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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와 나 / 김참

 

 

우리 집엔 귀가 넷 달린 거미가 산다. 내가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 동안 배고픈 거미는 내 발톱을 갉아먹고 조금씩 살이 오른다. 내가 낮잠을 자면 거미도 내 귓속에서 낮잠을 자고 내가 노란 꽃 활짝 핀 해변을 거닐면 거미도 내 귓속에 누워 꿈을 꾼다. 어두운 부엌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거미는 줄을 타고 내려와 내 발가락을 갉아먹는다. 봄이 와서 마당 가득 분홍빛 모란이 피면 거미는 집 곳곳에 투명한 집을 짓는다. 벌레들의 무덤을 만든다. 우리 집엔 귀가 넷 달린 거미가 산다. 초승달 뜬 하늘에 하얀 별 총총 박힌 어둡고 깊은 밤 거미는 네 귀를 쫑긋 세우고 내 귓속에 하얀 알을 낳는다. 여름이면 새로 태어난 거미들이 집 곳곳을 기어 다닌다. 귀가 넷 달린 수백 마리 회색 거미들. 내 살을 파먹고 통통하게 살이 오를 작은 거미들. 장마가 지나가면 거미들은 투명한 줄을 타고 논다. 습하고 무더운 날이 계속된다. 거미는 내 살을 갉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빨랫줄에 걸린 생선처럼 조금씩 야위어 간다.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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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학회와 계간 '시산맥'은 오는 1031일 경남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제15회 지리산문학제에서 시상할 지리산문학상에 김참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으로 '거미와 나' 5편이 최종 확정됐다고 20일 밝혔다.

 

계간 '시산맥'과 지리산문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지리산문학상은 시상금이 1000만원으로 전국 시인들이 선망하는 대표 문학상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번 제15회 지리산문학상은 최문자 시인 등 심사위원들이 오랜 검토와 격론 끝에 김참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시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시에서든 삶에서든 무엇을 얘기하기보다는 어떻게 얘기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그런 점들을 감안해 김 시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심사배경을 밝혔다.

 

또한 지리산문학상과 함께 공모한 제15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의 당선작은 정성원(43·통영)'안개제조공장 굴뚝에 사는 소녀를 아니?'5편이 선정돼 같은 날 수상하게 된다.

 

본심은 최문자 시인과 홍일표, 조정인 시인 등이 맡았으며 수상작품과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계간 '시산맥' 가을호와 지리산문학동인지에 소개될 예정이다.

 

지리산문학상은 시상 전년도 발표된 기성 시인들의 작품 및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제로 운영된다.

 

지리산문학상은 함양군과 지리산문학회가 제정해 첫해 정병근 시인으로부터 유종인, 김왕노, 정호승, 최승자, 이경림, 고영민, 홍일표, 김륭, 류인서, 박지웅, 김상미, 정윤천, 조정인 시인 등이 수상했다.

 

함양과 지리산지역 중심으로 문학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며 매년 지리산문학동인지를 발행해왔다. 문학회는 그동안 문병우, 정태화, 권갑점, 박철 등의 시인과 노가원, 곽성근 작가와 정종화 동화작가, 박환일 문학평론가 등을 배출했다.

 

이번 지리산문학상 수상자인 김참 시인은 김해 출신으로 1995'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 등과 저서 '현대시와 이상향' 등이 있다. 현대시동인상, 김달진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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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백서 / 김상미

 

 

아주 가끔은 우울하고 대부분은 명랑해요

사람들은 내가 명랑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명랑은 우울보다 격조가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명랑하고 싶어요

무엇에든 광적으로 집착하는 체질이 못 되거든요

광적인 집착은 병적인 우울을 낳지요

언제나 노심초사 전전긍긍

어디에서 불행이 오는지 어디로 행복이 달아나는지

쉴새없이 탐색하고 추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점점 명랑에서 멀어져 우울한 괴물로 변해버리죠

정말이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단것보다 쓴 것을 더 좋아한 탓인지

여하한 고통 위에 또 고통을 세워 그 안에 아무리 사나운 북쪽 창을 달아놓아도

내 열병은 시들 새도 없이 하루 만에 거뜬히 끝나버려요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합리적이고 쓸데없이 현실적인

값비싼 망원경 따위는 집착 강한 우울한 사람들에게나 모두 줘버려요

나는 그냥 바람 부는 길가에 앉아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릴래요

무언가가 다가와 황홀하게 나를 감동시켜주길 원할래요

로댕의 대성당처럼 가우디의 카사 밀라처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은 지중해처럼

지로나의 내밀한 구시가지처럼 고야의 검은 집처럼 김정희의 아름다운 세한도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뒤뚱뒤뚱 해맑은 어린아이의 단순 명쾌한 웃음소리처럼

