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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파도에 그리는 편지 / 이호근

 

파도가 목구멍 문턱 넘어

솔잎 피죽 가슴 후벼 되돌아갑니다

그게 하루 이틀인가

되돌아가는 파도의 손바닥에

팔십 노모의 안부 몇 자 쥐어 보냅니다

수없이 썼다 썰물로 풀어지는

수평선 너머 흐린 글씨가 언젠가

푸른 이파리 내밀어 지족해협을 건널 것입니다

 

오늘은 우물도 파고 물 한 종지와

소금 절인 솔잎 한 움큼을 씹다

저물녘 햇덩이를 물고 있었습니다

사방 파도 소리와 바람에 맞서 보면

두 눈에 박힌 작은 모래알에서

꽃망울 먼저 드미는 세상사 주렁주렁 듣습니다

 

귀 열어 바람의 속옷을 입어봅니다

부러질 듯 휘청이다 제자리 돌아서는

대숲의 곧은 말씀의 뿌리에 온몸 기울여 싹을 틔워봅니다

 

한번 까스했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아랫목보다

불 피지 않아도, 한 겨울 파도가 실컷 누웠다 가도

그대로 푸른 살 돋는 솔잎 댓잎 같은 날이 좋습니다

 

허나, 정쟁의 팽팽한 매듭 같은 들판에 서면

허기진 야생의 풀씨처럼

굳은 땅 속눈 꼿꼿이 뜨는 것을 어찌합니까

내 곧은 말 마디마디는 오늘 밤 푸른 눈 비벼

결코 눕지 않을 것입니다

수천 년 푸른 물빛지어 흐를 것입니다.

기억해주십시오

파도에 씻긴 세모네모 마름모 각진 돌들이 서로

이야기 둥글둥글 굴려 노도 바닷가 걸어갑니다

주름지는 기억의 수평선 위로

, 그날이 괭이갈매기처럼 날아오를 것입니다 어머니!

창 밖 파도 꿰매는 삯바느질 소리가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밤입니다

 

 

 

- 이호근 시집 <파도에 그리는 편지>(도서출판 도화)

 

파도에 그리는 편지

 

deg.kr

 

 

 

 

 

[금상] 시골 제빵사 / 박응수

 

내 집은 순수하다. 그 어떤 데커레이션도 없다

그저 허름한 나무판대기 위 궁서체 명패가 내가 사는 곳이다

동틀 무렵 집 앞 가로등이 흐릿한 할매 돋보기를 깨끗이 닦고

이슬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일 때

그제애 아버지는 의사 마냥 순백의 가운을 걸치고

순산을 위해 자궁을 따뜻하게 데운다

자궁 옆 가지런히 쌓인 포대 속에서 내 줄기세포를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각 세포마다 수분을 넣고 혈관으로 이음새를 만들면

아버지는 밀대로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린다

 

내 외모는 순전히 그의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그래서 그는 신이라 불린다

가볍게 손바닥을 쥐어주면 하얀 뭉개구름이 생겨나고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세상을 칠하는 분이 묻어난다

몇 번의 밀대 질과 빠른 손놀림 뒤 나는 자궁 안으로 착상된다

200도씨에서 20분간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

그의 불룩한 아랫배 지방덩어리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밸소리가 울리면

아버지는 분주해진다

하얀 생크림과 향긋한 초코, 딸기 시럽이 내 몸을 감싸고

그렇게, 한 생명의 탄생을 창조한다

 

어느덧 가로등 불빛은 꺼지고

그의 가운은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담고 있다

창문을 타고 넘나드는 빛의 떨림에

아버지의 거친 손은 흐느끼며 나를 왈칵 안는다

땅랑딸랑 종소리 울리면

달콤한 하루를 맞이한다

 

 

 

 

 

 

 

 

 

[은상] 까치집 / 문경희

 

저 막막한 허공을 다시없을 반석 삼아

누군가는 집을 짓고 삶을 의탁 했나보다

휘영청, 하늘로 부신, 생을 켜는 집어 등

 

범접 못할 시선 끝에 시렁처럼 걸쳐 놓고

남모르는 온기로 버티어 낸 시간들이

아직도 뜨시게 남아 봄을 적는 풍경 속

 

혼이 떠난 육신처럼 바람살에 위태해도

무념란 시간의 꾸리 촘촘히 되감으며

시리게 푸르던 역사 등피처럼 닦고 있다

 

 

 

 

 

 

 

 

[은상] 낙화 / 윤옥란

 

칠판에서 뼛가루 같은 백묵가루가

내 어깨에 떨어졌다

 

온 몸에 통증이 만발한 두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

삼월의 황매화로 피었던

정끝심이연손김막녀 이름들,

나는 아직도 때맞춰 물을 갈아 주면 향기를 내고

제 색깔의 꽃을 피울 거라 믿었는데 물컹하던 줄기는 꽃잎을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앰뷸런스에 실려 온 찢어진 이파리들,

마지막 예의를 갖출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곡할 자식도 없이 눈을 감는 붉은 눈동자 눈물이 울컥 솟는다 

 

시원한 그늘 밑에서 쉬어가라던 할머니도 밤새 끙끙 앓는

젊은 여자의 신음소리도 날이 새기도 전에

지우개 하나로 수장되었다

 

식물도감에는 없는

새로운 꽃들의 이름을 칠판에 꽂는다

내게 밥이 되고 향기로운 이름이 되는 체온들,

오월의 나무들처럼

칠판이 푸르게 흔들린다

 

 

 

 

 

 

 

 

 

 

[동상] 난지도 / 안민식

 

눈물로

꽃이 핀다는 말이 맞다

적어도 이곳 난지도에서 만큼은,

상처의 뿌리는 어디쯤인가

꽃들의 미소 속에 슬픔이 보인다

너무 기쁠 때 눈물이 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 슬플 때 왜 자꾸 헛웃음이 나는지 알 것 같다

 

한숨으로

풀이 자란다는 말이 맞다

적어도 이곳 난지도에서 만큼은,

한없이 바람 불어 흔들려도 

결코 눈물 흘리지 않는 풀들

 

사람들은 억새의 눈부심에만 환호하지

그것이 어느 날의 아픈 손인 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꽃이 가득하면

세상 모두가 행복한 줄 안다

사람들은 풀이 푸르면

어제는 쉬 잊고 내일에만 가슴 부푼다

사람들은 지난 추억은

다 아름답다고 말한다

 

난지도엔

오늘도

꽃이 피고 풀이 자란다

 

 

 

 

 

 

 

 

 

 

[동상] 어머니의 대지 / 장월순

 

김매러 가시다 산고가 시작되면 집으로 돌아오신다

아이를 낳고 당신 손으로 탯줄을 자르고

가난이 쌓인 빈곤의 시절

첫 국밥은 녹살 밥이다

광목 호청 속에 목화송이가 마틀 마틀 돌아다니는

포푸린 천으로 덧씌운 이불 한 채,

한 살 두 살 터울이다 보니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가마솥 굴뚝 연기로 피어오른다

찬바람 불던 날 카시미론 이불 한 채 사오셨다!

콧망울 아려오는 겨울밤 우리들은

장미꽃이 피어있는 정원 속에

꽃사슴이 뛰어노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밍밍한 아랫목을 따숩게 지키는 속에서

아랫목 차지전쟁이 시작된다

머리가 나오면 지는 놀이라 심한 장난 때문에

문밖에서 벌을 서야 했다

할머니 이불 천으로 만든

옥양목 홑껍데기, 무릎과 팔꿈치는

누비기를 반복해서 유격훈련 전투복 같다

코가 빨개지고 귀가,

떨어질 듯 아려온다

다시는 장난 안친다고 하며

처마 잃은 새떼처럼 수수 알 울음을 쏟아놓는다

서로 얼굴을 보면 반은 웃고 반은 울다 방에 들어가

얼추 몸이 녹으면 또 장난을

오늘도 어머니는 뒤란에 정한수 치성을 드릴 것이다!

 

 

 

 

 

 

 

 

 

 

 

[동상] 거미 / 최광현

 

쪽방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둘러쳐져 있다

나처럼 혼자라서 외로운 줄이다

 

거미줄 틈으로 난 작은 문을 나선다

밖은 또 다른 거미줄이 총총히 자리하고 있다

나처럼 혼자라서 외로운 줄일까

그들도 그리운 날개를 기다린 걸까

 

살아간다는 것은 드러낸다는 것

세상 언저리 쳐 두었던 줄에는

날개 달린 흔적들이 걸려 있다

살아가기 위한 본능

몇 가지는 고르고 아픈 날개를 사라질 때까지 두자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날개가 들어오겠지

세월이 흐른다고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거미줄에는 무수한 날개들이 날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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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정리해고 / 김종찬

 

사철 푸르기만 한 쥐똥나무

가을이 되자 줄기와 잎이 무성해진다

사내가 전기톱을 들고

나무의 가지와 목을 쳐 내려고 한다

나무들은 타워크레인으로

몇몇은 장갑을 벗고 공구를 팽개친다

회사의 울타리가 되어 준

나무들의 키를 한순간에 낮추려 한다

키를 30센티를 낮추면

30퍼센트 이상 순이익이 생긴다는 회사 측

반발하는 나무들의 뺏빽한 스크럼이

배수의 진을 친다

쥐꼬리만한 급여에도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키우며 회사의 울타리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나무들

보도블럭 위에는 웃자란 가지와 목이 뒹굴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흰 꽃을 사내가 밟고 간다

짓이겨진 꽃 냄새를 바람이 안고 부르르 몸을 떤다

 

톱바람에서 한발 비켜선 나무들은

저마다 쥐똥 같은 눈물을 달고 있다

단단하고 까만

 

