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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먹은 삼촌 / 임경묵
절연테이프로 동여맨 발가락 사이에 산수유꽃이 피었어요
뭉개진 얼굴에 겨우 살아남은 땀구멍
맑게 솟구쳐 목덜미로 흐르는 수액쯤은 절은 수건으로
꾸욱 눌러 주세요
쉰아홉 살, 둘째 삼촌의 타버린 손가락에도 젖먹이 적
뽀얀 새살이 버들개지처럼 물이 올라 돋아나고 있잖아요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에요
천식 때문에 소박맞은 작은 엄니가 그 보드라운
새살을 보았더라면, 강 건너 반곡리에서 얼굴 붉히며
속속곳 바람으로 밤새워 돌아왔을지도 모르잖아요
불에 탄 자전거는 타이어만 교체하면
봄 햇살 풀어놓은 두멧길, 두렁길을
훨씬 부드러운 허밍을 내며 달릴 수 있을 거예요
반쯤 녹아내린 입술 사이 망울망울 터지는 말씀 좀 보세요
외로움 때문에 불을 먹은 건 아니잖아요
휴대용 버너 녹슨 스위치를 다시 힘껏 돌려놓을게요
첫날밤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저, 저 붉은 꽃숭어리!
삼촌일랑 어서 가서, 양푼 가득 함께 몸을 풀어도 좋을
후끈후끈한 라면 한 봉지만 골라 오세요
단내 나는 그림자를 들먹이며 초르르 초르르 자전거 페달을 밟으세요
윗주머니에 달고 온 굵은 달걀 한 개가
짓무른 삼촌 가슴팍에 자꾸만 툭툭 주먹질을 해대면
집으로 돌아오는 고샅길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보세요, 봄볕에 그을린 살구나무 우듬지도
뒤울안 부추밭을 겨누고 시방 참았던 꽃을 벌리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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