오성의 드높은 담장 단번에 밀치고 들어오는 놀라운 명랑에

자연스레 내 온몸 빠져들기를 원해요

아주아주 오래된, 처음과 끝 같기를 원해요

너도나도 창백한 백합꽃 같은 우울에 매달려

격조 있던 본래의 심연 구기고 구겨 뒤틀린 철갑 같은

고상 찬란한 신종 우울증

끊임없이 생산해내며 자랑스레 뻐기든 말든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언제나 명랑하고 싶어요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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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지리산문학회는22일 제12회 지리산문학상에 부산 출신의 김상미(61) 시인의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수상한 김상미 시인은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래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등을 출간했으며, 2003년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동네시인선 아흔두 번째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펴낸 김상미 시인은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니 올해로 시력 27년 차다. 그새 시인이 품은 시집은 이번 신작까지 포함하여 단 네 권. 게을렀다고 하기에 그간 김상미 시인이 우리 문단에 선보인 시들의 존재감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고 깊어 아무래도 시와의 팽팽한 샅바 싸움에 시간을 충분히 소요한 까닭이겠거니 하게 된다. 그건 뭐 시를 보면 알 일인데 무엇보다 시 한 편 한 편에 내재된 살아 있음의 형용이 탁월하게 빛난다. 이토록 입말 글말을 예쁘게 또 천진하게 참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가 있을까. 더군다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에 미치는 기적을 매일같이 기록하는 사람. 그런 시인 김상미. 세번째 시집에서 네 번째 시집으로 건너오기까지 14년이란 시간 동안 시인은 아주 사소한 데서 기쁘고 행복하며 슬프고 아픈 일들을 찾고 모아왔는데, 그 결실들에 안도하는지 이리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고.

 

누구보다 발랄하고 누구보다 솔직하고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유 속 내지른 시편들이라지만 종국에는 냉정이 비치고 냉기가 서린다. 내내 뜨거웠다가 막바지에 차가워지면서 지르는 한마디의 무시무시함을 시인은 칼처럼 지니고 있다. 은장도가 아니고 과도도 아니고 도루코 면도날 같은, 종이에 싸면 도저히 모를, 작디작지만 예리한 칼날. 한껏 신나게 뛰놀게 하다 시무룩하게 뒤돌아 집에 가게 만드는 시들의 힘은 결국 자기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서일 텐데, 마치 거울을 보듯 우물을 보듯 휴대폰 카메라 속 나를 보듯 군데군데 여러 대목에서 우리의 얼굴을 비춰 우리들의 살갗에 닭살을 일게 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먼저 묻는 것이 아니라 나 이렇게 살고 있는데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 시집. 나도 깔 테니 너도 까라는 시집. 발문 형식으로 쓰인 우대식 시인의 해설이 이 시집 읽기에 더한 흥미를 돋구어준다.

 

지리산문학상은 전국 20여개 시 전문 문학상 중에 소장파 시인들 누구나가 받고 싶어하는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 문단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데다가 매년 제전위원장과 심사위원을 새롭게 선정하는 등 외부요인에 휘둘리지 않는 엄격한 관리로 정평이 나있다.

 

그동안 정병근, 최승자, 고영민, 박지웅 등의 수상자를 발굴한 지리산문학상은 지역과 유파 등을 구분하지 않고 시의 문학적 완성도와 비전만을 놓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문학상은 매년 기성 시인들의 작품과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제로, 문학평론가 홍용희와 유홍준, 정재학, 고영민 시인 등이 예심과 본심을 거치며 숙고 끝에 수상작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28일 오후 3시 함양여중 목련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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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 김민정

 

1

자물쇠 단단한 철창 안에서만 잠들 줄 아는 날 내다 팔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포수로 그림자를 갈아입는다 나는 도망치지만 발빠르게 허골아가는 외발자전거는 땅속 깊이 층층 계단으로 쌓아 내린 뼈 마디마디를 뭉그러뜨리며 또 다른 사각의 메인 스타디움 안에 발 빠진다 끝도 없이 페달을 감아대는 페이스 끝에 홈스트레치에 접어들자 관중석마다 빽빽이 들어차 있던 나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내 나침반을 겨냥한다 어서어서 속력을 더 내렴, 너만 도착하면 완성된 퍼즐 속에서 우리들 되살아날 수 있을 거야 숟가락 들어 한 입 떠낸 아이스크림 같이 희게 휜 등뼈로 사격용 표적 하나 전광판에 부조되어 있다 포물선을 타 넘어가는 장외 홈런볼에 올라탄 내가 엿같이 찰싹 하고 내 실루엣 위에 달라붙는 순간, 탕! 소리와 함께 아빠의 눈알이 10점 만점의 놀라운 타격 솜씨를 자랑하며 과녁 중앙을 홉뜨고 들어온다 아빠가 마스카라 칠해 달군 속눈썹 깜빡거릴 때마다 내 몸에서 부서져 내리는 퍼즐 조각들이 까만 섬유소의 꼬임 안으로 쏟뜨려진다 그러나 낄낄거리며 인조 속눈썹을 떼어내는 아빠, 그걸 방비 삼아 내 키만 한 007가방 안에 나들을 싹싹 쓸어 담고는 자물쇠를 채워버린다