 

 

 

 

 

 

[은상] 빈 집 / 남태현

 

문풍지 사이로 가난이 샌다

마당 한족 유산한 유물

탯줄 자른 두레박에는 야윈 집 한 채 웅크려 있고

낮잠 밀린 마루 달게 잔 기억까지

훅하고 불어 내면 어머니 인기척 빠져나온다

잉크처럼 번지는 가난이 싫어 훌쩍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때

지붕까지 자라나는 배고픔이 내 키를 누를 때마다

새파란 양심으로 가출을 키웠던 그 집으로

고소한 햇빛이 마루 끝까지 밀려와

유년의 수위만큼 복사된다

누적된 그리움이 시렁에서 나오고

어머니 잔소리만큼 쌓인 먼지 툭툭 털어 내면

건넛방 아버지 영혼이 필사된 영정 사진에서

오래된 가난이 뭉툭하게 떨어진다

굴뚝으로 저녁을 먹는 연기

가마솥에 쇠죽 쑤는 송아지

어머니 온기 빠진 그 집에

귀뚜라미 소리 묵힌 담 너머로 부름이 온다

나를 닮은 아버지

기침 소리 도배된 방을 나와 옆집으로 건너가신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조문을 간다

 

 

 

 

 

 

 

 

[은상] 열리지 않는 문 / 남호순

 

무너진 담장 너머 발을 들이며

헛기침으로 인기척한다

폐업된 공장 입구는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마당 귀퉁이를 놓고 영역 싸움이 한창인 이끼와 잡초는

한 자리씩 진급하려던 상사들로 보이고

허공을 죽 찢어 오르려던 칡넝쿨은

의욕에 앞서 잎으로 틈새 메우는

젊은 용접공의 파란 불꽃으로 보인다

연기의 살랑거림이 귓속말처럼 피어올라도

소문으로 퍼지기도 한 생산 현장,

어둠에 감전되어 멍하게 있는 형광등은

거미 사슬에 돌돌 말린 기억이다

스위치를 켜면 확,

빛의 파편처럼 흩어졌던 사람들이 달려와 저마다 불빛을 발산할 것인데

그들은 한쪽을 검게 멍들이고 다른 한쪽으로

흐릿한 감도를 조절하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들 손에 기술을 습득했던 공구들만이 제 역할을 잊은 채

사방 퍼질러 기다릴 뿐, 녹슬어 가는 삶의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

 

바람이 창문 갉아먹는 소리에

먼지 부스러기들이 햇살을 글어들인다

드리워진 그림자는 밀린 월급에 배고 푼 이들의 얼룩이다

얼룩진 신음 듣지 못하는

정문 악물고 있는 자물쇠의 힘,

절제되지 않은 잔업 일보처럼 긴 기다림은

수당 없는 잔업 시간이다

 

속 타는 벚꽃이 황당 당황 진저리치며 지고 있다

 

 

 

 

 

 

 

 

 

 

[동상] 손톱 / 김면수

 

손에 핀 달빛을 잘라 낸다

속손톱 어딘가에 내 어머니 푸른 초원이 있을 것 같아

손가락 끝 마디마디 돌며 초침 아래 세운 빛의 조각들

째깍째깍

엄지손가락에서 상현달이 뜨고 새끼손가락에서 그믐달이 뜬다

열 달 이름 속에 스민 유년의 추억이 빛을 겨워 낸

빈터마다 선홍빛으로 다시 살고

어머니 그 따스한 숨결에 밀려, 단 한 번도 피지 못한 채

사그라지던 손톱 생채기

오늘도 기우는 달빛으로 와 열 손가락 끝에서 영근 달이 되면

 

내가 잘라낸 손톱을 딛고 그대 그 젊은 여인 오롯이 서 있다

 

 

 

 

 

 

 

 

[동상] 별자리 정비소 / 김민철

 

철거를 앞둔 미아 지구 재개발 현장에도

마을버스 노선이 있죠

두 가닥의 레일이 아닌

푸릉푸릉 콧김을 뿜고 있는 작은 돛배죠

짤랑거리는 입금 통은 언젠 가벼워

제비 새끼처럼 쫑알거리고요

예전에 데리고 오던 항로를 종종 잃어버려요

이 돛배는 짤랑거리는 소리를 좋아하죠

이따금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솟구쳤다가 내려오는 파도의 이랑을 삼키죠

물결무늬처럼 달리는 돛배가 버스 정류정에

설 때마다 간판은 귀를 열고 먼 시간을 엿보죠

반환점을 돌 때마다 불빛 없는 집들이

그 소리가 너무 반가워 등불을 켜기도 해요

길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돛배,

그때마다 나른한 여름 저녁의 별이 마중 나와요

봉제 공장의 언덕으로 심부름 나온 바람과

막걸리 한잔 걸친 달빛을 태우고 우주로 가죠

당신의 마음 속에는 마을버스 노선이 있나요?

별자리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지상의 외딴 마을이

금성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걸 아나요?

별똥별 노는 은하수를 가로질러 가

빈 마을버스의 재생 타이어 같은 행성을 툭툭 차 봐요

빛이 꽃피는 별자리 정비소에도

때 절은 목장갑을 낀 정비사가 있고요

별의 눈망을처럼 지워졌다가 사라지는 노선이 있죠

나는 오늘도 작은 돛배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죠

 

 

 

 

 

 

 

 

 

 

[동상] 그림자를 업다 / 박성우

 

아버지의 얇고 긴 그림자가 

작음 그림자 하나를 업고 내를 건너고 있다

물결에 살랑 작은 그림자자 흔들리자

긴 그림자는 애윈 두 손으로 탁탁

몸을 추스르며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순간 나는

바람이 지나는 뒤란을

말없이 지켜보시던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다시 수저를 놓으며

스르르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날의 저녁 풍경을 생각하였다

긴 그림자는 저 야윈 두 손으로

세월도 저렇게 다독였을 것이다

어린 동생의 길었던 병원비며

입술이 파랗게 물든 어머니의 야윈 얼굴이며

끝내 내려놓지 못한 그 많은 슬픔들을

야윈 두 손으로 저렇게 다독이며 건넜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깊은 골에서 

뿌리째 흔들리며 무너져 내릴 때

길을 내고

불을 밝히고

향기 짗은 꽃그늘 아래에

우리들의 지친 몸을 누이며

괜찮다 괜찮다

몇 번이고 가슴을 슬어내렸을 것이다

 

아버지의 얇고 긴 그림자 하나가 나를 업고

말없이 내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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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장 / 장석남

 

 

서랍의 거미줄 아래

아버지의 목도장

이름 세 글자

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

 

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

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

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

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

 

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

그림은 비어있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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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1965년생, 한양여대 교수) 시인이 현대시의 선구자 정지용 시인(1902~1950)의 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32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옥천군, 옥천문화원이 주최하고 지용회가 주관하는 정지용문학상은 한 해 동안 우리 문단에서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일군 시인을 선정, 시상하는 문학상으로 지용제를 개최한 이듬해인 1989년 제정한 이후 올해로 서른 두 번째를 맞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 지용제가 10월로 연기되면서 예년보다 심사가 미뤄진 정지용문학상은 지난 75명의 심사위원들이 엄정한 심사를 통해 선정하게 되었다.

 

심사를 맡은 유자효 지용회 회장은 장석남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로 정평이 나 있는 시인으로, 수상작으로 선정된 목도장은 서정과 인식이 잘 어울어진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황홀하다(횽용희)’ 등의 평가를 받았다.

 

장석남(1965년생, 한양여대 교수) 시인은 소감을 통해 저의 입에서 백록담만큼이나 높고 아득한 이름을 실감으로 발음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장 시인은 또 정지용 시인의 시 백록담을 들어 암울한 시대의 울음에 동참하기도 하고, 그 시에 드리운 빛과 그늘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숨 가쁠 때마다 내 삶의 암울도 위로를 받는다, “정지용의 독자가 된 자체만으로 이미 큰 행운의 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 시인은 창작 지원금 2천만 원을 받게 되며, 시상식은 1017일 제33회 지용제 행사 시 진행될 예정이나 코로나19 추이에 따라 별도 시상식으로 조정될 수 있다.

 

한편 장석남 시인은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상화시인상, 지훈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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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올 때 / 문태준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 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은 왼쪽을 크게 비워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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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충북 옥천군에 따르면 이 지역 출신인 정지용 시인(鄭芝溶·1902~1950)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정지용문학상의 제31회 수상자로 문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저녁이 올 때이다.

 

심사는 신달자·김광규 시인, 이남호·홍용희 문학평론가, 유자효 지용회장 등 5명이 했다.

 

김 시인은 수상작에 관해 “1930년 정지용 시인은 불 피어오르는 듯 하는 술/한숨에 키어도 아아 배고파라저녁 햇살을 노래한 바 있다그로부터 90여년 후에 문 시인이 마지막 햇살이 사라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시에 담아 지평을 넓혔다라고 평했다.

 

문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서 처서(處暑)10편이 당선해 등단했다.

