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끝이 여엉 하고 뭉개진다. 눈에도 웃음. 입에도, 말에도 묻어나는 웃음. 연습한 걸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다. 자라면 못 잘 것은 없겠지만 어떻게 생겼든 웬만하면 그의 자지를 굳이, 딱히, 보고 싶지는 않다. 다 벗더라도 거기만은 가리라고 하고 싶다. 아니, 천을 휘감긴다든가, 맥퀸이 만들던 맥퀸이나 베르사체가 만들던 베르사체 같은 것을 입히고, 아니, 아니야, 그냥 티셔츠, 보풀이라든가, 올이 보이지 않는, 그런 티셔츠를 입히고, 아니야, 옷이야 상관없겠지.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구겨진 옷이라도, 흉한 밴드 처리가 되어 있는 운동복이라도, 드러난 손목, 발목, 거기에 감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완벽함을 얻게 될 것이다. 구불구불 대는 밴드와 거기에 박음질된 실, 살에 눌어붙는 밴드의 압박, 이런 것들을 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붙어 있는 먼지나 솜털 같은 것들도 마치 그려 넣은 것처럼 의도를 얻게 될 것이다. 너의 눈썹은 빛으로 그려져 있다. 너의 눈은 아직 결정하기 전의 유리, 입술과 입술이 아닌 것의 그 연한 경계, 가장 확신 가득하며 초조한 피어나는 튤립 같은 입술. 그러나 너는 너무 가깝다. 내가 니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인지, 니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인지, 그의 입술이 열리고 거기서 나온 소리의 진동이 내 귀의 고막을 울리는 것부터, 이미 잘못된 것이다. 이미 너는 너무 가깝다. 귀에 닿는 너의 숨소리가 불결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나 알아요?
그럼요. 알죠.
아 씨발. 밖으로 생각했나 보다. 안다고? 뭘? 니가 뭘 아는데?
누나, 왜 욕을 하고 그래……. 밥 먹었어요?
너와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박제하고 싶다. 약품 처리된, 내장이 없는, 까맣게 구슬이 되어 버린 눈동자, 그런 박제 말고 너의 가장,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이 너의 가장 아득한 곳을 담을 수 있도록,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숨도, 생명도, 심지어 내장이라 할지라도. 너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구해 주고 싶다. 그것은 박제와 가깝지만 박제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흔들림의 보장, 니가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서 있을 자유, 니가 끝없이 스스로에게 빠져들 자유, 끝없이 자신을 소모할 수 있을 힘.
그가 손을 뻗는다. 나는 움츠린다.
그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 그건 음악 같은 소리다. 오직 그의 입술에서 나온 소리의 진동, 진동과 진동의 사이, 그 템포, 높낮이, 쉼표만이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그는 의미를 밟고 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걷는 곳마다 의미가 피어나는 사람인 것이다. 아. 어떻게 그를 가지고 싶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엔가 있다. 사정은 끝까지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빌드업만 하다가는 아마 뒈져 버리겠지. 잠을 재우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조, 조금만 뒤로 가 줄래?
나는 아득해질 대로 아득해져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싶어진다. 그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과 이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마음과 구석구석 핥고 싶은 마음이, 그가 너무 입체적이라는 사실이. 그는 바람이 빠진 것처럼, 조명이 꺼진 것처럼. 나는 자꾸 역겨워진다. 역겨워하는 내가 역겹고 자꾸 구토할 것 같다.
나랑 잘래?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말했다면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면 그것은 덕지덕지 더러운 말이 되어 부스러기를 잔뜩 남긴 채 바닥에 부서져 있을 것이다. 나는 내려다보기가 두려웠다. 내가 사정하지 못할 것은 뻔했고, 나는 그가 사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뒤로 묶고 그저 그가 찍어내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그의 목이 앞으로 떨어졌다 귀찮다는 듯 뒤로 젖혀지는 것을, 그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그의 이마에 삼각형으로 떨어지던 해가 점점 늘어지며 긴 삼각형이 코에 음영을 만들고, 얼굴을 붉게 타오르게 만드는 것을, 그가 뱉어 내는 소리의 간격과 빠르기를, 그의 예정된 종류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었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운명처럼 견고한 것, 닿는 모든 것이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이미 예정된 것.
김수영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진행된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최재원 시인이 선정됐다. 올해 김수영 문학상에는 총 220명의 시가 투고됐고, 이수명 시인, 조강석 문학평론가, 허영 시인이 심사를 맡았다.
민음사에 따르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후보자는 6명이었으나, 심사가 시작되자마자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최재원의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외 59편으로 모아졌다.
심사위원은 구성과 문장이 빼어난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최재원 시인이 보여 준 거침없고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은 김수영 시의 정신을 계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다.
과감하면서도 활달한 상상력으로 독창적인 리듬과 이미지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일상과 세속에 과감히 육박해 들어가며 자신만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압도적이라는 평을 냈다.