 

2

아빠가 도끼로 007가방을 내리찍는다 아야, 아야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저들끼리 자꾸만 부둥켜안으려는 퍼즐 조각들을 아빠는 시침 가위로 잘게 더 잘게 오려낸다 고춧가루처럼 매콤한 근육가루들이 아빠의 베게 옆에 잠들어 있던 발가벗은 마네킹의 몸 위로 솔솔 뿌려진다 코끝을 간질이는 제 피 맛에 재치기를 안으로 삼키느라 마네킹의 젖퉁이와 엉등이가 부풀고 있는 풍선처럼 똥글똥글해진다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새어나오는 끈적끈적한 물풀로 손 버무린 아빠가 허겁지겁 마네킹의 몸에 퍼즐 조각들을 갖다 붙인다 잠깐만요 아빠, 설사를 참을 때처럼 뜨거워지는 입이 내 목젖을 쥐락펴락하고 있어요 눈을 뜨니까 난소 뚜껑이 벌어지고 코를 푸니까 피범벅인 태반이 뭉클 쏟아져 나오는 걸요 살 썩고 난 부엉이 같은 내 얼굴에서 솟고라지고 있는 이 털들 좀 보세요 대체 이게 뭔 일이래요?

 

3

지하에 계신 음부와 음모가 침봉으로 내 얼굴에 난 털을 벗긴다 나는야 털북숭이 라푼젤, 짜다 푼 목도리의 털실같이 꼬불꼬불한 털을 발끝까지 내려뜨린 채 울고 있다 울음을 짜보지만 눈물은 흐르자마자 냄새나게 덩어리지는 영일 뿐, 에이 더러운 년 킁킁거리며 내 얼굴을 냄새 맡던 음부가 빨간 포대기같이 늘어진 혀로 내 털 한 가닥 한 가닥을 싸매 핥는다 조스바를 빨던 입처럼 음부의 혀끝에서 검은 색소가 뚝뚝 떨어진다 이제부터 이게 네 머리칼이야, 알았어? 음모가 스트레이토용 파마약을 이제부터 내 머리칼인 털 한 가닥 한 가닥에 찍어 바르더니 참빗으로 쭈쭉 펴 내린다 물미역같이 홀보들한 머리칼을 부르카처럼 치렁거리며 나는 음부와 음모의 손에 잡힌 채 시장으로 끌려간다

 

4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껍질 벗겨 통째로 삶은 계람처럼 맨송맨송한 머리통들이 내 주위에 둘러선다 수많은 볼링핀들이 저 먼저 머리 쪼매고 싶어 그 굵은 허벅지로 서로가 서로에게 허벅지후리기를 해대더니 눕자마자 발딱발딱 잘도 일어난다 십자가에 날 뚜드려박는 아빠의 망치질이 다급해지고 엄마가 떨어뜨린 대못이 구경 나온 아이들의 발등을 찍는다

꼬아 내린 검은 밧줄을 타 오르고 싶어 질금질금 오줌 지리고 있는 오뚝이들에게 이런 젠장, 염병할 놈의 요강 같은 평화 있으라!

 

5

아빠가 나눠준 족집게로 오둑이들 차례차례 내 머리칼을 뽑아댄다 나이스 풀러, 예 좋아요 그치만 한 번에 딱 한 가닥씩이오 머리칼이 뽑혀나가 입 벌어진 모공 속에다 엄마 색색의 셀로판지로 깃대 단 이쑤시개를 꽂아 넣는다 쑥쑥 잘 크거라 내 나무야 엄마가 물조리개로 물을 뿌려 주자 나는 화살이었다가 우산이었다가 낙싯대였다가 장대높이뚜기용 장대로 키 자라는 한 마리의 거대한 고슴도치가 되어 쀼쭉쀼쭉한 털들을 비벼대기 시작한다 울울창창한 가시숲에서 색색의 단풍이 물들어 나리자 여기저기 달아든 담뱃불로 지져진 내가 폭죽처럼 하늘을 향해 쏘여진다 색색의 꽃방석을 뒤집어 쓴 채 날으는 고슴도치 한 마리, 사방팔방 불붙은 가시를 발사한다 땀구멍마다 날아든 가시로 아빠는 밤송이가 되어가고 밤송이 브래지어와 밤송이 팬티를 주워 입은 엄마는 간지러움을 참다못해 숨이 꼴깍 넘어간다 밀고 난 겨드랑이 털의 흔적처럼 까슬까슬한 오뚝이들의 정수리 위로 시뻘겋게 달궈진 철골 한 줄 선 굵게 내리꽂힌다 얼굴에 금이 간 핫도그들, 서둘러 몸에 박힌 프랑크 소시지를 먹어치우려 하지만 끝끝내 가시지 않을 탄내를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다.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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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기념사업회는 제33회 이상화 시인상에 김민정 시인(42)을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오탁번 전 고려대 교수, 장석주 시인, 장옥관 계명대 교수, 이규리 시인)은 이병률, 김민정, 문성해 시인을 최종 대상자로 꼽았으며, 논의 끝에 김 시인을 수장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김 시인을 두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어떤 주의, 관점에도 눈치 보지 않는 그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다. 내적 저항이 있으며 말과 말 사이의 탄력이 거침이 없다. 특히 시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누추한 자신을 더러 내는 용기, 즉 칼끝을 자신에게로 향하는 의식이 값지다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쓸모 없기를>이 있고 산문집 <각설하고>가 있다. 박인환 문학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상화 시인상 시상은 오는 25‘2018 상화문학제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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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올 때 / 문태준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 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은 왼쪽을 크게 비워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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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충북 옥천군에 따르면 이 지역 출신인 정지용 시인(鄭芝溶·1902~1950)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정지용문학상의 제31회 수상자로 문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저녁이 올 때이다.