 

시힘동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상은 32회 지용제기간(59~12)인 다음 달 11일 오후 4시 옥천읍 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한다. 시상금은 2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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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매바위 전설 / 방승길

        - 제부도에서

 

발길 돌리지 않겠다

빈 갯벌에 홀로 서서

저 일몰 바다를 향해

미어지는 가슴 열어두겠다

 

바다는 나를 가만두지 않고

매 발톱처럼 움키며 파고들지만

휘청거리지 않겠다, 나는

여기가 내 자리임을 알기 때문에

 

자꾸만 깎여나가는 내 몸뚱아리

굳은살처럼 풀어지면서

내 그림자 밑으로 다가앉는 푸석들

 

내 전생은 더돌이 얼바람둥이

불과 얼음의 형벌을 받고 바위가 되어

매들이 짝지어 보금자리 꾸몄을 때는

제법 날개짓 하듯 푸득거릴 줄도 알았었는데

 

매들이 떠나버린 어느 날부터

침묵만이 가장 뜨거운 외침이라는 걸

고독만이 바다와 맞서는 힘이라는 걸

몸으로 알기까지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찾아와

내 모습에서 제가금 보고 싶은 걸 담아가곤 했다

 

바다에 와서

바다의 몸짓으로 출렁이는 사람들

바다의 일몰처럼 붉게 타오르고 싶은 사람들

제가끔 모자라는 가슴을 채우고 돌아간 뒤

 

내가 또 홀로 어둠 속에 섰을 때

 

내 주름살 속으로 파고들어 내 살 저며내는

파도와 바람과 염분은 차라리

얼마나 눈물겹도록 시원한 통증인 것이냐

 

저 푸석돌 내 살점 아니랄가봐

얼바람둥이 옛 끼를 살려

파도에 밀리는 척

모시조개를 툭, 치며 작업을 걸고 있다

 

 

 

 

 

 

 

[은상] 미옥 씨 야근 일기 / 이승우

 

메운 숨을 들이마시며 궁시렁대는 환풍기가

연기를 밖으로 토하며 멀미를 한다. 그 아래엔

납땜할 전자 부품들과 구석으로는

인두공의 잦은 빈혈의 조각처럼 납품할 제품들이 쌓여 있고

허술한 맨살을 밟고 가는 연기가 바퀴벌레처럼 스멀댄다

 

가끔은 일탈을 꿈구며

바람 한줄금에도 깔갈대던 미옥 씨,

땜 작업의 감정으로 퇴색되어 깃판을 무덤덤히 살핀다

완장 찬 사내는 공장을 어슬렁 돌며

서슬 퍼런 혀 안에서 아줌마들을 쏘아댄다

처진 눈꺼풀을 썰어내며 미옥 씨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여자는 첫 팬티를 잘 벗어야 돼, 첫 팬티를'

 

그는 비전이 없는

과거로 눅눅하게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미래를 손금으로 펴본다

 

며칠 전 미옥 씨가 납댐하는 인두에

손바닥 3도 화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인두를 플러그에 꽂아둔 채 졸았기 때문이다

그 후 거울을 보듯 감시가 심해졌다

아줌마들의 입에서는 야근을 하지 말자는 말이

호적도 없는 새벽 안개처럼 부풀어 갔지만

목구멍이란 처절하고 질긴 외길,

재래시장 만 원자리 상품권 세장, 입들을 다독거려

공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문 찾아 오래 걸린 조각 달만 칭얼거린다

 

지글대는 납 덩어리 같이

흔적만 남은 파마머리 정수리로 드러나는 반백의 미옥 씨,

행여 각질 같은 거친 길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찍어온 발자국을 걷어들이며

사십 길에서 오십 길로 납땜을 한다

 

 

 

 

 

 

 

 

[은상] 옹이 속에 어머니를 묻다 / 김면수

 

모관에도 꽃이 핀다

가장 단단한 살짐을 헤인 자리마다

내 어머니의 보드란 젖가슴살 같은

눈빛으로 서 있는

 

하마 

꽃을 심고 돌아오는 낡은 신작로엔

함께 노닌 추억이 우수수 쏟아진다

봄바람에 이는 황사처럼 끝내 개화하는 슬픔을

본다

 

사계절 시계 추마다 초침으로 빛을 발하던

슬픔엔 중력이 없어 더는 가지 못하고 안은

길, 우에 모로 와 깊이 박힌 옹이 하나

 

들리시나요? 어머니!

내 가슴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의 노래를

 

 

 

 

 

 

 

 

 

 

 

[동상] 핸드폰 / 한인석

 

핸드폰을

빨래처럼 짜 보니

무수한 번호들이

쏟아진다

 

기분 좋은 번호와

언짢은 번호가

뒤엉켜

작은 모래성을 만든다

 

긴긴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번호에 애착을

설레이는 얼굴이

오버랩으로 대신한다

 

익숙한 목소리들이 항상 나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지만

뢘지 모르게 아쉽다

 

내 유년의 추억을

든든한 기억으로 재생해

오늘밤은

머언 세상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련다

 

 

 

 

 

 

 

 

 

 

 

 

[동상] 억새 / 금응종

 

유배지 꽃이 피었다

억새 피는 언덕에 서면

바람의 길 쪽으로 마음이 눕는다

 

억새는 글 솜씨는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처럼

만경창파 한을 품은 억새꽃 서체로

가시처럼 눈을 찔러 와도

글 쓰고 남은 먹물 억새꽃에 뿌려진 유배지

학문의 분노는 맹렬하였다

머리 하얘지도록

억새꽃은 늘 그리운 쪽으로 날리다가도

꼭 한번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파도가 절벽을 후벼파듯

없는 아이 소풍 돌아오듯

새들을 그 가지에서 떠나게 하고

바람을 사신으로 삼아도

바람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고개 숙여 잘못을 비는

그의 기도로 들판을 잠재우고 있다

 

 

 

 

 

 

 

 

 

 

 

 

[동상] 헌화가 / 리규상

 

꽃이 피려나 보다

한참을 보고 있을 땐

미동조차 하지 않더니

여린 잎사귀에 잠시 눈길이 가 있는 사이

꽃봉오리 움찔거린다

그 하늘거림보다

향기가 먼저 터져나온다

 

꽃이 되려나 보다

들판에 아무 이름없이 버려져

잡초라 불리던 내 작은 꽃송이가

당신을 만나 꽃이 되려나보다

내 앞에 아무렇지 않게

쪼그려 앉아 사랑을 이슬ㅊ처럼 내려주던

당신 때문에라도

꽃이 되어야 하나 보다

 

꽃으로 피어 웃을 때마다

같이 흔들리고

눈들 때 꽃봉오리를 열러야 한다

당신 가슴에 깊이 뿌리내리고

몇 년이고 겨울이 와도

숨가뿐 구근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밀어올려

언제든 꽃을 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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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내 삶은 수평선이 없다 / 안국훈

 

내 바다에는 외로운 섬이 없다

조각배 옆에 도 하나의 배, 그리고 또 하나의 배

끝없는 그리움이다

파도는 삶을 쓰다듬는 은유

물고기가 꿈 찾아 하늘을 날기 위해 

지느러미에 날개 달고 땀방울 뚝뚝 쏟아낸다

바다는 하늘이 되고 하늘이 바다가 되니

가슴은 그리움의 허공이다

 

내 하늘에는 슬픈 별이 없다

산개 옆에 또 하나의 새, 그리고 또 하나의 새

지독한 보고픔이다

구름은 추억 따라 흐르는 세월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땅을 디디려니

가슴속에 그대 위한 꽃밭조차 가구기 힘들구나

꽃씨 하나 삭 틔워 붉은 꽃 피우는데

저 숨결은 꽃잎의 흔들림일까

 

내 삶은 수평선이 없다

편하다고 단추만 누르려 말라

둥둥 허공에서 떠다닐 수 있거늘

가끔은 전원 플러그를 확인해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위로하며 살아도 아쉬운 게

어디 낲익은 봉분 하나뿐이던가

문득 바라본 산 너머 산

산줄기는 늘 그리운 쪽으로 뻗는다

 

 

 

 

 

 

 

[금상] 자동차! 그 아름다운 꽃 / 황의률

 

뜨거운 쇳물 용광로에서 프레스길ㄹ 거쳐

너의 운명은 결장된다고 했다

아픔 속에 탁마되어 잔 부스러기는

압축 고철로 다시 보내지고

너의 몸매는 용접으로 반짝반짝 문질러지고

드디어 페인트로 예쁘게 단장한다고 했다

 

무려 2만 가지 부품으로 이어진 몸체

서로가 만나는 것은 진정 위대하다고 했다

도로를 굴러서 비록 말 못하는

쇳덩이에 불과 할지라도

 

경쾌하게 굴러가는 소리가 거듭할 때

너의 원형은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면

너의 위치는 더욱 화려하다고 했다

 

세상을 사는 순간에 이승과 저승이

매번 오르내리는 순간 일지라도

너의 생활은 이기라고 했다

언제나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다

 

 

 

 

 

 

 

 

[은상] 앉은뱅이 저울 / 봉윤숙

 

나는 다리가 짧고 몸은 가분수다

허리는 없으며 아주 뚱뚱하다

보다 멋진 친구들이 생기면서

내 친구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난 정확하고 예민한 가슴엔 촉수가 있고

빙그르르 회전이 가능하며

당신이 원하는 특별한 날에는

당신의 무게를 측정해 낼 수 있으며

또한 원상회복 능력도 아주 뛰어나다

어느 날 당신이 내게 기대어 왔지

그대가 움직여 온 무게만큼

수직의 힘으로 나는 움직이곤 해

그러나 당신 나에게 온 몸을 맡기진 마

완전한 당신을 받아줄 능력이 없어

내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완벽한 당신을 난 원하지 않아

그러나 가끔씩 들리는 건 잊지마

마음 한 칸의 값이 얼마인지 궁금할 때

누구에겐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머리에 올려놓은 그 무게

꼭 그만큼만은 반드시 돌려줄게

 

 

 

 

 

 

 

[은상] 휴일 / 문호곤

 

창밖 뒷산에 쌓인 눈은 어제보다 많이 야위었다

지난밤 눈과 함께 어둡게 쌓여가던 아내와 나의

근심도 휴일 아침 졸음에 야위어간다

 

