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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네이버웹소설 공모전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 6. 통영

“바다가 보고 싶어.” “그래, 가자” “정말? 언제 갈 건데?” “내일 당장” 중간고사를 앞두고 그녀가 말했다. 며칠째 과방에 갇혀 밤새도록 공부만 하니 지겨울 만도 했다. 시험 준비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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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회에 - 5. 그때 그 시절

인터넷도 없었다. 핸드폰도 없었다. 별다른 연락 수단 없이도 언제든지 약속을 정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대부분 허리에 삐삐를 차고 다녔고, 200만 원이 훌쩍 넘는 모토로라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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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회에 - 4. 만남

연애는 설렘과 회한과 애달픔과 우울과 절망과 고통을 준다. 그것은 과거의 나를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남녀의 사랑이다. 연애하다가 죽는 사람은 제대로 길을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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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회에 - 3. 성인식

해마다 입시 철이 되면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이 징크스는 해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우리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만족한다. 나의 결과를, 지금 이 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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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회에 - 2. 사춘기

시간을 거슬러 20년 전으로 올라가 보면 그저 평범한 한 남학생이 교실 책상 위에 앉아 있다. 외모도, 집안도, 성적도 너무 평범해서 학창 시절 내내 아무도 모르게 입학해서 아무도 모르게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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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회에 - 1. 인연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던 건 이제 막 가을이 초입으로 들어서기 직전인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밤공기는 제법 쌀쌀해도 낮에는 아직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불쾌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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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흰죽* / 변희수

 

 

불편해지면 죽을

끓입니다

 

식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가볍게 훌훌 넘기고 싶다는 말

어제의 파도는 우물우물 삼켜도 된다는 그 말

 

그게 잘 안 돼요

부드럽게라는 말이 목에 걸려요

 

당분간 절식이나 금식

이상적인 처방이라는 건 알아요 미련이 생겨서

나는 죽을 먹습니다

 

맑고 흰죽을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돌아서서 코를 풀었죠

조금 묽어졌다는 뜻이지만

눈물은 짜니까

빨간 눈으론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그런 날은 손바닥마다 노란 가시선인장꽃

울지 않은 척 했어요

얹혔을 거라고 수군거릴 때마다

이 고비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생각에 걸려

 

어제도 오늘도 삼키죠 백번도 더 생각하죠

죽이고 죽이다 보면 또 다시 죽

 

이렇게 맑고 흰죽

목이 메여요 달랑 죽 한 그릇인데

눈이 부셔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는 물기가

어제의 죽이라 하겠지만

밤마다 복닥복닥 탕! !

죽 끓이는 시간이 또 다시 찾아오고

 

죽은 조금만 쑤어도 넘치게 한 솥이에요

후회도 한 솥 미움도 한 솥이어서

나는 먹고 또 먹을 테죠

다행이다 싶지만

 

맑고 흰,

무명의 시간들

 

좀 서운해요 돌아서면 고프고

어떻게든 달래고 싶은데

받는 게 이것 밖에 없는 이 속이

내 속이 그렇다는 거죠 지금

 

* 4.3 사건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달고 살았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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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역사를 가정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하여 말한다면 어떨까? 가령 4 ? 3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제주 땅에 극도의 비극적인 역사는 출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통곡과 반목과 질시의 고통스런 아수라의 세계 역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역사는 이미 일어난 과거 사실이므로 당연히 되돌릴 수 없다. 더불어 이념의 대립과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양들의 아픔과 슬픔도 지워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안쪽과 바깥쪽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수시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을 걷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더는 참담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나간 4 ? 3의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거울로 삼아 마땅하다. 이번에 시행되는 <8회 제주4 ? 3평화문학상>도 그런 취지에서 시행됨은 물론이다.

 

이번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공통점으로 느낀 견해를 몇 가지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시선들이 대체적으로 4 ? 3을 피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보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4 ? 3의 현장성이나 리얼리티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4 ? 3의 역사성이나 정신적인 측면이 간과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는 과잉된 수사의 현란한 사용 등으로 독자(심사위원)와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4 ? 3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소 왜곡된 시 쓰기가 이루어진 경우도 없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은 비유를 사용하거나 난해한 시 쓰기가 시적 진실을 가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가운데 더욱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응모작품들이 다루는 소재나 내용, 의미 등이 일정한 틀 안에 갇혀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어떤 한계성을 극복하는 노력과 작품의 생산이 요망된다. 이제 4 ? 3문학은 제주만의 4 ? 3, 또는 흔적에 국한된 4 ? 3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보다 세계사적인 범위로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내용 모두를 해결하거나 충족시키는 작품은 물론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시맑고 흰 죽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모았다. 이 작품은 4 ? 3사건의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녀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몸에 달고 살았다 한다.

 

이 작품은 을 통해 불편한 몸을 떠올리고, 그 불편함을 야기한 사건을 되새기면서, 그 사건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서, 주어진 삶을 힘겹게 가누어나가는 한 인간의 애잔한 안간힘을 그려내고 있다.

 

죽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부드럽게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삶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죽이고 죽이는 비극적인 사태를 떠올리는 매개체이면서 언제나 목 메이게 하는 것으로 가장 절실한 삶의 영양소이다. 음식을 통해 쓰디쓴 역사의 맛을 되새기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상국, 이하석, 김광렬

 

 

 

아무 것도 아닌,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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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 변희수 시인과 논픽션 부문 김여정 작가가 결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지난 20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4.3평화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두 수상자에게 상패와 각 2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가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한 이번 시상식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상작가와 가족을 비롯해 현기영 운영위원장,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등 20명 내외의 최소인원만 참석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주4.3의 지난한 진상규명운동 과정에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이산하의 시 '한라산' 등 많은 문학 작품들이 4.3의 증언자 역할을 해주었다""제주4.3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정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만개하는데 4.3평화문학상이 가교가 되고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변희수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4.3사건에 관한 작품을 누군가 계속해서 쓰고 또 누군가 계속 읽는다면 진아영 할머니를 비롯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것이 문학의 가장 큰 힘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여정 작가는 "'그해 여름'은 한국전사에 기록되지 못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보광동 사람들의 이야기로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송곳처럼 박힌 이야기를 꺼내서 들려주신 보광동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은 오는 7월 중 공모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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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조령진산도를 읽다 / 김영욱 

 

 

사라진 호랑이가 배꼽을 떨어뜨린 곳은 이쯤일 거야

성곽 옆구리에 엎드려 숨소리에 귀기울여봐

고깔 운무 쓰고 돌아앉은 어미 산

새재를 품에 안은 그림자도 우뚝한데

골짝 물길이 실핏줄로 감아 도는 등고선 한가운데

어느 멸망한 종족의 태실이 있지

예로부터 태를 묻은 곳엔 복이 들었지

장돌뱅이들이 등목을 하던 삼복더위에도

털옷을 걸치고서 평생을 떠돌았을 호랑이가

죽어서도 숲의 으쓱한 쇄골에 덮어둔 가죽은

하룻밤 묵어가는 길손들의 지름길 되고

봄비도 티 나지 않게 몸 낮추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 성황당 어디쯤일 거야

