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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도 늙어간다 / 송재학

  

 

울 어머니 매년 사진관에 다녀오신다

그곳에서 아버지 늙어가시니

어머니 미간의 지층을 뜯어내면

지척지간 아버지 주름이다

굵은 연필이라면 머리카락 몇 올 아버지 살쩍에 옮겨

늙은 목탄 풍으로 바꾸는 게 어렵지 않다지

그때마다 깃 넓은 신사복은 찡그리면서

아버지, 어머니 그림자처럼 늙으신다

하, 두 분은 인중 닮은 이복남매 같기도 하고

오누이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고민은 할미의 얼굴로

어떻게 젊은 남편을 만나느냐는 것이지만

하, 이별의 눈과 입도 한 사십 년쯤 되면

다정다감하거나

닳아버리고

걱정하면서도

설렌다,

라고 되묻는 식솔들이 생기나보다

집이 생긴 별의 식솔들도 따라오나보다

 

 

 

내간체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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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이상화 문학제와 제26회 상화 시인상 시상식이 520일 이상화 고택 앞마당(대구시 중구 계산동)에서 열린다.

 

이상화 기념사업회(회장 윤장근)가 주최하고 매일신문사와 대구 MBC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아미국악단의 풍물 공연을 시작으로, 시인 문태영이 추모시를, 시노래 가수 진우가 시노래를 한다. 또 권미희 씨가 국악 한마당 공연을 한다.

 

1985년 제정된 상화 시인상의 올해 수상자(26)는 송재학 시인이다. 수상 시집은 <내간체를 얻다>. 1986년 등단한 송재학 시인은 그동안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등의 시집을 발간했고,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대구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다.

 

이날 송재학 시인은 시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로 제26회 상화 시인상을 수상한다. 수상작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는 젊어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매년 사진관을 다녀오면서 '자꾸만 늙어가는 얼굴로 어떻게 젊은 남편을 만날까 걱정하지만, 죽은 사람도 세월 따라 늙어가고 두 사람은 이복남매처럼 닮아간다. 세월 따라 모든 것은 닳아가지만 그래도 설렌다'는 내용이다.

 

송재학 시인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상화의 낭만주의는 설마 도저한 허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살과 뼈의 노래처럼 보여집니다. (중략)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화시인상 역시 그런 상화의 지향성에 대한 깨우침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하고 행사 리플릿에 수상수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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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얼굴 / 윤제림

 

 

어떻게 생긴

새가

저렇게

슬피 울까

 

딱하고 안타깝고

궁금해서

밤새 잠을 못 이룬 편집자가

자기가 만드는 시집에는

시인의

얼굴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뒤로부터, 시집에는 으레

새의

얼굴이

실렸다.

 

 

 

 

새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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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과 정병욱 교수가 각각 제14회 지훈문학상과 지훈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훈상 운영위원회와 나남문화재단 측은 지훈문학상에 윤제림 시인의 시집 새의 얼굴’, 지훈학술상에 논문 식민지 불온열전을 쓴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HK) 교수가 받는다8일 밝혔다.

 

윤 시인은 지난 1987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삼천리호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등의 시집을 냈다. 윤 시인은 동국문학상과 불교문예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 교수는 19992월 고려대 사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그해 11월부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근무하다가 20109월부터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학국(HK) 교수로 일하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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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문화재단(이사장 조상호 나남출판사 대표)이 경북 영양 출신의 문인 지훈 조동탁(1920~1968)을 기려 제정한 지훈상의 열네 번째 시상식이 이달 22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지훈문학상은 시집 새의 얼굴을 낸 윤제림 서울예술대 교수가, 지훈국학상은 역사서인 식민지불온열전을 펴낸 정병욱 고려대 교수가 각각 수상했다.

