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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등고선 / 김시언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산정이 있다
침침한 지하 속을 걸어 오르는 산,
지층과 지층 사이
반지하 쪽방 곰팡이 핀 벽지를 뜯어낸다
벽지 속에 첩첩이 덧대어 껴입은 벽지들
층층이 등고선 무늬를 이루었다
어느 바위에서 떨어졌을까
모래알들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벽지 틈
비를 머금은 구름이라도 지나가는지
이불을 덮고 뒤척이는 물소리가 들린다
손바닥만 한 창을 비집고 드는 햇살을 따라
따글따글 끓어오르는 먼지들,
반층 눈높이로 보는 하늘은 반층 더 높아서
무릎을 꺾어 펴는 계단마다 등고선 주름들이 굽이친다
모란꽃을 뜯어내면 아메바가 나오고
아메바를 뜯어내면 푸른 하늘이,
아이들 찡그린 낙서들을 품고 있다
매미 유충처럼 벗고 싶은 허물들
꽃무늬 포인트 벽지 한 장으로 다시 등고선을 그린다
무늬가 촘촘할수록 가파르고 거친 산
방이 벼랑을 품고 융기한다

 

 

 

 

도끼발[斧足]*


  지동차 타이어를 갈갈이 찢어놓을 거야 천 년을 벼린 도끼발로 단숨에 내리칠 거야 터진 타이어 조각은 차선을 바꾸며 나뒹굴고 길바닥엔 급정거한 금들이 뱀처럼 서로 엉켜 들겠지 백 리 천 리를 걸어도 굳은살 하나 박이지 않던 뻘밭, 그때 내가 휘두른 도끼는 혀를 닮아 있었지 파도와 해초와 바위와 입맞춤하던 혀 하지만 이제 나는 단단해졌어 딱딱한 도로를 걷느라 강철보다 더 굳어져버렸어 바닷가 신도시 오늘도 나는 아스팔트길을 밀고 올라와 맨발로 걷지 아주 오래전에 죽은 동족이 석회질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 제한속도를 위반한 차들이 스키드마크를 내며 질주하는 길

 

  타이어 바퀴 아래 부서진 모래알이 되어 저 껑충한 아파트를 기어오를 거야
  아파트를 내리쳐 벽마다 균열을 내고
  벌어진 틈으로 해식동굴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를 낼 거야
  걷다 보면 부은 발 어루만져주던 파도가 그립기도 하겠지
  야반도주하듯 떠나간 낙지 일가는 어느 해변에 이삿짐을 풀었을까
  잊지 마 나는 바다의 도끼발
  바다가 다 사라져도 나는 사라지지 않지

 

  * 부족斧足 : 조개의 도끼 모양 발을 일컫는다

 

 

김시언:
1963년 서울 출생. 경기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졸업.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독어교육학과 수료.
<주간경향> 교열기자. <인천IN>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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