처녀치마로 둘러쳐진 아름드리 귀목을

노령의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있는 무림에서

아침햇살도 동티가 나지 않게 만다라를 그리는데

흙꽃 위에 두툼한 그늘막을 덮어주는 단풍 손은

어느 내생의 천수보살일까

길이 나기 전부터 탯줄을 품고 있던 이 숲은 보름달의 태반

오래전 궁예가 반달 같은 활을 내려놓고

신의 태엽을 발굴한 물의 나이테가 생사윤회의 바퀴라면

지아비의 발등 위로 불거진 핏줄은 사방으로 뻗은 산맥

못 박힌 발바닥에서 팔자로 갈라진 샛길은

괴나리봇짐 지고 호랑나비로 날아가는 활주로

이 울창한 안개들이 숨겨놓은 수구막이숲

길섶에 묻혀 있는 호랑이의 발품은 미래의 족보라지

예로부터 혈을 지른 자리에서 영웅이 났지

대대로 기를 받는 명당이 있다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제 피로 서늘하게 적시며

진달래꽃밭서덜로 새끼들을 밀어낸 어미의 자궁처럼

옴폭해서 아늑한 여기 이쯤일 거야

 

 

 

 

[우수상] 문경새재를 읽다 / 김겨리

 

 

한 걸음 한 걸음이 문장인 길이 있다

능선으로 제본된 목차마다 행간이 경건한 순례,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 둘레길이 고금으로 웅숭깊다

 

철릭을 입은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첫 장을 넘기자 새재의 서곡인 주흘관에 당도하니

관문교 물소리가 풍경風磬이 울리듯 애잔한 건

쥘부채 펴듯 펼쳐진 서사를 다 서술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출과 일몰로 빚은 윤슬로 밝히는 너덜길 따라

조곡관에 이르러 다리쉼하듯 산세를 굽어본다

발자국과 손길, 와 철로 한 칸 한 칸 쌓은 성곽은

쉼표 없는 문장, 행갈이도 없이 편집된 질곡의 역사다

그랭이 공법으로 축조된 문장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차곡차곡 집필되고 있으므로

 

등고선에 밑줄 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능선을 넘는다

주흘관에서 조곡관을 지나 조령관에 이르고 나서도

뉘엿뉘엿 지는 해가 부봉에 걸려 있는 것은

아직 다 읽지 못한 새재의 내력을 체득하려 하기 때문인가

 

능선을 넘고 계곡을 지나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관문

문경새재, 오체투지체로 휘갈겨 쓴 절필의 장르여!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문맥이 섬세하다

곳곳마다 탈자와 마모된 비문으로 편집되는 역사이지만

반으로 접어 놓고 두고두고 읽어야 할 지침서이기에

서표로 꽂아 놓은 달빛도 문장 부호가 되는 문경새재는

사계절의 의태어로 빚은 경전을 아직도 집필 중이다

 

 

 

나무가 무게를 버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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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 김완수

 

 

문경 새재 세 관문을 바람처럼 지나간다

볕 드는 곳마다 나는 물박달나무 냄새

당신과의 기억에 쓸릴 때마다

울음이 회갈색으로 조각조각 벗겨져도

단단한 냄새가 발자국을 찍으며 앞서가면

나는 새가 허공에 흘린 소리 같은 바람이 된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봉우리들은

누군가에겐 통곡의 벽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사모(紗帽)의 신기루였을 것이다

땅에 발을 묻은 풀만 봐도 울컥하는 이라면

넘어서려는 마음은 흘려보내고

새처럼 길을 돌아내릴 줄 알아야 한다

산그늘이 젖무덤같이 봉긋봉긋해질 때

발부리에 차이던 생각들도 집을 찾는다

 

나는 아픔과 자기 연민의 사생아

나락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가없는 길을 오르는 일의 덧없음을 안다

골바람을 배웅하고 문경으로 돌아설 즈음

퇴적된 표정에서 오래전의 얼굴이 돋아난다

나는 내 안에 또 하나의 관문을 만들며

어제가 남긴 길을 훌쩍 지나간다

이미 길을 잃고 찾은 길엔 이정표가 없어

돌아올 때는 세상에 없는 바람이 된다

 

내가 굽이굽이 지나온 시간은

이 고개에서 허물을 벗고 숨 돌리는데

마냥 오르려 하던 당신은 지금 안녕하신지

 

 

 

꿈꾸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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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불안을 밟고도 시의 꽃은 핀다

 

2020년 우리 모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예측불가인 상황에 부딪쳤다.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통과 교류는 멈췄고 세상은 봄의 문턱에서 차가운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순리대로 봄은 왔고 꽃은 피고 다시 초록의 물결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어려운 시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등불을 켜들어야 한다. 문학의 불씨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여 서로에게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문학이 가진 힘이 이런 때 빛이 나리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시기임에 응모작이 적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응모해 주셔서 무척 기뻤다. 응모된 281편 작품의 1차 심사를 끝내고 본선 심사를 앞둔 시점에 문경 인근 지역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여 부득이 하게 심사가 미루어진 점에 응모자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작년에 비해 응모작의 수준이 훨씬 향상되었음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다만 다시 지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잠시 언급하기로 한다. 응모를 할 때는 주최 측의 공모 의도를 좀 더 심사숙고 했으면 한다.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과 문경새재에 대해 알리고 문경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기 위해 시행하는 문학상이다. 작품 자체로는 너무나 훌륭하고 시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도 너무 난해하거나 현학적인 시는 곤란하다. 다수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해 반해 너무 성의 없이 인터넷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시들도 있었고 표현은 요란한데 도대체 알맹이가 없는 시들도 실망감을 주었다. 문경과 문경새재라는 정해진 소재가 있는 시인만큼 그 소재를 얼마나 새로운 시각으로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는지에 심사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린다.

 

김완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겨리 문경새재를 읽다, 오영록 구름 공방, 김향숙 문경새재 아리랑, 김영욱 조령진산도를 읽다, 김국현 태양의 꽃 오미자, 이은정 순례의 영토 문경새재에 들다, 정영숙 물박달나무의 해원최종 여덟 작품을 선정하여 거듭 돌려 읽고 심사숙고 하여 대상으로는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 우수상에는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와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로 확정했다.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는 다른 이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지도 조령진산도읽어내기를 시로 이끌어온 시도가 훌륭했다. 사라진 호랑이의 존재를 통해 새재라는 공간을 단박에 신화 속의 영험한 공간으로 이동 확장시켜 놓았다.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신령한 기운을 품은 호랑이의 발자국이 곧 우리의 발자국임을 상기시키고 그가 남긴 가죽은 길손들의 지름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화 속의 세계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성황당의 오랜 귀목도 손을 펼친 단풍나무도 모두가 존재만으로 수호신이 된다. 이로써 새재는 보름달을 탄생시키고 장대한 산맥들을 길러내는 명당이 되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새재의 신성한 영역을 보아내고 시로 엮어낸 솜씨가 놀랍다.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는 문경새재를 한 권의 서책으로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읽어나가며 시를 완성했다.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의 수려함이 돋보였다. 매끄럽고 적절한 표현으로 누가 읽어도 문경새재가 눈에 보이듯 아름답게 읽힌다. 자연이 발행하고 문경이 소장한 새재라는 책을 탐독하는 시인을 따라 읽는 이 누구나 함께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특히 낭송을 통해 새재를 전달하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는 오로지 오르려고만 하는 욕심을 평생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새재의 세 개의 관문을 통해 말하고 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쓸수록 내려올 때는 허무감이 큰 것이 생이지만 그래도 놓지 못하고 자꾸 오르고 싶은 것이 인간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그 욕심을 내려놓고 한 꺼풀 허물의 벗을 수 있음을 안도한다. 새재가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둔 또 하나의 관문마저 훌쩍 지나가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문경과 문경새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이 힘든 시기이지만 시를 통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심사위원 : 황봉학, 엄정옥, 박윤일, 도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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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 / 오늘

 

 

