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가정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하여 말한다면 어떨까? 가령 4 ? 3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제주 땅에 극도의 비극적인 역사는 출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통곡과 반목과 질시의 고통스런 아수라의 세계 역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역사는 이미 일어난 과거 사실이므로 당연히 되돌릴 수 없다. 더불어 이념의 대립과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양들의 아픔과 슬픔도 지워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안쪽과 바깥쪽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수시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을 걷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더는 참담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나간 4 ? 3의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거울로 삼아 마땅하다. 이번에 시행되는 <제8회 제주4 ? 3평화문학상>도 그런 취지에서 시행됨은 물론이다.
이번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공통점으로 느낀 견해를 몇 가지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시선들이 대체적으로 4 ? 3을 피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보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4 ? 3의 현장성이나 리얼리티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4 ? 3의 역사성이나 정신적인 측면이 간과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는 과잉된 수사의 현란한 사용 등으로 독자(심사위원)와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4 ? 3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소 왜곡된 시 쓰기가 이루어진 경우도 없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은 비유를 사용하거나 난해한 시 쓰기가 시적 진실을 가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가운데 더욱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응모작품들이 다루는 소재나 내용, 의미 등이 일정한 틀 안에 갇혀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어떤 한계성을 극복하는 노력과 작품의 생산이 요망된다. 이제 4 ? 3문학은 제주만의 4 ? 3, 또는 흔적에 국한된 4 ? 3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보다 세계사적인 범위로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내용 모두를 해결하거나 충족시키는 작품은 물론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시「맑고 흰 죽」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모았다. 이 작품은 4 ? 3사건의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녀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몸에 달고 살았다 한다.
이 작품은 ‘죽’을 통해 불편한 몸을 떠올리고, 그 불편함을 야기한 사건을 되새기면서, 그 사건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서, 주어진 삶을 힘겹게 가누어나가는 한 인간의 애잔한 안간힘을 그려내고 있다.
죽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부드럽게’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삶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죽’은 ‘죽이고 죽이’는 비극적인 사태를 떠올리는 매개체이면서 언제나 목 메이게 하는 것으로 가장 절실한 삶의 영양소이다. 음식을 통해 쓰디쓴 역사의 맛을 되새기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당선을 축하한다.
제8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 변희수 시인과 논픽션 부문 김여정 작가가 결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지난 20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4.3평화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두 수상자에게 상패와 각 2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가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한 이번 시상식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상작가와 가족을 비롯해 현기영 운영위원장,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등 20명 내외의 최소인원만 참석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주4.3의 지난한 진상규명운동 과정에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이산하의 시 '한라산' 등 많은 문학 작품들이 4.3의 증언자 역할을 해주었다"며 "제주4.3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정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만개하는데 4.3평화문학상이 가교가 되고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변희수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4.3사건에 관한 작품을 누군가 계속해서 쓰고 또 누군가 계속 읽는다면 진아영 할머니를 비롯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것이 문학의 가장 큰 힘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여정 작가는 "'그해 여름'은 한국전사에 기록되지 못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보광동 사람들의 이야기로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송곳처럼 박힌 이야기를 꺼내서 들려주신 보광동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2020년 우리 모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예측불가인 상황에 부딪쳤다.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통과 교류는 멈췄고 세상은 봄의 문턱에서 차가운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순리대로 봄은 왔고 꽃은 피고 다시 초록의 물결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어려운 시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등불을 켜들어야 한다. 문학의 불씨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여 서로에게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문학이 가진 힘이 이런 때 빛이 나리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시기임에 응모작이 적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응모해 주셔서 무척 기뻤다. 응모된 281편 작품의 1차 심사를 끝내고 본선 심사를 앞둔 시점에 문경 인근 지역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여 부득이 하게 심사가 미루어진 점에 응모자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작년에 비해 응모작의 수준이 훨씬 향상되었음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다만 다시 지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잠시 언급하기로 한다. 응모를 할 때는 주최 측의 공모 의도를 좀 더 심사숙고 했으면 한다.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과 문경새재에 대해 알리고 문경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기 위해 시행하는 문학상이다. 작품 자체로는 너무나 훌륭하고 시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도 너무 난해하거나 현학적인 시는 곤란하다. 다수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해 반해 너무 성의 없이 인터넷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시들도 있었고 표현은 요란한데 도대체 알맹이가 없는 시들도 실망감을 주었다. 문경과 문경새재라는 정해진 소재가 있는 시인만큼 그 소재를 얼마나 새로운 시각으로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는지에 심사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린다.