 

이배용 지훈상 운영위원장은 윤제림 교수의 시집 새의 얼굴의 시적 성취가 지훈 선생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고, 정병욱 교수의 연구서 식민지불온열전은 지훈 선생의 국학정신을 계승하고 우리의 국학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문학상을 받은 윤 교수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시간들이 지상의 모든 맨손, 맨발, 맨몸으로 이 부박(浮薄)하고 포악한 세월과 맞서는 동업자들의 나날처럼 뜨거운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면 좋겠다면서 간절한 소망은 제 시의 값이 제 밥값에 부족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또 국학상을 수상한 정 교수는 일제 말기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보통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냈다면서 이름 없고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과 역사를 찾아주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는 조지훈의 두 아들인 조학열, 조태열 씨와 수상자 가족, 문인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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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미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

거기엔 무단 투기 금지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당당했지

버려진 적 없으니까

어느 날 거기 옆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누가 널 낳았니

이름이 없어 좋겠다

털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

정체가 발각되는 것이니까

집을 나오는 길

두 발이 섞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얼굴과

머리카락이 엉키고

몸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흩어져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뭉쳐질수록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로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내 정체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분류하지 않는 곳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 이제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지

바깥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

욕조 안으로 들어가면

반쯤 잠기는 몸

최초의 기분은 여기에 있지

출렁인다

다리 하나가 기어나간다

 

 

 

 

2014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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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손에 쥔 알깨지든 태어나든 마주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시간들을 놓칩니다. 어쩌면, 놓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던 순간에도 주저앉아 울거나 소리라도 시원하게 질러 볼 타이밍을 보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꼭 남아 있습니다. 금방 터질 것 같은데, 아직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끌어안은 채 나는 시를 만납니다.

 

그녀들의 언어와 인격은 겹쳐지며 반짝입니다. 너무나 눈부신 나의 김행숙 선생님과 이원 선생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문드러진 나의 스무 살, 뼈를 심어 주셨던 우성환 목사님. 늘 그립다는 말을 이제 전합니다. 나의 가족. 박종주, 홍미숙, 박대인. 가장 뜨거운 세 개의 이름. 그리고 다정하게 내 이름을 발음해 주는 사람들. 나는 당신들이라는 숲에서 크게 숨을 쉽니다.

 

시나락 아이들. 우리 오랫동안 함께 걷자.

 

미숙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신 황현산 선생님, 나희덕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알 하나를 손에 쥡니다. 깨지든, 태어나든. 어떤 것이라도 마주하겠습니다.

 

 

 

 

내가 나일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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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세계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대화의 자세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10명의 작품은 예심위원들의 젊은 안목 덕분에 정형화된 신춘문예 스타일과는 다른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심사는 한 편의 잘 빚어진 항아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개성적 독법과 화법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수사적인 표현에만 의존한 시, 지나치게 관념적인 시, 낯익은 발상에 머물러 있는 시 등이 우선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은 박세미, 김잔디, 이현우의 작품이었다.

 

김잔디의 시는 이미지를 조형해 내는 솜씨가 섬세하고 감각적이라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풍경을 의심하는 초식동물의 눈은 까맣다라든가 우유곽 바닥을 훑는 빨대 소리에 놀라 수목은 뿌리를 내리고등 매력적인 구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과 이미지들이 파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뚜렷한 구심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이현우의 시는 상상력이 활달하고 다양한 소재를 유니크하게 소화해 낸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실러캔스, 달의 착란, 손금의 태계, 프로토아비스. 그는 무엇이든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시에도 자신을 전폭적으로 걸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재주의적 경향이 그의 유창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망설이게 했다.

 

박세미의 시는 간결한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증폭시켜 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노래하는 그는 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 당선작인 에서도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상투적 연민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난생설화를 탄생시킨다. 화자의 교체나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행과 연을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세계를 향해, 바깥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그 질문과 대화의 자세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쓸 것이라 믿고, 또한 지켜볼 것이다.