침대에 귀를 기울이면

아내의 온기를 따라 따뜻한 수맥이 흐른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지만 어느 늪에서 고이는 것이다

 

볕이 들지 않는 신산한 늪지

죄가 없는 새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습윤에 번뜩이는 정막을 헤치고

며칠전 곁을 떠난 동료가

추상처럼 꿈결인 듯 들어서 소스라쳤다 

 

초점없는 그의 눈은 무엇인가 말하는 듯 하는데

귀를 기울이면 늪지 가운데에서 전해온 파문은

어느새 내 눈을 윤색하고

 

파문이 전해올 때마다 휴일의 말랑하고 매그러운 졸음에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친구는 그런데 이 겨울을 잘 나고 있을까

 

토막난 휴일을 맞추면 일상은 내일 다시 찾아오지만

아내여, 창밖에 봄은 아직 지척에 있지 않구나

 

 

 

 

 

 

 

 

 

[동상] 낡은 수레 옆에서 / 김춘희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위해서 태어난 목숨이다

무거운 눈꺼풀 밀어올리는 아침 해 앞세워

개미 더듬이의 촉각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인가 채워주길 넌지시 바란ㄴ 빈 박스가 기다린다

주인의 온기 채 가시지 않은 미싱다리

녹슬고 싶지 않아 바람결에 간간히 흔들린다

닳아진 운동화 뒤축 끌고

개미허리로 개미의 검은 눈동자를 가진 

옆집 노인의 폐품 줍는 일이 시작된다

하마입을 하고 버티고 앉아

넣어주는 대로 척척 받아먹는 늙은 수레

취한 듯 스러져 있는 술병을 일으켜 세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배우 얼굴이 구겨진다

오 분 전에 내어놓은 밀감 박스

개미 손이 낚아채 갔나 보다 행방이 묘연하다

빈 것들은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다는 말인가

잠시 목축이고 하늘 한번 쳐다볼 겨를이 없다

구르지 않으면 삐걱이는 관절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으니까

낡은 수레바퀴 몸 일으켜 세우며 안간힘이다

 

 

 

 

 

 

 

 

[동상] 곱창집 골목 / 강수덕

 

바짝 달궈진 철판 위를 지글지글 뛰어다니다 보면

너무 익어 밑이 까맣게 타버린 저녁이

움막 같은 곱창집 문을 밀고 들어온다

 

흐린 불빛아래 질긴 내일을 기다리며

연탄화덕에 둘러앉은 사람들

쓴 잔을 부딪치고 다시 채우며

매운 설움 한 가닥 쭉 뽑아 불 위에 올려놓는다

 

미처 통로를 빠져나가지 못한 시간이

어개 토닥이며 익어가고

누렇게 든 희망을 십는 동안

새벽은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간다

 

불에 덴 손가락 환하게 켜들고

불시 죽어가는 하늘에 슬며시 대어보면

확, 불붙는 동녘

 

 

 

 

 

 

 

 

 

[동상] 이런 세상에서 난 살고 싶다 / 이남석

 

이른 아침 앞 뜰

흔들의자에 몸을 얹고

진한 차 향기 내음새 위로

맑게 타오르는 태양 빛에

이슬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보릿대 모자를 쓴 채

소담스런 밭 언저리 이랑에서

못난 잡초를 골라가며

소채들이 자라는 싱싱함을 보고 싶다

 

정감 있는 광주리에

사랑하는 이가 들고 온

따스한 먹을거리로 속내를 채우고

알맞게 그늘진 풀밭 위에

사랑하는 이의 팔을 배게 삼아

한낮의 꿈을 즐기고 싶다

 

석양이 너울너울 가라앉으면

괭이 호미 들고

담쟁이 넝쿨 우거진 울타리를 지나

사립문도 없는 집에 돌아와

은은하게 자리 잡은

안온함을 맛보고 싶다

 

별빛 아래 풀벌레 울음들과

깊어가는 밤 향기에

하루를 취하게 하고 싶다

 

철따라 오는 기쁨이

생의 하루하루를 살찌우며

내일의 낙을 꿈꾸는

이런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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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가로등이 눕는 길 / 김수구

 

길눈이 어두워지는 날에는

가로등이 굽어 눕는다

눈이 내릴 것 같은 찌뿌등한 밤도

날밤 하얗게 지새우던 철길에서도

가로등은 굽어 있었다

한가위 보름날 숙맥같이 봇짐 지고 달밤을 등질 때도

서늘한 불빛을 부비며

나를 바라보는 파르스름한 눈빛이 굽어 있었다

환하게 웃다가 찡그리다가 겁주는

어두운 골목에서 장승처럼 버텨주던

대설대처럼 곧기만하던 할배 가로등은 가고 없지만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슬픈 것은

이 밤을 홀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바닥에서 고독을 키우는 일이다

철길에 서서 백발 길게 늘어트리던

동네 어귀 할매 가로등이 뽑혀 상여 지고 가던 날

어머니는 등이 굽어 미라처럼 빠시시 말라있었다

풀밭에 귀뚜라미 소리조차 가을 언덕을 찾아가건만

눈물이 있어도 떳떳이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얼굴

이 세상 어디에다 대놓고 실컷 울 수 있으랴

 

 

 

 

 

 

 

[은상] 옥탑방에 사는 그 노인 / 남태현

 

햇빛이 창틀에 자글자글

파리떼같이 들끓고 있다

일감이 떨어진 지 꽤 오래일거라는

생각이 들 즈음

독촉장, 고지서 이런 것들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겨울 왔다고 부고장처럼 알린다

방 한 켠

노인의 행방이

발 묶인 신문지 활자 속으로 겹겹이 포개져있고

누군가 수소문한 흔적이 도배지에

문신처럼 박혀 있다

 

일감을 구하러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문틈으로 들어 온 세상의

바람과 함께 돌아 온

그 노인의 옥탑방에

불빛이 들 즈음

나는 어둠을 밀고 나오는

등 굽은 개똥벌레 한 마리 보았다

 

 

 

 

 

 

[은상] 장미꽃의 절정 / 이형철

 

늦은 오후를 구워낸 석앵이 누워있다

핑크빛 가슴이 뭉게뭉게 올라와

몸체 향기 따라서

마음의 살을 섞었다

 

온몸의 물기는 아래로 밀어붙이고

빨갛게 익은 입술을 문지르자

선홍색 부끄러움이 하얗게 피었다

 

나무로 옮겨가던 새 한마리

말없이 화단에 내려와

긴 그림자 숨기고서

촉촉한 사랑까지 가슴에 담는다

 

꽃술에 향기가 베어난 곳

원형의 미끄러운 액체가 스며들 때

통통하고 키가 큰 잠자리는

좔좔 흐르는 물속에

단단한 몸체를 밤개워 담근다

 

 

 

 

 

 

 

 

[동상] 빈 집 / 이미화

 

하기 싫은 이애기가 하고 싶어질 때면

누구나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떠나온 첫사랑에게 때늦은 사과를 하려는 듯

빗장 걸어둔 문을 서성이다

언젠가 심은 나무의 그림자가 벽을 넘어

발끝에 닿았을 때까지도 몰랐습니다

 

작은 문틈 사이를 비집는 햇살

늘 그 안에 있는 듯 훔쳐보다

먼저 열어 줄 어떤 이를 한참을 기다려 보지만

끝내 하고 싶었던 이야기조차 잃어버리고

두드리지도 못한 채 돌아서는 길

꽃이 진 빈 들녘만이 괜스레 야속하기만 합니다

 

왜 기다리는 것은 더디 오고 서둘러 가는지

도배지 풀물 바진 얼굴 위로

까치발 산행하던 봄꽃은 지고

오래된 도마의 등짝같이 움푹 패인 가슴에는

마르지 않는 빗물만 고입니다

 

그 집에 동거하던 사람들의 문패를 떼어내고

낡은 벽장에 남겨둔 새 한마리마저 날려 보내고서야 알았습니다

꽃은 봄에도 진다는 것을

 

 

 

 

 

 

 

[동상] 이발 / 문호곤

 

양철세숫대야 온천수처럼 뜨뜻미지근한 물이 고이면

할아버지는 살구빛 보자기를 펼쳐 소년의 목에 두릅니다

 

아이의 심장은 붉은 색 달맞이 꽃으로 밤에 다시 피어나 파닥거리고,

낮동안 잠들었던 청각은 할아버지의

물살 젖는 소리를 낚시하듯 숨죽여 따라갑니다

 

졸음에 겨운 소년의 머리가 스삭스삭 가위질의 리듬을 맞춰

연신 아래로 방아를 찧을 때 달빛을 오려내던 가위질 소리에

감나무잎 하나 조용히 잘려나가 소년의 어깨 위에 살며시 내려앉지요

 

커피전문점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생크림마냥 소년의 목덜미에

비누거품이 철퍼덕 발라지고 할아버지의 새치머리를 닮은

낡고 무디어진 면도날이 눈위를 달리는 자전거가 되어

유연하게 길을 만들어 낼 때

 

아이야 잠들었다간 너의 고운 핏방울이 하얀 눌길 위에

향긋한 쑥처럼 돋아날지 모르잖니

 

할아버지, 소년의 머리를 구슬을 빚어내듯

둥글게 둥글게 감겨줄 때 아이는 세숫대야에 머리를 묻고

엄마의 뱃속에서 아늑하고 포근한 양수를 유영하다, 이내 꿈을 꿉니다

 

비눗방울을 머금고 다시 태어난 아이 할아버질 보며 생긋 웃네요

 

 

 

 

 

 

 

[동상] 막차, 잠의 구간 / 이종숙

 

