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6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와 (사)김유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8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에서 엄정현(춘천·운문), 김미정(경남 김해·산문)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공모 심사위원회는 최근 춘천문인협회 사무실에서 부문별 심사위원회를 열고 문치우(오천고 3년), 이현재(용정중 3년), 홍석현(남춘천중 2년·이상 운문), 정지유(경희고 3년·산문) 학생의 작품을 중·고등부 부문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모두 18명의 입상작을 최종 결정했다.
운문 심사위원회는 “김유정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연결해 시로 풀어내는 작업은 고도의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입상작들은 통제된 형식 속에서 시어(詩語)를 풀어내는 실험정신이 눈에 띄었고 간결하게 시상을 풀어내는 잠재력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산문 심사위원회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전개해 가는 필력에 있어 좀 더 정진하면 차세대 작가로서 성장할 것이 기대되고(고등), 반전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상작은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과 전개가 좋았다(대학·일반)”고 평가했다.
2020년 ‘제27회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공모전’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한국문단의 큰 희망인 소설가 김유정은 한국문학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김유정을 기리기 위한 이번 문예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은 대부분 다 높은 지식과 문장 표현력에 의해 상당히 냉철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작품으로서의 완성은 오랜 문장 작성상의 수련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많은 작품들은 이 결핍을 보완하는 노력의 뒷받침이 좀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선정된 ‘김명래’의 김유정기억하기 작품 ‘생의 반려’ 는 문장면에서의 기본적 완성도와 김유정이 가진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작품의 완성도 양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 차별성에 의해 평가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좋은 글쓰기로 계속 정진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물속에는 형이 두고 간 비늘이 많아, 모래성으로 갈 때마다 병든 비늘이 떨어져 있었지, 물이끼가 덮인 모래성 속에서 금붕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꼬리를 수놓던 별들을 기억하는. 겨울이 시작되고 형의 몸에는 붉은 별자리가 새겨졌지, 피를 머금은 피부가 선연했어, 하루는 구름에 묻은 노을을 형의 객혈로 해석한 내가 미웠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모래를 잘근대던 그 밤
말했잖아? 볕이 잘 드는 뭉게구름 동산에서 일광욕을 하고 싶다고, 미지근한 물 대신 햇빛에잠기고 싶다고...
언젠가, 뭉게구름 동산으로 가고 싶어. 철새를 타고 형의 별자리를 찾으러 갈게. 형은 어느 성단을 헤엄치고 있을까?
여름이 우거지면 햇살이 내릴 거야, 별자리가 빛나는 날, 깨끗한 구름을 말려서 차를 우리자.
지느러미는 유리를 깨뜨리는 바람이 되고
[으뜸상] 잠수 / 조혜인
엄마는 아쿠아리움에 누워 전복을 딴다
여전히 숨을 참는 엄마
미역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
꾹 감은 눈덩이 아래에
그늘처럼 속눈썹이 드리워진다
빨리 나오세요, 엄마
엄마가 자리한 곳은 바다가 아니잖아요
이끼 낀 유리 너머로 자갈을 던진다
던지고 던져도
내 옆에 쌓이는 무게
엄마의 잠수가 길어지던 날
흰 침대 위로 문어 먹물이 흩어지고
바닥엔 해삼과 멍게가 나뒹굴었다
마음을 넣었다가 뺐다가
잠그지 않은 형태로 달이 떠오르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이름을 입속에 오랫동안 가둔 날
바다의 소금기만 손금에 고여 있었다
[버금상] 엄마 / 이수미
여자의 어깨에 시간의 머리카락이 쌓인다
바늘은 시침보다 더 늦은 간격으로 실타래를 돈다
반쯤 감긴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잠깐 미열을 앓은 것 같은데 반생이 지나 있고
잘록한 허리에 휘감겼던 빗줄기들이
사선처럼 걸어와 바늘귀에 축축한 눈동자를 댄다
문밖에 서 있는 낙타의 얼굴을 눈을 슴벅거리며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점점 투명해지는 몸을 어쩌지 못한다
황망히 일어나 문턱을 넘으면
전생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여자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귀가
눈이 따갑도록 반짝거린다
돌아보면 마루에 백발로 지은 옷 한 벌,
여자의 일평생이 거기 쌓여 있다