 

심사는 신달자·김광규 시인, 이남호·홍용희 문학평론가, 유자효 지용회장 등 5명이 했다.

 

김 시인은 수상작에 관해 “1930년 정지용 시인은 불 피어오르는 듯 하는 술/한숨에 키어도 아아 배고파라저녁 햇살을 노래한 바 있다그로부터 90여년 후에 문 시인이 마지막 햇살이 사라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시에 담아 지평을 넓혔다라고 평했다.

 

문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서 처서(處暑)10편이 당선해 등단했다.

 

시힘동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상은 32회 지용제기간(59~12)인 다음 달 11일 오후 4시 옥천읍 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한다. 시상금은 2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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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절 하얀 꿈


그 절에서는 

도자기 그릇을 팔았다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들 했다


비 내리고 천둥 치던 날

절에 갔다


먼 길을 걸어온

손과 발에선

흙냄새가 난다


내가 찾고 있는 그것은 조용하고 둥글다 그것은 초록색과 파란색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색을 띤다 그것은 불타오르며 깨진다 그것은 눈을 감는다 침묵한다 그것은 알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둥그런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자주 형태를 바꾸고 색깔을 나무를 더 기울게 만드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었다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이런 문장을 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떠보니 텅 빈 방이었고


죽지 않고 도착해서 기뻤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곧 내가 찾는 것을

찾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고


밖에서는 여럿의 사람들이

나직이 이야기하는 소리


그들은 즐겁다

처음 들어보는 이국의 언어들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구나


겨울이 도착하고 있다

얼었다 녹고

다시 얼어버리는 눈

미끄러지는 사람들


나는 순간 황홀해진다

눈발 속에

홀로 절이 서 있다


하양 문과 검은 지붕

검은 지붕 위 쌓여가는

햐얀 눈

정직한 세상

고요하고 무궁하게



내가 찾는 것 무엇이었다가 곧 아무것이 되는 그것은 불빛 그것은 굴러가는 토마토 그것은 이국의 사람들이 마시는 뜨거운 홍차 그것은 향기 그것은 허기 그것은 치통 그것은 늙은 개의 얼굴 그것은 울리지 않는 전화벨 그것에 손을 가져가면 순간 사정없이 깨어져


무수히 많은 파편들은 

흐르고 넘어지고 흐르고 슬프고 흐른 채 나에게 도달한다

눈을 질끈 감는다


다시 빈방에 남겨져 있다


인기척이 들리고

흙냄새가 가득한






순무는 순무로서만


너른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87년식 오토 밴의 갖은 소음과 진동 속에서 우리는 순무에 대해 말했다. 난 순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순무를 좋아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큼 순무에 대해 잘 알진 못했다. 나는 그에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순무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사랑할 수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는데 나는 좋아하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아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순무와 함께 온천을 가거나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들으며 우유 거품이 올라간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순무의 적정 입수 온도는 63도이며 그 이상은 질겨진다는 것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순무라면 뭐든 좋다고 한다. 질기든 맵든 삭아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순무를 찾기 위해 차를 멈추고 순무밭으로 들어갔다. 그때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순무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휩쓸려 우리도 순무의 파란 머리를 쑥쑥 뽀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순무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 순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자네들은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구만.


함께 쪼그려 앉은 아주머니들은 모두 혀를 찼다. 하지만 순무들은 우리의 손에 놓인 채 가만히 침묵만 할 뿐이었다. 그는 이것이 순무들이 기분이 좋다는 신호라고 속삭였지만 나는 순무의 속은 당최 모르는 거라며 침울한 표정으로 깍둑썰기를 하였다. 아주머니들은 작게 조각난 순무에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버무리더니 우리의 입 속에 넣어주었다. 아주머니들이 물었다. 아직도 모르겠냐고.


우리는 잇따라 입을 벌리며 더 달라 칭얼 댈 뿐이었다.


