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상] 지게 / 김기호
이젠 지게는 없다
풀벌레 밤낮으로 타전하는 헛간에도
이젠 지게는 없다
지게를 밀고 당기던 옛 산길 동무도 없다
날이 새면 몸을 맡겼던 논도 밭도 더 이상
제기를 부르지 않아
해 떨어지기 오래 전 지게는 도회로 떠났다
지게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랑이 봉천닭 같은
도회의 계단만 오르내리는 것
펜보다 강한 노동의 어깨를 찾아 다닌다
바람 부는 몸 타박타박 끌고 돌아와
나뭇단 묶듯 주발만 여섯 꿰고
외진 농업박물관에 갇혀버린 지게
다가가 몸 구부려 흙에서 잔뼈가 굵어진
내 어깨로 멜빵을 멜라치면
두 다리 힘줄이 불끈 돋울 것 같은 지게
먼저 온 쇠스랑이랑 쟁기랑 낫들 없이
걸어 나갈 수 없음을 알고도
마디마디 뼈마디 남은 힘주어
담벽을 움켜 잡고 부르르 떨고 있는 지게
창백한 달, 숨 몰아 쉬고 있는 갈 감나무 아래
이 땅 한번도 제대로 서 보지 못한 아버지
별밭으로 슬슬 쓸고 가다 구름 걷히자
들킨 듯 가볍게 날아가는 감잎들, 잎들
[금상] 갈대 / 김도선
아버지는 발목가지 젖어 있었다
친구들 대부분 도시로 터전을 바꾸어도
강어귀에서 달빛만 헛그물질하고 있었다
관에서 행하는 일에는 불만이 있어도
입 한번 열지 못했다
그런 날이면 낮은 사람은 굽실거려야만
심줄이라도 붙어 있다며
밤새도록 소주 나발만 불어댔다
바람이 불면 엎드리고
아무도 모르게 빗물에 씻어내야지
사내는 그렁 개똘철학이 싫어서 자주 대들곤 했다
사내는 될 수 있는 한 멀리 벗어나려
힘껏 발걸음을 떼었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고
몸에는 행여나 물비린내가 배여 있을 세라
틈만 나면 향수를 뿌려댔다
그런데 어느 날 목욕 후 거울에 비친 등짝을 보다가
꼬리뼈가 툭 튀어나와 있음을 보았다
아버지는 한 두 사람의 관 공무원에게 굽실거렸지만
그동안 사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첨하며
숨겨둔 꼬리를 내어 흔들었을까
밑을 보니 아!
사내는 무릎가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속으로만 속으로만 울음 삼키는
갈대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제 스스로 몸조차 흔들지 못하는
[은상] 엉킴에 대하여 /김성현
발 밑 한번 내려보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바쁘게 걸었을까
집에 이르러서야
구두끈이 엉켜 있다는 걸 알았다
구두도 주인을 닮나보다
진실을 얘기해도 믿지 않는 어른들을 위해
거짓말을 배우던 유년시절부터
나는 엉켜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엉켜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바르고 곧아서
만지면 소리내어 우는
현악기의 멜로디를 들으면
엉켜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절망의 칼로 잘라 버리는 이도 있었다
엉켜 있는 것을 애써 풀려고 하기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엉켜 있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엉켜 보지 않고서야
엉켜 있는 것은 엉켜 있는 대로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없듯이
풀리지 않는 것도 없다는
먼저 간 사람들의 노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으리오
어직 엉키지 않은 것들이 엉키지 않도록
진심으로 안아 느껴야지
엉키지 않은 것들의 맑은 소리가 가장 소중하고
우리가 믿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엉키지 않는 것임을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방긋이 웃는 아이들을 보면 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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