지중해의 검은 돛을 펄럭이는 순백의 애인들 붉은 달이 녹은 바다는 위태로워서 건널 수 없고 괴여*, 네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기다림은 완성된다 알바이신 지구의 파고가 높은 날에는 이슬람틱한 휘파람이 떠밀려왔고 그런 밤이면 돌계단이 목에 감기는 악몽을 꾸느라 하루를 잊었다 돛을 품은 채 너를 기다린 적도 있다 그루밍 되는 슬픔 속으로 뒤늦은 네가 뛰어들길 바랐기 때문이다 밤의 기척을 뒤적거리면 한 움큼의 웃음 너를 타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증오하게 하는 것은 쉽다 돌아오지 않는 증오는 타락을 완성시키는 꿈이어서 이 광기는 한때의 우리에게서 온 것 어떻게 할 거야 너는 지겹도록 묻지만 지금은 혼돈을 지킬 차례 괴ㆀㅕ**, 돌아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지는 고백 어쩌면 검은 웃음 축축한 우리라는 균형

 

다시, 이별을 말하는 내게 서럽게 울다가 고개 들어 너는 말한다

지금 당신의 표정과 이 시간을 본 적이 있어

 

이별이 처음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내 애인이 살고 있는 그라나다에도 우기가 끝나간다

 

* 괴여: 내가 사랑한다.

** 괴ㆀㅕ: 내가 사랑을 받는다.

 

 

 

 

나비야,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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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인이 제10회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내 애인은 그라나다에 산다이며 상금 300만원.

 

시산맥작품상은 지난 한 해 계간 시산맥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오늘 시인의 작품은 9편의 후보작 중 선정됐다. 심사는 오현정 시인과 정윤천 시인, 안차애 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오늘 시인 작품에 대해 지금 여기와 그라나다 사이의 불화,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불화, 슬픔과 광기 사이의 불화를 소리와 색채, 외래어와 고어(古語), 입말과 관념어 등을 넘나들며 매끄럽게 직조해 신비로운 시편을 완성했다고 평했다.

 

오늘 시인은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06년 계간 서시로 등단했다.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아 시집 나비야, 나야를 출간했다.

 

한편 시산맥작품상 기 수상자로는 김종미·김점용·신현락·차주일·문성해·최정란·이재연·김정진 시인 등이 있다.

 

이번 시상식은 오는 516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202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선혜경 시인에게 시산맥 등단패 수여식 및 2020년 시산맥 신인문학상 수상자 한상신 시인에 대한 시상식도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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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진

 

 

여기서 잠시 불을 붙였다 갑시다

 

여름을 빨리 불러오고 싶었어요 하지(夏至)의 높은 태양을

만원버스 안에서 같은 리듬으로 동시에

흔들리면서 서로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손이 녹을 수 있도록

몸이 따뜻해지도록

태울 것들을 좀 찾아봅시다

 

종점은 처음인가 봐요 당신에게서 반환점의 냄새가 나는데

한번 뒤돌아서 봐요 저 사람이 말하길

당신이 어제 앞에 앉았던 사람과 닮았다는데

 

잘 타는 것들 연기가

적게 나고 불빛이 멀리까지 가는 것들

내 전임자는 이런 여유를 허락한 적이 없었죠 원심력처럼 창밖을 보세요

동지(冬至)의 가까운 저녁을

저기 물미역처럼 하늘거리는 플라타너스들

 

전에는 이렇게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는 잘 지냅니다 덕분에

 

잘 지내지 못해요

 

모닥불은 처음인가 봐요 어두웠다 밝아지는 건

주변의 습도가 높아서 그렇습니다 가스가 많으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다시 점점 멀어진다면

기념품 가게에서 그냥 나오는 사람처럼

여러 번 집었다 놓은 믿음은 어디쯤일까요

 

영생하는 사람은 늙지 않을까요 언제부터

소년이나 노인의 모습으로

망원경을 들어 기점을 찾아보세요

 

점차로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게 보일 겁니다

 

 

 

 

 

[수상소감]

 

마음이 자꾸 슬픈 것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나.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나. 왜 이렇게 쉽게 분노를 하는가.

 

근데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날까.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어떻게 화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을 걷다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사람 때문에 울컥 화가 난 적도 있습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전에는…… 미워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조금 미워하긴 했지만 다시 만난다면 잠깐의 어색함을 견딘 후 다시 잘 지낼 수도 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워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은 원체 그렇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요 몇 년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다시 배우고 있었습니다. 분노, 슬픔, 후회, 회한, 죄책감, 미안, 부끄러움 같은 것들. 새삼 이것들이 이렇게 낯선 감정들이었는지 놀라웠고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미안하고 여전히…… 화가 납니다. 여전히 쉽게 화를 내고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나는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누가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은지, 누가 내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지 경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최선의 방어가 될 수 있을까요. 같이 분노하는 것? 혹은 더 깊이 숨어 들어가는 것?

 

과거에 천착하고 기억을 곱씹을수록 부끄러운 일들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그런 기억들 때문에 반성의 목록은 길어져 갔습니다. 시를 속죄하듯 써 내려갔지만

 

시는 속죄가 될 수 없고 나를 정화시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고 그것들을 직시하며 한 글자씩 눌러 써야했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며 쓰고 있었습니다. 시는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시를 행동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나간 감정과 행동들이 무거운 빚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어찌할 수 없는 분노와 어찌할 수 없는 미안함 들을 청산하기 위해 애쓰며 지내고 쓸 것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어쩐지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앞으로 더 경계하고 힘쓰라는 의미로 받겠습니다.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과 시산맥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시인이 되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관심과 열정은 여전히 두텁다. ‘여전히라는 부사가 필요한 것은 시를 쓰기에는 이 세상에 다른 것들이 무수히 차려지고 출현하고 있어서겠다. 하지만 시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시인다운 시인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이라는 것의 의미는 시인들의 행보에 기운을 실어주고 더더더 시인이 되어 가고 있음을 축복해 주는 일일 터.

 

9회 시산맥 작품상 본심에 넘겨온 작품은 총 5편이었다.

 

강재남 <일인칭 자기지시적 시점>

김관용 <바늘>

김정진 <()>

유병록 <짐작을 넘어>

전비담 <빈 삼다수 물병이 그리는 이름>

 

심사위원들이 당장 바랐던 것은 잘 쓴 시를 찾는 일이었겠지만 본심에 오른 여러 편의 시 앞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하였다. 이 작은 선별의 작업이 시단에 풍부한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푸릇푸릇함은 고마웠다. 몇몇 작품에서 파도치는 역량들도 뜨거웠다.

 

그러다 두 편의 시로 압축을 보인 것은 그 두 편의 시에서 그 무엇을 넘어서는 면이 분명 보여서이고 작품의 밀도 또한 묵직해서였다. 시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어떤 깊이에의 도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정진 시인의 시와 유병록 시인의 시가 바로 그 두 편이었다.

 

김정진 시인의 작품, <()>에는 상징적인 질문과 인간의 감정이 배치되어 있다. 두 배치가 교차하면서 사람을 흡인한다는 점이 시를 여러 번 읽게 해주었으며 짧지 않은 시임에도 시가 일찍 끝나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유병록 시인의 작품, <짐작을 넘어>에는 인간사에 소금이라는 재료를 끼워 넣어 한 편의 시로 아주 잘 절여 놓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금의 뒷맛 끝에 찾아오는 단맛을 읽었달까. 인생의 여러 신호들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심사위원 모두는 그의 시 또한 여러 번을 읽었다.