* 사뮈엘 베케트, <충분히>, <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자들>







박태기나무아래서 벌어진 일


은영이와 찬영이로

다시는 함께 불리지 않는다


우리는 늘 영이었는데

생각은 서로 무한하다


그래서 무슨 생각 해, 하면

이인삼각으로 달리던 우리의 그림자


꼬여버린 다리 세개와

늘 앞서 있던 너의 어깨를


그리고 청기 백기 내려간

텅 빈 운동장에서 나는

단지 미안하다 했을 뿐인데


파벽돌처럼 딱딱하던 네 얼굴

참 예뻐서 갖고 싶었던 너의 치맛자락

끈 풀린 운동화 너의 지랄맞은 친구들까지


전부 다 폭발하던 그때 그 가을 하늘

나는 바닥에 엎드려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그때 그 달빛 아래

아이들이 떠나도 붉은 멍투성이의 나무 하나

잠시 숨죽이더니 계속 자라는 거 있


주렁주렁 홍채 같은 열매들이

사방에서 흔들리고


하지만 언제고 영아

네가 말라비틀어진 내 아래를 지나간다면


그땐 겨울 지나 봄일 것만 같고

나도 초록을 피울 수 있을 것만 같고


찬영이와 은영이로

운동장은 가득할 것만 같고

그래도 나는 영이고

영아, 나는 너 다 이해해


그러니 영아, 계속 달려

나 여기서 기다릴께 혼자 꽃피울게


옛날 일은 다 잊었는데

누군가 소원을 물어봐


영아, 기억나지 않는 소원이란

얼마나 오래된 걸까







마당엔 어른들이 모여 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솥을 들여다본다 솥은 우리 가문의 자랑 큰할머니와 할머니와 어머니는 솥에서 태어났다 이 모든 솥뚜껑에 맞아 죽었다 언니는 솥 아래서 불타 연기가 되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솥에 누군가를 넣고 누군가를 꺼내며 누군가는 솥을 걱정한다 솥에 들어갈 사람이 점점 부족해 누군가 내게 너는 주워온 게 분명하다고 한다


검은 솥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채워도 넘치지 않는 검은 물이 있다 그 속엔 무엇이 있길래 솥은 한없이 검은가 나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쓰지 않는다 솥이 없는 하루에 대해 쓴다 솥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쓴다 마당을 둘러싼 담장 밖에 대해 쓴다 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와 언니가 아닌 것들에 대해 쓴다


계속 쓴다고 되니


죽은 줄 알았던 언니가 늙은 배롱나무를 들여다본다 나무 아래서 고양이가 죽은 제 새끼를 핥고 있다 언니는 죽기 너무 아까운 미소를 짓고 있다 살아 있는 고양이는 이미 죽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제 그만 솥을 치우자고 한다 그는 이제 곧 붙잡혀 솥에 들어갈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


쓰지 못한다 나는 솥에서 태어나 솥을 맴돌며 솥으로 돌아갈 사람이고 솥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고 결국 백지에 불을 붙여 솥에 던져 넣게 될 사람이다 연기로 가득해 경보소리가 울리고 어른들이 도망가면 그 뒷모습을 지켜보게 될 사람이다 나는 솥의 자랑일 것이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가장 많은 미움을 쌌던 인물처럼

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울에 빠져 죽었다는 그와는 달리;

반대편에 잘 도착했는데


돌아보니 사방이 꽁꽁 얼어 있었고

그애는 죽었겠구나


죽은 이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모여 흐르는 땀을 연신 닦다가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검고 아득해서

바닥이 보이고


돌맹이를 던져볼가


아서라, 죽은 이는 다시 부르는 게 아니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연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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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더 아프려고 밥도 꼬박고박 먹고 알약도 먹어

물처럼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는 하루

친구라도 만들어야 할까? 우동 먹다 고민을 하네

무서운 별명이라도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약 먹고 졸린 의자처럼 찌그덕삐그덕 걷고 있는데

사람들은 화가 나면 의자부터 집어던지네

난 뾰족하게 웃는 모서리가 돼야지

살아본 적 없는 내 미래를 누가 부러뜨렸니!

약국 가서 망가진 얼굴이나 치장해야지

뒤뚱뒤뚱 못 걸어야지


난 은밀한 데가 조금씩 커지고 있어

몸은 축축해 곰팡이가 넘치는 벽이 되려고 해

사람들이 깨트리기도 전에

계란프라이처럼 하루가 누렇게 흘러내리고

탱탱하게 익어가는 구름들아 안녕

누가 좀 만져주면 좋겠지만


뚱하게 걷다보면 장대비가 내리고

집에 뛰어들어가도 계속 비를 맞는다


터진 수도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난 자구 흘러넘치는데 바닥을 닦아낼 손이 안 보이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미끄럼틀을 타면

곁을 지나가던 어깨들이 뭉툭 잘려나가지

떨어진 난, 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겠지만







뾰족한 지붕들이 눈을 찌르고 귀마개를 뺏더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고


세면대 속 출렁이는 비명을 싯어내자

앞니가 두 개나 달아난 내가 뚱하니 서 있네

누구한테 자꾸 털리고 다니니?

