킨 작품에 가점을 주어서 선정하였음을 밝혀둔다.
전양우씨의 「묵연墨硯」은 뚜렷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며, 시의 형상화면에서도 순암의 생애와 역사의식을 충실히 표현해내고 있어서 대상에 선정되었다.
최재영씨의 「記夢기몽」은 주제의식과 시의 유기적 구조, 표현의 유려함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금상에 선정되었다.
김희숙씨의 「기억의 건축학」은 제의의식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 역사와 본질과 조우하는 과정을 심도있게 형상화해내고 있어서 은상에 선정되었다. 그 외에 동상과 장려상 등에 선정된 작품도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이 많아서 선정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심사숙고하였음을 말씀드린다.
수상자에게 축하드리며 선에 들지 못한 많은 분들께도 아낌없는 격려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안정복 문학상>을 제정하여, 많은 국민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데 기여해주시는 순암연구소와 현대시선문학사에 경의를 표한다.
심사위원
이혜선(시인 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김영미(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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