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시산맥 하반기 신인상 시 당선작] 김대호 / 이진욱
허공의 마디 / 김대호
어떤 식으로든 말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말이 있었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자
내 앞에 서 있던 말이 떠났고 이 일 저 일 시간을 궁리했다
나이들면 표정에 마디가 생기나 보다
나무의 옹이 같은 것이었는데, 단단한 그 안에는
뱉고 싶었던 말이 굳어 있을 것이다
할 말 못하고 있는 생각이 흐르다가 또 다른 마디가 되고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던 분기점을 돌아
아침에 같은 약을 두 번 먹는 지점에 서 있고
어느 날, 마디에서 헛기침이 새나왔다
말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던 말 말 말들
입만 벌리면 허공에라도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낯설어서,
아니, 민망해서
입을 꽉 다문 채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은밀함에 대하여
밤이 왔다
어둠은
빛나던 것들이 부식된 붉은 저녁과
붉은 열정이 타오르다 재가 된 시간을 거쳐왔다
어둠을 본거지로 한 은밀한 생이 움직인다
태초에 우리는 은밀하였다
우정과 희망과 결혼제도가 우리의 은밀한 소굴을 점령해 버렸다
희망은 비극에서 나온다는 글귀도 뭉개버렸다
사람들이 일회용 희망에 맛들기 시작하자
오래된 맛집인 비극은 문을 닫아 버렸다
슬픔이 없이 인생을 깨달을 수 없듯이
오래된 비극이 없이는 진정한 희망은 없다
밤은 우리에게 잘 익은 비극을 선물한다
은밀한 거래 은밀한 생이여
지금 은밀함은 해석이 잘못되어 천대 받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은밀함의 자손이다
그대여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밤이 되면
진정 은밀하여라
그늘을 베다
몸에서 나무 한 그루 자란다
대물림된 그 나무는 사춘기 때 성장이 가장 빨랐다
내가 가출했던 며칠 동안
십 년의 성장을 끝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몸은 잿빛을 닮아간다
그 나무를 척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척추를 다쳐 입원했을 때도 나무
는 꼿꼿하게 자라고 있었으니까, 나무옹이가 어떻게 단단한 의지를 숨기
고 사는지 알았고 내 몸을 어둡게 한 것이 나무의 그늘이었다는 것도 알
았다 나무를 베지 않으면 그늘도 사라지지 않을 것
아버지는 그늘을 피해 사막에 갔다 원양어선 타고 구소련에도 다녀왔
지만 어두운 얼굴로 요절했다 그늘이 숙주의 살과 피를 모조리 빨아들인
것은 갓 오십을 넘긴 무렵이었다
뿌리가 끈질기게 흡수한 욕망
핏줄 따라 뻗어나간 독극성 잔가지들
시퍼런 잎사귀들의 허연 입김들
나무를 베면 그늘이 사라지고 쓰러진 나무는 다리가 되어 저쪽으로 날
데려갈 것이다 저쪽 세상엔 일인칭은 없고 무수한 간지러움만
항상 등이 근질근질하다고 말했나요? 꿈속의 아버지
개를 몰고 산책하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간다
어제도 개를 몰고 산책했다
나는 누굴 닮았고
날 닮은 누군가는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그는 왜 날 닮았을까
산책은 길어지고
난 집으로 가는 지점을 돌았다
내가 책으로 읽었던 문장들은 판타지가 되었다
난 이제 무엇을 읽으며 살아야 하나
사소한 불편을 참지 못해
이 시대는 황홀한 소멸의 길을 걷는다
나는 걷는다
수술 후 증세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매일 산책하는 나는
우익과 좌익을
우회전 좌회전하면서
걷는다 개를 몰고 걷는다
까마귀
고소공포증이 있는 까마귀는
하늘 높이 날지 못하고
창문 밖에서 울었다
나는 까마귀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이 커피는 멀리 케냐에서 날아왔단다
까마귀는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으로 나와 커피잔을 번갈아 보았다
구도로에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었다
까마귀는 괴로워했다
도대체 난 누구죠? 도대체 나 어디로 흘러가고 있단 말예요
까마귀의 조상은 공황장애였다 불안증이었다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미래였다
태생은 어쩔 수 없군!