내가 나를 털었는데 어젯밤에 발작이 있었거든요

더러워진 손바닥과 구린내 나는 발가락을

우리집 마녀에게 내민다

젖꼭지 캄캄한 엄마가 냄새를 맡고 뛰쳐나와

불심검문처럼 내 몸을 구석구석 더듬다

내일쯤 잡아먹으면 끝내주겠지?

먼지 쌓인 악몽이 내 피를 한 차례 휩쓸다 간다

생각이 엉킬 때마다 머리카락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검은 수초가 되어 발목을 넘어뜨리고

고무줄처럼 질긴 얼굴을 누가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찝지기는 나의 일상들

불안을 쪼그맣게 오려서 알록달록 꾸민다

미모를 갱신한 내가 약국으로 놀러간다

내 인생 하류를 통과하는

소화제를 한 움큼씩 집어삼키면

우와 시원하다! 몸에 찍힌 발자국들이 욱신거리고

눈 코 입 깨진 자리마다 후후 불면서

하트 모양 스티커를 붙이면 자신감이 생긴다

예쁜 건 내 잘못이에요!

열등한 건 더 열등한 것들을 만나 해결하라고

화장실 물을 시원하게 내려주면

가난하고 뻔뻔한 걸 낳아놓고

미역국을 사발로 퍼먹은 게 누구더라?

마녀에게 빠진 이를 드러내며 비웃어야지

굴러다니는 깡통처럼 신나게 밑바닥을 보여줘야지







뒤에서 오는 여름


여러 방향으로 꺾이는 의자에서

책을 읽는다


흔들리는 풍경이 다가오는데


여름 안에서 나 혼자 걷고 있었다 여름이 무성하게 이파리를 뿜어내고 그늘을 만든다 삐뚤빼뚤 자라난 내가 징그럽게 언덕을 뒤덮고


생각을 길게 이어서 하면

펼쳐놓은 들판이 넘어간다 웃음과 비명으로 찝겨 있었다 이파리는 떨면서 바닥에 엎드려 있고, 문장들이 따라붙는 건 모르는 사람의 불행들이지 남의 고통은 문장에게 최고로 인기가 많고


글시들은 다정한데

감당할 수 없어서 조금 미쳐 있었고


살기 이해 나는


줄곧 상처 입고 있었다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징그러웠다 겹겹의 헨즈들로 징그러운 내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무서울 게 없었다 두려움을 지나칠 수 있는 슬픔이 더 켜져버려서


뭉개진 새를 곳곳에 심어 두었다


더는 혼자서 버티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래 버려졌던 거니 서늘하게 등 뒤가 젖어 있던 날


지나오던 길목에서 죽은 새 한 마리를 본다


익숙한 문장은 겪어본 일들이었다







프랑켐슈타인의 인기는 날마다 치솟고 너희는 약 맛을 좀 아니


나사들이 미릿속을 맴돌고 있어

불안이 피부 위로 돋아났어


그림자를 주워 입고 노을을 구경하는데

나는 왜 멀쩡한 걸까?


무서운 말도 장난처럼 찍찍 내뱉을 줄 아는데 의사는 맨날 망가질 거래 조롱하는 입술처럼 젖꼭지가 점점 더 삐뚤어질 거며 나에 관한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면 뒤집힌 물고기처럼

밤낮으로 불안에 시달릴 거래


혀를 숙 내밀고 가로수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이나 깜짝 놀래키고 싶은데! 날개를 쫙 펼치고 찢어진 흉터처럼 날아다녀야지 시퍼런 가위처럼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오려내야지 목말라서 헐떡이는 사람을 목매고 싶게 만들어야지 켜놓은 가스불처럼 온 집안을 잿더미로 뒤덮어야지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도 삐뚤어지고


버텨야 할 중력이 내 인생을 흙탕물에 풍덩! 빠뜨리는데


더 추워지기 전에 나를 봉인하러 가야지 누가 베어간 콧대를 이어서 붙여야지 입은 왜 달린 건데? 거대한 감옥에 뚫려 있는 쪼글쪼글한 구멍이 무슨 소용인 건데? 갇혀 있던 소문만 새어나와 사방을 더럽히는데 수술대에 오르면 의사들은 링거 색이랑 오줌 색이랑 똑같다고 킬킬거리고 깨어나면 사람처럼 우스운 것들은 절대로 안 믿어야지! 겨울밤이 어두워져 사람이 사람을 닮아가는 줄도 모르고


번호표가 길어지는 병원 앞에서


회복해서 또 사는 게 무섭지도 않니? 알약은 어디서 녹고 있을까 눈을 떴는데도 난 아직 깨어날 줄 모르고 시체 냄새 나는 향수나 칙칙 뿌리고 놀러 가야지 아무나하고 사랑할 땐 흥청망청 뒤로 해야지 표정이 안 보이는 자세가 훨씬 아프고 재미있으니까 나보다 더 망가진 애들만 보면 심심하게 뒤가 간지러워


너덜너덜한 웃음이나 뒤집어쓰고

다 같이 모여서 수다나 떨래?







