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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씨, 램프를 끄며 / 심지아

 

지구에 태어나 얻게 된 건 현기증이에요 수달씨 둥근 이마로

포물선을 그으며 종종 졸도합니다 아름답게 쓰러지기 위해 물가에

살아요 물고기의 머리를 뜯으며 어린 무용수의 발끝처럼 포즈를

고심합니다 머리 뜯긴 물고기들은 지느러미를 파닥여요 열렬한

격렬함입니다 날마다 나는 더욱 날카롭게 안을 수 있어요

깨지 않는 악몽을 물고 물고기들 내게로 와요 병신들, 큭큭 웃는

우리는 병신입니다 나는 어두운 것에 쉽게 매료됩니다 엄마가 남긴

유산은 악습이에요 구멍 속에 꼬리를 넣어야만 잠들던 엄마의 낮과 낯들,

낮과 낯은 같은 말이었을까요 어둠을 오래 바라보느라

내 눈은 검은 돌멩이처럼 반짝이는 줄도 몰라요 붉은 수초를 등에 감고

물방울을 높이 던집니다 내게 말을 걸 땐 물속으로 들어와요

기괴한 몸짓도 이곳에서는 물의 동작이 됩니다

물결에 지문을 풀면 녹슨 안개가 피어나요

 

 

 

 

편지들의 이스파한* / 안웅선

 

그러니까, 눈동자를 채워 넣어야 한다면 이스파한

 

이라고, 부신 눈이 감길 때 세계의 절반이 보인다고, 바랜 길들이 모인 곳, 하늘을 찢어 담을 올리고 훈증한 장미를 바른 집이라고, 주소를 알 수 있다면 낡고 흠집 난 트렁크 하나 먼저 보내 놓아도 되겠느냐고, 쓴다

 

장미의 계절이 오고 있다고,

그러니까, 잘못 배달된 편지를 발송함에 넣어 주고도 돌아서기 힘든 시간이 온다고

그러니까, 눈동자가 까매지는 계단

태울 것은 어둠만 남은 사막과 도시, 숨겨진 무덤들 위로 새벽이 유형(流刑)되었다고

 

장미들은 내 눈동자에서 길을 잃은 상단이 지나온 밤들을 훔쳐보게 될 것이다

 

자물쇠가 달린 트렁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잠들기 전에 꺼내 놓은 눈동자를 숨겨야 하기 때문

 

흘러간 꿈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돋보기가 필요하지 블록하게 부푸는 투명들을 모은다

 

점자로 쓰여 밀봉된 주소가 도착했으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새로운 안경을 사러 가야지

기도의 체온으로 서로가 눈꺼풀을 쓸어주는 새벽, 입술을 모은 장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

그들은 유독(幽獨)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원하고 있어

 

늙은 사도는 텅 빈 눈에 세계의 절반을 담고서도 계시록 위에서 쓰러진다 그의 눈빛을 궁금해 한다면 인편에 내 트렁크와 열쇠를 전해 둘게요

 

그러니까, 까만 눈동자가 비어 간다면 이스파한 옛 길을 걸어 반송되는 편지들이 모이는 곳

그러니까, 이스파한, 장미들의 계절

 

 

* 사산조 페르시아의 옛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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