최재원 시인은 1988년생으로 거제도, 창원, 횡성, 뉴욕 그리고 서울에서 자랐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시각 예술을, 럿거스대학교 메이슨 그로스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2018년에는 Hyperallergic을 통해 미술 비평을, 2019년 ‘사이펀’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편, 최재원 시인은 이번 수상으로 상금 1000만 원을 받게되며, 연내 수상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깨진 체온계의 수은이 구슬처럼 굴러다니던 아침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주워 담을 수 없게 된 날이었다
혹, 고라니의 발자국을 지워 버린 곳곳의 웅덩이가 사라진 숲의 홀로그램이라면 그날 아침 숲에서 사라진 건 고라니인가 알 수 없는 그림자인가 혹, 그날 그 숲의 흔적이 숲의 체온이라면 숲은 슬픔과 엇비슷한 감정에서 어떤 속도로 복원되는가
흙탕물이 가라앉는 속도
늪에 던져진 돌멩이를 잠시 피했다 모여드는 개구리밥의 속도쯤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미 지나가버린 고라니의 발자국은 알 듯 말 듯한 이곳과 저곳 사이에 나타나는 간섭무늬 그래서 고라니가 비가 내린 숲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던 것일지도 몰라
밟힌 풀들이 일어서는
그만큼의 속도로 발자국은 아직도 고라니인가
생각에 잠긴 진흙 한 줌
그날은
삼백 년 전에 죽은 한 남자가
한 소녀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묻혀 있는 곳을 상세히 알려 주던 날이었는데 나는 체온을 재다 말고 까르르 까르르 달아나는 구슬을 따라다녔던 것이다
붙잡을 수 없는 아침 숲 어딘가에 본 적 없는 고라니가 있어 발자국은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며 그날의 적적함을 재현해 내고 있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저 큰 나무를 선택한 건 벼락이 아니다
쓰러진 줄도 모르고
지난여름 그 산벚나무 꽃을 피웠다
숨 거두시기 전 내 이름 또렷하게 불러주셨던 아버지
벌목공도 마다하는 숲에
해지기 전 잠시 환한 저녁이 찾아와
사력 다해 핀 꽃들에게 귀를 빌려주고 있다
몸이 익힌 건 잊히질 않아
넘어지며 들었을 첫 우렛소리
한 번 더 꽃 피울 수 있을까
오픈 북
틀렸던 문제는 잊히질 않아
다림질의 세 가지 조건은 수분 압력 온도였다
알고 있는 단어를 다 써버린 것처럼
골목 입구 동네 세탁소만 떠올랐다
더 잘 구르기 위해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다니는 동그라미들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만
음식물에 초파리가 생길 때 필요한 조건들만 생각났다
어느 봄날 주민센터 찾아갈 때
길 가던 세 사람 모두 다른 길을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사람에게 답이 있다던 힌트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뒤늦게 알아도 괜찮은 일
어떤 자료든 참고할 수 있는 생이었는데
달달 외운 조건들, 성적불량자에겐 너무 많았다
커닝 없는 시험은 재미가 없었다
백엽상
해와 달도 맞벌이를 하지요
저녁 운동장 도는 사람들 별자리 돌리고요
어두워서 흰 나무상자 눈에 더 밟혀요
어릴 때 이미 다 배웠지요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빠져나가고
나는 개가 물어간 아이들을 눈금으로 남겨요
둘, 넷, 여섯…
애들이 또 줄었구나
어떤 온도로 놀아줄까
아쉽지만 북쪽 창문도 너희와 놀아줄 수 없구나
달리는 것도 싫고
친구 사귀는 것도 싫고
혼자 있는 아이들 기록으로 남겨요
일곱 바퀴, 여덟 바퀴…
운동장이 얼마나 작은지 어른 되면 알려줄게요
젠가
달팽이를 바위에 내려쳐 속살을 빼먹는 것이
발톱인지 부리인지 생각하면서
하루가 몇 개의 단어로 쪼개어져 있는지 생각하면서
블록 더미를 무너뜨리는 자가 나타날 때까지
우린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창문 하나 손끝으로 밀어내어 맨 위에 쌓는다
차례를 치른다
단순한 규칙은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경우의 수들이 동원되지만
끝나지 않는 테이블 게임 위에 엇갈려 쌓이는 직각들
한 손만 사용해야 하는 스릴이 있다
누군가의 창문을 오래 바라보는 버릇 그러니까
불안은 건물 한 채를 무너뜨리곤 한다
어두운 불빛들의 곡예
밤 한가운데를 거니는 달갑지 않은 순서
위기를 떠넘겨야 하는 차례는 자주 돌아온다
아주 긴 이야기를 질질 끌며
쌓고 또 쌓아도 높아지지 않는 방식으로 쌓이는 관계들
우리가 쌓고 있는 것이 무너질 때까지
기껏 세워놓은 것을 쓰러뜨리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아이리스 플래티넘 캐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수상소감]
수상자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고향에 갈 때마다 바라보았던 지리산의 이름으로 큰 상을 받게 되어 더욱 영광스러웠습니다.
’내게도 이런 영광이 올 수 있을까‘ 품었던 마음이 있었기에 이 뜻깊은 상이 뜻밖의 결과라고 하면 조금은 거짓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나, 하고 바랬던 꿈같은 일, 분에 넘치는 이 상이 제게 주어져서 감사하고, 기쁘고, 살짝 두렵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먼저 이 영예로운 상을 제게 안겨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지리산문학회에 감사드립니다.
‘마당 쓸 때 빗자루를 눕혀 쓸어야 먼지가 덜 인다, 고 하셨던 노모가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부족한 저를 지켜봐 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마음 전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시인으로서 깜냥을 다하려고 애썼지만, 늘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그러나 시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여기와 거기의, 너와 나와 그와 우리들의 순간적인 화해라는 파스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초의 시가 존재라는 말,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말, 이미지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한다는 말, 다만 나름대로 매듭을 짓는다는 말, 그것이 스스로가 하나의 시라는 말을 생각해왔습니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쓴다는 말도 새롭게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언어 너머의 세계를 위해 조금 더 애써보겠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고, 경계를 무너뜨리며, 대립적인 것들 사이의 화해를 추구해보겠습니다. 저의 우둔한 시작이 결국은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확인하는 것일지라도 멈추지 않겠습니다. 답답한 거기가 제 자리라는 것, 어눌한 문장들이 곧 저라는 것. 그런데도 제가 저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이라는 것도 새겨보겠습니다.
