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만월 / 김상현
길림성 해란 강변이나 한강변 달맞이꽃은 노랗지요
면 뽑을 때마다 그들도 분틍타고 기어 나와요
그녀의 젖은 손이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다지고
또 다진 물컹이는 그늘 말이지요
골목은 휘청대는 오줌 불러 흥건히 달빛 받아내네요
어둠이야 얼얼한 양파 삼카는 춘장만 하겠어요
손님 어깨에 희번득 묻어오는 달빛만 있어주면 되겠죠
그녀는 수십 개의 노란 달 조각을 건져 올리고
밤하늘을 한 숟갈 찍어 양파 옆 칸에 털어내지요, 툭!
그녀가 담아온 면발 모락모락 이는 김은
땡볕에 데인 손님 양 입술 끝을 잡아 올리네요
밤개 꽃 피우고 아침이면 시들어야 할 그녀는 꽃물 들여요
볶음밥 위에 계란프라이도 꽃물 들이고
짬뽕에서 건져 나오는 면발들도 노란 꽃물 들이고
짜장면도 달맞이꽃물 들었는 걸요
심야 중국집 짜우동 간판 아래 사람들은 뜸하게 오고
취해 오고 취해 나가고
염병할 옌볜 조석족이라는 소문에 단골마저 끊겨서는
양파 까는 재채기에 주방의 거미줄이 흔들리네요
돈궤 가득 채운 춘장 같은 어둠에 한 방울 이슬 떨구고
그녀가 키우는 달맞이꽃은 달빛 밖 어둠 길어다 먹고요
자고 일어나면 왜 그리 붓는 겐지 누런 얼굴만 넓어가네요
선술집 뒷골목에는 짜우자우 짜우동이 있고요
문 미는 뜸한 손님들이 있고요
프라이팬 속 춤추는 밥알들이 젖은 앵파와 등 두드리며
달맞이꽃으로 피어나는 기적이 있고요
툽툽한 얼굴 노르랑노르랑 익어가는
그녀가 있어요 한 석 달쯤 늙은 호박 푹 달여 먹을 거라는
부은 만월 말이지요
[금상] 꽃불3 / 황재윤
남미륵사 갔다가 본 청동대불
관광객 꽉 들어찬 그 안에서 자잘히 몰려있던
해당화들도 구석마다 줄줄줄 환한 얼굴을 내밀었는데요
12층 아파트 높이의 저 대물보다
이 꽃들이 순간, 더 장대해 보였던 건
무슨 연유인지
몸 안 가득 쟁이던 눈과 비, 천둥과
햇살, 멧새, 풀벌레 울음까지 자분자분
밀어 올려 솟은 저 자태!
코끝부터 안으로 번지는 이 설법 향기는
하, 마음의 흙밭에 더 튼실한 뿌릴 뻗으란 것인가요
나무아미타불, 조산한 스님들 곁에서
내 작열한 두 손 모으게 하는 주문
나무해당화불! 불꽃처럼 재재 퍼지며
망울 펑, 펑 터뜨려 앉으실
이 꽃불들, 허공의 사찰 안에선
적막문이 열리고 또 닫히겠지요
대불 옆엔 그래도 대웅전 짓기 한창입니다
뻘뻘 땀 흘리며 오가는 목재들 사이로
12층 높이 가득 올라앉은 마음들, 힘겨워
눈 내리던 청동대불.... 변비처럼 꽉 막혔던
남미륵사, 우루루 빠져나간 마음들 탓에
허리춤이 그만 헐렁해집니다.