문득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바늘구멍 속으로 꿰어진다
그 실마리를 따라
낙타 한 마리,
비좁은 둘레의 구멍을 통과하는 중이다
[아차상] 마중물 / 이동우
여름 볕을 못 이겨 낮잠에 빠진 도시
치매 어머니 문제로 형과 언성을 높였다
불은 면처럼 끊기는 대화가 자꾸
목에 걸렸다
광장 분수에서 흠뻑 젖어 뛰노는 아이들
물기둥을 타고 튀는 웃음소리
물보라로 부서진다, 반짝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마중물 한 바가지 부으면
펌프는 마당 한가득 되돌려 주었다
수챗구멍을 따라 길게 이어지던 물줄기
우리 형제는 냇가에라도 나온 양
신이 나서 물장난을 쳤고
얼음장 같은 펌프 물이
등에서 부서졌다, 반짝였다
파닥이는 햇발 눈부셔
머리끝까지 적시던 그해 여름
질긴 장마철, 벽지 꽃무늬가
천장까지 검게 피어오르던 문간방
어머니의 한숨이 맺혀 흐르는 창 너머
술 취한 아버지가 비틀비틀 돌아왔고
나는 이부자리에 오줌을 지리곤 했다
어머니의 좁은 옷소매 끝에 숨어
밤새도록 등만 키우던 그해 여름
용기 내어 전화기 안으로
마중물 같은 말 한 바가지를 붓는다
형! 우리, 등목이나 할까?
또다시 솟아오르는 분수대 물줄기
화들짝, 도시가 낮잠에서 깨어난다
[장려상] 친구 / 김지용
나는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로 나왔습니다 그때 나는 문을 잘못 연 것 같습니다
나의 얼굴의 뒤편은 모과처럼 단단해요 쓴맛이 혀에 먼저 닿죠 나의 표정은 짓눌린 복숭아처럼 도려내고 싶습니다
내 친구는 거울 나는 항상 상이 다른 표정을 연습합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내 웃음이 싱그럽지 않은 이유는 비닐에 씌워져 있기 때문.
아버지는 흠집 난 것은 버려야한다고 내게 농약을 뿌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나는 자주 나무에 달려있는 기분입니다 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떨어진 과일은 나는 건가요 추락하는 건가요 둘은 다른 의미 인 것 같습니다
나는 낳아진 게 아니라 떨어진 거라고
다리 밑이나 황새 부리에서
어머니는 태풍 그러므로 나는 썩은 사과처럼 무른 등을 감추기 위해 교복을 벗지 않습니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이를 닦을 땐 혀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나를 포장하는 작은 잎
괜찮아요, 괜찮아요
바람에 흔들리듯 쉼 없이 말했습니다
나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것들을 미워했습니다
벗기면 벗길수록 속과 겉은 다르니까요
내 속은 늘 푸른 맨살입니다
친구들은 물어봅니다 숨쉬기 힘들지 않냐고 나는 목까지 연기가 차올라서 입을 열 면 구름이 뱉어질 거 같아요 나의 일기는 말들이 쌓여 무거워지면 비가 내렸습니다 친구들이 포도송이처럼 뭉쳐서 집에 갑니다
겨울의 끝자락이었지 싶습니다. 그때는 바이러스의 정체조차 몰라서 무어라 이름 지어 부르지도 못한 채였습니다. 마스크 대란이 오고 세계 곳곳에서는 국경의 봉쇄가 이어졌습니다. 지구촌의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면서 저들을 ‘코로나 19’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생겨났지만, 저들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정확한 무늬도 모르겠고, 백신도 없고 치료약도 없는 이 이상하고 두려운 적과의 싸움은 하루가 다르게 조용히 퍼져나가 사람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을 빼앗긴 채 ‘거리두기’라는 아주 낯선 사회 현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언제 어떻게 어떤 생김새로 마감을 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안개 자욱한 미지의 시절에 박두진 문학관에서는 전국백일장을 개최했습니다. 암울한 시절을 건강하게 건너가 보려는 각고의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이, 문학만이 피폐해진 사람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도 읽혔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마음으로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문학으로 열어놓은 것입니다. 전국의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일반부까지 너무나 많은 원고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적어나간 저들의 이야기는 모두 진솔했고 간절했습니다. 별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는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암울한 시절의 싯구는 모두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또한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나름의 모색이고 탐험이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도 걸어가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는 신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투고된 한 편 한 편의 시들을 정성껏 읽어나갔습니다. 암묵중에 약속된 상황은 오로지 작품만 보는 것을 가장 커다란 심사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거기에는 출신 학교나 지역 또는 학연과 지연 같은 미시 담론은 배재되었습니다. 