지나가던 까치 너구리 메뚜기가 욕을 해댔다
아냐 아냐 난 그래도 검은 내 형식과 내용이 좋아
내가 슬퍼하는 건 잃어버린 기억 때문이야
도대체 기억나지가 않아
닭살이 돋던 그 감동들
온몸을 던지던 그 열정들
까마귀가 떠났다
엉금엉금 기어서 큰도로쪽으로 갔다
그의 고소공포증을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읽어버린 그의 기억 역시 내가 어찌해 줄 수가 없다
나는 그에게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내밀었을 뿐이고
그는 큰길행을 선택했을 뿐이다
오늘도 저녁은 올 것이며 그 전조 뒤
밤이 오면
온 세상은 검은 까마귀 떼로 뒤덮힐 것이다
[당선소감]
내장이 없는 아침,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간다.
어제도 개를 몰고 산책했다. 나는 누굴 닮았고, 날 닮은 누군가는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그는 왜 날 닮았을까.
산책은 길어지고, 난 집으로 가는 지점을 돌았다.
내가 책으로 읽었던 문장들은 판타지가 되었다.
난 이제 무엇을 읽으며 살아야 하나
사소한 불편을 참지 못해 이 시대는 황홀한 소멸의 길을 걷는다.
나는 걷는다, 수술 후의 증세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매일 산책하는 나는 우회전 좌회전 하면서 걷는다, 개를 몰고 걷는다.
어느새 중간을 돌았다, 중심은 관통하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눈치나 보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무엇이 자꾸 치밀어 오르는데, 난 그걸 긴 호흡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소곳한 음악과 쾌활한 물줄기가 내 곁에 있다. 그것이 어쩌면 희망이다.
추풍령 아래 조그만 커피집을 차린지 3년이 되었다.
난 그 작은 세계에 담겨 조심조심 시간의 활보를 지켜 보았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이 찾아왔고
12시나 3시 따위, 생기는 순간 중고가 돼 버리는 시간들의 압제를 받으며 난 괴로워했다.
그런 괴로움들이 날 키웠다.
그리고 자문해본다 난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시를 공부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입었다 특히 곁에서 지지부진한 성장을 지켜봐 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같이 공부하고 아파했던 주위의 문우들, 그들에게도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부족한 글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의 절을 올린다.
김대호: 1967년 경북 김천 출생. 2010년 수주문학상 수상
희곡(喜曲)을 기다리다 / 이진욱
1
어둠이 납작하게 내린 날
모서리에서 동선이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어 늙은 배우는 처
음부터 피곤함에 절어 있었어 행동이 느려지는 순간 효과음은 아래
쪽에 모로 세웠어 쉰 목에서 나오는 대사는 푹 삶아 졌어 꿈틀대는
거친 숨결도 그렸어
2
중간 즈음 언덕도 하나 만들었어 그곳에 사는 소년의 눈동자를
세밀하게 써 내려갔어 조명은 절정이 막 지날 때 F. I* 됐어
아- 조금 늦었어
아무 대사도 못 쓰겠는데 원고지 속 배우들은 나만 보고 있어
Staff도 관객도 극장 경비도
3
오늘 밤에는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해 달랍니다**라
는 말을 소년은 늙은 배우를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어
4
사실,
내가 틀렸든 부족했든 모두 비웃었어 막이 내린 뒤 늙은 배우가
원고지에서 튀어나왔어 소년은 상기된 얼굴로 눈치만 봤어 끌고
가지 못할 희곡을 쓴 내 탓이라고 원고지 속에서 웅성거렸어 자판
도 창문도 천정도
눈이 빠질 듯 아팠고 귓속은 윙윙거렸어
조용히 해 제발!
