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 최재원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끝이 여엉 하고 뭉개진다. 눈에도 웃음. 입에도, 말에도 묻어나는 웃음. 연습한 걸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다. 자라면 못 잘 것은 없겠지만 어떻게 생겼든 웬만하면 그의 자지를 굳이, 딱히, 보고 싶지는 않다. 다 벗더라도 거기만은 가리라고 하고 싶다. 아니, 천을 휘감긴다든가, 맥퀸이 만들던 맥퀸이나 베르사체가 만들던 베르사체 같은 것을 입히고, 아니, 아니야, 그냥 티셔츠, 보풀이라든가, 올이 보이지 않는, 그런 티셔츠를 입히고, 아니야, 옷이야 상관없겠지.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구겨진 옷이라도, 흉한 밴드 처리가 되어 있는 운동복이라도, 드러난 손목, 발목, 거기에 감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완벽함을 얻게 될 것이다. 구불구불 대는 밴드와 거기에 박음질된 실, 살에 눌어붙는 밴드의 압박, 이런 것들을 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붙어 있는 먼지나 솜털 같은 것들도 마치 그려 넣은 것처럼 의도를 얻게 될 것이다. 너의 눈썹은 빛으로 그려져 있다. 너의 눈은 아직 결정하기 전의 유리, 입술과 입술이 아닌 것의 그 연한 경계, 가장 확신 가득하며 초조한 피어나는 튤립 같은 입술. 그러나 너는 너무 가깝다. 내가 니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인지, 니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인지, 그의 입술이 열리고 거기서 나온 소리의 진동이 내 귀의 고막을 울리는 것부터, 이미 잘못된 것이다. 이미 너는 너무 가깝다. 귀에 닿는 너의 숨소리가 불결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나 알아요?
그럼요. 알죠.
아 씨발. 밖으로 생각했나 보다. 안다고? 뭘? 니가 뭘 아는데?
누나, 왜 욕을 하고 그래……. 밥 먹었어요?
너와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박제하고 싶다. 약품 처리된, 내장이 없는, 까맣게 구슬이 되어 버린 눈동자, 그런 박제 말고 너의 가장,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이 너의 가장 아득한 곳을 담을 수 있도록,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숨도, 생명도, 심지어 내장이라 할지라도. 너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구해 주고 싶다. 그것은 박제와 가깝지만 박제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흔들림의 보장, 니가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서 있을 자유, 니가 끝없이 스스로에게 빠져들 자유, 끝없이 자신을 소모할 수 있을 힘.
그가 손을 뻗는다. 나는 움츠린다.
그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 그건 음악 같은 소리다. 오직 그의 입술에서 나온 소리의 진동, 진동과 진동의 사이, 그 템포, 높낮이, 쉼표만이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그는 의미를 밟고 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걷는 곳마다 의미가 피어나는 사람인 것이다. 아. 어떻게 그를 가지고 싶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엔가 있다. 사정은 끝까지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빌드업만 하다가는 아마 뒈져 버리겠지. 잠을 재우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조, 조금만 뒤로 가 줄래?
나는 아득해질 대로 아득해져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싶어진다. 그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과 이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마음과 구석구석 핥고 싶은 마음이, 그가 너무 입체적이라는 사실이. 그는 바람이 빠진 것처럼, 조명이 꺼진 것처럼. 나는 자꾸 역겨워진다. 역겨워하는 내가 역겹고 자꾸 구토할 것 같다.
나랑 잘래?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말했다면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면 그것은 덕지덕지 더러운 말이 되어 부스러기를 잔뜩 남긴 채 바닥에 부서져 있을 것이다. 나는 내려다보기가 두려웠다. 내가 사정하지 못할 것은 뻔했고, 나는 그가 사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뒤로 묶고 그저 그가 찍어내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그의 목이 앞으로 떨어졌다 귀찮다는 듯 뒤로 젖혀지는 것을, 그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그의 이마에 삼각형으로 떨어지던 해가 점점 늘어지며 긴 삼각형이 코에 음영을 만들고, 얼굴을 붉게 타오르게 만드는 것을, 그가 뱉어 내는 소리의 간격과 빠르기를, 그의 예정된 종류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었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운명처럼 견고한 것, 닿는 모든 것이 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이미 예정된 것.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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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진행된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최재원 시인이 선정됐다. 올해 김수영 문학상에는 총 220명의 시가 투고됐고, 이수명 시인, 조강석 문학평론가, 허영 시인이 심사를 맡았다.
민음사에 따르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후보자는 6명이었으나, 심사가 시작되자마자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최재원의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외 59편으로 모아졌다.
심사위원은 구성과 문장이 빼어난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최재원 시인이 보여 준 거침없고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은 김수영 시의 정신을 계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다.
과감하면서도 활달한 상상력으로 독창적인 리듬과 이미지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일상과 세속에 과감히 육박해 들어가며 자신만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압도적이라는 평을 냈다.
최재원 시인은 1988년생으로 거제도, 창원, 횡성, 뉴욕 그리고 서울에서 자랐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시각 예술을, 럿거스대학교 메이슨 그로스 예술학교에서 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2018년에는 Hyperallergic을 통해 미술 비평을, 2019년 ‘사이펀’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편, 최재원 시인은 이번 수상으로 상금 1000만 원을 받게되며, 연내 수상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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