그렇게 엄중한 심사의 잣대로 초등부 4편, 중등부 4편 고등부 4편 일반부 4편, 그리고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상 1편이 선정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에 선정된 고등부의 ‘산’은 누구나 힘겹게 올라가야 하는 ‘산’을 통해 가족애는 물론, 반드시 어려운 고비를 넘고야 말겠다는 힘찬 메시지를 적절한 비유법을 통해 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고통도 이겨내면 고유의 무늬가 될 수 있음을 담담하게 시사하면서, 함께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다는 메시지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었습니다. 초등부의 ‘텅텅텅’은 코로나 19라는 작금의 현실을 뛰어가는 슬픔처럼 노래하는 주술적인 힘도 보여주었습니다. 중등부의 ‘산’은 전통 서정의 기법을 고수하면서 산의 의미망을 추억까지 끌어올리는 놀라운 비약을 구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편 편의 시편 마다 모두 이 시절의 아픔이 짖게 녹아나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이 고통을 진술하는 것이라면 시는 개인의 슬픔을 형상화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은 정녕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합니다. 길은 걸어간 만큼이 길이 된다고, 가보지 못한 길도 걷다가 보면 길이 된다는 것을 많은 시들은 강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고 응모해주신 전국의 예비 시인들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또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여 주신 박두진문학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제16회 혜산 박두진 전국 백일장에 응모한 작품들을 허영자, 문효치 두 분 시인과 정진규 본인이 심사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을 두고 심사하기 전에 세운 심사 기준은, 시는 어디까지나 오늘의 시가 아무리 지적 인식과 논리적 구조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서정적 바탕과 사유의 진정성, 작위적 행위를 떠난 순수성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에 묵언으로 동의하였다. 이런 점에서 부문별로 살펴본 결과, 무엇보다 눈에 뜨이는 점은 일반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서정성과 진정성, 순수성이 살아있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그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어디서 오고 있는가.
첫째 축적된 체험이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오염의 수단으로, 그런 사유의 방법적 전개로 바뀌어지다 보니 이런 결과를 빚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둘째 시는 이러한 삶의 오염상태를 초월하는 서정적 수용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었다.
이 점을 윗세대의 응모자들은 극복할 수 있기를 권유해 두고자 한다. 그래서 시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저학년의 작품들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초등부 저학년의 작품에서는 특히 현일초교 2학년 김다은의 「우리 고향은 엄마 뱃속」같은 작품이나, 충주시 남산초 2학년 이재윤의 작품 등이 특히 말의 결이 곱고 그 싱싱한 사유가 뛰어났다. <엄마 뱃속>에서는 고향의 영원성을, 바다에서는 뜨고 지는 해를 <매일매일> <풍덩풍덩>들어가고 나온다고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건강하다.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렵지만 초등부 고학년의 평택 안일초등학교 송정민이 <숲길을 걸으며> <나는 숲속 환한 뮤지컬을 감상한다>는 표현도 뛰어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중등부 김다희가 어린이답게 자신에게서 <높이 솟아오를 수 있는 /힘찬 희망을>지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해>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있음도 매우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삶에 지친 어른들인 우리들에게 가히 힘을 주는 진정성이 있다.
고등부에서는 안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조효원의 「어머니의 해」가 독특했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해가 될 수 있는 그 극복의 이미지가 아름답다. 자식 앞에서는 <오월의 환한 햇살>이 되는 그 생명성을 어떻게 가볍게 지날 수가 있겠는가. 그 힘을 높이 샀다.
<그녀는 작은 희망을 촘촘히 박음질했다>고 표현하고 있는 고등부 충주여자고등학교 1학년9반 원유정의 「고향」도 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삶의 아픔이 어려있었다.
