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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서문시장 수제빗집 / 백명순

 

빗물 질펀한 시장을 가로질러 노점에 닿는다 양은솥 가득 수제비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연신 코를 벌렁거리며 게딱지 손으로 쉼 없이 수제비를 뜯어내는 그녀의 저 재빠른 손놀림, 겨울비 내렸고 생의 절반이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뚝 떨어져 나간 남편과 어린 자식 삼 남매와 빚덩이만 밀가루 반죽처럼 게딱지 손끝에 매달려 있다

 

팔자라 말하기엔 아직도 잘라버리지 못한 것들 손끝에서 댕강댕강 양은솥 안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어야 살아가는 삶, 밀가루 반죽은 뚝 뚝그녀를 잘라 먹는다 숨을 쉬는 동안 끝나지 않을 눈물을 밀랍 하는 일 찜통에 담아 두었던 밀가루 반죽 한 덩이를 들고서 밀려 나온 생의 한 가운데 모든 신경을 손끝에 모아 쪼가리 쪼가리 양은솥 안으로 던져 넣는 수천 개의 게딱지

 

 

 

 

 

 

[금상] 틈 / 전종대

 

가까운 사이일수록 틈이 필요하다는 걸 안 것은
집 안에 가구들이 많아지고 부터이다
가구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곁의 가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오래되고 낡을수록 안으로부터 조금씩 부풀어 오른 배들
 
벽과 벽 사이에도 틈이 숨 쉬고 있었다
이어진 레일 사이에도 틈을 두었다
단단할수록 간극이 필요하다
 
때로 틈이 사막 같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틈은 너를 너답게 하는 방식이다
건물을 견디게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내와 다투고 돌아서 바라보는 무연한 달빛
달빛과 달빛 사이에도 틈이 있을 것이다
 
아스팔트 검은 입술 터진 틈으로 가느다랗게
풀들이 외치며 걸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너무 꽉 다문 입술들은 갈라진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틈을 비집고 팔을 뻗는다


 

 

 

[은상] 면경 / 이종호

 

핸드백에 자신의 얼굴을 넣고 다닙니다
여자의 하루가 거울 속에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사라질까 봐 거울을 자주 봅니다

궁금한 얼굴을 해석해 주는 면경을 유심히 보다가
왼쪽과 오른쪽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충혈된 눈과 마스카라의 눈물도 있습니다

우울한 손이 거울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깨지는 소리가 사람들에게 박힌듯합니다

여자 마음도 균열이 갔습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제 얼굴을 잃었습니다

천의 눈을 갖은 거울은
천 개의 세상을 보고 싶어 쨍그랑, 깨졌을까

파편 속에서 반짝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은상] 을숙도 현대 미술관 / 안행덕

 

가상 사운드 뮤직실, 천장에서 내려온 줄과 바닥의 종이 상자, 연결된 암호들이 음표를 만들며 내통하고 있다. 가느다란 줄이 얇게 바르르 떨면 상자의 입술이 음표를 만들어 낸다. 빗소리라는 문자를 눈에 담고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으면 부드러운 강바람 불어오고 콩나물 꼬리 같은 사분음표로 내 귀를 간질이다가 음향은 점점 커지는데 처음에는 빗소리 바람 소리 그사이에 시든 꽃이 떨어지고 수십만 개의 소고 소리 점점 크게 울리는데 큰북을 치며 빗속에 젖어 든다. 내가 운다. 빗속에 젖어 울고 있는 나,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소복의 어머니, 손을 내밀자 천둥 치고 번갯불 번쩍하는 섬광에 눈을 뜬다. 큰북과 작은 북은 간 곳 없고 가느다란 줄이 종이상자를 두드리고 있다.