김완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겨리 「문경새재를 읽다」, 오영록 「구름 공방」, 김향숙 「문경새재 아리랑」, 김영욱 「‘조령진산도’를 읽다」, 김국현 「태양의 꽃 오미자」, 이은정 「순례의 영토 문경새재에 들다」, 정영숙 「물박달나무의 해원」 최종 여덟 작품을 선정하여 거듭 돌려 읽고 심사숙고 하여 대상으로는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 우수상에는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와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로 확정했다.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는 다른 이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지도 ‘조령진산도’ 읽어내기를 시로 이끌어온 시도가 훌륭했다. 사라진 호랑이의 존재를 통해 새재라는 공간을 단박에 신화 속의 영험한 공간으로 이동 확장시켜 놓았다.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신령한 기운을 품은 호랑이의 발자국이 곧 우리의 발자국임을 상기시키고 그가 남긴 가죽은 길손들의 지름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화 속의 세계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성황당의 오랜 귀목도 손을 펼친 단풍나무도 모두가 존재만으로 수호신이 된다. 이로써 새재는 보름달을 탄생시키고 장대한 산맥들을 길러내는 명당이 되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새재의 신성한 영역을 보아내고 시로 엮어낸 솜씨가 놀랍다.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는 문경새재를 한 권의 서책으로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읽어나가며 시를 완성했다.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의 수려함이 돋보였다. 매끄럽고 적절한 표현으로 누가 읽어도 문경새재가 눈에 보이듯 아름답게 읽힌다. 자연이 발행하고 문경이 소장한 새재라는 책을 탐독하는 시인을 따라 읽는 이 누구나 함께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특히 낭송을 통해 새재를 전달하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는 오로지 오르려고만 하는 욕심을 평생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새재의 세 개의 관문을 통해 말하고 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쓸수록 내려올 때는 허무감이 큰 것이 생이지만 그래도 놓지 못하고 자꾸 오르고 싶은 것이 인간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그 욕심을 내려놓고 한 꺼풀 허물의 벗을 수 있음을 안도한다. 새재가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둔 또 하나의 관문마저 훌쩍 지나가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문경과 문경새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이 힘든 시기이지만 시를 통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지중해의 검은 돛을 펄럭이는 순백의 애인들 붉은 달이 녹은 바다는 위태로워서 건널 수 없고 괴여*, 네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기다림은 완성된다 알바이신 지구의 파고가 높은 날에는 이슬람틱한 휘파람이 떠밀려왔고 그런 밤이면 돌계단이 목에 감기는 악몽을 꾸느라 하루를 잊었다 돛을 품은 채 너를 기다린 적도 있다 그루밍 되는 슬픔 속으로 뒤늦은 네가 뛰어들길 바랐기 때문이다 밤의 기척을 뒤적거리면 한 움큼의 웃음 너를 타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증오하게 하는 것은 쉽다 돌아오지 않는 증오는 타락을 완성시키는 꿈이어서 이 광기는 한때의 우리에게서 온 것 어떻게 할 거야 너는 지겹도록 묻지만 지금은 혼돈을 지킬 차례 괴ㆀㅕ**, 돌아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지는 고백 어쩌면 검은 웃음 축축한 우리라는 균형
마음이 자꾸 슬픈 것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나.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나. 왜 이렇게 쉽게 분노를 하는가.
근데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날까.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어떻게 화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을 걷다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사람 때문에 울컥 화가 난 적도 있습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전에는…… 미워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조금 미워하긴 했지만 다시 만난다면 잠깐의 어색함을 견딘 후 다시 잘 지낼 수도 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워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은 원체 그렇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요 몇 년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다시 배우고 있었습니다. 분노, 슬픔, 후회, 회한, 죄책감, 미안, 부끄러움 같은 것들. 새삼 이것들이 이렇게 낯선 감정들이었는지 놀라웠고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미안하고 여전히…… 화가 납니다. 여전히 쉽게 화를 내고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나는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누가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은지, 누가 내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지 경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최선의 방어가 될 수 있을까요. 같이 분노하는 것? 혹은 더 깊이 숨어 들어가는 것?
과거에 천착하고 기억을 곱씹을수록 부끄러운 일들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그런 기억들 때문에 반성의 목록은 길어져 갔습니다. 시를 속죄하듯 써 내려갔지만
시는 속죄가 될 수 없고 나를 정화시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고 그것들을 직시하며 한 글자씩 눌러 써야했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며 쓰고 있었습니다. 시는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시를 행동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나간 감정과 행동들이 무거운 빚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어찌할 수 없는 분노와 어찌할 수 없는 미안함 들을 청산하기 위해 애쓰며 지내고 쓸 것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어쩐지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앞으로 더 경계하고 힘쓰라는 의미로 받겠습니다.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과 『시산맥』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시인이 되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관심과 열정은 여전히 두텁다. ‘여전히’라는 부사가 필요한 것은 시를 쓰기에는 이 세상에 다른 것들이 무수히 차려지고 출현하고 있어서겠다. 하지만 시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시인다운 시인’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상’이라는 것의 의미는 시인들의 행보에 기운을 실어주고 더더더 시인이 되어 가고 있음을 축복해 주는 일일 터.