사내가 졸고 있다 핸들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풀려나간다 풀려나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사내는 지구처럼 오래된 핸들을 굴려 예까지 오느라 지쳐있다 이마에 주름 길을 내며 사람들을 실어 날랐을 노역의 구간, 수백 마리의 잠떼들이 버스 안으로 몰려든다 잠떼들의 날개가 사내의 속눈썹에 엉겨붙는다 사내의 눈썹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잠을 쫓아내느라 사내는 고개를 힘차게 흔든다 잠깐 동안, 사내에게 엉겨 붙었던 잠떼들이 파닥거리며 날아오른다 날아오르자마자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날개들, 순식간에 의식을 쪼아 먹느라 사방이 조용해진다 차창 밖으로 잠 보다 깊게 박힌 벼들, 버스 안의 몇몇 승객들이 사내 보다 먼저 잠 속으로 침몰한다 사내의 버스는 포박당한 듯 잠 길을 운행하고 있다 천근 무게로 내려 앉는 사내의 속 눈썹 같은 달빛, 경계를 넘어 어둠 깊이 닿았던 사내의 핸들 안에 갇혀 나는 순식간에 포로가 된다 낯선 사내가 송두리째 내 인생을 몰고간다 깜박 잠 속으로 침몰할지 모르는 막차 안에서 사내보다 먼저 눈꺼풀이 내려앉는 아찔한 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죽음의 냄새, 버스는 구간마다 잠들을 쏟아놓고 경계를 넘나들며 가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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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그 해 겨울, 우리가 찾아 헤맨 과녁은 / 허남훈

 

서툰 한국말로 가족, 이라고 형이 말했을 때

술잔은 이미 넘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손을 거둘 수 없었다

가지는 없고 옹이만 남은 겨울의 끝

형의 손가락은 변압기 공장 어느 구석에 플러그처럼 꽂혔있을까

주머니 속에 움켜쥔 주먹은 더 작아져

어제 도망간 사장의 멱살을 잡아끌 기운도 없는데

누렇게 변색된 사진을 꺼내 보이며

소리 없이 웃는 그 표정이 싫어

형은 이제 버려진 거라고

여기에 남을 수도, 떠날 수도 없지 않느냐고

금방 후회할 말을 뱉어버린다

실내포장마차 낡은 백열등 아래

미아 찾기 전단지의 흐릿한 미소만이 떠다니는 밤

가족을 위해 더욱 한국인이 되어야 했던 형은

눈이 그치면 언제 축구나 하자며

내 어깨를 짚고 일어선다

그 텅 빈 손을 잡고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스타디움에서 어제

24년만에 FIFA 공식 경기가 열렸노라는 기사는

끝내 전해주지 못했다

 

 

 

 

 

 

 

[금상] 붉은 손톱 위로 내리는 눈 / 신민철

 

손을 펴 보면

피로 얼룩진 손톱처럼

잊힌 듯이 눌려 있다가도

어느 틈엔가

살을 비집고 나오는 거대한 몸부림

그 붉은 광주와 마주 치곤 한다

 

잔뜩 붉어진 꽃잎을 던지며

아듯히

두 손 가득 눈이 내린다

지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견고한 뱍을 뚫고 흐르는 손금

5월의 광장은 

당시 가슴 날리던 총성과

눈물처럼 쏟아진 최루탄의 최후를 기억한다

포탄을 받으면 받은 만큼

광주는 무덤을 올렸다, 무덤가 지칠 줄 모르게

엉켜 버린 띠가 증거하는 건

실핏줄처럼 터져 버릴 그리움이다

손으로 날카롭게 베어드는 내 그리운 영혼들이다

청춘은 넓은 잎을 잠시

앉았다 가는 푸른 상처지만

보라 후끈거리는 열기를

무덤가로 더운 입김을 내는 끈질긴 생명을

광주는 그저 숨 쉬고 싶은 거다. 다시는

 

연하디 연한 속살 베이지 않도록

갑옷 같은 손톱을 덮어쓰는 거다

부패된 어둠을 밝히며 붉은 꽃은

탄환 맞은 상처로 흐르고

환생의 무덤 위로 잦아든 야생의 빛

비상은 꿈꾸는 게 아니라

길이 되어 준 시간을 밟고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것이다

 

난무하는 시간은 땅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지만

난 보고 있다, 두 손 가득

겨우내 긴 숨을 생명의 입술로

푸-

터트리는 꽃의 숨결을

 

세상을 가늠해 보는 손짓이

무덤 가가이서 흔들리고 있다

손가락에 각인된 붉은 손톱

손때 하나 타지 않은

12월 내 광장 위로 눈이 내린다

 

 

 

 

 

 

[은상] 11월의 오솔길 / 윤영기

 

새벽 어스름에 오솔길을 걸어갑니다

축축한 공기 속에 잠이 덜 깬 나무들은

밤새 발밑에 잎들을 수북이 쌓아놓았습니다

단풍나무는 빨갛고 노란 작은 손바닥으로

촉촉한 바닥을 쓸어보고

플라타너스도, 후박나무도 커다란 손으로

햇볕도 이슬도 더 많이 받으려고

이제는 욕심부리지 않겠다고

뼈 드러난 손등로 하얗게 널려 있습니다

 

가을의 첫 햇살이 이마에 닿았을 때

나무들은 이미 알았습니다

잎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버리지 않으면 얼룩진 손들을 매달고

찬바람 속에 수치스럽게 서 이ㅛ어야 한다는 것을

한겨울 지낼 곤충들의 이불도 될 수 없고

봄을 위한 밑거름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먼저 잎을 다 떨구는지 내기라도 하듯

툭툭 잎 던지는 소리 한가득 11월의 새벽

엉킨 숨소리 고르며 오솔길을 따라가면

작은 것 하나 버리지 못하는

제 마음에도 어느새 평화가 고여 옵니다

 

 

 

 

 

 

[은상] 며느리밥풀 꽃 / 박함규

 

바람이 건넨

슬픔 빛 언어

 

며느리밥풀 꽃

치마폭 햇살에

 

앙상한 세월 담그며

온종일 비탈진 밭을 허기로 메고 있다

 

서러움 꼬옥

묶은 허리띠

 

조여 매며

굽이굽이 목이 지던

뒤척이며 잠들던 꽃

한평생 인고의 눈물 새김질 하는 생애

 

몽긋이 매달린 사랑

시리도록 환하다

 

말라버린 눈물에

수줍도록 피어나

 

어머니 가난한 뒤란 물들이던 며느리밥풀 꽃

 

 

 

 

 

 

[동상] 고향의 추억 / 이병희

 

토끼재* 가는 길

찰나를 거꾸로 되돌린다

 

흔들리며 다가오는 기적소리

허공에 시간을 풀어 놓는다

 

추억들은 조롱박처럼 매달리어

세월은 바람에 흔들리고

 

직선으로 다가와서

유유히 곡선으로 떠나가는

 

논두렁 배암 생각에

온몸이 허물을 벗는다

 

메뚜기 놀던 자리에

하늘 그림자 내려 앉고

 

새들은 부지런히

삶을 조각하고 있다

 

한일지를 수 놓으며

가슴 속에 불을 지른다

 

알랑산 넘어온 구름은

미내다리 건너면서 바빠지고

 

아버지 머리 위에선

들꽃들이 춤을 추고 있다

 

참다운 행복은

아버지의 그 평범한

 

이웃을 위하는 마음

그냥 그 삶 속에 있음을

 

거짓없는 순박한

그 웃음 속에 있음을

 

길섶의 할미꽃들이

고개 숙여 읊조리고

 

한 마리 파랑새의 비행

둥글게 둥글게

 

거품 흘리는 황소의

수레바퀴처럼

 

 

* 토끼재 : 충남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 4구의 마을 고유 이름

 

 

 

 

 

 

 

[동상] 어머니의 남해바다 / 이형철

 

1

주름깊은 얼굴에서 늙은 아침을 구워보낸

어머니의 남해바다가 택배로 보내졌다

매번 시키지도 않았던 돌출행동의 어머니

 

단단하게 묶인 끈에는 무슨 방식이 있으랴 했건만

옆에서 보다 못한 아내가 끈을 잘라야 한다며

급하게 부엌칼을 내민다

 

나는 고집스럽게 내가 꼭 풀고야 말겠다며

옹이 매듭이 어머니의

암호가 이어져있음을 알고서 그 끈을 쉽게 풀어버리자

아내는 멍하니 칼날을 쳐다본다

 

2

비린내가 풍기는 라면상자 안에는

세월의 검은 버섯같은 어머니 얼굴도 피어있고

수평선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그 바다의 햇살도

고운 햇살처럼 널려져 있다

 

손목을 둥그렇게 흔들거리며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생선비늘처럼 반짝이는 남해바다의 철벅거림

 

간간함이 뿌려진 생선의 뱃살과 아가미

가라픈 파도에 푸드덕거리는 표정과

싱싱한 횟감이 가슴에서 출렁거렸다

 

라면이란 글자가 거꾸로 씌어진 택배박스

남해바다의 풍경이 들어 올려졌다가

소리없이 내려앉는다

 

 

 

 

 

 

 

 

[동상] 봄나들이 / 문경철

 

울안 나무들이

안개의 면사포를 하늘로 날리고

알몸의 비명을 질러대는 휴일

밀린 작업복을 세탁하던 아내는

눈처럼 내릴 벚꽃의 안부를 되묻고

아이들 둥근 눈매에도

푸른 방적돌기를 거친 외출이

긴 거미줄로 뽑혀 나옵니다

일주일치 품삯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간절함 묻은 빗장을 열자

성근 움 틔우는 야생의 환호,

빈혈성 오후가 노랗게 익는

봄나들이 길 끝까지

쑥 내 나는 사랑 하나가 따라옵니다

밑불 끄지 못한

도굴 당했던 얇디 얇은 온기가

자꾸 부끄러운 몸속을 하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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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응어리 / 김은

