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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라라 / 송기영

부평역 뒷골목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라라
혼자 자신을 게우고 있는 당신들에게서
대당 천 원을 받고 등을 쳐 드리지
라라, 열 대 정도면 당신들은 게울 만한 자기를
다 게우고, 계산을 치르고
타인이 되어 돌아갈 테지만
뒷골목에서 퍼엉, 퍼엉, 퍼엉하고
가슴께 뭉쳤던 것들이
골목을 걸어 나가는 소릴 좀 들어봐
그날은 눈이 왔고, 술을 마셨고
혼자 그 남자의 뒷골목에 들어왔던, 라라
랄라라 그날은 눈이 왔고, 새해를 기다렸고
쉰 대, 하루 일당분을 혼자 맞고도
자기를 게워 내지 못해서
라라의 무릎 위에서 퍼엉,
퍼엉 소리를 내며 기절한 남자
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라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혼자 게우고 있는
쓸쓸한 당신의 등을 쳐 드리지, 라라
랄라라




사춘기 분재

무화과 나무가 저질러 놓은 가지 끝에
작은 꽃이 달렸다
액자 밖으로 비집어져 나온
살 한 덩이
벙어리 계집애가 무화, 무화 웃는다
못 들은 척
혀만 날름거리고 있을 뿐인 꽃
주인이 돌보지 못한 사이

바람이 잎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와
깍지벌레의 속삭임을 까 놓았나
가위를 꺼내 든 주인 남자가
자신의 형(形)을 집행하려고
문 손잡이를 돌렸을 때
마침내 폭발하는

꺄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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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작가세계』신인상의 시 부문에는 800여편에 이르는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다. 전
체적으로 일별할 때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제의식과 시적화법이 표나게 드러나고 있었다.
2000년대도 벌써 5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시의 관습과 제도를 탈피하여 당대적 시대정신을
섭수하면서 새로운 시적 감성의 언어를 연마하는 연금술사들이 경향 각지의 도처에 산재하
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선자들의 분주한 손길을 거쳐 최종심에 오른 작품으로는 배두순의 「고로쇠」외 10편, 이인
주의「茶山에 기대어」외 10편, 송기영의「실험실에서 보낸 한 철」외 9편, 천서봉의「그리운
습격」 외 9편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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