대학 일반부의 작품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재호의 「배꼽의 고향」을 심사위원들은 시로서의 완성도 면에서 높게 평가했다. <배꼽>에서 어머니가 나를 잉태했던 시간을 한 척의 배가 항해하는 바다의 시간으로 자리바꿈하는 시의 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꿰어 맞추려는 어수선함이 눈에 거슬렸다. 어떤 면에서는 제주 방언을 시로 자리바꿈한 최영철의 「꿈」이 창조성이 뛰어났다 할 수가 있다. 작품이 너무 길어 산문화되고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이름 다랑쉬!/뒤란 숲은 청청한데 /집터는 무너지고 우물은 메워지고 / -------동구 늙은 폭낭이(팽나무) 주름 깊더군> 같은 데서 제주의 한 같은 것을 깊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일일이 다 짚어드리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시에서는 무엇보다 서정성과 사유의 진정성, 그 순수성이 생명이다. 그래서 시가 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점을 깊게 간절하게 촉구하면 좋은 시가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진을 기대한다.
사흘 내리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구층 우리집도 눈 속에 파묻혔다. 냉기 도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을 박살내고 들이닥친 눈이 우편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오월도 끝나 가는데 무슨 눈이 이토록 퍼붓는단 말인가. 누군가 뚫어놓은 통로를 따라 막장 광부처럼 조심조심 걸었지만 눈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언 손 비비며 천천히 걷다 발을 헛디뎌 다른 통로로 굴러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사람 몇이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온기도 생기도 없었다. 어두운 통로를 휘감고 돌며 낮은 기타소리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한참 걸었지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언 손 불어가며 길을 내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배고프고 춥고 졸음도 쏟아졌으나 잠들면 얼어 죽을 것 같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톱까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눈을 파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 누가 있냐고, 아무도 없냐고, 아무도 안 계시냐고, 커다랗게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중기, 윤의섭, 길상호 등저 <사이펀문학상 수상시집>(사이펀 현대시시인선 12)
[수상소감]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
어떤 말로 수상소감을 시작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10월 어느 오후,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었습니다. 조만간 어느 문학상을 받을 예정이라, 제가 또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소식을 알려온 배재경 선생님이 다른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사이펀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기에, 상을 받아도 된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은 통화하는 동안 상을 또 받아도 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집에 와서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눈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시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와 Jazz 연작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도 Jazz 연작에 포함시킬까 고민하다가 따로 제목을 붙여 발표했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 어느 잡지에 두 편의 시를 넘기며, 시작 메모에 Jazz 연작을 마무리 한다고 적었습니다. 올해엔 신작시 청탁이 더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해 시 농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수상을 하며, 두 편의 시를 더 쓰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합니다. 시를 쓰는 시간은 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모두가 힘든 해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나 처음 마스크를 써 봤고, 발을 다쳐서 깁스도 했습니다. 병원에선 입원을 하라고 했지만,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라도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아픈 발로 절뚝거리며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행복한 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한 해에 두 번의 상을 받게 되는 행운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사이펀 문학상은 더 특별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심사를 해주신 강은교 선생님, 김성춘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정익진의 「유리 바다」 외 1편, 최휘웅의 「코로나」, 한정원의 「조슈아 나무 아래의 감자」 외 1편, 최은묵의 「리플리 증후군」 외 1편, 김참의 「미궁」 외 1편이었다.
본심에 오른 다섯 분의 작품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시력과 뛰어난 시적 테크닉 그리고 개성적인 언어의 운용을 보여주고 있어 수상작 한 분을 선정하는데 고심이 많았다
시적 긴장을 잃지 않고 주제를 치열하게 밀고 가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성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대상 작품들은, 현재 한국시의 다양한 목소리와 그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사이펀 문학상의 높은 위상을 짐작 하게 했다.
그 가운데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참 시인의 작품들은, 불확실한 미궁 같은 삶 앞에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고통스런 현실의 삶을 큰 폭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전개 시키고 있어 높은 신뢰감을 주었다.