 

상자 안에 넣어둔 접질러진 종이 하나가 운다

흫건한 상자가 가슴의 문을 열자

눅눅한 창문에 나라는 사람이 새겨진다

김 서린 손가락으로 한 글자 서툴게 남기니

이번엔 나라는 글자 하나가 줄줄 흘러 운다

내 책 속 곰팡이를 향수병에 모두 담아

동화 속 아이처럼 하염없이 착하게 누그러진다

타다 남은 촛불 하나 생경하게 당겨진 시큰한 밤,

방이란 상자에 담겨 가슴을 톡 접질린 내가

축축한 얼굴로 그 미운 종이를 펴면서

천년 별빛을 타고 흐르고 또 흐른다

멸종하지 않는 바다처럼

멍울지는 이 더운 시간 속에

 

 

 

 

 

 

[금상] 갈고리 / 김희철

 

언제부턴가

그의 팔은 보이지 않았다

유압프레스, 밀링, 선반, 사출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한숨소리를 삼켜버렸다

소리가 잘라버린 건

팔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소매 안에서

조심스럽게 칼을 꺼내었다

그것은 스치기만 하여도

자구만 가슴을 찌르려했기에

칼집 속에 숨겨두어야 했다

 

그는 칼을 들고 육교 위로 나갔다

사라진 팔의 빈자리는 너무 무거웠지만

행인의 시선을 단번에 베어낼 만큼

칼은 날카로웠다

바람마저 자를 수 있다는 듯이

소맷자락을 철럭였다

양은 냄비는 베어낸 소리를

쉴 새 없이 보여주고 돌려주느라

쉬이 닳아지고 찌그러졌다

구두쇠의 무딘 소리까지 베어지자

아주 쭈그렁이 되고 말았다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자 스윽 날이 보였다

 

 

 

 

 

 

 

[은상] 열망 / 황정민

 

물이 끓고 있다

단 한번도 드거움을 몰랐다는 듯,

그 열망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저 혼자 속으로 삼키고 있다

 

그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생,

조금만 넘치면 스스로도 견딜 수 없는

외부의 소란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는

절벽 같은 나날 속에서

또 다른 절벽으로 뛰어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 때

물이 저 혼자서 끓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

그 속에 사람이길 포기한 한 마리 짐승이

괴로워하며 물이 끓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고약한 열망이 힘겹게 그를 짓누를 때

짐승은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

끓는 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고통스러움도 모른 채 물은 끓고 있다

 

 

 

 

 

 

[은상] 윈-윈 하는 법 / 박진호

 

1

아내이 늦은 외출은 사십이 넘어서 시작된다

하루세끼 먹고사는 고만고만한 일상

딸아이는 혼자 6급한자 자격시험 준비를 하고

늙은 장모는 소파에 누워 천수경을 외운다

시방세계에는

곳곳마다 부처가 있어 몰래 연애질도 하기 어렵고

예전에 벌써 버렸어야 할 낭만콘서트의 추억 되새김질

가당찮게도 첫 월급을 작부에게 던졌던 흐린 기억 탓에

기적처럼 바라는 유치한 것들이 내겐 어디 사랑뿌이랴

아무리해도 되돌아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젠 버린다, 관솔나무 마른 옹심으로 입 꽉 다물고

사리처럼 굳어진 그 욕망의 결정들을 부숴버린다

 

2

아내의 늦은 외출은 표정이 없다

카트라이더 게임을 하는 큰 놈은 제방에서 꿈쩍도 안하고

장모님 오늘밤에는 독경을 낮추세요

만만한 둘째 딸아이를 옆에 앉혀 자동차의 시동을 켠다

반즘 아카시아 숲으로 가려진 월드컵 기념공원

사바는 환청으로, 붉은 악마 가로등이 넘실거리고

달빛받아 잠든 아이의 얼굴은 사십대 중년남의 베이스캠프

검진 유소견자, 사후관리 대상으로 정밀추적 요함

파란 색깔의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는 아내의 최후통첩이다

이제 쌍방과실이면 이놈의 어지럼증도 윈-윈 소리를 멈출까

쌍춘년 올 가을, 20년 장기근속으로 제주도 여행이 있다는데

사바응로 불을 밝혀 신전처럼 창백한 실내체육관 계단에서

이것저것 궁리하다 곤궁하고 멋쩍어져

나는 아내의 댄스스포츠 동호회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동상] 철거 / 구기순

 

까치가 운다

겨우 나뭇가지 하나 들어냈을 분인데

펄쩍펄쩍 공중을 벌려대는 날갯죽지 사이로 정오의 파란 하늘이 금갔다

다시 사내의 손이 뻗치자,

이 무슨 날벼락이더냐고 생피 같이 쏟아내는 울음소리

전봇대 옆 구두 닦던 아저씨 나와 혀를 끌끌 차고

사내는 서둘러 까치집을 뜯는다

 

빈 전봇대에 집지은 괴밖에 없는 부리로 깍깍 항의하던 까지

맞은편 PC방 옥상으로 날아가

마지막 한 개비의 추억까지 똑똑히 바라보는 그 연한 눈망울 속으로

절정의 봄날이 으스러지고 있다

 

5분만에 내려온 사내는 한전 차량용 크레인 타고 부웅 떠나고

사람들은 어디로 바삐 가고들 있을까, 우리 모두는

잊는다는 것에 익숙해 바람처럼 흩어진 거리엔 금방 여름이 밀려오고

 

눈앞에서 빼앗긴 보금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허공을 빙빙 맴도는 까치여 숯으로 날아가

차압도 경매도 없는 숲으로 돌아가

다시 둥지 틀고 사랑해도 우린 아직 늦지 않다

 

 

 

 

 

 

 

[동상] 논개의 마지막 편지 / 천선자

 

어머니

엊그제부터 내린 조선 백성의 눈물같은 비가 그쳤습니다

무섭게 불어난 강물이 이따금 휘모리를 만들며 흘러갑니다

바람 한 점 불때마다

나뭇잎에 맺힌 울음 끝 여음 같은 빗방울들이

남강으로 후드득 뛰어내리고 있습니다

덕천 강을 거쳐 흘러 온 이 물속엔

어머니의 살 비늘이 섞여 있겠죠

고향집 앞산에 내려앉던 우수 깊은 구름

울타리가 앞 다투어 피던 봉숭아 붉은 속살

혓바닥이 검도록 따먹던 뒤꼍 뽕나무의 달콤한 오디

모두가 그대로인지요

 

 

 

 

 

 

[동상] 그가 짓는 집 / 김일호

 

남루한 삶의 끝자리에 그가 터를 잡은 곳은

산이 어슬 어슬한 한기를 피해 내려온

햇살이 노루 꼬리만큼 남은 서산 기슭이었다

 

언제나 기댈 데 없던 마음 한 채

들여 놀 집 생각하다가

쉰이 넘도록 꼬이기만 했던 내장 같은 줄자

잡아 마음 앉을 품을 잰다

 

평생 떨칠 수 없었던 근심 네 귀퉁이에 내려놓으며

구부러진 마음허릴 세워본다

벽돌 쌓아 바람을 막고 펄떡 거렸던 핏줄 다독여

구들장 밑에 숨죽여 깔며

숭숭 들락거렸던 생각들 앉혀 보는 것이다

혹시 근심 새어 들까 황토 흙 구석구석

채워 다지며 기왓장 한 장씩 올린다

허리에 두 손 짚고 집안 구석구석 다시 재어 보다

아무래도 마음이 외로울 거라

처마 끝 제비 한 마리 잠재울 생각도 하고

끊지 못할 세상일 궁금할 것 같아

산그늘 시작되는 곳에다

새집 닮은 빨간 우체통 세워둔다

 

 

 

 

 

 

 

 

[동상] 농막 / 금은종

 

비오는 들판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아버지의 농사가 생각납니다

긴 삽자루에 밀짚모자 하나면

타고난 비옷 젖거나 말거나

마른 논에 환하게 물 들어갈 때

어린자식 입에 밥숟가락 쑥쑥 들어갈 때

황새목이 되어 입매가 귀에 걸리던 당신

하늘 울음 시작하면 물꼬터라 물꼬터라

물 묻은 목소리 내 가슴속 강물처럼 흐릅니다

 

버려진 다랑논에 삽날 깊숙이 속을 뒤집다가

이 허기진 논바닥을 어떻게 건너

칠남매를 먹여 살렸을까

진흙 속에 빠지는 발만큼 땀이 눈을 파고들어

당신의 삽질 절반도 못미쳐 허리마저 아파옵니다

툭툭 갈라진 당신의 다랑논을 생각하면

농막 안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당신의 땀인 듯

그친 비 씻어넣은 석양 속으로

긴 삽자루에 걸린 논둑길이 아물아물

황새가 된 당신의 영혼 끝내 물꼬를 터는지

청산에 묻힌 농막 안이 축축이 젖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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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편지 / 이영춘

 

은행 창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춘천 우체국에 가면 실장이 직접 나와 고객들 포장박스도 묶어 주고

노모 같은 분들의 입출금 전표도 대신 써 주더라.“고 쓴다

아들아, 이 시간 너는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쓴다

나도 내 발자국을 수시로 돌아보겠지만

너도 우체국 실장처럼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고 싶은 시간이다

 

겨울날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받아 안듯

“비오는 날 문턱까지 손수 우산을 받쳐 주는 그런 상사도 있더라.”고 덧붙여 쓴다

 

살다보면 한쪽 옆구리 뻥 뚫린 듯 휑한 날도 많지만

마음 따뜻한 날은 따뜻한 사람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빗줄기 속에서, 혹은 땡볕 속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는 촌노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네 엄마, 네 외할머니를 만난 듯

그들 발밑에 채이고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 눈 속에 옷을 입혀야 한다

 

공부라는 것, 성현의 말씀이란 것,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아래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라, 그러면

터널처럼 휑한 그들 가슴 한복판을 가득 채우는 햇살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들아,

비오는 날 은행 창가에서 순번 기다리다 지쳐 이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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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나비 / 최동호
  -아내에게

 파도 위로 호랑무늬 깃을 펼치며
 대지를 움켜쥔
 나비가 날고 있다
 대양너머 저 멀고 먼 산언덕에서
 작은 들꽃 무리들이
 피었다
 지면서
 비바람 헤치고 찾아올 나비를 기다리고
 구름 뒤의 달은
 나뭇잎에 매달려 쪽잠 자며
 고치에서 부활하는 영혼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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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문화재단이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詩) 정신을 기리기 위해 주최하는 ‘제14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로 김남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지난해 발간된 시집 ‘충만한 사랑’이다.