 

심사위원 나희덕 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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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기하학 / 함기석

 

 

야옹 야옹 비가 내린다

인간이 뇌혈관 실핏줄 같은 비

비의 발톱이 정원을 쥐새끼처럼 찢어놓은다

나는 3210층을 차례로 올라가

공중의 지하실에 도착한다

거기서 비의 공격성이

인체와 정신에 미치는 충격을 수량화한다

시 대신 기하학 문제를 풀며 오렌지랑 논다

3차원의 내가 1차원의 나를 초대해

2차원 마을에 사는 나를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피로 물든 백지화 함께 나를 찾아온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그래도 야옹 야옹 비가 내린다 오렌지는 웃고

기하학은 기하학을 살해한다

 

 

 

오렌지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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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가 주최하고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6회 이형기문학제가 오는 31일부터 62일까지 3일간 진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31일 신안동 녹지공원에 세워진 시인의 시비 앞에서 추모제를 시작으로, 2013년 이형기문학상 시상, 체험시백일장, 전국학생 백일장대회, 시낭송대회, 문학세미나, 문학의 밤, 진주문학기행, 배너시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1일에는 이형기 문학상 시상식이 개최되는데 올해 이형기문학상 수상자로 함기석 시인이 결정됐다. 함기석 시인(47)은 충북 청주 출생으로 1992작가세계로 등단해 시집 뽈랑 공원’, ‘착란의 돌’, ‘국어 선생은 달팽이’, 동시집 숫자벌레등을 출간했으며, 이번 수상 시집은 오렌지 기하학’(문학동네)이다.

 

심사위원은 원구식(시인, 현대시 시사사 발행인), 박주택(시인, 경희대 교수), 김언희(시인), 오형엽(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조강석(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씨가 맡았다.

 

이형기문학상은 선생의 높은 문학 정신을 기리고 후학들을 독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본상은 지난 1년간 출간된 시집 중에서 우수시집 1권을 선정해 시상하며, 수상자에게는 창작지원금 2천만 원이 지원된다. 이 상은 격월간 시사사2006년도에 제정, 2008년부터 이형기 선생의 고향인 진주시에서 주최하고 있다.

 

특히 올해 기념사업회에서는 시인의 시를 묶은 이형기 시 전집을 발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6회 이형기 문학제 기념호인 먼지로 돌아오다를 발간해 6회째를 맞이하는 문학제가 전국적인 문학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한편 진주에서 태어난 이형기(1933~2005) 시인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표적인 시로는 죽지 않는 도시’, ‘낙화등이 있다. 진주농림학교 재학시절에는 제1회 영남예술제(지금의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17세 때 최연소 나이로 문예지에 등단했으며. 20세기 후반 한국 시인들 가운데서 시를 소재로 삶과 인간 문제를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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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 장석남

- 모과의 일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해버렸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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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장석남과 문학평론가 이경수가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장석남은 지난 2월 발표한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이경 수는 3월에 내놓은

평론집 〈춤추는 그림자〉로 상금 2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창원시김달진문학관(관장 이성모)이 주관하는 이번 문학상 심사에는 시인 오세영, 신달자, 이숭원, 평론가 김윤식, 김종회, 문흥술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고도의 정신주의 시세계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 월하 김달진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제정된 김달진문학 상 시상식과 문학제는 오는 9월 8일 창원시 진해구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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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권기만

 

 

얼굴이 간지럽다

다섯 마리 토끼가 풀을 뜯는 모양이다

아무도 본 적 없지만 내 얼굴에는

다섯 마리 토끼가 산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깡충깡깡충 뛰어다닌다

내가 우울하면 쫄쫄쫄 굶는다

 

다섯 마리 토끼가 뛰어다니는 얼굴을 보는 건

즐겁다 토끼가 뛰어다니고 있다면 틀림없이

맛있는 대화중이거나 사랑하고 있을 때다

소곤소곤은 토끼가 제일 좋아하는 풀이다

 

한겨울에는 토끼도 어쩔 수 없이

말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잠을 잔다 봄이 오고

사방에서 꽃이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 소풍을 간다

꽃 한 송이마다 한아름의 미소가 사는 걸 알아보는 건

토끼다 입 다물고 있어도 봄이 지나고 나면

살금살금 미소가 살쪄있다

 