 

본심에 오른 두 작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두 작품의 호소력에 몸과 귀를 기울였다. 수상작 한 편을 가려내는 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면, 상의 목소리를 좀 더 멀리 퍼뜨리려면 그 편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최종결정한 작품이 김정진 시인의 작품이다. 김정진 시인의 이 시에는 시를 쓰면서도 삶을 그리워하는 아련함을 시 속에 제대로 풀어 놓은 것 같았다. 그 순정을 높게 치는 것으로 했다.

 

수상작 <()>만큼 새로움이 기쁨이 되는 상은 늘어나야 한다. 폼 잡는 상 말고, 시인 아닌 시 자체만을 격려하는 일도 많아져야 한다. 이 상과 이 상의 수상자가 그 받침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 아울러 좋은 시를 읽게 해준 젊은 시인들께 감사한다.

 

- 심사위원 장옥관 정채원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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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래톱 / 윤빛나

 

몇 겹 이빨로 사납게 오르내리던 수난의 고집쟁이

가막조개 부둥켜안은 모래들의 습관을 긁어내던

똥색 월급봉투, 사그락 사그락

그 이름, 빨갛게 달구어진 희망 찬 사발을 건네주던 사막

붉은 노동 한 잔의 입을 걸어 잠근

숯검댕이 아버지 낡은 어깻죽지가

짊어지고 오던 막걸리 냄새 절뚝절뚝

그리움 푹푹 빠지는 신평공단길 골목창 지나

개망초 피는 집에 갓난쟁이 발톱들이 찾아오면

그 자욱한 찬장을 열어, 한 홉 사하의 꿈 물려주시던 어머니

가시리 풀 끓여 신문지 발라놓은 둥지는 만원이었다

냉이꽃 찌그려져 검은 모기 한 마리 갇혀 있던 동공 속

양은 빛 하오를 비추던 오래된 저녁

섬돌 위에 사람인자 걸어 놓은 검정 고무신 십일 문짜리

몇 땀 궤매 신은 작은 바다가 데리고 온

발가벗은 생멸의 알갱이들

참빗 쟁기를 뚝뚝

무명의 옷을 벗기던 안개의 머리카락

곱게 빗겨놓은 모래 언덕

깊고 긴 강물의 비밀만큼 쌓이고 만나서

종잇장처럼 헤어지던 방목지

사철 농구같이 구부러진 손가락

푸르른 전설이 기어 와서

사하의 궁전을 짓던 모래의 고향

청보리 빛 목소리 들리는 선잠결에

사하의 노래가 여울져오면

사글셋집 달빛 이불을 끌어당기는 새벽

울엄마 달여놓은 재첩국 한 양동이 보글보글

부추빛 사랑 한 다발 썰어놓고

일어나소, 일어나소, 아버지를 깨우던 멀구슬남 소반상

뒷문 밖 재두루미 엄마, 팔십 살 먹은 괘종시계

새벽밥을 먹여 놓고, 모래톱을 본다.  

 

 

 

 

 

 

 

 

[최우수상] 을숙도 억새 / 김영욱

 

저것은 기다란 은빛 물고기

 

한때는 물 맑고 먹이 많던 바다에서

자손대대 번식을 약속했으나

바람에 살 다 뜯기고 뼈만 남아

하얗게 샌 머리칼을 부비며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가르고 서 있다

 

감기지 않는 문망울은 어둠 속에 감춰두고

꼬리지느러미를 면사포처럼 흩날리며

바람을 뿌옇게 애태우고 있다

 

그래도 한때는 옆선을 세워 물결을 주름잡던

저것은 은빛 물고기

 

어느새 제 속을 다 비우고 뭍으로 올라와

물구나무 자세로 허리를 살랑이며

달빛 아래 칼춤을 추고 있다

 

바람과 바당이 흘러한 밤바다

날개를 훔치다 푸새가 되었지만

물의 나이테를 부력으로 키워온 습성대로

바람의 갈기로 구름의 올가미를 만들고 있다

 

언젠간 하늘 끝까지 자맥질하고 싶던 욕망만큼

남몰래 부레를 부풀리는 몸부림이여,

맞은 바라기에서 들려오는 겨울 소식에

날로 여위어가는 은빛 날개여,

 

앙상해서 더욱 우아한 변신이어라.

 

 

 

 

 

 

 

 

 

 

[우수상] 모래경단 / 김지영

 

잔치가 벙어졌다아입니꺼

울 할매가 안보고도 척척 맹그는 만두맹키

동글동글 경단이 넓은 사장에 항거석인기라예

이래 빠르고 솜시 좋은 좋은 기 누구 작품인고 궁금하지예

달랑게라고 있심더

부끄럼이 많아가 대낮에는 모래집에 숨어있지예

그카다가 어두버지모 실찌기 나와가

눈자루 끝에 달린 크담한 눈동자를

요래조래 굴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븐가 말도 몬합니더

달랑달랑 집게발로 모래를 떠가 먹고는

남은 찌꺼기로 예쁜 경단을 만든다아입니꺼

뒷설거지를 요래 멋지게 하는 청소부 보셨는교

덕분에 다대포에 가모 나래비 선 경단을

우리한테 날마다 선물로 준다아입니꺼

오늘도 선물 받으러 함 가보까예

 

 

 

 

 

 

 

 

 

 

[가작] 모래톱의 오랜 기억 / 김용철

 

아버지가 고기잡이 나가신 날이면

설빔을 자꾸 입어보던 어린 밤이

강변 나루에 애기부들처럼 서성였다

어머니는 밤새 대청 작은 팔각상 위 놋그릇이

부처님인 양 절을 했고

건너방 누이의 짚단 같은 이불 속은

음악방송 주파를 맞추느라

모스 신호기 두드리는 공비보다 신중했다

 

지난 밤 비는 강을 억수로 뒤집어 놓았을 거다

윗물에 놀던 놈이나 수문에 서성이던 숭어들도

물이 잔뜩 올랐을 것라며

원양어선 선장이 된 양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

나룻배를 저어 가신 아버지

사라지는 배를 보며 돌아오던 길

논두렁을 달리던 연두색동 고무신도

물고기 마냥 팔딱거렸다

그날 밤 강물은 수문을 넘고 강둑을 밀어냈다

아침 나루터에는 수초에 엉켜 찢긴 그물이

아버지 주름처럼 놓여 있었다

비가 며칠째 내리고

포구에 묶인 배의 기척이 외기러기 울음이 되어

어두운 허공을 밟고 사라졌다

강이 둑이 넘던 날

이버지의 나룻배는 바다가 되었다

물이 바지던 날 하구언에는

강변 가장자리 수풀보다 넓은 모래톱이

아버지의 만선처럼 떠올랐다

갈대머리를 풀고 물고기처럼 주변을 서성이다

해질 무렵 서쪽 하늘이 바다에 붉은 울음을 짙게 토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오래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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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몰운대 시편 / 유종인

 

푸른 안개와 주홍빛 구름에 가려서

근해(近海)는 거칠 거 없는 바람의 행로가 되었나

아니다 크나큰 돌부리처럼 구름에 가린 섬들에 발이 걸려

어떤 바람은 코가 깨져서 드디어는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던 몸을 드러낼 뻔 했던 곳,

안개가 서서히 밀릴 때면

그게 바람이 몸을 얻어 진솔의 옷 한 벌 갈아입는 기척이려니 싶은 새벽,

광야와 어둔 골짝을 지나 사막에서마저 흘리고 다닌 몸

어디 내 맞는 옷이 있는가 안개의 탈의실 한켠에 선 바람을

붉은어깨도요와 삑삑도요와 알락도요가

큰노랑발도요마저 불러 바람의 보일락말락한 허릿살을 흘끔거릴 때

바람은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몸을

안개와 구름에 가린 섬 뒤로 숨기며 산산이 흩어지듯

저 투명한 방랑기, 저 색깔을 입힐 수 없는 역마살(驛馬煞)