오월에도 눈이 내리는 이곳, 통로는 막혀 있고, 거리에는 얼어붙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암울한 도시, 그러나 어두운 통로 끝에서 들려오는 낮은 키타 소리가 있고, 멀리 불 켜진 창들이 아직도 보이는 도시,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고,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가는 이 곳, 우리 사는 곳, 음악과 눈송이, 꽃을 감각적으로 대비시킨 김참 시인의 환상적인 시편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당신이 섬월처럼 잠든 사이 내 몸 어딘가 곡선이 자란다 물새는 희박하고 종일 노을이 부서지고 있었다 바위는 왜 당신을 모시고 갔나요 나는 하강하는 것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멀리 떠나온 것들의 대답이 쌓이면 섬이 된다 동해는 여전히 해가 뜨지 못했고 섬은 다시 유쾌해지기 위해 수척해진 이유를 묻지만 잠든 당신은 내게 아픈 발자국일 뿐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행간도 사막이겠다 모래섬을 배운 이후 익사를 위해 조용해지는 법을 배운다 동쪽보다 내가 먼저 해 뜨는 풍경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낮을 숨기는 방식이라고 말했고 모래와 모래의 오차가 커질수록 망부의 노래가 쌓여갔다 섬의 후렴을 따라 부르다 내 안에 숨은 당신의 둘레를 꺼내 먹는다
돌처럼 무른 마음
틈새로 저 멀리 흰 돛이라도 보일까
섬 안에 몸을 눕힌다
노을이 끝난 사람처럼 고백하다가
무섭게 나를 파먹는 섬을 본다
까만 내 안에 살던 등대섬
불이 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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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바람의 눈을 꿰다 / 김성배
[우수상] 호미곶에 회유한 쇠고래 / 서상규
[우수상] 불의 정원 / 황현자
어머니! 제가 사는 마을엔 불이 꺼지지 않고 타는 정원이 있습니다
수십만 명 밥그릇이 담긴 화로가
오십년도 넘게 쇳물처럼 출렁이고
열기에 놀란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납니다
어머니! 이곳은 바다가 육지사이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양수처럼 큰 파도 없이 돛 없는 배들이 달처럼 떠다닙니다
모감주 씨주머니처럼 떠돌던 우리도 바람에 실려 정착한 곳이
이곳입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글싸라기 같은 꽃이 원추꽃차례 가지에 염주처럼 피어있고
장마 오기 전 급비를 뿌려주는 모감주 가로수 길을 걸어
불의 정원까지 가고 싶습니다
나루끝에서 정원까지 한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가는 길엔 로즈마리 향이 도시의 향수로 뿌려져 있답니다
어머니! 밤이 되면 영일대 전각으로 가 바다에 뜬 달과 함께
밤바다 모래사장을 거닐고 싶습니다
밤바다 출렁이는 이곳의 전설들을
엣날 들려주시던 이야기로 듣고 싶습니다
멀리 등대에선 아버지가 돌아오실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달이 장난칠 구름도 없는 밤이면
정원의 불도 고로의 불도 등대의 불도
달빛과 함께 서로 밝기를 뽐내는 회향한 밤입니다
어머니! 제가 사는 마을엔 불이 꺼지지 않는 정원이 있습니다
포항문인협회(회장 서숙희)는 지난달 30일 ‘제13회 포항소재문학상’ 작품 공모 수상자를 발표했다.
최고상인 대상에는 송은유<사진>(경남 거제시)씨의 시 ‘연오랑 유문’에 돌아갔고, 소설 부문 최우수는 배현수(경북 포항시)씨의 ‘지미’, 시 부문 최우수는 김성배(경기도 부천시)씨의 ‘바람의 눈을 꿰다’, 수필 부문 최우수는 김태선(경북 포항시)씨의 ‘구름 날개를 단 환호공원’이 입상했다.
대상 작품 ‘연오랑 유문’은 언어의 유려함과 무리 없이 끌고나가는 힘이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은유 씨는 “2021년 힘든 시기에 무명의 시인에게 시를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포항문인협회 관계자 분들과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며 “지구 곳곳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시인들께도 호미곶의 뜨거운 내일이 식어가는 심장에 큰 힘이 되어 주기를 기원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 씨는 국어교육학 석사로 문학동인 Volume 2021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3회 남구만신인문학상 수상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월부터 10월 31일까지 3개월간 공모한 포항소재문학상 작품 공모에는 전국 각양 각지에서 시 부문에 111명 378편, 소설에 39명 40편, 수필에 41명 89편이 응모됐다. 시상식은 12월 4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