김삿갓문학상심사위원회(위원장 문효치)는 ‘충만한 사랑’에서 절실하게 그리워진 시간들이 미학적 문양(紋樣)으로 천천히 번져오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고 평했다.

김남조 시인은 “좋은 작품, 좋은 시인이 많고 많음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시인의 좌석에 앉아 그의 수저를 쥐고 앉게 된 경우처럼 여겨져 수상이 감사하면서도 혼란스럽다.”며 “자유의 시인, 시인의 자유라는 시 정신의 중심적 계보를 세우신 시인 김삿갓의 큰 문학을 흠모하고 기념하는 상을 수상하게 돼 과분하고 영광스럽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김남조 시인은 1950년 연합신문이 주최한 시 ‘잔상’으로 등단해 첫 시집 ‘목숨’ 등그동안 30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상식은 10월 5일 영월 김삿갓문학관에서 열리는 제21회 김삿갓문화제 개막식에서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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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 / 나태주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일이 아니었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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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문화재단(이사장 박선규)은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김삿갓문학상에 시집 '숙맥노트'를 발표한 유안진 시인이 선정되었다고 1일 밝혔다.

 

김삿갓문학상심사위원회(위원장 문효치)는 유안진 시인의 시집 '숙맥노트'는 짧고 간결한 몇몇 화소(話素)를 엮어 한 편의 서사를 제시한 점이 독특해 이야기시라고 해야 할 시 형식의 시도 등 표현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회는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로운 이야기 형식에 담아내는 격조 높은 시세계를 열고 있었던 것으로 유안진 시인의 시적 모험과 그 성과를 높이 사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유안진 시인은 “시대의 유일한 환기통, 무소유로 부유했던 자유인 난고 시인상을 받게되어 영광이기에 앞서 무한 부끄러울 따름이며, 다만 앞으로 제대로 삿갓선생의 문학과 삶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닮으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여기며 염치없이 받겠다."라고 전했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유안진 시인은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숙맥노트》 등 17권의 신작시집과 시선집 <세한도 가는 길>,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목월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현재 서울대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일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유적지에서 개최되는 제19회 김삿갓문화제 개막식과 함께 가질 예정이다.

 

영월군은 수상자의 대표시가 담긴 시비가 현지에 건립되어 김삿갓유적지를 찾는 문학인들과 관광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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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다 / 신달자

 

거실에서는 소리의 입자들이 내리고 있다

살 흐르는 소리가 살 살 내리고 있다

30년 된 나무의자도 모서리가 닳았다

300년 된 옛 책장은 온몸이 으깨어져 있다

그 살들 한 마디 말없이 사라졌다

살 살 솰 솰 그 소리에 손 흔들어주지 못했다

동거하는 것들은 목숨처럼 멈추지 않고

소리의 고요로 고요의 소리로 흐르고 있다

조금씩 길어나르는 손이 있다

멀리 갔는가

사라지는 것들의 세계가 어느 흰빛 마을을 이루고 있을 것

나 거기 가끔 몽환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모습 보이지 않으나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내 집의 부스러기 내 몸의 홑겹 살비듬들 보인다

다 닳는다

내 손가락 은반지는 가끔 살 벗겨지는 소리를 낸다

다 어딘가로 흐를 것

 

흘러내리는 소리

흘러가는 소리

멀리 사라지는 소리

소리와 소리가 흐르는 소리

 

이 깊은 밤 창 안이나 창밖이 모두

나와 함께 고요히 자신의 살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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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옹이 / 홍신선

 

겨우내 따귀 떨던 풍설(風雪)의

그 가혹행위 담아낸 숙근초(宿根草)의 내공은 얼마나 얼얼한 것인가.

 

그 쑥대밭이던 난리 때 두세 집 건너 한 집 꼴이던가,

피 묻은 옷가지를 평생치 눈물로 빨고 헹궈낸 아낙들의 속념은 어떤 것인가.

 

여섯 달 만에 백골로 출현한 독거남 중장비 기사,

유서처럼 남긴 쪽방 허공엔

익명의 이 사회가 놓은 올무인가

달랑 그의 생을 옭아맨 머리칼 몇 올 느슨히 풀려있었다는데

 

마침, 워킹 코스의 너테 위에 엉덩방아 찧으며

골반 뼈 부서졌을 저 백수 늙은 햇볕은 또 비명을 얼마나 길게 삼키는가.

 

그만한 옹두라지는 누구에게나 삶이 극한에 이르러서야 단단하게 압축된 파일이라고

그만한 옹두라지는 누구에게나 먹먹한 이력들 압축한 콘텐츠라고

막 방한복 벗은 공원의 뭇 나무들은

되레 천연스럽다 못해 능청인데

 

칠 벗어진 벤치에 쭈그려 앉아

나도 오늘은

마음자리 확 내리받아 깔고

내 기억 바탕화면의 옹두라지나 압축풀기로 가만 검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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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 강희근

 

물박물관 공원 슈퍼에 가 컵라면을 사 먹는다거나

종이 커피를 빼 마신다거나

해변 부둣가까지 나가 허름한 아꾸국에

막걸리 한 잔 마신다거나

파리 날리는 엿판 놓고 가시개 장단 맞추는

엿장수,

그에게 엿처럼 녹아 먹지도 않을 엿 두어 봉지 산다거나

수산물 이동 차량의 떠리미 설명에 주머니 아낌없이

바닥까지 턴다거나

시골 장바닥에 가 거리빵 이삼천원어치 사 갖고 온다거나

오다가 그 거리빵 내음에 취해 유년

물컹물컹 씹는다거나

눕거나

앉거나

주방장이 되거나 지휘자가 되거나

희멀건 곰탕에다 고춧가루 확 뿌려 넣거나

확 후라이를 하거나

그렇게 어디로 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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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군(군수 박선규)이 시선(詩仙) 김삿갓(난고 김병연)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돼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김삿갓문학상 수상자로 송수권(72) 시인이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강희근 심사위원장은 “송수권 시인은 1975년 문단에 오른 이래 한결같이 시 세계를 넓히고 깊이를 더해 한국 서정시의 수준을 올려놓고 있음을 심사위원 모두가 인정했다”며 수상자 선정 배경을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송수권 시인은 1940년 전남 고흥 태생으로 지난 1975년 ‘산문(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한 이래 14권의 시집을 펴낸 중진 시인으로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역임한 바 있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10월 20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김삿갓 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되는 제15회 김삿갓문화제 개막식과 함께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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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니다 / 신달자

 

 

북촌으로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할아버지 노방저고리 단추만 한 이 한옥도 우연이 아니다

 

나는 되돌아서서

 

다시 되돌아서서

느리게 느리게 북촌을 걸으며 되돌아서서

걸어온 내 생을 본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을 마을 거창

가끔 하늘이 열리며 서울을 그리워하던 곳

어머니라는 말 친구라는 말 사랑이라는 말을 배운 일

그렇게 산에서 부산 바다로 다시 서울 한강으로

그게 어디 우연이겠는가

되돌아서서 바라보면 다 예쁘다

 

다시 돌아가진 않겠지만

결코 돌아가진 않겠지만

 

나는 지금

다시 되돌아서서

지난 시간들을 어루만진다

 

어루만지다가

노후의 계단을

 

시큼하게 본다

 

 

 

 

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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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75) 시인이 시집 <북촌>(민음사, 2016)으로, 고려대 심경호(63) 교수가 학술연구서 <김삿갓 한시>(서정시학, 2018)로 각각 제29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진해 출신으로 한학자이자 시인인 김달진(1907~1986) 선생을 기리고자 타계 1주기인 1990년 6월에 제정됐다. 창원시와 서울신문사 후원으로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가 주최하는 전국 단위 문학상이다.

 

대상은 매년 3월을 기준으로 최근 2년 이내 발간한 시집, 평론집, 학술서다. 올해부터는 저자 문단 경력을 10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시와 평론에다 학술연구를 포함했다. 시는 매년, 학술과 평론은 격년으로 선정할 예정이다.

 

시집 <북촌>은 신달자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이다. 2014년부터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열 평 남짓 작은 둥지를 틀고 살면서 계동이며 가회동 구석구석 골목을 누빈 발걸음이 담겼다. 시인이 '가슴으로 썼지만 발로도 썼다'고 표현한 이유다.

 

북촌에서 삶은 시인에게 그의 고향 거창 같은 편안함과 그리움을 줬다.