도로 안개에 능놀다 부푸는 구름그림자마저 털고

몰운대의 긴 한숨처럼 묵묵한 갯바위의 정수리를 짚고 사라진다

 

 

이에 홀로 묵묵한 섬들이

안개의 주렴 너머에서

이제껏 파도와 적막의 뒷배를 자처한 섬들의 으늑한 행색을

습습한 몰골법(沒骨法)으로 뭉클하게 그려내는 수묵(水墨)의 파도소리,

번지는 그 파도에 조금씩 섬의 눈썹그늘이 짙어오고

새삼 소금물에 갈퀴발이 저린 괭이갈매기의 울음도

횡축(橫軸)의 몰운대도(沒雲臺圖) 왼쪽 한귀퉁이에 붉은 낙관(落款)으로 찍힌다

 

 

이제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 안개와 구름 속에서 한 피붙이로 살갑던

섬들마저

 

저마다 떨어져선 하얀 파도를 홑이불마냥 섬둘레로 끌어다 입고

몰운대 쪽으로 갈매기를 날린다

아까 안개와 구름 속에서 봤던 거는 눈감아 주기야, 몰운대여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어슴푸레 가리웠던 그 서늘한 장막 속에서는

어눌한 여명과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먼동을 기다리며

한 생애에 두 번의 풍광에 능노는 오지랖을 사는 거야

안개와 비구름에 잠겼던 섬들이 깨어나며

 

 

몰운대에게 그윽한 눈웃음을 제비갈매기떼로 대신 날리는 거였다

 

 

 

 

[최우수상] 다대첨사(僉使) 윤흥신(尹興信) / 윤주동

 

1

 

임진년 그 함성에

그날의 모습으로

 

노을에 부서지며

소리쳐 오는 파도

 

쏘아라

비장한 군령

그 외침도 들린다.

 

 

 

2

 

왜군의 침략으로

핏물에 찌든 바다

 

그때의 울부짖음

귓전에 생생한데

 

순절(殉節)

다대첨사 윤흥신

 

 

파도 되어 묻혔나.

 

 

 

 

 

 

[우수상] 구평 가구프라자 / 배옥주

 

노부부를 내려놓은 3번 마을버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탈길을 오른다

산번지에 둘러싸인 가구 동네

볕 좋은 기슭의 가구대통령쥔장은

땡 처리 소파에 누워

노마진의 백일몽을 건너간다

길없슴 팻말을 간판처럼 끼고 서 있는

가나안포장공장

선물 같은 박스들은

지나간 봄날처럼 겹겹 포개져 있다

비옥한 약속의 땅에서

벌나비들이 젖과 꿀을 찾는 사이

사거리에 들어선 <나무마음> 공방

물푸레 책상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려는 걸까

서랍의 속마음을 펼쳐놓고

푸른 물의 생각에 잠겨 있다

구평농장을 떠난 한센인들은

어디선가 간절한 삶을 꾸려가고

문드러진 발목으로 한 생을 버티는 의자 셋

느티그늘과 개미들이 쉬어가도록

기울어진 배려를 내준다

신평을 내려다보는 옥수수밭이

건장한 어깨로 울타리를 치는 구평

토박이로 자란 칡넝쿨은

 

 

거북섬을 향해 느린 순을 뻗어간다

 

 

 

 

 

 

[가작] 을숙도, 백조의 춤 / 김영욱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강물은

짠물을 만나는 을숙도에서 쉬어갑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도 을숙도에서 쉬어갑니다

 

저녁이 오면

태양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갯벌 위에선

백조들의 공연이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발레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하얀 날개옷 입은 목이 긴 백조의 전설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백조들은 한 다리로 서서 잠을 잔다고,

발레리나의 원조가 우아한 백조라는 사실도

모른 체, 아는 척을 합니다

 

갈대숲이 들썩입니다,

긴 다리를 드러내고 날갯짓하는 무용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갈대들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작을 배우고 싶어

외발로 서서 꼬박 일 년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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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래톱에서 정착을 꿈꾸다 / 문영길

 

개어귀 떠밀려온 물결이

제 힘으로 피난처 만드는 게

흥미롭던 철새가

희망 한 포기 물고와

모래톱에 심었다

 

모래알 같은 다짐으로

쌓이는 내일이

때를 준비하는 기착지에서

처음의 의미로 나붓이 눕히던

정착을 망설이던 눈빛

안식의 모래톱에서

단단해지는 결심이 되었다

 

도요등 모래섬은

바닷바람도, 파도도

철새도, 노을도

잠시 머물렀다 갈 뿐

주인 되는 걸 허락하지 않는

무소유의 터였다

 

아미산 벼룻길 내달린

시선 끝에서

모래톱 쌓고 허물길 다반사

불완전한 현재를

다시 설계하는 꾀꾀로

선착순의 꿈들을 들여다본다.

 

 

 

 

[최우수상] 대티고개 어머니 / 윤상용

 

바람아, 니그 집 아버지, 사람살이 버무려

간밤 짭조름한 세월 한 잔을 마셨고

고개 숙여 새끼들 한 놈, 두 놈, 쓰다듬던 새벽.

곱디고운 어머니 회화나무 핀 대티고개 넘어

절영도 대평동 골목창까지

재첩국을 팔러 가셨다.

한 그릇, 슬픔이 다 무엇이냐

묻지 마이소.

울아버지 속 달래줄 부추빛 슬픔 썰어

둥둥 띄운 환희의 국물 한 사발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사이소!

무심하게 너를 업고 오르시던 고갯길 어머니의 노래.

하얗게 등을 세운 쌍봉낙타들.

그렇게 가막조개 잡아

한 솥, 숙명을 바글바글 끓여 쪽머리에 이고

그 마르고 구부러지던 사막을 걸어가서

작은 사랑 한 양동이 울어예던 솔티고개 어머니.

통통통 물애기 데리고

사하의 바다로 건너가셨다.

 

 

 

 

[우수상] 이름 얻은 산 / 박민정

 

이름 없는 산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어

가끔 새들이 찾아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려주고

이름 없는 산만 외롭게 남겨둔 채 날아가 버렸지

 

학이 되면 좋겠어요

한 마리 학이 되어서 훨훨 하늘을 날면 좋겠어요

이름 없는 산은 새들이 부러워 매일매일 기도를 했지

 

고려 때 이름 없는 산에 무학대사가 찾아왔어

이름 없는 산이 안타까운 무학대사는

학이 나는 것 같다며 승학산이라고 이름을 주었어

그 때부터 사람들은 이름 없는 산을 승학산이라고 불렀어

 

승학산은 이름이 불릴 때마다

신이 나서 날개를 폈어

한 마리 학이 되어

사람들 가슴 속으로 훨훨 날아들었어.

 

 

 

[가작] 초승달의 마무리 / 윤상근

- 을숙도 생태관에서

 

거먕빛 동여맨 철새

에도는 갈밭에서

한바탕 군무를 추며

비상하는 큰고니들

을숙도

너름새에 맞추어

완성한 저 풍경화.