 

 

 

 

[동상] 지하도 암자 / 이생문

 

햇볕도 추위를 피해 걸어 내려오는 지하도 계단
한줌 한 줌 쌓아올린 탑 가뭇없이 사라진 자리
벽도 기둥도 없이
쓰러질 듯 폐박스 구들에 웅크린 암자 한 채
깨달음 얻기 위한 출가인가
다 비운 생의 자세로 엎드린 고행
비린 세월도 선나禪那*에 들고
따로 품어야할 화두도 없다
탁발托鉢에 나선 소쿠리 한 권 불경처럼 모셔도
아무도 읽고 지나는 이 없고
동전 한 닢 떨어지는 소리 간절한 번뇌
칼바람에 시리다
죽비의 눈초리보다 따가운 사람의 시선에도
열반에 든 듯 눈 길 한 번 흩어짐 없이
수심愁心 깊은 고해에 몸 담근 행려가 된 묵언정진
세상을 깨우는 울림 우렁차다
무릇 고행이란
때를 기다리며 갈기갈기 제 가슴 찢는 일,
오랜 방황의 끝 침침한 삶
한순간 환해지는 일
숨소리조차 속세를 피한 듯 미동 없이
동안거에 든 저 사람 부랑자가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 앉아 있은 생불이다.

*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고요히 생각하는 일


 

 

 

 

[동상] 반올림 / 이문자

 

그녀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장마철이면 상형문자의 곰팡이가
우울의 문장을 쓴다
냄새가 몸에 끈적끈적 들러붙어도
무더위에는 반지하가 최고라고 위로한다

창살 사이로 햇살은 벽의 반을
데우다가 힘없이 사라진다
그녀의 목소리는 세상에 온전히 닿지 않고
계단은 반만 밝은 사각지대다
지상을 향한 계단은 위에 있는 자들의
몫이라고 체념하다가도 눈과 귀는
창을 두드리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가 사는 공간은 어둡고 퀴퀴한
냄새로 얼룩져 있다
지금도 그녀는 반지하 계단을 오르고 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일 층이라고
온전한 봄 햇살을 받을 수 있다고
누구에게는 평범한 시작이
생의 끝날까지 닿아야 할 목적지라고


 

 

 

 

 

[동상] 늙은 해녀 / 배철호

 

푸른 도마뱀이 날마다 허물을 벗는
제주 바다에 저녁노을 몇 점이 앉아있다.
평생 바다의 뿌리를 캐고 껍질을 벗기며
더러는 물안경에 서린 세월을 꺼내 닦는다.
햇살처럼 손끝에 머문 자식을 어루만질 때,
익숙한 손놀림에도 팅 하고 튕겨 나가는 햇살 한 움큼
이제 기다림과 그리움마저도 더는 자라지 않는다.
자고 나면 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개의 푸른 날을 세우고
파도의 거센 힘줄로 옭아 매인 할망* 해녀의 삶은 고단하다.
구멍새 숭숭한 삶, 살갗마저 현무암 닮아가는 거칠어진 노년은
나날이 썰물 지고 굽어져 가는 허리만 맥없이 두드려본다.
오래된 습관처럼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는 물질이지만
그나마 소라 전복에 남아있던 작은 온기마저 식어가고
지중해 날씨처럼 온화했던 이웃들도 태풍에 하나둘 떠났다.
빈집 태왁 박새기* 마냥 덩그러니 버려진 듯 남았다.
나날이 지워지는 지문과 노랫가락으로 안간힘 써보지만
온몸 등허리까지 저녁노을이 붉게 붉게 물들었다.
화석처럼 굳어진 허리 잠시 펴고 고개 들 때면
뭍에서 불어온 바람이 바닷새 울음에 찍 묻어난다.
평생 마르지 않는 젖은 가슴을 털어내는 저녁노을
그 밝던 눈도 바닷속과 함께 침침해져 가고 있다.

*할망:‘할머니’를 말하는 제주 방언.
*테왁 박새기: 해녀가 물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의 기구로 제주 방언.


