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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 / 함민복

 

 

하루 산책 걸렀다고 삐쳐

손 내밀어도 발 주지 않고 돌아앉는

길상이는 열네 살

 

잘 봐

나 이제 나무에게 악수하는 법 가르쳐주고

나무와 악수할 거야

토라져

길상이 집 곁에 있는

어린 단풍나무를 향해 돌아서는데

 

가르치다니!

 

단풍나무는 세상 모두와 악수를 나누고 싶어

이리 온몸에 손을 달고

바람과 달빛과 어둠과

격정의 빗방울과

꽃향기와

바싹 마른 손으로 젖은 손 눈보라와

이미

이미

악수를 나누고 있었으니

 

길상아 네 순한 눈빛이

내게 악수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었구나

 

 

 

 

2020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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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의 문학 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유식작품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18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함민복 시인의 악수, 시조부문에 박시교 시인의 무게, 평론 부문에 이승하 중앙대 교수의 한국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특별상에 오탁번 한국시인협회장을 각각 선정했다529일 밝혔다.

 

함민복 시인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오랫동안 따뜻한 시선으로 시를 써왔고, 이번 수상작인 악수도 시인 특유의 천진함과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박시교 시인의 무게에 대해서는 수상이 늦었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우리나라 시조 문단을 대표하는 뛰어난 시조 시인이라고 상찬하며 사물과 현상을 측은지심으로 보살피는 시를 써왔다. 이번 수상작품 무게도 삶의 무게와 처연함이 인상 깊다고 밝혔다.

 

평론 수상자 이승하 교수에 대해서는 그간 시조 전문 평론집은 거의 없었다. 시조 평론이라는 새로운 평론집을 세상에 내놓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특별상 수상자인 오탁번 회장은 원로시인으로서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문단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해온 점을 인정받았다.

 

한편, 18회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오는 811일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열리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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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 박상순

 

 

그럼, 수요일에 오세요. 여기서 함께해요. 목요일부턴 안 와요. 올 수 없어요. 그러니까, 수요일에 나랑 해요. , 그러니까 수요일에 여기서

 

무궁무진한 봄, 무궁무진한 밤, 무궁무진한 고양이, 무궁무진한 개구리, 무궁무진한 고양이들이 사뿐히 밟고 오는 무궁무진한 안개, 무궁무진한 설렘, 무궁무진한 개구리들이 몰고 오는 무궁무진한 울렁임, 무궁무진한 바닷가를 물들이는 무궁무진한 노을, 깊은 밤의 무궁무진한 여백, 무궁무진한 눈빛, 무궁무진한 내 가슴속의 달빛, 무궁무진한 당신의 파도, 무궁무진한 내 입술,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월요일 밤에,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다음 날, 화요일 저녁, 그의 멀쩡한 지붕이 무너지고, 그의 할머니가 쓰러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땅속에서 벌떡 일어나시고, 아버지는 죽은 오징어가 되시고, 어머니는 갑자기 포도밭이 되시고, 그의 구두는 바윗돌로 변하고, 그의 발목이 부러지고, 그의 손목이 부러지고, 어깨가 무너지고, 갈비뼈가 무너지고, 심장이 멈추고, 목뼈가 부러졌다. 그녀의 무궁무진한 목소리를 가슴에 품고, 그는 죽고 말았다.

 

아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 월요일의 그녀 또한 차라리 없었다고 써야 할까. 그 무궁무진한 절망, 그 무궁무진한 안개,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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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한국시 너무 소통만 강조예술가의 문학적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

 

이번 본심은 최근 한국시의 창공을 수놓는 10개의 별을 탐사하는 자리였다. 오랜 응시 끝에 심사위원들의 눈길은 성좌의 전위에서 독보적인 아우라를 분무하는 박상순이란 이름의 항성에 모아졌다. 이 별의 광원은 고독, 실험, 자유였다. 몰이해의 외로움을 견디며 기성의 예술 관념과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탈주해 온 그의 시는 늘 첨단이었다. 이런 개성이 집약된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언어의 음악성과 회화성이 절묘하게 부각된 수상작은, 사랑에 빠진 이의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단순한 일상어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 있게 구현하면서, 에로스적 욕망의 환희와 타나토스적 죽음의 비참을 복작거리는 이미지의 연쇄로 가시화하는데 성공한다. 반전의 미학도 돋보인다. 과장된 수사로 점철된 사랑의 찬가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돌연 몰락의 비가로 급전환된다. 이렇게 탈낭만화된 러브스토리 끝에 남는 것은,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 낳은 한줌의 비애다.