소곤소곤 조곤조곤을 뜯다가 어른 토끼들은

구름 속으로 이사를 간다 큰소리는 토끼가

제일 싫어하는 풀이다 아이들 말은 토끼의 발

버짐 핀 듯 얼굴 왼쪽이 간지럽다

다섯 마리 새끼토끼가 풀을 뜯는 모양이다

 

 

 

발 달린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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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나는 가끔 우주에서 날아온 별에 입술을 데이곤 한다. 꽃의 화기에 한동안 눈이 멀기도 하지만 그보다 바람의 꼬드김에 환장하는 날이 더 많다. 살갗에 별이 뜨는 날이면 달에서 파도가 친다. 산짐승 같은 어둠을 베고 잠들던 어린 시절에 내 영혼은 아직 멈추어 있다.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일은 언제나 상처다. 발전할수록 기억에 대한 훼손과 무례는 늘어난다. 돌아갈 곳을 만드는 일과 시 쓰기는 무관하지 않다. 문풍지의 떨림이 시의 긴장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 일 것이다. 기억이 저장된, 훼손되지 않은 영혼의 고향을 찾아 방황하는 현대인의 아픈 처지를 시가 담아낼 수 있다면 분명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복무하고 싶다는 바램을 오래전부터 품어 왔다. 그러나 떠밀려 억지로라도 건너야 하는 시대에서 개인의 저항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동시대의 아픔을 나누겠다고? 그러나 그러한 고뇌가 시를 관통하지 않으면 그 시는 공허하다. 그것을 앓아야 건강해지는 영혼이 있단 걸 시를 쓰면서 깨달았다. 시를 향한 고뇌가 훼손되지않은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비록 아직 그 길을 온전하게 찾아내진 못했지만 그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이젠 용기를 가지려고 한다.

 

투고해놓고 제 의 허약함에 놀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일에 용기를 내어서 걸어가보라고 손을 들어주신 강은교, 이경림, 권혁웅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문학 부흥에 앞장 서 주신 지리산문학회와 시산맥 관계자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동리목월 김성춘, 구광렬, 손진은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작나무, 시와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한몸처럼 응원해준 영남시 동인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평]

 

신인상 심사평에서는 흔히 '신인다운 패기'를 심사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사실 이 기준에 따라 신인을 고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신인상은 입사(入社)의 관문이고,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와 비슷해야지 달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패기란 신인의 숫기 없음을 격려하거나 거친 솜시를 에둘러 말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달랐고, 심사위원들로서는 그 점이 기뻤다. 10명의 본심자(강두원, 강태승, 권기만, 남상진, 박광석, 박선희, 박은석, 이기호, 임원혁, 전영) 중에서 세 명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박광석의 시들은 오랜 수련의 흔적을 품고 있다. 호흡도 안정되어 있고,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도 탄탄하다. 그런데 바로 그 안정과 탄탄함이 약점이다. 생각이 제재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표현이 흔한 투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시와 비슷하다는 것만큼 시에 해로운 것도 없다. 근사(近似)하다는 건 바로 그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박선희의 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때 시적인 정념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간주되었던 구절들이 있다. "바람의 행진" "지문 위 실핏줄" "몸에서 자라는 산" 같은 구절이 그런데, 모두 이 응모자의 시에서 뽐은 구절이다. 이런 구절은 정념을 담는 게 아니라 흩어버리는 역활밖에 하지 못한다. 잘 표현된 상념일수록 타협의 산물임을 명심해주셨으면 한다.