 

어빡자빡 갈마들어

들레는 하굿둑에

짬짜미

환호성 넣어

그려내는 학춤 폭에

초승달,

꽁지깃 살짝 들고

마무리 낙관 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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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을숙도1 / 최재영

 

을숙도를 아시나요

갈대가 제 몸을 흔들어대며 을숙을숙 으쓱거리고

찬삼백리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와

물길의 유구함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

을숙도 갈대밭에서

나는 그들의 말뜻을 읽는 중입니다

어느 연대기를 작성하고 있는지

갈대를 빌미로 까칠해지기 쉬운 것들이

주로 이곳에 서식하고 있어요

바람이나 철새나 몸 안에

그리운 풍향계 하나씩 품고 있을까요

해질녘 맹렬하게 타오르는 낙조는

오래 전 가락국의 신화를 아련하게 읊조리고

멀리서 찾아 온 철새들이

고단한 제 생을 마음껏 펼쳐보는 을숙도

을숙도 갈대는 오래된 신전입니다

일억 년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물결마다 철새의 황홀한 노래가 출렁이죠

누구나 한번쯤 이곳에 기대어

생의 속내를 목 터져라 소리치고도 싶겠지요

살짝 을숙도의 내면에 귀 기울여 보실래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 을숙도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소재,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여 한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다

 

 

 

 

 

[최우수상] 감천문화마을의 골목축제 / 허금주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갈라진 손가락 끝으로 꿈을 박음 질하던 시간들이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걸어 와 잔을 건넨다 좌판 널빤지가 기댄 울타리, 늘어진 나팔꽃에 걸리는 붉은 기억들 휘어지고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비행飛行의 날개 다독이면서 저마다 부호로 떠돌며 앓 고 있는 외로움은 탁한 막걸리로 흐려 있었다 세월 좋 아 나비 리본으로 머리 올린 화장 짙은 처녀애들 값싸 고 질낮은 노란무 몇 잎 씹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순수 를 키우러 휴학한 친구에게 엽서를 쓴다 친구여, 그대 는 절룩거리며 걸어 오는 어둠 속 차가운 꿈줄기를 당 겨오는 기쁜 울음으로 오라 마을을 빠져 나간 무소식은 남은 우리 슬픔으로 푹 젖어서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오월의 노래, 그 저녁을 가득 메웠다

 

 

 

 

[우수상] 맹금머리등*을 읽다 / 김현욱

 

 

어떤 편지는 도착하는데 수백 년이 걸린다

 

낙동강 하구가 수신한

거대한 편지에는

참수리와 솔개와 매의 봉인이 결연하다

함백산에서 하구까지

맹금류가 호위한 것이 분명하다

 

모래톱에서 펼쳐진

물결무늬 누런 갱지에

세모고랭이와 갈대 군락의 필체가 준엄한 것은

녹조와 실지렁이가 들끓는다는

전방의 풍문 때문이다

 

이제야,

맹금머리등을 읽는다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고

살아있는 것은 그대로 두어라

 

맹금머리등에 아로새겨진

낙동강의 나지막한 육성이

해거름,

거룩한 물빛으로 돋쳐 오른다

 

*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 내에 맹금류 형상을 닮은 무인도. 멸종위기종인 솔개, 참수리 등의 맹금류와 알락꼬리마도요 등이 관찰된다. 2011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얻었다.

 

 

 

 

 

 

[가작] 갈맷길을 걸으며 / 이우식

 

 

길은 본래 없다지만

갈래도 많다 하지만

 

마음속 대동여지도

펼쳤다가 접었다가

 

한 번도

못 와 본 길을

걷고 또 걸었다네

 

자석이 못을 끌듯

달이 바다를 당기듯

 

잎새가 바람결에

새처럼 허공을 날 듯

 

사하에

오기 전부터

난 이 길을 걸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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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달동네 이야기 / 이상록

 

길을 찾아 떠돌다

길 끝에 폭포처럼 서는데

몸뚱어리 내주며 기대라는

옥녀봉이 따스워라

뒤따라온 누구든 같은 처지

고향 달이라도 가까이 보자며

몸을 낮춰 쌓은 층계가

견고한 탑을 이룬 것이다

참 아름다워라

햇빛의 평등을 믿는

평범한 사람들

어깨를 토닥여 주려고

노을이 집집마다 방문한다는

감천 달동네

힘줄 같은 골목엔

풍화를 거역한 무릎이 펄떡이고

더운 숨이 닿는 벽에는

소금꽃도 그림 같다는 것이다

 

 

 

 

 

 

[우수상] 아버지의 다대포 / 이효중

 

누구의 입김도 닿지 않은

첫 바다를 베어 물며, 나는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어스름이 붉어진 해거름을 풀어 헤친

당신의 시간은 정박하지 않는 배였다

 

휴지가 없는 고단한 여정을 바다에

새기며 긴 포말을 가르는 어선에

몸을 싣고, 불러지지 않은 배의

배를 불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림을 던졌다

 

인생에도 이자가 있다던 당신의

말처럼, 바다에 생을 걸친 평생을

수심 깊숙이 내려놓고 당신은

또 다시 어느 바다로 떠났다

 

기다림이 없는 물길은 일출을 따라

단정한 입을 닫아 그 안에 잠든

아무개의 사연을 기술한다

 

듣는 사람 하나 없는 자전의

세월이 물길 위에 부서진다

 

 

 

[우수상] 을숙도 울음 / 김완수

  

싱싱한 바람 활이 갈대밭의 줄을 켜

잠자던 수초들도 귀 쫑긋하는 을숙도

물 맑은 강섬에 가면 겨울 소리 들린다

 

새들이 내려앉아 울음을 묻어서일까

강을 넘겨보던 새가 섬이 되어서일까

을숙도 이름 부르면 새소리도 들린다

 

머리맡 꼭짓점은 강어귀로 향해 두고

강물과 바닷물 섞어 멱을 감는 삼각주

울음은 뱉는 거라며 젖은 소리 토한다

 

마른땅도 물들이는 섬의 노을빛 울음

바람으로 연명하며 목을 놓던 을숙도가

갯내에 가슴이 멘 듯 잠깐 숨을 고른다

 

 

 

 

[가작] 감천문화마을 / 강달수

 

 

알록달록 섬 속에

대구 내장 같은 미로迷路 그려놓고

숨은 그림 찾기를 한다.

 

푸른 지붕마다

파도를 입주시켜 놓은 마을

골목을 휘감는 안개 속에서도 비린내가 난다.

 

초록 담벼락과 노랑 옹벽을 따라

쇠못 물고기들이 이끄는 데로

헤엄쳐 다니던 사람들

 

또 다른 섬이 되어

푸른 스템프 용지를 들고

섬 사이를 둥둥 떠다닌다.

 

 

 

 

[가작] 몰운대 소나무 / 김미순

 

 

온 몸 나부끼고 비바람 겪으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는 혼

오로지 나라 위한 몸짓으로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호령할 것같은

조선 수군의 명예를 지킨

정운 장군

때로는 돌담 틈새로 먹구름으로 밀려왔다

몸이 밀려가는 다대포구 모래톱처럼

창백하게 늘어져 있는 모서리마다 어둠이 살아

숨 몰아쉬며 맨 먼저 아침을 맞이하였고

네 안의 바다 다시 한 풍경을 보자

붉은 몰운대 주름바람은 현기증 일으킨 슬픔

아파서 웅크리고 내앞에 쓰러진다

그대는 누구시던가

아직도 임진왜란 핏빛 그림자 할퀴며 날아다니고

물결치던 그날 땅속에 박혀

그 통증 오백여년 세월이 흘러 나왔으니

서녘에 지는 붉은 해보다

먼저 큰 가슴으로 내려 받았다

낙동정맥 산빛은 검은 산자락으로 내려앉고

강선대 거친 치마폭에 싸여 어쩔 줄 몰라할 때

홀로 떠 있는 불꺼진 눈으로

조국의 이마를 생각한다

 

 

 

 

[입선] 모래톱 이야기 / 이우식

 

모래톱

겨울 철새들

 

발자욱에 담긴

먼 나라 이야기

 

텃새들은

모래톱에 쓰인

'ㄱ,ㄴ,ㄷ' 글씨 읽으며

 

한 번도 못 가 본

그 먼 나라 계절 한 모퉁이에

훌쩍 가 있다

 

모래톱

여름 철새들

 

지저귐에 실린

먼 나라 노랫가락

 

텃새들은

모래톱에 숨은

'도,레,미' 화음 찾으며

 

한 번도 못 가 본

그 먼 나라 계절 한가운데에

벌써 가 있다.

