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끄트머리가 아프다 / 김정미
끄트머리가 아프다
산목숨 묻어가는 찰나들
새끼품은 어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것
사라져가는 내 강아지
어찌할까
내가 너이고 싶다
아가야
이제는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말뿐
그래도
난 너의 어미였다
사랑해
(새월호의 마지막 부분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보며)
[은상] 며느리밥풀꽃 / 윤기화
단정한 앞가르마
귀엽게 땋아 올린 양 갈래머리
쑥스러운 듯
고개 숙인 하얀 얼굴은
좀처럼 속내를 비추이려하지 않네
못 먹어 말라버린 모가지 아래
한숨처럼 내려앉은 옷고름은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실 서방님 기다리다
눈물보자기 되었네
[은상] 5월의 담화 / 이천명
공장 담벼락의 장미가
점심도 잊은 채
한 번 피었으면 그냥 질 수 있냐고
땀 흘린 몇 마디 쉬고 갈만한
그늘막 하나쯤 결재해야 한다고
붉은 도장 먼저 쾅쾅 찍고는
향기의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다.
[동상] 종이꽃 / 박혜균
바람을 접는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바람의 뒷길을 따라가며
바람은 돌아와
사선속에 집을 짓는다
사선이 엇갈리고
또 다시 선이 접히고
그 속으로 바람은 하염없이 들어가고
휘어지는 꽃잎속에 바람은
끝간 데 없는 아집을 재웠다.
[동상] 그늘 / 이명우
겨울바람이 여름의 긴 혓바닥에 걸려 있다
바람에 흔들려 그늘이 부풀어 오르고
여름의 무성함에 입맛만 다신다
누가 저 땀들을 소복하게 걸어놓았나
여름 햇살에 꽉 물린 필체는 그늘을 풍성하게 살찌우고 있다
늦가을 왜 하루살이들의 눈꺼풀을 닫으려고 하는가
공사장 날림먼지를 훌훌 털어낸 바람이 눈을 움켜쥐자
할퀴고 긁힌 상처를 구만리까지 덮으며
눈이 쌓인다
누가 공사장 출입구에 문을 걸어놓았나
인부들이 써내려가던 땀의 문장을 눈보라가 마침표를 찍는다
칼바람에 허기가 싱싱하게 눕는 밤
허공의 주인처럼 바람이 굴착기처럼 허공을 파헤쳐놓는다
길들이 꿈틀거리다가 휘어지다가 막다른 길로 다다른다
국수 가락처럼 말아놓은 밤이 바람을 후르르 삼킨다
누가 허공에 성긴 뺘들을 걸어놓았나
백색 깃발을 휘날리며 밤새도록 농성을 하던 눈이
나뭇가지에 고요히 얹혀 있다
일용직노동자들의 걸음을 삼천리까지 묶어놓는다
탁 트인 하늘
쇠창살이 흔들흔들 내려오고 있다
모든 사물에 채워진 수갑이 풀리지 않는다
[동상] 햇감자 / 장월순
김매러 가시다 산고가 터진 어머니
거친 손으로 탯줄을 자르고
허기 쌓인 쌀독만 안고 있는 고방
첫 국밥은녹쌀 밥이다
삼베치마 끈 허리춤에 질근 꽂아 넣고
마른 미역 함지박에 치대면
뽕나무 가지에 걸려있던 녹슨 호미, 묵은 밭고랑 걱정이 숨차다
핏물이 선연한 저녁부은 얼굴로 논밭에 가족 걱정에
어린 햇 감자를 냇물에 헹구면
소쩍새 길길이 울고 있다
설익은 새벽 적 달라고 보채면
갓난이 한 손에 안고 강냉이 풀떼기를 너 한번 너도 한번
아이들 잠든 어느 날
둥굴레뿌리를 푹 삶아 얼마나 배가 고픈지 환장한 사람처럼
허기를 채웠는데 취해 그만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양지골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몸조리는 생각할 수 없고 퍼런 보리이삭을 베어내
가마솥에 볶아 저녁꺼리 준비하는데
온몸에 여주외피 구슬로 달렸다
허리가 휘도록 거름을 만들어 씨앗을 뿌린 밭에
새벽같이 일어나 잠 들 때까지 손톱 길 새 없이
산중 농사는 한 순간인들 편치 않으리
객지로 떠난 새끼들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 하는데
어머니는 오늘도 뒤란에 정한수 치성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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