이 상은 그래도 괜찮다고, 그렇게 한 걸음씩 더 나아가라고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시 앞에선 언제나 쩔쩔매지만 시 또한 더불어 사는 삶이니 세상을 향해 무엇을 외칠 것인지 고민해보겠습니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그랬듯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번 저의 수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줄 문우들, 끌 동인들과도 이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대상을 묵묵히 견인해내는 인내력
제17회 지리산문학상에는 130편의 원고가 응모되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집은 7편이었고, 무기명 번호만 매겨진 원고는 온라인을 통해 심사위원들에게 전해졌다. 예심 통과작 7편을 전해 받은 심사위원들은 각자 2, 3편의 후보작을 추천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1번의 『불 켜진 창문 하나가 백짓장 같아서』, 2번의 『서성이던 후면에 관한 크로키』, 4번의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가 각각 2표를 받아 최종심에 올라가게 되었다. 다소 파격적이고 어리둥절 정신이 혼미한 시도 있었지만 대부분 안정적인 보폭으로 감각과 상상, 확장을 꾀한 시편들이었다.
4번 작품들은 인식의 깊이가 조금 얕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원고 뒷부분에 배치된 시편들에서 받은 느낌은 “갑자기, 왜 이렇게, 힘이 빠졌지?” 하는 것이었다. 인식도 인식이지만 언어와 언어가 만나 만들어내는 긴장, 미묘함의 부족이 그 이유인 듯 했다. 좋은 시를 통해 느끼는 야릇한 설렘이 잘 느껴지질 않았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점 때문에 아쉬웠다.
2번 작품들은 고백하자면 감당이 안 되는, 불안과 분절의 것이었다.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차리고, 지지를 보내고 좋은 점수를 주자, 용기를 내 보았지만 감당하기가 벅찼다. 이 ‘서성이던 후면에 관한 크로키’의 충동과 혼동을 통해 2번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보여주려는 것인지, 감지가 잘 안 됐다. 다시 숨을 고르고, 눈을 비비고, 읽기와 느끼기에 도전했지만 응모자의 고도(孤島)가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질 않았다. 외람되게도 2번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었다. 눈 밝은 누군가에 의해 발굴되기 전까지는……. 심사자 중 한 사람인 나는 무식한 자신을 탓하며 2번의 작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견 없이, 싱겁게, 1번에게로 합의가 모아졌다. 1번의 장점은 고른 수준, 안정감이었다. 1번의 ‘대상을 묵묵히 견인해내는 인내력’은 모범의 것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1번의 시들은 한 편 한 편 진심을 다 해 썼다는 미덕이 있었다. 일테면 1번의 실존은 “몸으로 익힌 건 잊히질 않”는 것이었고, 시는 결국 삶으로부터 발생하고 삶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틀렸던 문제는 잊히질 않”는 법. 두 말 할 것도 없이 ‘삶’이라는 “질문의 책”을 앞에 두고 시인은 고민하는 자이다. 그래서 시인의 집엔 오래 “불 켜진 창문 하나가 백짓장 같”을 수밖에 없고, 고민해봤자 소용없지 뭐, 좌절과 체념의 밤을 지새운 뒤 긴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그 번민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깨닫게 되는 건 “커닝 없는 시험은 재미가 없”다는 것. 철학이나 종교와는 달리 시인의 실존이란 그렇다. 대단한 것도 고상한 것도 아니다. 예외 없이 장삼이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와 시인의 숙명이다.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삶이란 기껏 “단순한 규칙은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젠가”, “쌓고 또 쌓아도 높아지지 않는 방식”의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병상치(下炳上治)의 치료법이 그렇다.
낙관적인 것은 회광반조(回光返照), “한 번 더 꽃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시인의 희망. 자연의 아침 숲에서 시인은 ‘간섭무늬’를 읽고 ‘고라니 발자국’으로 대체되는 원시의 발자국 ‘홀로그램’을 본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은 저만치 우리들의 집 밖에 ‘백엽상’ 하나를 짓고 “세상의 온도와 습도를 재 보려”고 한다, 어른이 되어 바라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운동장이 얼마나 작은지” 그것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당선이 결정되고 확인해본 시인의 이름은 신정민이었다. 묵묵히 시와 삶을 견인해내는 시인의 인내력에 응원을 보낸다.
그런데 제 시집은 누구에게 읽어보라고도 못하고 작업실 벽에 기대어 빽빽히 쌓여있습니다.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갓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기쁨보다는 왠지 당혹스러움이 앞섰습니다. 그동안 연유야 많겠습니다만 저는 시에 올인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잘 알기에 기쁨보다는 자괴감 같은 것이 먼저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수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저 또한 여느 수상자들처럼 기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면 이번 수상이 그동안 제 시업의 성취가 특별해서가 아니란 걸 깨닫습니다. 시에 자신을 다 걸고 사는 시인도 있는데, 저는 시를 때로는 소홀히 때로는 너무 무심하게 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 시는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는군요. 사실 저도 새벽에 앉아 시를 마주 대하면 언제나 마음이 열리곤 합니다. 일상에 묻어둔 이런저런 응어리도 다 풀어주고 하소연도 묵묵히 받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시가 언제까지 저의 이런 푸념들을 받아주기만 하겠습니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저는 시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곧추세우려 합니다.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게 시 앞에 서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시와 함께 동행 하겠습니다. 저의 삶이 바로 시가 되도록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저의 시를 수상작으로 선고(選考)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상을 제정하고 운영에 진력하시는 반경환 선생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려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시를 쓴다고 이러저러한 저를 한결같이 지켜봐 준 남편과 딸, 아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본질에 이르는 길 찾기의 시학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란 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루카치에 따르면 시는 원초적 고향, 곧 선험적 고향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험적 고향으로 가는 길 찾기이다. 루카치는 이 선험적 고향을 사회철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면 하이데거는 언어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꿈꾸는 세계는 다르지 않다. 루카치가 말하는 선험적 고향은 에덴과 같은 낙원인데, 그곳에서는 인간의 언어와 사물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꿈꾸는 시적 세계와 다르지 않다. 서정시의 꿈은 언어와 사물이 일치하는 상태, 곧 언어가 그 본질적 능력을 회복하는 상태이다. 즉 모든 언어가 대화적 능력을 회복하는 상태이다.
