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맥의 낯선 진화를 기다리며
갈라파고스라는 섬이 있다. 남미대륙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1,000km 폐쇄적 자연환경으로 인해 여타 대륙과는 다른 형태의 생명 진화가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다윈의 진화론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만나는 동물들, 코끼리거북 바다이구아나 왕바다도마뱀… 그들은 기존 생태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모습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시인이라면 이렇듯 갈라파고스 섬의 낯선 동물들처럼 독창적 진화를 꽤해야 하지 않을까. 세류에 흔들리지 말자. 자기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시적교감을 육화시켜 자아의 색깔이 선명한 시를 쓰자. 시는 편편이 언어와의 전투이고 사고의 혁명이다. 나만의 우주를 세우는 것이다.
시산맥, 시의 산맥 아우르며 무성한 숲의 진화 이루어나갈 새로운 시인을 찾아나서는 길. 창조적 아날로지의 열쇠를 구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투고된 작품들을 촘촘히 돌려 읽었다. 최종심에 올라온 5명 중 아직은 기초체력을 좀 더 다져야할 것으로 보이는 이동영, 문유형, 이향숙의 작품들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고, 「고래 등을 깁는 땅거미」 외 10편을 투고한 박영수와 「그들은 모두 자작나무였다」 외 9편을 투고한 손상호의 작품으로 압축하여 되읽었다. 두 분의 투고 작에서 “시는 설명하지 않고 표상하지도 않으며 단지 보여줄 뿐이다. 현실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창조하려고 시도한다.”는 옥타비오 파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들만의 심상을 실체화하려는 언어의 구체적 몸짓을 느꼈다. 즉 작품 속에서 녹여내려는 이미지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주제의식으로 미적 세계를 구현하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 쓰기가 시인을 표상하는 화자의 시적 충동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내면을 언어의 전개로 성취되는 과업이라고 볼 때 손상호의 작품들은 대부분「그, 여학생, 사내, 그녀」 등을 등장시켜 화자가 한 걸음 물러선 타자적 구도의 서사로 풀어내려는 소설적 경향이 짙게 보였다. 이러한 시적 전개는 객관적 위치는 확보될 수 있으나 작품의 진정성과 깊이가 떨어지는 취약점을 노출시키게 됨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현실감 넘치는 주제와 실체적 묘사 등 장점들이 많았음에도 아직은 농익지 못한 전개가 걸림돌이 되었다. 머지않아 시단에서 꼭 다시 만날 이름임을 기억하며 작품을 내려놓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손상호의「그들은 모두 자작나무였다」에서 언어와 피 터지게 싸우려는 치열성이 아쉽기는 해도 화자의 내면과 언어의 질감이 서로 번져 상투하며 자연스레 교감이 이루어지는 특장을 보이고 있어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백화는 겨울에 나무가 된다> <얼어터진 곳에서만 부를 수 있는 이름, 부르면 벼랑에 서 있는 것들은 자작나무가 되었다> 등 툭툭 던지는 잠언 투의 문장들이 크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시를 다 읽고 난 뒤 여운처럼 남는 뒷맛이 좋았다. 그러나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과의 질적 차이가 너무 커서 심사자를 안타깝게 했다. 결국 이번호 최종 당선작은 선정하지 못했다. 시도 시인도 넘쳐난다는 요즘 세태라이지만 갈라파고스의 낯선 진화를 꿈꾸며 개봉했던 시산맥 신인상 부문은 빈손이 되었다. 투고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분투의 원고를 다시 기다린다.
심사위원: 박남희, 이영식(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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