5
파쇄기로 밀려들어 간 늙은 배우는 잘려나갔어 준비 없는 무대에
그림을 그린다고 나만 호들갑을 떨었어
소년의 중얼거린 말은 나에게 했던 것이었어
6
난 지금도 비상구를 찾아 꺼진 모니터 안에서 우두커니 기다렸
어 먼지 쌓인 무대처럼
*페이드인 F. I(Fade-In): 무대가 차츰 밝아지는 것, 용명(溶明)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중 소년 대사 인용
모항*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에
넣어 두었던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밀물을 움켜쥐었을 서쪽의 그 바다
해안은 이미 뒤집힌 초라한 살림
바람은 날카로운 호흡으로
방파제를 눕혔다
생채기가 생길수록
어선들은 둥글게 부여잡고
들썩이며 어깨를 떨었지만
이곳엔 태풍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섬의 길목에서 유혹했던 남동풍 따라
대폿잔에 별을 담아 오신 아버지
그 발자국을 뒤밟아
어머니는 하루같이 물질하셨고
한 소쿠리씩 검버섯을 캐 오셨다
처녀 같은 바다는 어느 틈엔가 주름에 쌓였다
경계는 시간을 덧바르며 가장자리부터 아물며
다시 어린 바다를 출산했다
깊은 주름에 밀물이 들어왔다
*모항: 격포 부근에 있는 조그만 한 항구
나는 없소
깨진 사기그릇에
빗물은 마르다 썩은 흔적을 남겼고
항아리는 입 벌리고 돌아앉았다
바람에 문짝은 콜록거렸고
그런 날은 창자가 꼬이듯 비틀렸다
삐쩍 마른 마당과 대충 자란 풀은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땅거미는 기울어진 어깨에서 꺼졌고
등고선 같은 흉터가 빈방으로 빨려 왔다
파 먹힌 벽지엔 내던진 손때만 잠겼다
상수리나무 가지로 날아든 산까치
출구를 찾지 못했다
경계 없는 시간 속에 부재(不在)가 찾아왔고
탯줄 같은 시선은 흔들리는 시간을 꺼냈다
사기그릇에 빗소리가 멈추면
자디잔 별들이 돋아났다
독을 만지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마당 모퉁이에 박힌 몇 개의 독에서 들려온다
제금*날 첫 세간은 실처럼 금 간 귀 떨어진 항아리
기반 잡을 때까지 보리쌀 서너 되는 넣을 수 있을 거라며
가난한 속곳에서 꾸깃꾸깃한 당신을 떼어 주셨다
매일같이 뚜껑을 다듬으셨고
손맛을 먹은 뚜껑은 자르르하게 변해갔다
함지박으로 달빛 부스러기를 건져 올리던 새벽
엉킨 조바심은 정안수 한 사발로 살살 풀었던
그 시절 어머니는 항아리셨다
부족한 쌀독도 되어 보고 된장독도 되셨던
덜어 주고 퍼 주어도 만족해하시던 어머니
유독, 독 주변으로는 가지 않기를 바라셨고
난 빈 만큼 더 퍼 가려고 늘 독만 주시했다
이맛살에 줄이 생기고야 독을 감싼 금을 보았다
검게 탄 독에 다가가 만져도 보고 닦아도 보고
귀도 가까이 붙여 본다
나는 어머니의 깨진 종지였다
*제금 : 출가의 전라도 사투리
보리숭어
마을이 들썩인다 그 녀석들이 왔다
늙은 서방은 마이크를 들고 아낙들은 양동이를 잡는다
노인들은 굽은 허리를 달래며 잰걸음으로 온다
허벌나게 거시기 해붕께 퍼뜩 준비 혀쑈 잉
딱, 요 때 뿐잉께롱 후딱 챙기쑈 잉
물살 튕기며 올라오는 팔뚝만 한 느낌표
갈마바람 타고 온 윤슬 비린내로 넘실거린다
평상 대야 싣고 냄비랑 뜰채는 먼지를 턴다
탁배기로 속 닦던 사람들 이날만큼은 향기를 담은 술로 달랜다
두엄 만들 때나 썼다는 개숭어*
두루 뭉실 앉아 숭어가 온 바다를 한 토막씩 혀에 올린다
보리가 설익은 밤 떠난 감 나무집 아지매
숭어가 올 즈음 돌아온다며 이슬을 쓸었다
감나무 그늘이 곱절로 커가는 동안 늙은 서방은 숭어만 기다렸다
아따, 그랴도 니가 왔응께 얼굴이나 볼라고 그라제 누가 찾관디
짬떼기**도 종일 마실 보내고
덜 여문 보릿대 머리카락 날리듯 풋내 뿜어낸다
숭어가 올 무렵 온다던 그 아지매
*개숭어: 보리숭어의 전라도 사투리
**짬떼기: 엇박자의 전라도 사투리
[당선소감]
실현 가능한 상상력을 낯선 글로……
‘당선’이란 두 글자를 받고 소감문을 쓰려고 자판 앞에 앉으니 제 모습이 이토록 어색해 질진 몰랐습니다. 저의 시는 초라하고 가진 것 없으나 오늘 소감문은 살 좀 찌워야 하겠습니다.
아직 저물지 않은 줄 알았는데 어스름 기운이 감돕니다.
샛별을 보고 한참을 쫓다 패랭이꽃 향기에 취해 길을 잃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불빛이 꺼진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북극성인 줄 알고 쫓아가던 빛은 마지막 남은 반디였다는 건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이 때 ?시산맥?이라는 큰 산을 만났고 그 맥이 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산맥의 보드라운 흙이, 나무가, 새소리가 또 앞서 지나간 선배들의 만들어 둔 자취였습니다.