물 속에서


나는 쭉쭉 뻗어나갈 거야 해파리처럼 서너 토막 난 식물처럼 

목소리가 길게 자라고 있어


혀가 잘려나간 불장난을 앨범 속으서 끄집어낸다 종교를 버리고 밑바닥으로 도망치는 건 어때?


때수건으로 머릿속을 밀다 찜질방 문을 열면

문어처럼 불어터진 여자가 다리 건너 한 명씩 사내들을 끌어 안고 허벅지 살을 씹어댈지도 모르지

그 여자 발바닥에 침이라도 뱉으며

여편네야 밥은 언제 줄 거야? 냉장고 밑구멍 속으서 집어 삼키는 뻣뻣한 치모

계집애야 그건 네 아빠나 좋아했던 청춘이지 미역줄기가 아니란다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거니?


나는 가위질을 잘하고

사람을 하고 싶지만


매일 밤 직장에서 튀어나와 젖꼭지를 빨아대는 뱀을

엄마에게 빼앗기고 말았지


(흉터투성이 우연이 깡패 같은 우연이 내 거웃에게 떼인 돈이나 받으러 온다면 덜 지루하려나?)


벌겋게 달아오른 강철 팬티를 벗어던지고 목욕탕 문을 나서는데 브래지어도 깜박하고 안 했는데

소용돌이 물살처럼

하필 네 자지가 털털거리는 오토바이가

불가마 장수탕 앞에서 뒤집어지는 신기루란


오 분 뒤로 뒷걸음치는 입술

오 분 전에 발생한 사고들은 나를 물귀신으로 만들고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의 일도 오 분 앞에서 꼴까닥 자궁을 찝지고 말았잖아?(내 인생 흔적도 없이 달아나버린 보통명사들이 어때? 용수철을 심장에 박고 완급조절에 실패한 쾌감이지? 죽음보다 싱싱한 치욕이지? 몸밖으로 튕겨나간 너를 붙잡을 곳이 아무데도 없지? 억울해진 혀로 똥구멍을 긋고 달아나고 싶은데)


목소리는 가랑이를 벌린 채

우리에게 일용할 음부를 오르락내리락


(이제 그만 물속에서 슬그머니 놓친 척 해줘)


양칫물 위에서 발버둥치는

옛 애인의 자지는 잘라먹었어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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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낙엽 / 장철문

 

 

아이는 새잎처럼 자라고, 나의 비유는 끝이 났다

올해 나는 잣나무 잎 지는 시기를 새로 알았다

송홧가루 날려 새잎 돋을 때다

꽃가루가 먼지와 섞이고 새잎에 빗방울 꿰일 때

 

나의 비유는 끝이 났다, 수맥이 옮겨간 숲처럼

나의 언어는

죽은 새의 부리처럼 갈라졌다

 

실뿌리에 축축하던 습기는 사라졌다

바라던 대로

오월의 산빛은 비유의 바깥에 있다

바라던 대로

파도와 비애는 언어의 바깥에 있다

 

비유는 죽고, 나만 앙상하게 남았다

내 생의 최대의 비유가

생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의 언어는 바닥을 드러냈다

 

변명의 여지도 없고, 불입할 낙장도 없다

 

오늘 잣나무가 쭉정이를 떨어뜨리는 시기를 새로 알았다

질펀하게 깔린 잣잎 위에

열매를 맺지 못한 작년의 잣송이들이 즐비했다

 

절필(絶筆),

아니면 녹음(綠陰)일까?

 

그 어느 쪽도 소식 없다

 

 

 

 

비유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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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장철문(50) 시인의 시집 '비유의 바깥'(문학동네)이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창비가 2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좋은 시는 표현된 것 이상의 여백을 통해 더 큰 울림을 창출하기도 한다. '비유의 바깥'의 뛰어난 시들은 근래 한국시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더 상회한다"고 평가했다.

