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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 맨* / 김학중



그는 유망주였다

공을 쥘 때마다

세계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다고 느꼈다

심장이 담장을 넘어갈 때마다

모자를 고쳐 썼다

자신의 삶이 실점에 대한 기록임을 지켜봐야 했지만

그는 끝까지 배트를 잡지 않았다

- 누구도 자신을 위해 타석에 설 수 없다고 낮게 얘기했을 뿐 -

그리고 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는 이제 큼직한 여행 가방을 끌고

플랫폼에 서 있다

불쑥 내뱉고 싶던 말처럼

가방의 터진 겉감 사이로 안감이 비집고 나와 있다

그 안에 그의 여행이 온전히 담겨 있다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바지 몇 벌과 셔츠 몇 벌

유니폼만이 새것인 채로 매번 바뀌었다

그의 짐은 매일 다시 첫장부터 쓴 낡은 일기장

몇 장을 뜯어냈는지 알 수 없는 인생


자신을 짐으로 쌀 수 있다는 위안인 그가

지금 플랫폼에 서 있다

열차가 들어오면 그는 곧 떠나야 한다

한 손은 여전히 공을 쥐고 있는 듯 둥글지만

그는 곧 가방을 잡기 위해 손을 펴겠지

공 하나를 세계의 심장이라고 믿던

그는 익숙한 듯 모자를 고쳐 쓰고는

열차가 멈추는 소리를 듣는다

세계를 주무를 수 없는 그의 손은

이제 온전히 자신을 쥐고

문이 열리는 열차로 들어설 것이다


가방의 무게에 그의 팔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인다



* 저니맨 (journey man - 해마다 또는 자주 팀을 옮기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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