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정리해고 / 김종찬
사철 푸르기만 한 쥐똥나무
가을이 되자 줄기와 잎이 무성해진다
사내가 전기톱을 들고
나무의 가지와 목을 쳐 내려고 한다
나무들은 타워크레인으로
몇몇은 장갑을 벗고 공구를 팽개친다
회사의 울타리가 되어 준
나무들의 키를 한순간에 낮추려 한다
키를 30센티를 낮추면
30퍼센트 이상 순이익이 생긴다는 회사 측
반발하는 나무들의 뺏빽한 스크럼이
배수의 진을 친다
쥐꼬리만한 급여에도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키우며 회사의 울타리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나무들
보도블럭 위에는 웃자란 가지와 목이 뒹굴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흰 꽃을 사내가 밟고 간다
짓이겨진 꽃 냄새를 바람이 안고 부르르 몸을 떤다
톱바람에서 한발 비켜선 나무들은
저마다 쥐똥 같은 눈물을 달고 있다
단단하고 까만
[은상] 빈 집 / 남태현
문풍지 사이로 가난이 샌다
마당 한족 유산한 유물
탯줄 자른 두레박에는 야윈 집 한 채 웅크려 있고
낮잠 밀린 마루 달게 잔 기억까지
훅하고 불어 내면 어머니 인기척 빠져나온다
잉크처럼 번지는 가난이 싫어 훌쩍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때
지붕까지 자라나는 배고픔이 내 키를 누를 때마다
새파란 양심으로 가출을 키웠던 그 집으로
고소한 햇빛이 마루 끝까지 밀려와
유년의 수위만큼 복사된다
누적된 그리움이 시렁에서 나오고
어머니 잔소리만큼 쌓인 먼지 툭툭 털어 내면
건넛방 아버지 영혼이 필사된 영정 사진에서
오래된 가난이 뭉툭하게 떨어진다
굴뚝으로 저녁을 먹는 연기
가마솥에 쇠죽 쑤는 송아지
어머니 온기 빠진 그 집에
귀뚜라미 소리 묵힌 담 너머로 부름이 온다
나를 닮은 아버지
기침 소리 도배된 방을 나와 옆집으로 건너가신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조문을 간다
[은상] 열리지 않는 문 / 남호순
무너진 담장 너머 발을 들이며
헛기침으로 인기척한다
폐업된 공장 입구는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마당 귀퉁이를 놓고 영역 싸움이 한창인 이끼와 잡초는
한 자리씩 진급하려던 상사들로 보이고
허공을 죽 찢어 오르려던 칡넝쿨은
의욕에 앞서 잎으로 틈새 메우는
젊은 용접공의 파란 불꽃으로 보인다
연기의 살랑거림이 귓속말처럼 피어올라도
소문으로 퍼지기도 한 생산 현장,
어둠에 감전되어 멍하게 있는 형광등은
거미 사슬에 돌돌 말린 기억이다
스위치를 켜면 확,
빛의 파편처럼 흩어졌던 사람들이 달려와 저마다 불빛을 발산할 것인데
그들은 한쪽을 검게 멍들이고 다른 한쪽으로
흐릿한 감도를 조절하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들 손에 기술을 습득했던 공구들만이 제 역할을 잊은 채
사방 퍼질러 기다릴 뿐, 녹슬어 가는 삶의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
바람이 창문 갉아먹는 소리에
먼지 부스러기들이 햇살을 글어들인다
드리워진 그림자는 밀린 월급에 배고 푼 이들의 얼룩이다
얼룩진 신음 듣지 못하는
정문 악물고 있는 자물쇠의 힘,
절제되지 않은 잔업 일보처럼 긴 기다림은
수당 없는 잔업 시간이다
속 타는 벚꽃이 황당 당황 진저리치며 지고 있다
[동상] 손톱 / 김면수
손에 핀 달빛을 잘라 낸다
속손톱 어딘가에 내 어머니 푸른 초원이 있을 것 같아
손가락 끝 마디마디 돌며 초침 아래 세운 빛의 조각들
째깍째깍
엄지손가락에서 상현달이 뜨고 새끼손가락에서 그믐달이 뜬다
열 달 이름 속에 스민 유년의 추억이 빛을 겨워 낸
빈터마다 선홍빛으로 다시 살고
어머니 그 따스한 숨결에 밀려, 단 한 번도 피지 못한 채
사그라지던 손톱 생채기
오늘도 기우는 달빛으로 와 열 손가락 끝에서 영근 달이 되면
내가 잘라낸 손톱을 딛고 그대 그 젊은 여인 오롯이 서 있다
[동상] 별자리 정비소 / 김민철
철거를 앞둔 미아 지구 재개발 현장에도
마을버스 노선이 있죠
두 가닥의 레일이 아닌
푸릉푸릉 콧김을 뿜고 있는 작은 돛배죠
짤랑거리는 입금 통은 언젠 가벼워
제비 새끼처럼 쫑알거리고요
예전에 데리고 오던 항로를 종종 잃어버려요
이 돛배는 짤랑거리는 소리를 좋아하죠
이따금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솟구쳤다가 내려오는 파도의 이랑을 삼키죠
물결무늬처럼 달리는 돛배가 버스 정류정에
설 때마다 간판은 귀를 열고 먼 시간을 엿보죠
반환점을 돌 때마다 불빛 없는 집들이
그 소리가 너무 반가워 등불을 켜기도 해요
길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돛배,
그때마다 나른한 여름 저녁의 별이 마중 나와요
봉제 공장의 언덕으로 심부름 나온 바람과
막걸리 한잔 걸친 달빛을 태우고 우주로 가죠
당신의 마음 속에는 마을버스 노선이 있나요?
별자리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지상의 외딴 마을이
금성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걸 아나요?
별똥별 노는 은하수를 가로질러 가
빈 마을버스의 재생 타이어 같은 행성을 툭툭 차 봐요
빛이 꽃피는 별자리 정비소에도
때 절은 목장갑을 낀 정비사가 있고요
별의 눈망을처럼 지워졌다가 사라지는 노선이 있죠
나는 오늘도 작은 돛배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죠
[동상] 그림자를 업다 / 박성우
아버지의 얇고 긴 그림자가
작음 그림자 하나를 업고 내를 건너고 있다
물결에 살랑 작은 그림자자 흔들리자
긴 그림자는 애윈 두 손으로 탁탁
몸을 추스르며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순간 나는
바람이 지나는 뒤란을
말없이 지켜보시던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다시 수저를 놓으며
스르르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날의 저녁 풍경을 생각하였다
긴 그림자는 저 야윈 두 손으로
세월도 저렇게 다독였을 것이다
어린 동생의 길었던 병원비며
입술이 파랗게 물든 어머니의 야윈 얼굴이며
끝내 내려놓지 못한 그 많은 슬픔들을
야윈 두 손으로 저렇게 다독이며 건넜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깊은 골에서
뿌리째 흔들리며 무너져 내릴 때
길을 내고
불을 밝히고
향기 짗은 꽃그늘 아래에
우리들의 지친 몸을 누이며
괜찮다 괜찮다
몇 번이고 가슴을 슬어내렸을 것이다
아버지의 얇고 긴 그림자 하나가 나를 업고
말없이 내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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