 

 

 

 

[입선] 천년의 흐름-을숙도 / 정동수

 

 

젖은 발목,

강의 중심을 붙들고 있다

 

저 두 발에서 시작된 외길

 

무너지고 쌓이며 쓸려가는

생명의 끝없는 파동

 

굽이지는 물길은

제 울음을 굴려 떠나가는데

 

어느 세월쯤이면 침묵할 수 있을까

어느 깊이면 침묵하고도 아프지 않을까

 

굽이진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라면

우린 어느 굽이를 돌고 있는지

 

어느 곳에서 풍랑이 일며

어느 곳에서 잔잔한 물살로 흘렀을까

어느 곳에서 깊어지며

어느 곳에서 소리내어 흘렀을까

 

별빛 곱게 징검다리 놓인 날

저 굽이 돌아나오는 소리

千年의 소리

 

 

 

 

[입선] 을숙도 그 섬은 / 박영환

 

 

을숙도, 그 섬은

남사당 미소년을 기다리는 순이처럼

다시 찾아온 새들을 맞아

행복하다

자리를 비우고 있던 외로운 때도

가슴 가득 북소리를 안고

귀향을 믿었고

그들도 약속을 잊지 않고 손을 흔들며 찾아왔다

섬은

여름 내내

하얀 허벅지에 핏물이 들도록

삼을 삼고

물레를 자아 베를 짠

갈대정원을 내어놓는다

누구는 또 떠나갈 철새이니

제 발목 잡아

상처받아 울기 전에

너무 깊이 마음 주지 말라고 하지만

애써

그들의 집은 여기이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부리로 쓰다듬고 나래로 감싸는

진심을 믿는다

새들이 펼치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축제 마당은 늘 감동적이다

비록 또 역마살이 도져 떠난다 해도

아니 떠날 수밖에 없을지 몰라도

혼을 빼앗는

저 찬란한 춤사위가 있는 한

원망하지 않고

머리를 곱게 땋아 입에 물고

그들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을숙도 그 섬은 지금

아무 것도 부럽지 않고 황홀하기만 하다.

 

 

 

[입선] 다대포 편지지 / 김정임

 

 

편지지가 있습니다

파도가 줄쳐놓은 모래밭 편지지

오로지 발자국으로만 쓰는 편지지입니다

삼삼오오 혹은

외로운 당신이

바다를 앞에 놓고 사연을 씁니다

 

모진 사랑에 대하여

푸슬푸슬, 한 세상 사는 일에 대하여

 

그럴 땐 갈매기도 조약돌도 가만히 있습니다

 

마음 부려놓은 당신들 훌훌 떠나면

달랑게가 풀게가 줄줄이 나와서는

오자를 바로잡고 밑줄을 긋습니다

 

빈 행간은 달빛이 찬찬히 읽어내어

돌아가는 당신들 야윈 어깨를

환하게 토닥입니다

파도는 조용히 사연을 지웁니다

그리고

새로운 편지지를 마련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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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내성천에게 쓰는 편지 / 조우리

 

 

내가 어떤 깊이를 바라거나 건지지 않고

국전 안쪽 가슴에 위독한 억새밭을 손끝으로 들이는 까닭은

사춘기 그 나이 무렵 새로 나온 책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네

 

늘 푸른 시간 줄에 이음새를 풀 먹이며

문체의 발목으로 말을 거는 그 치기어린 풀내음

한 문장 연필의 바닥에 눌린 어눌한 네 손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네

 

두리번거리고 있던 내성천 그곳에서

깜지뿐인 어느 변방 소년의 맨발과 눈동자가

노시인을 되먹이는 그 절필 같은 질문을 가까이 곁에 두고 싶기 때문이네

 

한 편의 삶을 다해 읊조림을 생각하며

누리고픈 강의 미지에서 쉰 목소리로 새어 나가는

이 생의 모래판을 다시 되돌리지 않고 흘려 보내주고 싶기 때문이네

 

작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

그 우기의 눈물 나도 따라 들어가 예를 입고

참을 수 없는 통점을 모래강물처럼 씻어내고픈

 

, 강은 그리고 삶은

기르는 마음보다 길러지는 그 순간이 유하지 않았던가

돌려줄 말이 있단 건 빗금을 먹은 생이 아직 몸져 시리기 때문이네

 

 

 

[최우수상] 석속령 앞에서 / 유종인

 

 

 

[우수상] 왕버들의 몸에는 내성천이 흐른다 / 윤경예

 

 

왕버들,

막 태어난 아지랑이로 제 몸에 구멍을 낸다

구멍마다 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왕버들의 새순,

흰 눈썹선 파르르 번지는 원앙이라고 불러볼까?

제가 꽃인 줄 모르는 부리에 걸리는 것은

노을이고

물살 엉겨 붙은 어스름이고

파문이 벗어둔 소금쟁이다

 

저만치 한쪽 다리 들고 물결 뛰는 봄비를 짓이기는

부리가 있어

봄비는 물속에서도 썩지 않는다고 했다

 

물살 찢기는 소리에 몸을 웅크리는 왕버들

석잠石蠶 깨고 나온 날도래 강도래의 밤을 들여다본다

입속을 오가느라 단배 주린 날개를 생각한다

어둠이 자세를 낮출 때마다 치렁치렁 물안개로 뜬다

 

수면을 당긴다

작년의 깃털이 벗겨진다

초록 왕버들, 땅에 닿기 전인데 번진다

봄비,

발 바꿔가면서 무지개 하나 놓고 간다

 

왕버들, 몸에는 내성천이 흐르고

푸른빛을 감고 사는 부리들이 재생되듯 날아온다

 

 

 

[가작] 삼강주막 / 강성남

 

 

아버지 돛단배에 몸 싣고

이 강저 산 떠돌 때

어머니는 머루즙 같은 기다림을 발효시켰다

 

군대 영장이 나왔을 때도

빚쟁이에게 쫒길 때도

유일한 은신처였다

 

아버지, 달을 끼고 강둑길 걸어오실 때

무성한 수염 호탕한 웃음소리

날짐승 길짐승도 갈  자로 걸었다

 

술 냄새에 달려 나온 강아지들

밤새 아버지 술 법문 들어야 했다 

그런 날 형과 나는

아궁이 속

식은 재 위에서 잠들기도 했다

 

아버지복사꽃 아래

술항아리 내려놓던 날

강변 모래들도 방울방울 울었다

 

아버지오늘도

묵밥에 막걸리 한 잔 하시는지

휘파람 소리 어질어질 밀려온다

 

 

 

 

[가작] 궁수자리 / 이승진

 

 

예천에 살면서 놓는 법 하나 배웠다

 

활은 쏘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

시위는 모여서 우쭐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리로 돌아가라며

당겼던 마음 놓아 주는 일

 