 

장 시인은 1994'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마른 풀잎의 노래'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6월 펴낸 '비유의 바깥'은 네 번째 시집이다. 총 여섯 개의 매듭 안에 총 51편의 시가 나뉘어 담겨 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의 업적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子夜)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됐다.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을 심사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6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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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규

 

 

열일곱 살 여름이었습니다 이슥한 밤마실을 다녀오는 어둠 속이었는데요 그날따라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칠흑의 허공을 더듬으며 집으로 가던 길이었는데요

눈감고도 찾아가던 집이었는데요

아무리 가도 집은 나오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요

냇가 쪽 같기도 하고 이미 동네를 벗어나 들판으로 접어든것 같기도 했는데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방향을 수십 번 다시 잡았으나

집은 갈수록 멀어지는 듯했는데요 어느 순간

발을 헛디뎌 어떤 허구렁 속으로 까마득 굴러떨어졌는데요 그때 그 어둔 허구렁 속에서

누군가 내미는 손을 무심코 잡고 일어서다 소스라치게 놀라 물러섰는데요

놈이었습니다

깜깜한 놈,

어둠 속에서 나를 환히 내다보는 놈,

놈의 손을 잡는 순간 손끝을 통해

놈의 엄청 시커먼 마음이 내 몸속으로 고압 전류처럼 까무룩 흘러들어왔는데요

그 순간 나는 유정(油井)처럼 캄캄하게 깊어졌는데요

어둠이 깊어질수록 환하게 눈뜨는 놈에 이끌려 밤새 뒷산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남향이었던 집이 감쪽같이 북쪽을 향해 있었는데요

등뒤로 해가 뜨고 지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어둠 속의 일들이 대낮처럼 환히 다 보이지기 시작했는데됴

놈의 일거수일투족도 한눈에 들어왔는데요

으슥한 어둠 속에 숨어 다디단 죄를 짓기 시작한 그때 놈의 나이 열일곱 살이었는데요

 

 

 

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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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와 충북 보은문화원이 주관하는 9회 오장환문학상수상자와 5회 오장환 신인문학상당선자가 가려졌다.

 

12일 실천문학사에 따르면 제9회 오장환문학상 수상자로 이덕규(55)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시집은 놈이었습니다’(문학동네 )이다.

 

5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자로는 역류하는 소문을 쓴 박순희(46·)씨를 뽑았다.

 

이번 오장환문학상의 심사는 도종환·송찬호·최두석 시인이, 오장환신인문학상 심사는 김일영·안현미·조기조 시인이 각각 맡았다.

 

오장환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선이 굵고 힘 있는 남성의 언어로 희미하게 남아있는 농업 경제의 잔영과 세속적 삶과 인물들을 감각적이고 생동감 있게 되살려낸 시집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시의 스케일이 넓고 깊은데다 가끔 시의 솜털에 휘파람을 불어주는 섬세한 면이 돋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시인은 1998년 시 전문지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뒤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번 수상작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오장환신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인 '역류하는 소문'에 관해 "형태가 없는 소문의 이미지를 짜임새 있게 잘 표현한 시"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인 이 시인에게는 창작기금 1000만원, 오장환신인문학상 당선자인 박 씨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을 준다.

 

오장환 문학상은 보은군 회인면에서 출생해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1918195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제정했다.

 

그동안 최금진(1), 백무산(2), 최두석(3), 김수열(4), 최종천(5), 윤재철(6), 장이지(7), 최정례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은 '21회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오는 23일 보은읍 뱃들공원에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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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 / 이규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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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네르바는 제6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이규리 시인을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수상작품집은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8회 미네르바작품상은 조동범 시인이 받았다.

 

이규리 시인은 1994'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등의 시집을 냈다.

 

 

시상식은 오는 52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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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외롭다1 / 김승희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

절망은 중력의 평안이라고 할까,

돼지가 삼겹살이 될 때까지

힘을 다 빼고, 그냥 피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으면 되는 걸 뭐.......

그래도 머리는 연분홍으로 웃고 있잖아, 절망엔

그런 비애의 따스함이 있네

 

희망은 때로 응급처치를 해주기도 하지만

희망의 응급처치를 싫어하는 인간도 때로 있을 수 있네,

아마 그럴 수 있네,

절망이 더 위안이 된다고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찬란한 햇빛 한 줄기를 따라

약을 구하러 멀리서 왔는데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믿을 정도로

당신은 이제 병이 깊었나,

 

희망의 토템 폴인 선인장......

 

사전에서 모든 단어가 다 날아가 버린 그 밤에도

나란히 신발을 벗어놓고 의자 앞에 조용히 서 있는

파란 번개 같은 그 순간에도

또 희망이란 말은 간신히 남아

그 희망이란 말 때문에 다 놓아버리지도 못한다,

희망이란 말이 세계의 폐허가 완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왜 폐허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느냐고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면서

오히려 그 희망 때문에

무섭도록 더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희망의 토템 폴인 선인장......

피가 철철 흐르도록 아직, ,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인데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

희망이 외롭다

 

 

 

 

희망이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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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계간지 미네르바가 운영하는 제4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김승희(61·왼쪽) 시인이 선정됐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태양 미사’ ‘달걀 속의 생()’ ‘희망이 외롭다등 시집을 펴내고 현재 서강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상식은 61일 오후 5시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역시 미네르바가 운영하는 제6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의 영예는 권덕하(56·오른쪽) 시인에게 돌아갔다. 시인은 2002작가마당’, 2006시안을 거쳐 등단한 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시상식은 질마재문학상 시상식과 나란히 61일 오후 5시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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