제9회 시산맥 작품상 본심에 넘겨온 작품은 총 5편이었다.
강재남 <일인칭 자기지시적 시점>
김관용 <바늘>
김정진 <항(상)성>
유병록 <짐작을 넘어>
전비담 <빈 삼다수 물병이 그리는 이름>
심사위원들이 당장 바랐던 것은 ‘잘 쓴 시’를 찾는 일이었겠지만 본심에 오른 여러 편의 시 앞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하였다. 이 작은 선별의 작업이 시단에 풍부한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푸릇푸릇함은 고마웠다. 몇몇 작품에서 파도치는 역량들도 뜨거웠다.
그러다 두 편의 시로 압축을 보인 것은 그 두 편의 시에서 그 무엇을 넘어서는 면이 분명 보여서이고 작품의 밀도 또한 묵직해서였다. 시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어떤 ‘깊이’에의 도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정진 시인의 시와 유병록 시인의 시가 바로 그 두 편이었다.
김정진 시인의 작품, <항(상)성>에는 상징적인 질문과 인간의 감정이 배치되어 있다. 두 배치가 교차하면서 사람을 흡인한다는 점이 시를 여러 번 읽게 해주었으며 짧지 않은 시임에도 시가 일찍 끝나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유병록 시인의 작품, <짐작을 넘어>에는 인간사에 소금이라는 재료를 끼워 넣어 한 편의 시로 아주 잘 절여 놓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금의 뒷맛 끝에 찾아오는 단맛을 읽었달까. 인생의 여러 신호들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심사위원 모두는 그의 시 또한 여러 번을 읽었다.
본심에 오른 두 작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두 작품의 호소력에 몸과 귀를 기울였다. 수상작 한 편을 가려내는 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면, 상의 목소리를 좀 더 멀리 퍼뜨리려면 그 편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최종결정한 작품이 김정진 시인의 작품이다. 김정진 시인의 이 시에는 ‘시를 쓰면서도 삶을 그리워하는 아련함’을 시 속에 제대로 풀어 놓은 것 같았다. 그 순정을 높게 치는 것으로 했다.
수상작 <항(상)성>만큼 새로움이 기쁨이 되는 상은 늘어나야 한다. 폼 잡는 상 말고, 시인 아닌 시 자체만을 격려하는 일도 많아져야 한다. 이 상과 이 상의 수상자가 그 받침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 아울러 좋은 시를 읽게 해준 젊은 시인들께 감사한다.
* 을숙도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소재,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여 한때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다
[최우수상] 감천문화마을의 골목축제 / 허금주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갈라진 손가락 끝으로 꿈을 박음 질하던 시간들이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걸어 와 잔을 건넨다 좌판 널빤지가 기댄 울타리, 늘어진 나팔꽃에 걸리는 붉은 기억들 휘어지고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비행飛行의 날개 다독이면서 저마다 부호로 떠돌며 앓 고 있는 외로움은 탁한 막걸리로 흐려 있었다 세월 좋 아 나비 리본으로 머리 올린 화장 짙은 처녀애들 값싸 고 질낮은 노란무 몇 잎 씹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순수 를 키우러 휴학한 친구에게 엽서를 쓴다 친구여, 그대 는 절룩거리며 걸어 오는 어둠 속 차가운 꿈줄기를 당 겨오는 기쁜 울음으로 오라 마을을 빠져 나간 무소식은 남은 우리 슬픔으로 푹 젖어서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오월의 노래, 그 저녁을 가득 메웠다
[우수상] 맹금머리등*을 읽다 / 김현욱
어떤 편지는 도착하는데 수백 년이 걸린다
낙동강 하구가 수신한
거대한 편지에는
참수리와 솔개와 매의 봉인이 결연하다
함백산에서 하구까지
맹금류가 호위한 것이 분명하다
모래톱에서 펼쳐진
물결무늬 누런 갱지에
세모고랭이와 갈대 군락의 필체가 준엄한 것은
녹조와 실지렁이가 들끓는다는
전방의 풍문 때문이다
이제야,
맹금머리등을 읽는다
흐르는 것은 흐르게 하고
살아있는 것은 그대로 두어라
맹금머리등에 아로새겨진
낙동강의 나지막한 육성이
해거름,
거룩한 물빛으로 돋쳐 오른다
*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 내에 맹금류 형상을 닮은 무인도. 멸종위기종인 솔개, 참수리 등의 맹금류와 알락꼬리마도요 등이 관찰된다. 2011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