[은상] 어느 요양원 욕실에서는 / 허지영
웅크리고 있는 노인의 맨살에
소금꽃이 슬었다
꽃잎 피었다 진 알몸이 고사목 같다
나는 데운 물 부어가며 노인의 몸을 불린다
거울에 피어오르는 솜구름 사이로
먼 바다가 보이고 햇살과 바람 견디며
납작 엎드려 있는 염전이 비친다
이 꽃 피우기까지 노인은 또
얼마나 먼 길 돌아 나왔을까
접질린 발목을 끌고 햇볕에 나가
주름진 꽃잎 긴 숨 쉬다 온 거라 말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 본 사람은 알겠다
시든 잎사귀같이 핏기 없는 가슴에서
소금꽃 둘둘 벗겨내도
볼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철부지 아들의 타투
더운 물에 붉어진 노인의 생채기에
거품이 피어오른다
소금기를 그대로 물고 울어대는 건
욕조 위로 풀어지는 물안개다
[은상] 꽃잎 / 윤여호
꽃잎은 가지를 놓을 때 춤을 춘다
겉 붉어 오롯한 날들 처연히 흩어놓고
향기 털어낸 가슴 바람 채워 날은다
단열의 시도 못되고 떨어지는 이 순간
낙화하는 어떤 자잘한 인연이
내 손을 잡고 나풀이려는가
봄 몽우리 채우느라 가시만 키워놓고
거적 없어 못 가린 알몸뿐인데
아직도 꽃잎이 힘겨운 이 순간
잔바람 끌어안고 춤이라도 추어야지
헛물켜다 쪼그라든 나를 보내는
검버섯 핀 꽃대 잔명이라도 시 되게
[동상] 곶감 / 심은정
깎인 언덕이 꾸덕구덕 말라가고 있다
어둔 처마 아래 일렬로 불 밝히더니
조도가 낮아질수록 단내는 늘어갔다
늘어가는 것과 늙어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갈 볕에 그을린 주름이 늘어가며
매달린 세월만치 할머니는 점점 어두워졌다
낙타를 몰아 바늘귀를 통과하려 하셨고
순한 눈매의 아들을 아범이라 불렀다
어느 날은 어멈의 붉은 립스틱으로 연지곤지 찍으시곤
먼저 돌아간 신랑 사진 앞에 놓고 꼬꼬재배
할머니 참 고와요, 말씀드렸더니
누군신데 할머니라 부르냐며 되물으셨다
어느 초가을 저녁,
땡감처럼 감이 떨어지신 할머니
그 길로 캄캄해져선
병풍 뒤로 얼른 숨으신 우리 할머니
아아, 당신을 닮아 볼 붉은 얼굴들을
박하분 발라 목기 위에 앉히고서
이 세상 모든 생명의 극락왕생을 위해
동쪽으로, 물렁한 눈물 몇 방울 진설하였다
[동상] 바닷가 목재소 / 남태현
바다를 두툼하게 절개하는 목재소 하나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버지 기침 소리
담 너머 마을까지 배달된다
생목 찾아 부르튼 군살 긁어낼 때
아버지 생애도 한 꺼풀 벗겨지고
그날 바다 향해 물수제비 놓던 한숨이 수평선까지 갔다가
메아리 되어 돌아오곤 했었다
문을 열면 살아남기 위해 숨어든
파도 소리가 돌돌 말린 나무 뭉치처럼 굴러 나오고
새콤한 기계 소리 절단된 나무에서 진액처럼 흘러나와
목재소 기둥을 타고 주춧돌에 배어들면
나이테만큼 바다로 배출되는 칼날의 신음
선지피처럼 붉고 따끈하다
대패질한 자리마다 파도가 남긴 흔적
비늘 되어 출렁거리면
톱밥으로 인쇄되는 밑그림이 수북하고
삼켜버린 바다까지 다 비워내고 나면
목재소 부화되는 수풀 한 장이
식목을 막 끝낸 산판처럼 펼쳐진다
[동상] 오세암에서 오는 길 / 심철호
물은
수렴동 계곡에 들어서야 고요해졌다
마음에 구르던 돌덩이들
어떤 것은 쪼개 자갈로 만들고
어떤 것은 본래 내 것인 냥 품어
하늘을 담을 수 있는 못이 되었다
다섯 살 애기보살 서원이
눈처럼 업을 녹여 길을 만들고
살 오른 얼굴로 봄을 다시 만나듯
오세암에서 오는 길
백 개의 못에는
줄지도 늘지도 않는
물 그대로 있었다.
'국내 문학상 > 근로자문화예술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8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부문 (0) | 2020.09.27 |
---|---|
제37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부문 (0) | 2020.09.27 |
제35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부문 / 김정미 (0) | 2020.09.26 |
제34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부문 (0) | 2020.09.24 |
제33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부문 (0) | 2020.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