제20회 애지문학상 시부문 수상작이 된 이순희의 시 「말이 머리 깎고 절로 간 까닭」은 언어의 본질적 능력을 찾아가는 구도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말(言)이 머리를 깎았다는 행위는 말이 자신의 머리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에 이르는 인식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는 시의 세계, 곧 언어의 신전(言+寺)을 찾아간다. 언어의 신전이란 언어와 사물이 일치하던 원초적 시의 세계이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해서 모든 시어가 본질적인 상태로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보들레르가 말한 만상조응(萬象照應)의 경지이기도 하다. 시인이 언어를 매개로 사물과 일치하는 경지, 이것이 바로 물아일체이고 소요유(逍遙遊)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그런 경지는 시인, 아니 모든 예술가가 꿈꾸는 절대미의 경지이고 절대자유의 경지이고 황홀경의 경지이다.
이순희 시인은 이제 본격적인 시의 세계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다. 어쩌면 그런 열락(悅樂)의 세계를 이미 맛보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법열이니 열락(悅樂)이니 하는 것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에 막힘이 없고 서로 통하는 게 그런 상태이다. 그게 바로 도에 이르는 길이다. 이순희 시인의 시들이 그런 도에 이르는 길을 찾고, 그 도를 즐기는 것, 도락의 입문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면서 심사평을 마무리한다.
제9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에서 시 부문 유춘상(경북 경주시)씨의 ‘힌남노’와 단편소설 부문 이미정(울산시 남구)씨의 ‘모래의 시간’이 공동대상을 차지했다.
경북일보 문학대전운영위원회는 최근 국내외에서 응모된 총 2616편의 작품을 심사한 결과, 대상 2명을 비롯해 금·은·동·장려상에 단편소설 부문 12명, 수필 부문 18명, 시 부문 18명과 청송군 문인들을 위한 청송문인상 5명 등 모두 55명의 당선작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문학대전은 경북일보가 국내외에 활동하는 문인 및 문학 지망생 등을 대상으로 문학상 공모전 및 학술포럼을 개최해 창작의욕을 끌어올리는 한편, 청송의 뛰어난 절경과 관광명소를 대내외에 알리는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장을 열기 위해 마련됐다.
제9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응모기간은 지난 8월 4일부터 10월 3일까지 2개월간 진행됐으며, 분야별로 단편소설 190편, 수필 693편, 시 1733편이 응모돼 총 2616편이 접수됐다.
또 지역별로는 경북(386편)·대구(523편)을 비롯해 서울(395편)·경기(457편)·부산(147편)·경남(145편)·충북(108편) 등 전국 각지를 비롯해 미국·캐나다·호주, 아랍에미리트 등 해외(33편)에서도 작품이 접수됐다.
청송객주문학 학술포럼 및 시상식은 오는 11월 4~5일에 청송사과축제장 용전천 현비암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청송군 문인들을 위해 제정된 특별상에는 공로 부문으로 임경성(전 청송문인협회 회장)·심양섭(출향인)씨가, 청송문인상에는 시 부문 △‘개울물’ 김종순 △‘아버지의 계절’ 김순화 △‘가을의 잔상’ 양성근, 수필 부문 △‘매끈하고 거칠한’ 서승희, 소설 부문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위로’ 김시연씨가 각각 선정됐다.
제42회 근로자문화예술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이어서 많은 작품이 왔고 작품의 수준도 시원하다.
시詩<사막화>는 현실과 도시 속에서 만나는 사막화, 화자 자신의 현실과 꿈에서의 자세를 화목으로 간다. 타자의 관점인 표현으로 시는 존재에 대한 내밀한 이미지를 시적 은유 세계로 간다. 현실을 넘어서 꿈을 확인하는 플롯이나 전개가 머뭇거리지 않고 싱싱해서 시의 힘을 보여준다. 꿈과 이상은 투명한 빛의 유리성이지만 현실은 갈라진 발굽 사이로 흩어진 아지랑이의 봄으로 잡히지 않는다는 시詩<사막화>는 자신의 실제 환경과 도시 속의 불안감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절망의 일상화는 상상력의 꽃으로 시의 키를 키운다. ‘불안으로 가득 찬 혹을 등에 업었지만 목만은 빳빳이 세웠다’ 전망이 전제된 시이다.
시<5월, 이팝나무>는 어머니 사랑이다. 시는 내용 전개가 산뜻하다. 띄어쓰기가 몇 번쯤 문제가 있지만 시는 수준이다. 시<물밥>,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시가 어머니를 소재로 쓰는 시라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시이다. 그러나 어머니 시에도 나는 들어갈 틈이 있어야 한다. 시의 주인은 어머니가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시<까막눈>의 시작이 아버지의 역사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는 돌고 돌다가 역전을 한 화자의 눈엔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역전을 한 자의 수확이다. 역전을 못 했다면 아버지의 과거는 누더기뿐 이리라. 시<인력시장 김씨>는 매일 하루하루 품팔이를 하는 사람 매매시장이다. 사람도 근로 조건도 매매 대상이 되어 갑의 선택에 꼬리를 흔들고 따라가는 슬픔이다. <신발의 재발견>시는 신神과 신발을 그린다. 신은 신의 의미와 신발 의미로 중의적 의미, 시의 영역을 넓게 한다. 신이 질주의 본능을 숨긴 채 거친 숨을 쉬는 신발을 그린다. 마루 밑에서 들어 올린 신발에 그의 영적 은밀이 감추어져 있음을 감지한다.
<억새>시는 중심의 중력을 그린다. 싱싱한 언어의 집합이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시는 화자의 소재가 무엇이든 화자의 거울이다.
제8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은 117명 450편으로 시242편, 시조 85편, 동시53편, 수필40편, 소설 16편, 동화 14편 이었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사하구를 배경으로 한 지역성을 잘 부각시키고 있었다. 문학성과 창작성은 뛰어나지만 지역성을 살리지 못한 글은 심사에서 배제하였다.
