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매바위 전설 / 방승길
- 제부도에서
발길 돌리지 않겠다
빈 갯벌에 홀로 서서
저 일몰 바다를 향해
미어지는 가슴 열어두겠다
바다는 나를 가만두지 않고
매 발톱처럼 움키며 파고들지만
휘청거리지 않겠다, 나는
여기가 내 자리임을 알기 때문에
자꾸만 깎여나가는 내 몸뚱아리
굳은살처럼 풀어지면서
내 그림자 밑으로 다가앉는 푸석들
내 전생은 더돌이 얼바람둥이
불과 얼음의 형벌을 받고 바위가 되어
매들이 짝지어 보금자리 꾸몄을 때는
제법 날개짓 하듯 푸득거릴 줄도 알았었는데
매들이 떠나버린 어느 날부터
침묵만이 가장 뜨거운 외침이라는 걸
고독만이 바다와 맞서는 힘이라는 걸
몸으로 알기까지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찾아와
내 모습에서 제가금 보고 싶은 걸 담아가곤 했다
바다에 와서
바다의 몸짓으로 출렁이는 사람들
바다의 일몰처럼 붉게 타오르고 싶은 사람들
제가끔 모자라는 가슴을 채우고 돌아간 뒤
내가 또 홀로 어둠 속에 섰을 때
내 주름살 속으로 파고들어 내 살 저며내는
파도와 바람과 염분은 차라리
얼마나 눈물겹도록 시원한 통증인 것이냐
저 푸석돌 내 살점 아니랄가봐
얼바람둥이 옛 끼를 살려
파도에 밀리는 척
모시조개를 툭, 치며 작업을 걸고 있다
[은상] 미옥 씨 야근 일기 / 이승우
메운 숨을 들이마시며 궁시렁대는 환풍기가
연기를 밖으로 토하며 멀미를 한다. 그 아래엔
납땜할 전자 부품들과 구석으로는
인두공의 잦은 빈혈의 조각처럼 납품할 제품들이 쌓여 있고
허술한 맨살을 밟고 가는 연기가 바퀴벌레처럼 스멀댄다
가끔은 일탈을 꿈구며
바람 한줄금에도 깔갈대던 미옥 씨,
땜 작업의 감정으로 퇴색되어 깃판을 무덤덤히 살핀다
완장 찬 사내는 공장을 어슬렁 돌며
서슬 퍼런 혀 안에서 아줌마들을 쏘아댄다
처진 눈꺼풀을 썰어내며 미옥 씨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여자는 첫 팬티를 잘 벗어야 돼, 첫 팬티를'
그는 비전이 없는
과거로 눅눅하게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미래를 손금으로 펴본다
며칠 전 미옥 씨가 납댐하는 인두에
손바닥 3도 화상을 입는 일이 있었다
인두를 플러그에 꽂아둔 채 졸았기 때문이다
그 후 거울을 보듯 감시가 심해졌다
아줌마들의 입에서는 야근을 하지 말자는 말이
호적도 없는 새벽 안개처럼 부풀어 갔지만
목구멍이란 처절하고 질긴 외길,
재래시장 만 원자리 상품권 세장, 입들을 다독거려
공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문 찾아 오래 걸린 조각 달만 칭얼거린다
지글대는 납 덩어리 같이
흔적만 남은 파마머리 정수리로 드러나는 반백의 미옥 씨,
행여 각질 같은 거친 길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찍어온 발자국을 걷어들이며
사십 길에서 오십 길로 납땜을 한다
[은상] 옹이 속에 어머니를 묻다 / 김면수
모관에도 꽃이 핀다
가장 단단한 살짐을 헤인 자리마다
내 어머니의 보드란 젖가슴살 같은
눈빛으로 서 있는
꽃
하마
꽃을 심고 돌아오는 낡은 신작로엔
함께 노닌 추억이 우수수 쏟아진다
봄바람에 이는 황사처럼 끝내 개화하는 슬픔을
본다
사계절 시계 추마다 초침으로 빛을 발하던
그
슬픔엔 중력이 없어 더는 가지 못하고 안은
길, 우에 모로 와 깊이 박힌 옹이 하나
들리시나요? 어머니!
내 가슴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의 노래를
[동상] 핸드폰 / 한인석
핸드폰을
빨래처럼 짜 보니
무수한 번호들이
쏟아진다
기분 좋은 번호와
언짢은 번호가
뒤엉켜
작은 모래성을 만든다
긴긴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번호에 애착을
설레이는 얼굴이
오버랩으로 대신한다
익숙한 목소리들이 항상 나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지만
뢘지 모르게 아쉽다
내 유년의 추억을
든든한 기억으로 재생해
오늘밤은
머언 세상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련다
[동상] 억새 / 금응종
유배지 꽃이 피었다
억새 피는 언덕에 서면
바람의 길 쪽으로 마음이 눕는다
억새는 글 솜씨는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처럼
만경창파 한을 품은 억새꽃 서체로
가시처럼 눈을 찔러 와도
글 쓰고 남은 먹물 억새꽃에 뿌려진 유배지
학문의 분노는 맹렬하였다
머리 하얘지도록
억새꽃은 늘 그리운 쪽으로 날리다가도
꼭 한번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파도가 절벽을 후벼파듯
없는 아이 소풍 돌아오듯
새들을 그 가지에서 떠나게 하고
바람을 사신으로 삼아도
바람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고개 숙여 잘못을 비는
그의 기도로 들판을 잠재우고 있다
[동상] 헌화가 / 리규상
꽃이 피려나 보다
한참을 보고 있을 땐
미동조차 하지 않더니
여린 잎사귀에 잠시 눈길이 가 있는 사이
꽃봉오리 움찔거린다
그 하늘거림보다
향기가 먼저 터져나온다
꽃이 되려나 보다
들판에 아무 이름없이 버려져
잡초라 불리던 내 작은 꽃송이가
당신을 만나 꽃이 되려나보다
내 앞에 아무렇지 않게
쪼그려 앉아 사랑을 이슬ㅊ처럼 내려주던
당신 때문에라도
꽃이 되어야 하나 보다
꽃으로 피어 웃을 때마다
같이 흔들리고
눈들 때 꽃봉오리를 열러야 한다
당신 가슴에 깊이 뿌리내리고
몇 년이고 겨울이 와도
숨가뿐 구근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밀어올려
언제든 꽃을 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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