 

 

 

 

 

 

[가작] 활어회 / 권수진

 

바다로부터 추방된 물고기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구속 중인 수족관

 

불특정 순서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마에서 참수형이 집행되는 곳

 

뜰채에 포획된 감성돔 한 마리가

휘둥그레 눈을 뜬 채

허공 속을 파닥인다

 

쓱쓱 횟집 주인이 칼 가는 소리에

억울한 누명을 호소하듯

입을 뻐끔거리는 항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이 채 끝나기 전에

칼등으로 내리꽂힌 정수리에서

턱-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난다

 

횟감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비늘로 무장한 가죽을 벗길 때마다

소스라치게 전율하는

저 몸짓!

 

시퍼런 칼날이 회백색 배를 갈라 내장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니

자신은 무고인 양

좌우로 꼬리치는 지느러미

아직도 못다 한 증언이 남았는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유영하던

옛 시절을 기억하는지

파닥파닥 연신 자맥질이다

 

흰 접시 위에 현란한 모양새로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살점들이

차곡차곡 단층을 쌓고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는 상여의 행렬

 

피로 얼룩진 형장을 향해

한 바가지 물을 붇자

들숨 날숨 힘겹게 숨 쉬던 아가미 항변은 멈추었다

 

가게 한구석에 내팽개친

잘려 나간 생선 대가리의 주둥이가

계속해서 입을 벌름거린다

 

피고인은 아직도 살아있다

 

 

 



□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상자 명단

 

<시 부문>


◇공동대상 =△‘서문시장 수제빗집’ 백명순(대구 남구)
◇금상 = △‘틈’ 전원목(경북 경산)
◇은상 = △‘면경’ 이종호(경기 성남) △‘을숙도 현대 미술관’ 안행덕(부산 금정구)
◇동상 = △‘지하도 암자’ 이생문(경기 화성) △‘반올림’ 이문자(인천 부평구) △‘늙은 해녀’ 배철호(경기 하남)
◇가작 = △‘활어회’ 권수진(경남 창원) △‘부곡이발소’ 박찬희(인천 미추홀구) △‘완(碗)’ 박민례(대전 중구) △‘연식지난 세탁기’ 이태학(경기 양평) △‘그러니까’ 김재호(경북 포항) △‘입춘의 아침’ 정재식(부산 금정구) △‘낙엽의 지움 앞에서’ 김태희(경기 안양) △‘감꽃이 필 때’ 신영순(전북 전주) △‘오월’ 이영숙(경북 영덕) △‘시계’ 황수웅(부산 해운대구) △‘뿌리 깊은 집’ 최우서(대구 북구) △‘빗나간 오후’ 김용주(대구 북구)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지향하는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국내·외 총 3191편 작품이 응모된 가운데 시 부문 백명순(대구 남구)씨 ‘서문시장 수제빗집’과 소설 부문 이은정(경북 경주)씨 ‘선샤인타운’이 각각 공동대상을 차지했다.

경북일보문학대전운영위원회는‘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심사결과 공동대상과 금상, 은상, 동상, 가작에 시 부문 19명, 소설 부문 13명, 수필 부문 19명 등 모두 51명의 당선작을 발표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산소카페 청송을 문학의 고장으로 알리는 계기로 삼고 청송의 뛰어난 절경과 관광명소를 대내외에 알리는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장을 열고 참신한 신인 작가 배출과 기성 작가의 창작활동을 독려하고자 마련됐다.

부문별 접수현황을 보면 시 부문에 509명 2130편, 수필 부문에 255명 765편, 소설 부문에 222명 296편이 응모돼 총 응모 인원 986명에 3191편이 접수됐다.

지역별 현황을 보면 경북(434편)·대구(422편) 등을 비롯해 경기(630편), 서울(517편), 부산(229편), 해외(51편) 등 국내외 곳곳에서 출품됐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30일 경북일보 포항본사 대강당에서 치러지며 공동대상 500만원(2명), 금상 200만원(3명), 은상 70만원(6명), 동상 50만 원(9명), 가작 40만 원(단편소설 6명)·20만 원(시·수필 24명), 특별상 100만 원(청송군민에 한함) 등 총 3290만원의 상금이 51명의 수상자에게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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