운문분야 대상작「장림포구」 장림포구가 움직이고 있는 역동성을 잘 보여주었다. 시적 형상화는 물론이고 시에 담긴 이야기가 전하는 내용도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최우수작「을숙도에 살어리랏다」 을숙도의 풍경을 내면화 한 따뜻한 사랑의 눈길이 돋보였다. 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꽃이다. 우수작「하구에서」 마음을 열고 자연의 숨결을 포착한 시인의 예민한 감각이 느껴진다. 깊은 사색을 통해 무한히 확장된 시인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가작「굽다리 접시」 우리가 나선 길에는 누군가 먼저 간 흔적이 남아 있다. 흔적이 남긴 생생한 모습을 내면화 시키는 미적 태도가 돋보였다.
산문분야 대상작 소설 「1979년 그 겨울 강 끝 마을」 1979년의 하단 갈대밭을 배경으로 야산의 억센 억새풀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진다. 탄탄한 주제의식으로 작가의 내적 성찰과 여정을 잘 녹여 낸 수작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우수작 수필 「그리운 어머님의 탯줄」 고향 상실이 가져다주는 현대 인간의 스산한 내면 을 영혼의 방향성을 지닌 맛깔스런 글 솜씨로 잘 그려내었다. 우수작 동화 「쇠제비 갈매기의 귀향」 철새 쇠갈매기 쇠돌이의 성장과정을 작가의 예리한 눈과 감각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가작 소설 「을숙 그라데이션」 을숙도 위에 펼쳐진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 작가를 통해 을숙도의 아름다움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한정된 지역을 배경으로 창작해야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작성이 돋보인 작품들이 많았다. 강력한 서정의 울림이 전이되어 심사위원들도 정서적 파장으로 심사하는 동안 행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민원인을 응대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늘 케이크를 만든 답니다. 부드러운 쉬폰케이크만큼 사람도 얇아서 저마다 구멍 하나씩은 지니고 있기에 쉬폰케이크를 전문적으로 만들었어요.
재난지원금이 생긴 후부터는 가토 인비저블이라는 특별한 케이크에 관심을 가졌어요. 세상에도 구멍이 났기 때문인데요. 재앙이 닥칠 때 우리의 답은 늘 하늘이어서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하고 묻게 되고 나는 오존층에서 쏟아지는 자외선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사실은 내 탓이어서 빛에게 부끄럽다고 고백하게 된답니다. 하늘의 답도 역시, 지상에 사는 우리여서 빛은 우리의 구멍을 층층이 엮어서 원래의 방향을 따라 하늘로 되돌아가는 것이 본연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요. 무작정 기다려야 했거나 평등하지 않다고 느꼈거나 가난했던 마음을 과일과 채소 슬라이스로 층층이 쌓아 올릴 때 보이지 않게 반죽하여 굽는 방법은 무척 매력적 이었어요.
까마득히 먼 번호표를 뽑아 들고 다가와 다짜고짜 화를 내는 민원인이나 온종일 말동무가 필요한 민원인에게는 달콤한 재료, 까칠한 동료와 무서운 상사에게는 달지 않은 재료를 고르지요. 케이크를 만들 준비가 끝나면 나는 손에 밀가루를 가득 묻히고 잠시 눈을 감아요. 내 손을 잡고 끝도 없이 달려서 바다에 닿은 타인이 새하얀 케이크를 내밀던 날을 떠올려봐요. 입으로 바람을 일으켜 촛불을 끄는 것은 누구나 좋아하니까, 나를 여기까지 데려 왔겠지 이해하면서요. 심술궂은 바다가 달려와 나를 끄고 도망치고 또 끄고 도망치네요. 나는 심지에 맺힌 촛불이 타인의 눈물이라서 내가 후-하고 날려준 후에야 비로소 희망을 맛봤답니다. 빛이 잘
돌아가고 있을 거라는 상상이 허락된 순간이었어요.
케이크는 어쩌면 당신의 구멍 난 날들을 밀가루 속 글루텐 성분으로 엮어 초를 꽂게 하려고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르지요. 살다 보면 당신도 응원을 받아야 할 때가 있을 테니까요. 굽기가 끝난 가토 인비저블을 당신께 드리겠어요. 맛있게 드시려면 보이는 곳에 놓아둔 채 미룬 일을 하면서 가토 인비저블을 일단 까맣게 잊어보세요. 곧, 한적한 순간이 와 옳거니 하는 박수 한 번에 한 가지를 깨닫고 아차 하는 박수 한 번에 잘못 하나를 인정하게 될 때 겹겹이 쌓인 높이 그대로 한입에 넣지 말고 포크로 조금씩 떼어 혀끝으로 음미하는 것이 좋겠어요.
제빵사가 되지 그랬냐고요? 과일과 하나가 된 반죽은 다 구워지면
거의 보이지 않게 되는데 나도 보이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이어서요.
* 가토 인비저블 : 보이지 않는 케이크라는 뜻.