지난 시간 참 많은 글을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광고Copy와 시 그리고 시, 또 시. 문단의 변두리와 그 고샅길 사이에서 가장자리를 못 찾고 턱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이기가 수십 번. 항상 시라는 것은 저에게 얼 비춰 주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안착해야 할 글이라는 걸 지난 시간 내내 깨달았고 프로 골퍼 자격증을 딸 때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채를 휘둘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밤새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펜과 자판을 잡아왔던 그 첫발을 오늘에야 내 딛습니다. 몇 날 밤을 거실이 환하게 날 빛 가루가 쏟아지는 줄 모르고 실현 가능한 상상력을 낯선 글로 써오는 동안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글을 쓰고 책을 보도록 서재를 마련해 준 반려자인 쌍둥이의 엄마 김은진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 제 내면에 자고 있던 순수문학을 깨워 주고 20여 년을 함께 해준 연극반「멍석」과 鹿友會 회원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사실 저의 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부모님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더불어 같이 글공부를 도와준 한국작가회의 「양주지부」와 ‘함시’동인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저의 시가 골짜기에서 비로소 마루로 찾아갈 수 있는 감각과 나침판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준 계간 ?시산맥? 심사 위원들께 감사의 뜻을 마침 글로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진욱
1969년 전남 고흥 녹동 출생. 원광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함시」동인. 카피라이터.
[심사평] 시산맥을 지킬 기둥들을 찾아서
『
시산맥』을 통해 등단하는 시인들에게 ?시산맥?은 고향일 것이며, 그런 시인들이 고향인 ?시산맥?을 지키는 기둥들이 될 것이라는 공통된 합의를 바탕으로 심사위원들이 심사에 임했다는 사실을 우선 말씀드린다. 최종심에 올라온 분들은 이진욱, 김대호, 오유경, 이선자와 홍영수 등 다섯 분이었고 이 중에서 김대호와 이진욱 두 분을 등단의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탈근대의 시대에 이르러 시인들이 깨닫게 된 것은 언어가 기본적으로 은유라는 사실이었다. 김대호는 이런 사실을 본능적으로 채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대호는 “어떤 식으로든 말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말이 있었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자/ 내 앞에 서 있던 말이 떠났고 이 일 저 일 시간을 궁리했다”라는 「허공의 마디」의 1연에서 축자적(literal) 표현이 더 이상 자존(自存)할 수 없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김대호는 「은밀함에 대하여」에서 “태초에 우리는 은밀하였다”라고 전제하면서 “지금 은밀함은 해석이 잘못되어 천대 받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은밀함의 자손이다”라고 현시대의 상황을 비극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런 탈근대적 인식의 구체적 작품화가 「그늘을 베다」, 「개를 몰고 산책하다」와 「까마귀」 등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은유가 편리하게 상징으로 안착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김대호의 시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진욱은 「희곡(喜曲)을 기다리다」의 괄목할만한 성취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상연하려고 쓴 연극의 각본”인 희곡(戱曲)이 아닌 이 시의 제목에서 제시되고 있는 ‘즐거운 노래’라는 뜻의 ‘희곡(喜曲)’이란 용어는 코믹 오페라인 희가극(喜歌劇)을 연상시키는데,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쓰기’하면서 극적 상상력이 의미심장하게 발휘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어둠이 납작하게 내린 날/ 모서리에서 동선이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어 늙은 배우는 처음부터 피곤에 절어 있었어”라고 현실의 정경이 연극의 무대와 빈틈없이 오버랩되는 첫 부분부터 이진욱은 자신의 공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진욱은 극적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되었을 때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모항」에서 “섬의 길목에서 유혹했던 남동풍 따라/ 대폿잔에 별을 담아 오신 아버지/ 그 발자국을 뒤밟아/ 어머니는 하루같이 물질하셨고/ 한소쿠리씩 검버섯을 캐 오셨다/ 처녀 같은 바다는 어느 틈엔가 주름에 쌓였다”라는 묘사는 한국시에서 통상적으로 보이던 부모 묘사의 센티함을 극적 상상력으로 멋지게 극복하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없소」, 「독을 만지다」와 「보리숭어」는 앞의 두 작품보다는 다소 힘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욱의 시세계에서 극적 상상력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기대하게 하였다. 등단한 두 분께 축하의 말을 전한다.
이 만 식(본지 편집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