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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체온 외 4편 / 전비담

 

겨우내 엠뷸런스가 울어서 그 병원에는 

곧 떨어질 이름들만 피었다

영안실로 가는 침대의 난간을 움켜쥐고 

절뚝이며 따라가는 얼굴처럼 

하얗게 질려서 

  

기어코 봄날 초입에

한주먹 틀어막은 울음이

툭. 떨어진다

이제는 저 혼자 복도를 걸어나갈 수 없는 것들이

군데군데 멍이 들거나 구멍이 뚫린 채로 

하나씩 호명될 때마다

한 줌의 시든 수의로 기록되는,

 

목련! 하고 부르면

뚝. 

뚝. 

한웅큼의 하얀 종말이 뛰어내릴 때

찬란하게 하얀 것들에서는

포르말린의 체온이 풍긴다

 

꽃, 

하고 입술 오므리면

죽음, 

하고 휘어진 복도를 

힘없이 돌아나오는 메아리

  

건물 뒤편에서

시신을 말리는 냉각팬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누가 저걸 

죽은 꽃들의 누적된

향이 앓는 소리라 했나

  

목련 피는 소리 갸르릉거리는 밤에는 

죽은 내 친구가 입 안 가득  

덜 삭은 생을 물고 양치하는 소리 들리지 

 

하얀 꽃색 버려두고 

꽃향이 자꾸 내 뒤를 밟는 건

일찍 떠나 비릿해진

꽃의 체온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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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파도에 관한 에필로그

 

 파도가 죽었다 상의 한 마디 없이

 

성급하게 죽은 파도는 흰 거품을 피우고 

암청색 물고랑에 휘청거리다 바다가득 눕는다

바다는 파도가 누운 무덤이다  

 

바다는 저만치 물러나 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짐짓 딴전을 피운다  

희미해져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심장을 아무리 펼쳐도 품을 수 없다  

 

파도가 멈춰서 모든 미래가 유출되었으니

너무 중요한 허무는 모른 척하기로 한다 

다만 다 닳지 못하고 죽은 것은 돌아와  

그 무덤에 꽃을 피워야 한다  

 

바다는 낙하하는 해로부터 붉은 꽃씨를 받아

조로한 파도의 무덤에 눈물을 뿌린다   

꽃잎이 한 잎 한 잎 피어나는 건 혼자 죽은 파도의 의무거나

도착하기도 전에 해답이 된 미래의 기억놀이 

푸른 녹이 슨 물결로  

없는 파도의 붉은 말소리를 더듬는 무덤 위   

잘 익은 산호꽃인 줄 알았는데  

하얀 거품꽃이 피어 있다  

 

바다는 최초부터 파도의 에필로그라는 것,

을 다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로드킬

 

그날 밤 한 대의 자동차가 

하나의 비명과 충돌했다.

비명이 해처럼 부서졌다.

궤도를 일탈하지 않아도 궤도가 달아난 건

아무 짓도 안한 빨간 해에 눈이 멀어

길이 저혼자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상의 먼지들이 놀라서

양철처럼 가벼워져 튀어올랐지만

먼지는 다만 먼지일 뿐

금방 가라앉는 유전자를 가진. 

 

금방 사라질 것들은

좀 더 있다 사라질 것들에

재빠르게 밀려난다.

 

도처엔 맨홀, 부서진 피를 

맨홀들이 끌어당긴다. 

맨홀은 길 위가 부서뜨린 

피의 후속조치.

그러므로 길 위의 일에 대해

길은 아무 짓 하지 않는다.

 

그날 밤 길 옆 아까시숲에서

목소리마다 가시울음

울던 새 한 마리

결국 자기 부리로 목을 찢고

숲의 경계를 넘었다. 

자기 목에 부리를 박은 새는

짹 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날 허공에 

한 뼘 새의 자리 지워졌을 뿐

길은 길끼리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길 위의 것들은 

붉은 해가 부서져도

그저 사소하게 

농담 주고받듯

지나쳐가야 한다.

  

 

 

 

 

종소리

 

동그란 투명이 그늘을 깨우러 간다

 

잠자는 그늘을 깨우다가

그늘을 꽉 쥐고 있는 못에 긁혀

투명이 빨강처럼 쭈뼛 아프지

그것은 못과 한통속 된 삐죽한 그늘의 소행*

투명이 가끔 빗금 긋는 

심장소리 내는 건 그 때문이야

 

한 가슴의 부서짐을 막을 수 있다면

속고 속고 또 속아도 

말없이 부서지는 

투명의 주소지는 유리의 영토 

그 나라의 언어는

뾰족한 혀도 기꺼이 안아 품는 

죽은 조개의 침묵

새의 부리가 유리의 나라를 

터트릴 수 없는 까닭이야

 

후미진 골목 구멍뚫린 바람벽도

동그랗게 채우는 투명은

바람벽의 땜장이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그곳

가장 높은 종탑 중심에서 돌아가는

커다란 유리알 거울

볼 줄 아는 눈만 보는

투명의 유일한 관객

 

단 하나를 위해

달려가 스스로 텀벙텀벙

허공으로 뛰어드는

동그란 제병祭餠들

 

* 스톡홀름 증후군: 인질이 인질범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는 심리적 현상

 

 

 

 

 

 

플래시

 

꽃이 떨다가 뛰어내리자

캄캄하던 꽃의 살 속에

플래시가 터졌다

뛰어내려서야

환해지는 꽃의 살 속

 

사뿐히, 날아

그러쥐던 허공을 놓아버리자

꽃 속에서 숨죽이던 도마뱀이

붉게 흥건해졌다

 

그제야 만져보았다 

이빨이 물컹해져버린

물,

비린 쇠냄새가 손가락 끝에 엉겨붙는

빨간 울음소리는

혀를 빼문 채 고개를 누인 개처럼

경계선을 잃었으므로

 

울음소리는

이제 곧 팔레트에 옮겨질 것이고

진공의 큐브 속에서 굴절되겠지

 

램프가 되었다가

담요가 되었다가

빨간 모자가 되다가

 

쫓아갈 우주의 시간표보다

훨씬 먼저 변형되어

이상한 냄새를 활짝,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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