[은상] 바지랑대의 꿈 / 황성관
사너멀 기와집 앞마당에 바지랑대는 하늘이었다
빨강고추가 멍석에 널리고 기와집 용마루에 거문고 걸리면
중년의 여인은 떨리는 손끝으로 여섯줄 현을 탄다
뒤뜰 대숲 따라 골바람이 불면 파도소리 귓가에 맴돌고
돛단배 무리지어 쪽빛으로 물 드릴 때
마당에 홀로선 아낙은 지그시 눈감고 어깨춤을 춘다
처서處暑를 갓 넘긴 들판에 벼이삭 부비는 소리
참새 떼 쫓는 깡통소리에 짝 이룬 메뚜기는 화들짝 놀라 뛰고
논두렁 서리태는 속적삼 쌈짓돈 되어 개다리소반에 올랐다
기와집 고명딸 사주단자 오가고
앞마당에 먹물먹인 차일遮日 높게 치던 날
초례청醮禮廳 기러기는 소곡주 합환주에 날개 짓을 한다
소복 입은 여인의 버선인양 백설기 같은 눈은 쌓이고
동네우물 가는 길에 차가운 발자국
손바닥은 쩍쩍, 이마에 주름살은 늘어만 가는데
우체통 빛바랜 고지서에 십년 묵은 신경통은 깊어만 간다
기관지 고질병에 검게 멍든 기왓장은 층층이 기침을 뱉어내고
장독대 정한수에 영정사진 드리우면 여든아홉 어머니는 망부석이 되었다
장군봉 넘어온 아침 햇살은 기와집 앞마당에 가득한데
수줍은 바지랑대 오월 목단꽃 붉은 꿈을 꾼다
[은상] 나를 보다 / 한숙희
긴 겨울속으로 숨은 너는
다시 읽는 詩
잃어버린 글자들이
푸르스름한 어둠속에 웅크린 채
시간을 기억한다
묵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둔다
어젯밤은 투명하고
불빛에 묻어버린 적막이
눈물로 차오르고
나는 텅빈 항아리가 된다
널브러져 지친 기억은
움켜진 손아귀에
붉은 자욱으로 남아
그 시간 끝에서
다시 마주할 너의 길위에 서있다
[은상] 사월 / 심진경
떨어진 꽃잎을 세다가
밥을 굶었다
매해 사월에는 바닥을 본다
사월의 마른 바람은 꽃잎을 날리고
찢어진 대기 틈으로 사라진 꽃잎은
다음 사월에 다시 나타난다
줄지도 않고 틀림없이
마른 바람이 잦아들어
비가 내리길 바란다
꽃잎을 모아 묻어주고 싶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없이 사월만 담은 꽃잎에게
자연의 성숙과 노화와 죽음을 알려주고 싶다
사월에는 꽃잎을 세어야 한다
바닥을 보고 밥을 굶어야 한다
아무래도 봄비는 쉬이 내리지 않으려나 보다
그러니 여전히 꽃잎은 나타난다
그러니 반드시 보아야 한다
적어도 사월에는 그렇게라도 하여야 한다
어느덧 노란 나비가 날아오를 때까지
[은상] 우리 동네 정육점 / 박형식
일주일에 세 번
주인이 정한 수 금 토요일은
우리 동네 정육점 소 잡는 날이에요
유난히 많은 눈이 예보된 주말 날씨에도
언제부턴가 지도에서 슬쩍 사라진 외진 골목에도
환한 눈을 넉넉하게 재어놓은 도심에는
선홍빛 육질이 좋은 어린 소가 되새김질한
붉은 달이 어김없이 뜨지요
한쪽으로 빗질을 잘해 넘긴 새벽 공기는
붙임성 좋게도
비릿한 우유가 살얼음처럼 얇게 부서지는 논둑을
새벽마다 살짝 밟고 넘어서요
밤새 꼬깃꼬깃한 어둠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헛간에선
건초가 누가 지켜보지 않는데도
밤마다 훌쩍 참 고맙게도 자라주어요
어느새 검붉게 물든 하늘은 차라리 너무 밝아
함박눈은 정말이지 깜빡 잠들었다 깨도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데
채식으로 밝아진 눈엔
더 이상 뜯어 먹을 풀이 보이지 않죠
정육점 주인이 보기 좋게 썰어놓은 한 접시의 달이 뜨면
꼬르륵 들리나요
간도 보지 않고 삼킨 달은 여태 식지 않고
녹말 덩어리처럼 허옇게 굳어
논두렁을 따라 끝없이 흐르고 있어요
잠시 걸음을 멈추면 선명해지고 깊어지는 마블링
밤하늘 구석진 곳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붉은 살점 하나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혀요
저 멀리 호주에도 청정한 달이 뜬다는데
이번 달 주문량을 맞추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에
연료를 가득 채운 보름달은
막상 구름에 가려서는 항구에서 연일 불법체류 중이에요
불판처럼 붉게 달궈진 정육점 냉장고에 누워
일광욕을 느긋하게 즐기는 소 혓바닥은
아직 할 말이 남아있을 거예요
신기하게도 발음기관이라고 적당히 구부러져 있어요
막상 혀뿌리를 무겁게 놀려
접시에 들러붙은 발음기호를 꺼내려고 하면
접시 한가득 흥건하게 침부터 고이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소 혓바닥이 건네는 진솔한 말엔 시큰둥하던 손님은
정작 부위마다 붙은 터무니없는 가격표에는 혀를 내두르다간
잠시 딴청을 피워요
역시나 눈치가 빠른 주인은 식감이 좋은 부위로 시식을 권할 줄 알죠
특보를 낼 정도로 눈을 많이 품어
주둥이가 거뭇한 구름을 뚫고 이제 막 도착한 포화지방산은
예상은 늘 빗나가지 않아
밤하늘 가득 불꽃놀이처럼 폭죽을 터뜨려 주어요
혀를 말아 올리면 그에 질세라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며
입안 가득 부챗살처럼 퍼지는 육즙으로
혀는 누가 지켜보지 않는데도
입속에서만 어물어물
옆구리가 결리도록 혀뿌리만 연신 꼬아대기 바쁘죠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과분하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잘 대접받은 오늘이
안타깝게도 최후의 만찬일이래요
거세된 수소의 눈은 너무 순박해
단골을 오래 기다렸다 덤으로 따라나서죠
완전하게 익히지 않아도
눈가에 습기를 품은 미디엄 달빛도
조악하게 만져 놓은 구름이 먼저 채가며
날 것으로 꿀꺽
낮부터 어스름 미리 나와 낯을 유난히 가리던 붉은 달도
순식간에 판매 완료
갑작스런 폭설과 교통체증에도
셔터를 내리는 주인의 손놀림은 날아갈 듯 가볍기만 해요
대놓고 호객행위를 하는 이벤트 언니들도 없고
요란한 광고판 없이도
우리 동네 정육점에 다시 올 주말은
입소문만으로도 즐거운 달구경 제대로 하는 날이에요
소 엉덩이에 악착같이 붙어있는 배설물 위로
착 감기는 꼬리뼈가 만들어낸 바람은
오늘따라 더욱 매섭기만 해요
[은상] 색즉시공 / 이정원
1.
