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환상통 / 김혜순
하이힐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은,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려 가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던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진주시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회장 박우담)는 시 ‘낙화’의 시인이자 지적 서정시의 대명사인 이형기 시인을 기리는 제9회 이형기문학제 수상자로 김혜순 시인이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수상집은 ‘날개 환상통’이다.
김 시인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 ‘도솔가’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현재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심사위원인 정과리 평론가는 “김혜순 시인은 한국여성시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존재이다. 최근 김혜순의 시는 더욱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학대받고 고통받는 여린 생명들의 삶의 형식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그의‘삶의 형식’의 탐구는 앞으로도 씩씩할 것이며 그의 도전은 우주상의 모든 생명의 진정한 미래를 위한 하나의 밀알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편 진주 출신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형기 선생(1933.1~2005.2)은 초기에는 삶과 인생을 긍정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서정시를 쓰고, 후기에는 허무에 기초한 관념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과 격정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했다. 20세기 후반 삶과 인간문제를 시로써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다.
950년 ‘코스모스’, ‘강가에서’ 등이 추천돼 고교 때인 16세에 등단,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웠으며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형기 문학제 시상식은 6월 22일 토요일 오후 4시 경남과기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장려금 2,0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진주시 관계자는 “지역사회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들의 문학정신을 키워내는 동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에게 이형기 선생에 대한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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