 

서두에서 말한 패기를 권기만의 작품에서 발견했다. 능청스레 풀어가는 입담 너머에서, 삶에 관한 통찰이 오롯이 빛난다. 무엇보다도 '그럴듯함'의 흉내를 내지 않은, 생활세계에서 길어 올린 정서가 작품마다 배여 있다. 동거처럼 미소 짓게 하는 작품에서 설국처럼 둔중한 슬픔을 안은 작품까지, 그 정서의 폭도 넓다. 수상을 축하드리고, 패기 있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시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강은교(시인), 이경림(시인),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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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펴야겠다 / 박철

 

 

올 가을엔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눈 내리는 밤길 달려갈 사나이처럼

따뜻하고 맞춤한 악수의 체온을---

무슨 무슨 오피스텔 몇 호가 아니라

어디 어디 원룸 몇 층이 아니라

0000면 산 0번지가 아니라

비 듣는 연립주택 지하 몇 호가 아니라

저 별빛 속에 조금 더 뒤 어둠 속에

허공의 햇살 속에 불멸의 외침 속에

당신의 속삭임 속에 다시 피는 꽃잎 속에

막차의 운전수 등 뒤에 임진강 변 초병의 졸음 속에

참중나무 가지 끝에 광장의 입맞춤 속에

피뢰침의 뒷주머니에 등굣길 뽑기장수의 연탄불 속에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지우개똥 수북히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겠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아름다운 가을 날 나는 새로운 안식처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야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서설이 내리기 전 하나의 방을 마련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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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12회 백석문학상에 시인 박철 씨(50·사진)가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철 시인은 1987<창작과비평>김포외 열네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이번 신작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에서 시인은 누구나가 겪고 느끼는 사소한 기억과 일상의 마디마디를 돌려 말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세상을 향한 단호하고도 따뜻한 애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시의 자리를 거닐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백석문학상에 주어지는 상금은 1000만 원이며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자로는 황시운 씨(34)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차고 날카로운 달이며 상금은 3000만 원이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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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길 / 정양

 

 

흐린 하늘 밑

들 건너 마을이 자꾸 멀어 보인다

눈에 묻힌 길은 아예 잃어버렸다

들판을 무작정 가로지른다

발목이 아무데나 푹푹 빠진다

 

잃어버린 길 위에 까마귀떼

까마귀떼도 길을 잃었나보다

어디로 날아가지도 않고

눈밭에 우두커니들 서 있거나

느릿느릿 서성거린다

 

길이 보여도 길을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길이란 잃어버리려고 있는 거라고

구구구구 두런거리며 눈 덮인 들판을 조금씩 비켜주는 까마귀떼

 

들끓는 검은 피에 취하여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여는 까마귀를 따라간다

또 눈이 오려는지

먼 마을 연기가 낮게 깔린다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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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7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중견시인 정양(鄭洋63) 전주 우석대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문학동네)이다.

 

김제에서 태어난 정 시인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돼 등단했다. 그는 상은 내가 탄 것이 아니라 시집이 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심사위원회는 "이 시집은 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독거려온 양심과 고독을 마치 다정한 이웃들과 이야기하는 듯한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예지와 훈기를 내뿜고 있다"고 평했다.

 

최근 2년 내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순정한 문학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1997년 제정됐다. 상금은 1천만원이며 시상식은 18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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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호수 / 이시영

 

 

호수

 

갈매기들이 한강까지 날아와 쉰 적이 있다.

여기가 바다인 줄, 바다의 큰 호수인 줄 알고.

 

 

목련나무가 한겨울에 솜털 폭풍을 달았다

여차하면 하늘을 향해 발사하겠다는 듯이

 

8.15

 

기념식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유족이 올해도 어김없이 비밀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국의 하늘은 저리 푸르건만

 

아침

 

너는 왜 여기까지 날아와 새가 되었니?

동몽골 고원의 푸른 草地에 내려앉아 아침 부리를 닦고 있는 작은 참새여

 

경찰은 물러가라!

 

옛날 동숭동 서울 문리대 시절, 교련반대 시위로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경찰이 지루하게 장기 대치중일 때였다.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학생 하나가 대열에서 뛰쳐나오더니 맨 앞의 핸드마이크를 빼앗아 쥐고 경찰을 향해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놀란 경찰이 후다닥 방패를 챙겨들고 일단 진격 자세를 취하자 핸드마이크가 다시 한 번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만약 안 물러가면, 만약 안 물러가면 안 물러가는 걸로 간주하겠다!” 그래서 경찰도 와르르 웃고 학생들도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뒷날의 유명한 소리꾼인 임진택이었다.