날마다 팔레트에 물감을 섞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블루와 레드를,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날에는 그린과 블루를 섞는다
기억이 임계점을 향해 달려갈 때는
블루와 그린과 레드가 한꺼번에 섞여 백색이 되기도 한다
거울 앞에 선 물체의 색은 같은 방향을 유지한다
마이크로폰이 처음 목소리를 이탈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는 색만이 아니다
음성이 벽에 부딪쳐
난반사되어,
블루로 변하기도,
블랙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떤 마음들은 부딪치다가
블랙아웃되기도 한다
2.
어둠이 오면 색의 경계가 사라지고 너머의 광장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창밖 어둠속에
익숙한 얼굴이 어제처럼 다가온다
지나간 것들은 무슨 색으로 정의될까
나만의 방식으로 색을 입힌다
그리움에는 또 무슨 색을 칠해 놓을까
레드, 그린, 블루, 옐로, 화이트, 블랙...
그대로 놓아둘까
도화지를 찢어 버릴까
점점 줄어드는 나의 여백에,
점점 넓어지는 너의 부재에
3.
검정색 새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찰나에서 찰나로
[은상] 설렁탕집 반딧불이 / 하재분
혼자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다가
멀리서 불빛이 글썽이는 것을 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는 몇 사람이 보였다
수어를 하며 밥을 먹는 그들의 눈동자에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손 마디, 마디에서 작은 반딧불이가 태어난다
뚝배기를 비우며 그들은 눈 앞에 떠오르는
반딧불이를 보고 있는 것일까?
간혹, 묵은지 같은 웃음들이 배시시 공중으로 번졌다
침묵에는 허기를 채울 수 없는 속앓이가 있다
죽은 후에야 허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열병에 걸려 목소리를 잃어버리신 큰 아버지
입안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이 고인 채,
끝내 방 한가운데서 고목처럼 구부러지셨다
내가 모르는 설움을 가슴에 묻은 채 떠났다
입관을 하러 가기 위해
그의 가슴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반딧불이가 큰 아버지의 가슴 바깥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식당에서 혼자 먹는 저녁은
멀리서 보면 모두가 반딧불이들 같다
깜박이다가 사라지는 상처처럼
반딧불이는 맑은 상처 속에서만 살다 간다
[동상] 달팽이 / 유효정
담벼락 사이 상처가 있는 곳,
뭉글대는 달팽이 무리 신기해 반짝이던 나는
저 멀리 호박넝쿨 위에서 또깡또깡
곡괭이질 하는 어머니 간간이 확인해보곤 하였는데
쓸데없이 흙 속에서 무엇 하는 짓이냐!
얼굴 붉어진 아버지의 엄포가 바람에 실리면 어쩌나
어머니의 마른 등살을 치고 가면 어쩌나
여섯 살의 나는 쪼그려 앉아
달팽이를 보며 시간을 세고 있었다
그만 밝은 곳으로 나와 주면 좋으련만
몇몇은 회오리치는 얇은 껍질 속에서 비밀같이
꽁꽁 박혀있고 몇몇은 흐물텅 흐물텅
어둠을 뭉치고 있었는데,
첫째는 도망치듯 시집을 갔고
달러 빚 삼부이자 얹어서 짜낸 대학 등록금
둘째, 셋째, 넷째가 일수 찍듯 줄을 섰던 그 시절
방 한 칸에 빨래처럼 널려있던 오 남매의 내일은
땀으로 흥건했던 어머니의 속옷처럼 마를 줄을 몰랐다
새벽을 보고 밤의 별을 얹어서 이고 가도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 이런다 달팽이는
강낭콩 꼬투리도 담고 까끌까끌한 콩잎까지 엮어 넣어
자신만 없는 빈집을 사연 많은 소설집처럼 등에 메고
기우뚱 기우뚱 꿈틀거리는데,
종아리 사이에 노을처럼 걸린 시간을 저릿저릿하며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 무리 속으로
던졌다 돌을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그러진 가계(家系)를 짊어진 얼굴 하나가
벽을 타고
오른다
[동상] 투명한 길 / 김일하
창문에 난 길을 들여다본다
초록의 풀밭이 투명하게 일렁이는 길 위에서
길잡이 개미가 표시해둔 페로몬 향을 따라
한 행렬이 고요히 흘러간다
개미처럼 걸어다니고
개미처럼 살아내면서
누군가의 무사한 걸음을 위한
길 하나 내어놓지 못하고
나를 위해서만 나를 부려먹었는데
앞서간 개미의 걸음이 창에 매달려
다른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저 긴 행렬이 한 몸이다
얼마나 많은 길이
허방 같은 창을 무사히 다녀갔을까
[동상] 느린 걸음 / 정호석
어차피 멈추어 설 시계바늘을 왜 자꾸 돌리시나요?
제자리걸음 일거라는 소아신경과 교수의 진단 후
아기 엄마의 시간은 맥없이 내려앉았다.