빠르기나 순발력보다

더 오래 참고 더 오래 연습을 해서

눈물이 되고 기계가 된 몸이

스스로 활시위 놓는 자리 찾아내는 일

 

무심으로 그대 놓아버리는

아름다운 은갈색 좌표

그 밤,

맑고 푸른 궁수자리

 

 

 

 

[가작] 회룡포 / 윤영규

[가작] 물의 얼굴 / 최인희

[가작] 마음이 연해져서야 -회룡포에서 / 조수정 

[가작] 용궁시장에서 / 최인걸

[가작] 내성천 / 원기자

[가작] 초간정에서 / 홍영수

[가작] 초간정 원림 / 이연주 

[가작] 산택지 연꽃 / 권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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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해름 / 홍성남


뻘밭 속으로 황홀이 숨어든다 찰진 갯벌에서 잡조름한 심장 하나씩 품고 저녁에 가솔들이 꿈들대기 시작한다


노리개처럼 짱둥어가 재롱을 부리고 구름발치에 알섬이 대부를 자처한다 헛구역질, 신트림을 속으로 삭이고 입덧을 재우려고 겟물까지 삼킨다


바람조차 모르게 비약한 소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 속에서 한기를 다스린다 올망졸망한 씨알들이 개흙 품에서 가능성을 늘린다


보름달이 꽉 차오르자 만삭의 끝이 다가온다 부서지는 은빛 모래톱 사이로 진통이 시작되고 젖은 땅에서 터져 나오는 통증을 스스로 앙다문다


훗배 앓던 아낙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끌고 갯벌에 주저 앉아 굵은 저녁을 캔다 바지락 속으로 새끼를 쏟아낸 먼 기억들이 딸려 나온다


모든 것이 묵직하다 그런데도 집중은 멈추지 않는다 내밀하게 생의 표피를 밀착하여 산란하는 조가비의 몸짓과 흡사하다


때가 잰걸음으로 밀려온다 진창을 뒤집어쓰고도 일어설 줄 모르던 여자, 이젠 기필코 일어서야 한다


회기의 시간, 여자만*이 여자를 위로한다 여자들이 모두 돌아가면 사곡리 바닷가엔 밤새도록 소곤소곤 갯벌의 서사가 풀어지겠다


* 여수시에 있는 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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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출항의 새벽 / 안연희


째보선창에 거대한 녹슨 쇠닻 하나,

긴 잠 속 웅크린 잠꼬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해저 뻘을 파고들던 야생의 쾌감도 잊은 지 오래,

마른 새벽 달빛이 시든 본능을 콕콕 쪼아대자

늑대처럼 부스스 깨어나 고개 쳐들고 우우 흐느낀다

 

식전부터 통통거린 발동선

수부(水夫)가 달빛에 퍼덕이는 오늘의 기상(氣象)을 가늠하며

뒤엉킨 그물채들을 힘껏 조이자

저도 모르게 흐르는 인중의 차디찬 콧물이 짭짤하다

(어디 이 바닥에 애초부터 항로(航路)라는 게 있었능가)

 

먼 시공 쪽으로 호스의 물줄기처럼 뿜어지는

등대불빛을 타고

구릿빛 물결 출렁대는 어깨춤사위 따라,

달덩이 같은 스치로폼 부표들이 어스름 물길을 튼다

 

해풍과 너울파도인들 어찌 수부의 욕망을 다 어거하랴

어류 탐지기에 포착된 연안의 반점뭉치들이

배보다 앞서 출어(出漁)한 냉동실의 얼음내를 맡았는지

저만치 바다 속을 흩어져 달아난다

(어쨌거나 투망질은 타이밍인 거여)

 

백중사리,

모래톱에서 이물로 튀어 오른 달의 허연 배 위로,

발기한 하늘에서 별들이 사출되듯 덤벼든다.

 

물보라로 떠 날리는 뱃고동소리에

갑판의 카바이트 불빛들이 확 옮겨 붙으며

얼마 남지 않은 새벽 어둠을 마저 태운다

닻올린 발동선이 투우처럼 파도를 씩씩 뒷발질하며

거대한 낯선 하루 속으로 쳐들어간다

 

트이는 먼동 속을 섬들도 우따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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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바다횟집 / 박선우


서너 평 수족관

바다의 서사를 지느러미로 쓰고 있는

농어의 비린 필체가 활처럼 휜다

물살, 물에도 살이 있다는 말

마지막까지 실감한다

뜰채에 잡힌 부력이 곧바로 허공에 충돌한다

낯선 눈동자들이 숨통을 조여오니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물의 지문을 따라 회귀했던

어미에 대한 기억이 거기서 끝났다

탁, 그녀의 칼끝은 타이밍이다

기억을 잘라내는데 가차가 없다

물결무늬로 각인된 농어의 동공이 풀리고

칼끝은 빠르게 부위별로 해체를 한다

쫄깃한 공복을 느낀 바람이

살점 하나를 물고 바다로 내빼고 있을 동안

포를 뜬 살점이

그녀의 칼끝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죽음의 무늬가 저렇게 맑고 투명할 수 있다니

그 현란한 해체 앞에 사람들의 눈은 싱싱해지고 만다

그러나 그녀가 삼십 년 넘게 되풀이한 건

물고기 칼도마 접시만은 아니다

망각이다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비롯됐다는 비난 속에서

바다가 남편을 삼키고

자식이 소식을 끊어도

참고 또 참아도 되살아나는 울분이 있어

팔딱거리는 기억을 잘라내고 있는 거다

반복이란 무서운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도 과거를 묻지 않고 손놀림만을 본다

다만 그녀가 혼자 있을 때

몸뚱이를 잃은 어두처럼 하늘을 존다는 걸

죽음을 앞둔 물고기들만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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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삮미친 바람 / 김종선






[본상] 빅뱅 / 강동일


뭇별들까지 바다가 우주를 안을 때

하늘은 거미줄에 걸려

휘둘리고

바다는 중력의

그네를 탄다


몸뚱아리만큼의 질량으로

출렁이고

숨의 진동만큼 휘어진 시간 끝에

거미가

파도를 탄다


발톱 끝으로 끠엄띄엄

빛을 당겼다 퉁기고

파도는 찰나의 가루를 뿌려

생명을

발광한다


몇백 억 년 파도는

검게 탄 거미의 발톱을 표백하고


아기는 바다로 갈 시냇물에

하얀 발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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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바닷가 시인학교 / 최일걸


출항을 서두르는 분주함으로

옹기종기 모인 시 창작 수강생들이

어군탐지기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저 깊은 바다 속 비릿한 시어를 쫓을 때

바다는 거대한 괄호로 열린다

기마부대의 말발굽처럼 밀려드는

저 거센 파도를 

단 한 줄로 요약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다만 심중에 자맥질하여

절망의 깊이를 가늠할 따름이다

모음과 자음과 짜 늘이는 그물에

코를 꿰는 시간은 

다급하게 지느러미를 터는데

얼마나 더 애태워야

시의 행간에 목숨을 걸 수 있단 말인가

패배를 인정하는 쓰디쓴 눈물만이

시를 불러들일 수 있단 말인가

와락 달려드는 파도의 자락에

나침반처럼 떨리는 펜으로 휘갈겨 쓰면

팽팽하게 당겨진 수평선이

빠르게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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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과녁 / 유대준


바다 위에 붉은 과녁 하나 떴다

내안에 부러진 큐피터의 화살

뽑아, 시위에 건다

쏜살같이 날아가 박힌

화살을 삼킨 해가

폭발하듯

참 부시다


저녁망 남은 바다에 흉터처럼

초승달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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