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내 삶은 수평선이 없다 / 안국훈
내 바다에는 외로운 섬이 없다
조각배 옆에 도 하나의 배, 그리고 또 하나의 배
끝없는 그리움이다
파도는 삶을 쓰다듬는 은유
물고기가 꿈 찾아 하늘을 날기 위해
지느러미에 날개 달고 땀방울 뚝뚝 쏟아낸다
바다는 하늘이 되고 하늘이 바다가 되니
가슴은 그리움의 허공이다
내 하늘에는 슬픈 별이 없다
산개 옆에 또 하나의 새, 그리고 또 하나의 새
지독한 보고픔이다
구름은 추억 따라 흐르는 세월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땅을 디디려니
가슴속에 그대 위한 꽃밭조차 가구기 힘들구나
꽃씨 하나 삭 틔워 붉은 꽃 피우는데
저 숨결은 꽃잎의 흔들림일까
내 삶은 수평선이 없다
편하다고 단추만 누르려 말라
둥둥 허공에서 떠다닐 수 있거늘
가끔은 전원 플러그를 확인해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위로하며 살아도 아쉬운 게
어디 낲익은 봉분 하나뿐이던가
문득 바라본 산 너머 산
산줄기는 늘 그리운 쪽으로 뻗는다
[금상] 자동차! 그 아름다운 꽃 / 황의률
뜨거운 쇳물 용광로에서 프레스길ㄹ 거쳐
너의 운명은 결장된다고 했다
아픔 속에 탁마되어 잔 부스러기는
압축 고철로 다시 보내지고
너의 몸매는 용접으로 반짝반짝 문질러지고
드디어 페인트로 예쁘게 단장한다고 했다
무려 2만 가지 부품으로 이어진 몸체
서로가 만나는 것은 진정 위대하다고 했다
도로를 굴러서 비록 말 못하는
쇳덩이에 불과 할지라도
경쾌하게 굴러가는 소리가 거듭할 때
너의 원형은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면
너의 위치는 더욱 화려하다고 했다
세상을 사는 순간에 이승과 저승이
매번 오르내리는 순간 일지라도
너의 생활은 이기라고 했다
언제나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다
[은상] 앉은뱅이 저울 / 봉윤숙
나는 다리가 짧고 몸은 가분수다
허리는 없으며 아주 뚱뚱하다
보다 멋진 친구들이 생기면서
내 친구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난 정확하고 예민한 가슴엔 촉수가 있고
빙그르르 회전이 가능하며
당신이 원하는 특별한 날에는
당신의 무게를 측정해 낼 수 있으며
또한 원상회복 능력도 아주 뛰어나다
어느 날 당신이 내게 기대어 왔지
그대가 움직여 온 무게만큼
수직의 힘으로 나는 움직이곤 해
그러나 당신 나에게 온 몸을 맡기진 마
완전한 당신을 받아줄 능력이 없어
내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완벽한 당신을 난 원하지 않아
그러나 가끔씩 들리는 건 잊지마
마음 한 칸의 값이 얼마인지 궁금할 때
누구에겐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머리에 올려놓은 그 무게
꼭 그만큼만은 반드시 돌려줄게
[은상] 휴일 / 문호곤
창밖 뒷산에 쌓인 눈은 어제보다 많이 야위었다
지난밤 눈과 함께 어둡게 쌓여가던 아내와 나의
근심도 휴일 아침 졸음에 야위어간다
침대에 귀를 기울이면
아내의 온기를 따라 따뜻한 수맥이 흐른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지만 어느 늪에서 고이는 것이다
볕이 들지 않는 신산한 늪지
죄가 없는 새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습윤에 번뜩이는 정막을 헤치고
며칠전 곁을 떠난 동료가
추상처럼 꿈결인 듯 들어서 소스라쳤다
초점없는 그의 눈은 무엇인가 말하는 듯 하는데
귀를 기울이면 늪지 가운데에서 전해온 파문은
어느새 내 눈을 윤색하고
파문이 전해올 때마다 휴일의 말랑하고 매그러운 졸음에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친구는 그런데 이 겨울을 잘 나고 있을까
토막난 휴일을 맞추면 일상은 내일 다시 찾아오지만
아내여, 창밖에 봄은 아직 지척에 있지 않구나
[동상] 낡은 수레 옆에서 / 김춘희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위해서 태어난 목숨이다
무거운 눈꺼풀 밀어올리는 아침 해 앞세워
개미 더듬이의 촉각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인가 채워주길 넌지시 바란ㄴ 빈 박스가 기다린다
주인의 온기 채 가시지 않은 미싱다리
녹슬고 싶지 않아 바람결에 간간히 흔들린다
닳아진 운동화 뒤축 끌고
개미허리로 개미의 검은 눈동자를 가진
옆집 노인의 폐품 줍는 일이 시작된다
하마입을 하고 버티고 앉아
넣어주는 대로 척척 받아먹는 늙은 수레
취한 듯 스러져 있는 술병을 일으켜 세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배우 얼굴이 구겨진다
오 분 전에 내어놓은 밀감 박스
개미 손이 낚아채 갔나 보다 행방이 묘연하다
빈 것들은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다는 말인가
잠시 목축이고 하늘 한번 쳐다볼 겨를이 없다
구르지 않으면 삐걱이는 관절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으니까
낡은 수레바퀴 몸 일으켜 세우며 안간힘이다
[동상] 곱창집 골목 / 강수덕
바짝 달궈진 철판 위를 지글지글 뛰어다니다 보면
너무 익어 밑이 까맣게 타버린 저녁이
움막 같은 곱창집 문을 밀고 들어온다
흐린 불빛아래 질긴 내일을 기다리며
연탄화덕에 둘러앉은 사람들
쓴 잔을 부딪치고 다시 채우며
매운 설움 한 가닥 쭉 뽑아 불 위에 올려놓는다
미처 통로를 빠져나가지 못한 시간이
어개 토닥이며 익어가고
누렇게 든 희망을 십는 동안
새벽은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간다
불에 덴 손가락 환하게 켜들고
불시 죽어가는 하늘에 슬며시 대어보면
확, 불붙는 동녘
[동상] 이런 세상에서 난 살고 싶다 / 이남석
이른 아침 앞 뜰
흔들의자에 몸을 얹고
진한 차 향기 내음새 위로
맑게 타오르는 태양 빛에
이슬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보릿대 모자를 쓴 채
소담스런 밭 언저리 이랑에서
못난 잡초를 골라가며
소채들이 자라는 싱싱함을 보고 싶다
정감 있는 광주리에
사랑하는 이가 들고 온
따스한 먹을거리로 속내를 채우고
알맞게 그늘진 풀밭 위에
사랑하는 이의 팔을 배게 삼아
한낮의 꿈을 즐기고 싶다
석양이 너울너울 가라앉으면
괭이 호미 들고
담쟁이 넝쿨 우거진 울타리를 지나
사립문도 없는 집에 돌아와
은은하게 자리 잡은
안온함을 맛보고 싶다
별빛 아래 풀벌레 울음들과
깊어가는 밤 향기에
하루를 취하게 하고 싶다
철따라 오는 기쁨이
생의 하루하루를 살찌우며
내일의 낙을 꿈꾸는
이런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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