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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 석지연 <오래된 의자> <횡단보도>

시부문(가작) - 박혜민 <거울> <사막에서 길을 잃다>

 

 

 

오래된 의자 / 석지연

 

당신처럼 내 엉덩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내 아랫도리의 크기를 가늠해보려고 온 몸을 벌리고 서있는 나의 낡은 당신

곪은 살갗 위로 곧게 뻗어 붉은 등줄기들

당신은 내 휘어진 등뼈의 시간을 사랑한다

 

당신의 품에서 오래도록 읊조리던 나의 음절들

온 마음으로 발로 찼던 첫사랑의 흉터

아무렇게나 펼쳐지는 나는 당신의 흐트러진 독서

당신은 내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입술 바깥으로 고백을 하다 만 주스의 축축함과

튕겨나간 과자의 각질이 남긴 가벼움

당신은 뭐든지 마시거나 뱉을 수 있을 것 같아

 

당신은 넣어서야 잠이 든다

오래도록 내 흩어진 냄새의 꿈을 꿨던 쪽문 옆 당신

 

 

 

사막에서 길을 잃다 / 박혜민

 

1.

모래바람이 길 안쪽으로 세상을 밀어 넣는 곳

얼굴에 터번을 쓴 사내들이 구릉지대 위를 천천히

고비를 넘기듯 걸어간다

 

2.

병실 안 링거액이 노인의 팔을 타고 흐른다.

사막의 모래가 여러 갈래로 나뉘듯

뼈만 남은 살 위엔 주사바늘이 반흔으로 남아있다.

호흡은 마지막을 향해 긴 돛을 펼친다.

숨이 가빠진다. 노인은 몸을 뒤척인다.

창 밖에서 침식된 시간이 건기를 넘어 다가온다.

 

3.

총알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간다.

땅 위로 드러난 총성에 스며들 듯 새겨지는 사막 위의 선

위로 드러난 총구의 불빛과 짧은 우기처럼 사라지는 빗물에

모래알만 사방으로 흔들리고

 

4.

움푹 꺼진 노인의 눈자위 위로 사막의 없는 계절이 찾아온다.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모래 언덕을 건너는 순례자들의 발자국이 병실 앞에서 서성인다.

병실의 바깥쪽에는 아직도 낙타 몇 마리가 슬프게 울어댄다.

마지막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로 가득 찰 것이다.

총부리를 당기는 손가락처럼 짧았고 그걸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숨가빴다.

사내들은 모래 언덕 위를 타고 올랐다.

몸을 가누는 일로 일생을 마무리한 헐벗은 숨소리들.

그 生을 가늠하는 동안 모래알이 시리게 흩날렸다.

미세한 밀도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끝내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그 무의식의 한 지점에서 노인은 여전히 사막 위를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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