 

즈가버지

 

전라도 여인들은 남편을 부를 때 꼭 즈가버지라고 했다. 즈그(that) 아버지라는, 자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간접호칭인 셈인데 수많은 즈가버지들은 또 즈거매들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들어 회관 같은 데 한꾸네 모여 있다가도 즈가버지 여기 짬 보시오 이하면 왜 그려?” 하면서 그 중의 한 사내가 진짜 고개를 쏘옥 내밀고 나오는 것이었다.

 

취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남산 중앙정보부, 그곳에 들어가 신원진술서 취미란에 식사라고 썼다가 치도곤을 당한 유쾌한 학생이 있었다. “뭐 이 새끼 취미가 식사라고? 이 새끼 이거 순 유물론자 아냐?” 그 일로 그는 조사도 받기 전에 밤새도록 수사관 두 명에게 돌아가며 맞았다는데, 가난이 원죄이던 시절 그는 런닝구 바람에 책을 끼고 신당동에서 동숭동까지 걸어 다닌 강골의 고학생이었다.

 

베스트셀러 시인들을 위하여

 

누구나 다 한때는 순결한 영혼들이었다. 독자들이 그 영혼에 입 맞추자 그들은 배부른 돼지들이 되어 부끄러움도 잊고 제 분홍 머리들을 서점의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채 호호 웃고 있으니 우리가 이제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

 

* ‘호호 웃는 돼지머리이미지는 이성복의 시집 , 입이 없는 것들139쪽에서 빌려왔다.

 

 

 

바다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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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6회 백석문학상에 이시영 시인의 시집 <바다호수>(문학동네)가 선정되었다. 이 상은 창비사가 시인 백석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 주관하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이 개인의 난숙한 체험이 폭발하듯 응집된 시집으로, 정밀한 관찰력에 온기어린 서정성이 결합하여 개인과 역사가 절묘하게 조우하는 장면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시의 본령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1124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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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 김영무

 

 

암선고를 받은 순간부터

(암은 언제나 진단이 아니라 선고다)

너의 세상은 환해진다

컴퓨터 화면 위를 떠도는 창문처럼

기억들이 날아다닌다

원시의 잠재의식도 살아나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저 우주에 있는 너의 미래의

별똥들이 쏟아진다

어둠은 추방되고, 명암도 무늬도 사라진,

두께도 깊이도 무게도 지워진,

노숙과 밥굶기와 편안한 잠과 따뜻한 한끼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칸막이가 허물어진

환하디 환한 나라

시간의 뿌리와 공간의 돌쩌귀가

뽑혀나간 너의 현실은 안과 밖 따로 없이

무한복제로 자가증식하는

, 디지털 테크놀로지 최첨단

암세포들의 세상

지독한 오염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국자리공, 황소개구리, 실지렁이, 거머리가 못 되어

시름시름 힘을 잃고 약자로 전락한 어느 순간부터

경쟁력 없는 자 솎아버리는 구조조정의

덫에 걸린 너의 삶은

순백색 빛의 나라, 가상현실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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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사가 주관하는 제3회 백석(白石)문학상 수상작에 김영무(57·사진)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시집 가상현실(문학동네·2001)이 선정됐다. 신경림 시인 등 심시위원은 이 시집이 삶의 경의로움을 감동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근대문명의 위기를 밝게 통찰한 작품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영무의 가상현실은 몇 겹의 '가상현실'의 코드를 가지고 있는 다층적 텍스트이다. 암의 은유도 사회 현실의 코드, 역사의 코드, 종교의 코드, 제국주의적 코드 등 여러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다의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질병을 이만큼 은유화시켜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확산시켜 다의성을 획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의 개인적 질병의 텍스트가 사회, 역사, 정치, 문화적 질병의 텍스트로 확산되어 몇 겹의 은유로 해석될 수 있는 점이 이 시집의 탁월한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1130일 오후 6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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