일곱 달을 채 품지 못한 엄마의 마른 눈물이
시계의 투명한 살결 위에 떨어지고
파문에 갇힌 시계바늘은 부르르, 털썩 주저앉는다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발가락에 힘을 주는 시계바늘
몇 번의 까치걸음은 하나의 반경으로 귀결되고
얼마 가지 못하고 엄마의 품으로 들어와 박힌다
중력을 거스르고 열두시를 향해 올라가 보지만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여섯시로 회귀하는 시계
결국 오른쪽으로만 돌고 돌아 제자리인걸까
한걸음 가고 비틀, 또 한걸음 가다 멈칫
초침의 힘겨운 걸음을 바라보다
엄마가 알아차린 것은
시계바늘이 걷는 길이
동심원을 그리는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매순간 새로운 직진의 연속이었다는 사실
세상이 규정해 놓은 열두 개의 숫자 대신
엄마의 간절한 눈빛을 이정표 삼아
넘어져도, 멈췄다 천천히 가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두려울 리 없는 시계는
끝없이 전진을 하고 있었나보다
언젠가, 돌돌말린 고무나무 어린잎 같은
앙상한 시계바늘에도 살이 차오르는 날
째깍째깍 아기의 옹알이
마디마디 연결되어 단단한 문장으로 뻗어 오를 테지
잃어버린 시간이라도 찾은 듯
[동상] 無窮花 / 김경미
오랫동안 그 나무에 무엇이 피고 졌는지 알지 못했다.
비바람에 휘청이지도 않았고, 붉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나무 아래 앉아 촉촉한 눈시울을 훔치고는
막차에서 내린 나를 맞아
된장국에 불 켜러 잰걸음으로 앞서곤 했다.
이내 돌배처럼 작아지는 그녀의 길은,
수없이 국을 데우고, 나물을 무치고, 깨를 뿌리는,
그건 무슨 신념처럼 보였다.
가을비는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
이곳은 생각의 끝과 시작
빛바랜 꽃나무 아래, 때 묻은 무지개색 보료
꿈을 꾸다가 울던 곳
무지개색 보료 앞에 어머니가 신념처럼 상을 들인다.
가을비를 맞아 붉은 어머니
젖은 무궁화처럼 앉아 손을 흔든다.
[동상] 버드나무 / 이정행
첫 봄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투명한 몸이 되어 버드나무의 뿌리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더니
더 깊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한때 구름 속에 있을 때
바닥의 세계가 훤히 보이는 듯한 착각도 했지만
여기서는 옅은 구름만큼 부질없는 것이었다
사방은 어두운 공허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
길을 걷는 자의 여행법일지도 모른다
공허 속에 어두운 방이 보이기도 하지만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아 머무를 자리 없다
머물 곳 없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얇고 부드럽기만 한 손가락 같은 것이
나를 끌어올린다 강한 힘에 이끌려 올라가는 동안
고개를 들어 나보다 앞서간 것들을 본다
햇빛을 받으면서 끌어올린 손가락이 끝나는 지점에는
허공에 연둣빛 줄기가 그려지고 있다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도 자리가 있었다
저마다 아름답고 싱그러운 자리가 있었다
[동상] 또 다른 나를 위하여 / 김병철
나뭇가지가 철컥 부러지며 통증을 호소했다.
바람은 잠자코 있고 풀잎은 거꾸로 드러눕는다.
앙상한 슬픔, 해를 향해 휘어지고 있다.
붉은 혀가 지평선과 은밀하게 입맞춤하는 사이,
강바닥은 메말라가고 죽은 넋 위로 모래가 쌓여갔다.
그때 거침없이 나는 사막을 걷고 있었다.
바오밥나무는 넌지시 나에게 소곤거린다.
<성령에 이르기 전 눈을 감아선 안 된다>
모래바람에 묻힌 미라도 눈꺼풀이 열려있다.
혼돈의 길을 따라 눈 부릅뜨고 사막을 걷는다.
기나긴 여행의 끝은 집을 바꾸는 일일 뿐이라며
새들은 날아간다. 아!
부끄러운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내 곁에
다가와 쌓이는 청춘의 잔해들,
끈덕진 불면증은 밤새도록 늙지 않는다.
내가 비로소 어둠의 잠을 접고 일어선 날
꿈은 낭자한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꿈이 동강난 허수아비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과 같이
바람처럼 일어나 외친다.
<허튼 맹세의 어둠에서 깨어나라>
이제 나는 낼 새벽녘 머언 바다로 나가
초록의 물고기를 잡아와야 할 것이다.
뜨거운 사막 위를 걷던 부릅뜬 눈으로 가장 낮은
땅으로 걸어 들어가 아름다운 아라비아 처녀의
그 짙은 눈썹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동상] 아마조네스의 변 / 김래연
그랬다.
세상은 질서정연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원주에 가까웠다. 서슬 퍼런 칼날을 움켜쥐고 언제건 내리치겠다는 묵직한 의지가 모래바람에 끊임없이 실려 왔다. 모근까지 쭈뼛서는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나서야 발밑에 드리운 건 평지가 아닌 나락인 걸 깨달 았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작태로 위태로이 외발을 서는 일뿐임을 알고야 말았다.
바스락,
오른쪽 심장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파도처럼 몰아치던 날 밤에 여자는 달빛으로 벼린 칼끝을
제 심장에 겨누었다.
활쏘기가 불편해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는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조네스처럼,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바위에 제 발톱을 간다는 매처럼. 살기 위한 희망으로 가득 찬 절망의 쇳조각이 살갗을 누빌 때 한껏 여윈 얼굴의 달이 정갈한 빛깔로 결의의 장면을 목도했다. 달빛을 빚어 만든 시위로 쏘아 올린 활이 원주의 끝에 걸렸다.
푸우,
일그러지는 원주는 질박한 달항아리. 고아한 자태 앞에선 불균형한 몸체도 예술에 가까웠다. 날선 세상은 무뎌졌지만, 여전히 견고한 성이었다. 한쪽 가슴을 도려낸 채 외발로 선 여자는 나락을 등지고 섰다. 뱃고동처럼 온몸을 둥둥 울리는 맥박이 성난 활시위를 당겼다. 한껏 기울어진 세상을 향해 여자가 쏜 건 서러움, 절박함, 그리움, 혹은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 깊은 우물 속 언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