 

"거창을 다녀오면 한 사흘 콧노래가 나오지/원서동은 거창의 대동리 같다고/아니아니 계동이 거창 같다고/그건 아니지/가회동이 거창 같다고/좋은 것은 무도 거창 같다고/아니 북촌이 거창이라고" ('거창을 다녀왔다' 중에서)

 

지난해 수상자이자 올해 심사위원인 유안진(77) 시인은 특히 북촌의 내력이 담긴 시들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말을 쓰는 시인으로 마땅히 해야 할 역사와 민속 사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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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 이건청

 

 

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를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크고 넓은 등허리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무대로 뛰어내렸다가 휘익 몸을 날려

말 잔등에 올라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곡예사는 채찍으로 말을 내리쳐

박수소리에 화답해 보였다.

 

곡예사가 떠나고 다른 곡예사가 와도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쳤다.

말은 매를 맞으며 곡마단을 따라다녔다.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을 것이었다.

 

 

 

 

2017년 제28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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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이건청(75)과 문학평론가 장경렬(64)이 선정됐다고 상 운영위원회가 29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와 평론집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

 

이건청 시인은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문단의 대표적 작가다. 지난 2010년 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는 장경렬 평론가는 평론집 꽃잎과 나비,그 경계에서로 수상자가 됐다.

 

김달진문학상은 경남 창원 태생의 시인이자 한학자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의 문학과 삶을 기리고자 1990년 제정된 문학상으로 김달진문학상운영위원회가 해마다 선정한다. 1990년 제정한 이래 시 부문만 시상하다가 1998년부터 평론 부문도 신설했다.

 

시상식은 오는 99일 오후 4시 진해문화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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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궁시렁

 

 

등단 50년 하고도 한 해를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구름의, 딸이고 바람의 연인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이었고, 어쭙잖은 헌혈 몇 방울 봄비 한 주머니였고, 10원짜리 동전 다보탑을 줍다에 불과했고, 감쪽같은 거짓말로 참말하며 거짓말로 참말하기,민속해학 알고에 홀렸고, 지향현실의 모순 둥근 세모꼴이었고, 때 얼룩 뭉치 검정 모성의 색걸어서 에덴까지를 거쳐 와, 이제는 녹두보리 구별 못하는 숙맥菽麥이라, 제 눈에 안경이라서 숙맥 짓만 보이는지

 

평생 인간발달(발달심리학)과 우리의 여성아동민속으로 밥 먹었다, 삶은 축적이면서도 소멸인데도, 그 점을 향한 발달은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어른의 아버지인가? 나를 건너지 못하는 (이미 건넜거나) 고독이거나 유약함이거나, 내 속에서 못 자란 ''라는 아이가 숙맥인가? 나에게는 나 이상의 불가사의가 없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Less is more라는 제정신이 아닌 시인 정신에서도, 시인詩人이라는 인간되기에서도, 다 실패한 줄을 확인해가며, 그 실패를 쓰는 숙맥 짓만 한다.

 

다 폭로도 괜찮다는, 부끄러움을 강 건너 불처럼 구경하며의 몸에 만의 얼굴을 가진 시! 동화(Fairy)와 우화(parable현실)! 그래서 거짓말로 참말하기의 ! 언어경제학言語經濟學적 언어예술言語藝術!모르겠다. 내일도 있으니까. 혼신이 종합병원이 되고서야 맛보는 자학적 쾌감도 때로는 일몰의 황혼 같다. 낡고 허물어지면서도 새로운 신비를 풍기는 듯도.

 

이 시집은 최동호 시인의 독촉 덕분이다. 시인들도 많은데, 최 교수의 우정과 시인이 읽는 감상을 써 주신 沙泉(이근배) 사백께 감사하며.

 

2016년 부활하는 봄 아지랑이 더불어유안진이가

 

 

 

 

숙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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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76) 시인이 <숙맥노트>(서정시학)로, 이광호(54) 평론가가 <시선의 문학사>(문학과지성사)로 제27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경남 진해 출신 김달진 시인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자 고인 타계 1주기인 지난 1990년 제정됐다.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김달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시와 평론 두 부문에서 문단 경력 10년 이상인 작가의 최근 1년간(전년도 4월부터 그해 3월까지)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해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올해 수상자인 유안진 시인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67년 현대문학 3회 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수상작인 <숙맥노트>는 유 시인의 등단 50년께인 올해 나온 시집이다. 심사위원들은 유 시인의 이번 시집이 독특한 이야기체의 시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는 평가를 했다.

 

평론 부문 수상자인 이광호 평론가는 대구 출신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시적 어조와 사회적 상상력'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수상작인 <시선의 문학사>는 문학사 서술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안진 시인과 이광호 평론가는 각각 상금 2000만 원을 받는다. 수상 기념 시낭독회는 내달 3일 오후 6시 30분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열린다. 시상식은 9월 3일 창원시 진해문화센터 1층 대공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016년 제27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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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불타다 / 정현종

 

 

버스 타고 

근동 지방을 구불구불 가다가 

드넓은 밀밭을 검게 태운

구름 그림자를 보았다 

구름 그림자에 타서! 대지는 

여기저기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욕망 - 구름 그림자 

마음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에

일생은 그을려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에  

세계는 검게 그을려

 

그 모든 너울을 걷어낸 뒤의

구름 자체를 나는 좋아하고

그리고 

은유로서의 그림자에 불타는 바이오나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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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77) 시인과 김재홍(69) 평론가가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와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서정시학)2015년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에 각각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진해 출신 김달진 시인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자 고인 1주기인 지난 1990년 제정됐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김달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시와 평론 두 부문에서 문단 경력 10년 이상인 작가의 최근 1년간(전년도 4월부터 그해 3월까지)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을 해왔다.

 

올해 수상자로 뽑힌 정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지난 1965<현대문학> 3월호에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해 1972년에 첫 시집 <사물의 꿈>을 비롯해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등의 시집을 냈다. 정 시인은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 등으로 일했다.

 

<그림자에 불타다>는 시의 정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건청 시인은 "정현종의 짧은 시편은 선연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오랜 내공과 고투의 결과다. 정 시인은 유구한 시의 정통을 이어받아 궁벽한 고독 속으로 침잠해 시를 건져내오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글쓰기에 더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 일과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균형과 조화를 향해 움직이며 따라서 정신은 넓어지고 깊어진다""나는 꽤 오랫동안 시를 쓰고 산문도 썼는데, 그게 얼마나 공부가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충남 천안 출생으로 지난 1969년 문학평단에 등단했다.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로 일했고, <한용운문학연구>, <시어사전> 등을 펴냈다. 현재는 계간지 <시와시학>의 창간인 겸 주간으로 경희대 명예교수 겸 백석대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는 한국 현대시를 매우 넓고 깊게 바라본 비평서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인 문홍술 평론가는 "이 비평서는 한국 현대시에 대한 문학 비평적 사유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약 50년간 현대시를 통해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탐색해온 비평가의 비평적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된다"고 표현했다.

 

김 평론가는 "새삼 부족한 사람에게 신선한 수상소식으로 새로운 깨침과 활력을 줬다. 월하 선생의 명복을 빈다. 남은 날은 적겠지만 성심성의 맑고 곧은 마음으로 문학적 생애를 마무리해 갈 것으로 스스로 다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과 김 평론가는 각각 20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김달진 문학제 기간에 맞춰 95일 오후 5시 창원시 진해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림자에 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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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 전동균

 

 

매지리 산밭에

살얼음이 와 반짝입니다

 

첫눈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고욤나무의 고욤들은 떨어지고

살아있는 것들은 더 깊어진 침묵 속으로 걸어갑니다

 

일을 끝낸 뒤

저마다의 겨울을 품고

흩어졌다 모였다 다시 흩어지는 연기들

 

자꾸만 모습이 달라지는

사람의 집들

 

빈손이어서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왔으니

 

이렇게 마른 입술로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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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총장 공순진) 한국어문학과 전동균 교수가 제19회 노작(露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창비, 2019).

 

노작문학상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쓴 시인으로 일제강점기를 치열하게 건너며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시를 주도했고, 극단 '토월회'를 이끌며 신극운동에 참여했던 예술인 노작 홍사용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2001년 제정되었다. 화성시와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주최하며,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주관한다. 상금은 2,0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026,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노작문학제와 함께 진행된다.

 

정희성 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최두석 시인(한신대 교수), 안도현 시인(단국대 교수)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시집의 표제처럼 시인이 부재 속의 존재, 보이지 않는 것 속의 보이는 것, 그리고 소란 속의 침묵이라는 명제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하면서, "전동균은 이번 시집에서 너무나 쉽게 읽히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작정하고 균열을 내려든다. 대지의 숨결과 삶의 구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시들이 늘어나는 때이기에 전동균의 서정은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시집의 어디를 넘겨도 미숙하거나 결기가 느슨한 시가 없다"라고 호평했다.

 

전동균 교수는 1962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지난 20083월부터 동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으로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등이 있다. 백석문학상, 윤동주서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전 교수는 "처음 시를 만났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보다 깊고 넓은 시의 세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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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운운 / 박철

 

 

어김없이

해가 뜨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생명을 위해서?

그러기엔 너무 뜨겁지 않은가

타면서 멀리

밀려온 우리

그러나

이제 수평선을 넘어가는 사연을 좀 알겠네

영속이란 없다는 것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다는 것

그러니

나는 오늘도

사랑 운운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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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박철(58) 시인이 선정됐다. 5일 상을 주관하는 노작홍사용문학관에 따르면 수상작으로 그의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가 뽑혔다. 

 

심사위원단은 "언어에 대한 깊은 자의식과 함께, 의식과 언어가 가볍게 상승하고 번져가면서 날아가는 상상적 맥락들을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견지하고 있다"고 평했다. 

 

노작문학상은 홍사용(1900~1947)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그는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극단 '토월회'를 이끌었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2000만원이며 시상식은 다음 달 20일 경기 화성시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노작문학제와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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