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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처럼 앉아 / 김석영

 

호박빛의 실내에서

나와 너는 가만히 앉아 휘날리는 눈을 바라본다

 

온도의 빛과 빛의 온도를

발음해보면서 궁글어지는 맛

호박 몇 조각을 뒤집어보면서

 

“눈은 방향이 없구나”

한낮의 호박과 호박빛의 환한 속내를

어둡게 들여다볼 것인지 궁금해진다

 

둥근 유리 주전자 속에서

오래도록 우러나는 호박

물속에서 세 배쯤 커 보인다

색깔을 밀어내면서

향은 풀어지고 뒤섞인다

옅어진 물빛에 호박이 스며 있다

 

기억이 났다 실처럼 오래 풀리느라

컴컴해진 실내에서

 

차를 마시고

서로 같아진 우리의 색

 

누군가는 밖으로 나갔다

너는 이곳에 없어도

누군가는 만족스럽다

 

“내가 정물처럼 앉아 있으면

당신이 나를 그려주기를,

 

사람으로”

 

눈이 그쳤고

실내가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던 색을 우리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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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영(41) 시인이 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출판사 민음사는 제41회 김수영문학상에 김석영 시인의 ‘정물처럼 앉아’ 외 50편을 선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모든 시편이 고른 완성도를 유지하며 자아내는 긴장감이 눈에 띄었다”며 “시인의 치밀함과 인내심이 느껴졌다. 한 편의 시마다 스스로 던진 화두를 스스로 해결해 내는 매력적인 완결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심사를 맡은 허연 시인은 심사평에서 “잘 조율된 한 악장의 음악 같다”고 했고,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어떤 단절과 함께 상황 속으로 이끄는 문장은 독자들을 시적 실재 속으로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수상소감을 통해 “삶은 되감기 할 수 없지만 시는 여러 번 되감기 할 수 있는 허구이며 편집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유일한 즐거움”이라며 고다르가 말한 ‘두 번째 첫 번째’라는 표현을 인용, “앞으로도 계속 ‘n 번째 첫 번째 시집’을 내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김 시인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밤의 영향권’이 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수상 시집은 연내 출간될 예정이다. 12월초 발행하는 문학잡지 ‘릿터’에서 수상작의 대표 시 4편을 우선 공개하며, 시인의 수상 소감과 심사위원의 심사평 전문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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