 

또 다른 반전이 있다. 시인을 대변하는 시적 화자는 자신이 쓴 이야기에 대해 회의하며 수정 가능성을 암중모색하지만, 사랑을 잃은 자의 허물어진 영혼처럼 완성될 수 없는 시 앞에 속절없다. 그러나 다시 시인의 심장은 미지를 향한 자기 갱신의 열정으로 약동한다. 절망의 심연에서 애인과 격렬히 포옹하듯 새로운 시상을 품고 전율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작품은 슬픈 사랑시로 쓴 아방가르드 시론이다. 박상순 시에 잉태된 무한한 이야기가 독자를 무진장 설레게 한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기택·류신·이광호·최승호·최정례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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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 아무리 어려워도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아"

 

17회째를 맞은 올해 미당문학상은 '고독한 언어 예술가' 박상순(56) 시인에게 돌아갔다. 외톨이, 고집불통을 연상시키는 수식어를 동원한 건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듯한 그의 시 세계 때문이다. 서울대 미대(서양화) 졸업이라는 남다른 이력도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1993년 펴낸 첫 시집은 6은 나무 7은 돌고래, 96년 두 번째 시집은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이었다. 적어도 시집 제목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2004년 세 번째 시집 Love Adagio에는 '시는 가나다, 숫자, 알파벳 순으로 배열한다''친절한' 소개 글을 붙였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제목의 가나다 등의 순서로. 독자의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수사 전략 따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만나 보니 박씨는 고독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고독하게 칼을 갈았던 게다. 자기 작업에 대한 소신이 누구보다 투철해 보였다. 첫 문답부터 허를 찔렀다.

 

-소감은.

"별로 얘기할 만한 게 없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특별히 기쁜 것도 아니다.“

 

-대개 수상은 기쁜 일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심사위원들이 좋게 읽고 평가해줬으니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박씨는 "아마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시 쓰기의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다 보니 기쁨이 덜한 것 같다"고 했다. 변화는 반성에서 비롯된다. "기존의 작업이 뭔가 부족해 보이고, 등단 초기의 폭발적 감정이나 열정을 그동안 많이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에 두 가지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흔적을 싹 지운, 순수한 언어 구축물인 시세계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시적 자아가 무한 변주, 탈주를 감행하는 시. 이렇다 보니 박씨 시는 낯설 수밖에 없다. 백미는 독자가 자신의 시를 이해하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에 있었다. 시집으로 묶지 않고 일기처럼 혼자만 두고 볼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시집을 냈고, 문학상을 받는다.

독자와 극단적으로 등지겠다는 게 아니다. 요즘 한국문학은 너무 소통만 강조하다 보니 하나의 개별자로서 예술가가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끌어올리는 문학적, 인간적 진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 같다.

 

설령 자신의 시가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예술적 소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박씨는 "수상작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을 포함해 지난 1년간 쓴 시들은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그래도 일상적 감정이나 정서가 들락거리는 작품들"이라고 했다. 특히 수상작은 종전의 회화성 일변도에서 벗어나 음악성을 살리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그래선지 그리 어렵지 않다. 남녀의 불행한 결말을 비치지만 두근두근 설레는 사랑시다.

 

박씨는 "아무리 이해하기 어려운 내 작품도 현실과 아무런 상관 없는 허구적인 공상에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현실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의 어려운 시를 읽는 독법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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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사슴까지 / 김중일

 

 

어느 날 내 가슴이 불타면 어쩌나.

 

내 사슴은 어쩌나.

 

깡마른 사슴. 비 맞는 사슴. 눈물 맺힌 사슴. 다리 부러진 사슴. 멍 투성이 사슴. 땅에 파묻힌 사슴. 아빠 없는 사슴. 엄마 없는 사슴.

 

폐에 바닷물이 찬 사슴. 바다가 된 사슴. 자식 잃은 사슴.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어김없이 마중 나온 사슴. 폴짝 내 가슴 속으로 뛰어드는 사슴. 잠 못 드는 사슴, 때문에 점점 커지는 가슴. 점점 자라는 사슴이 사는 사람의 가슴.

 

온몸에 멍이 든 알몸의 네 살배기 아이가 제 손을 과자처럼 선뜻 내민다. 사슴은 잘도 받아먹는다. 꽃잎보다도 작은 나뭇잎 한 장 남김없이, 내 가슴팍에 앉아 사슴은 다 먹어치운다. 그렇다고 이 계절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가는 걸 붙잡아 놓을 수도 없다.

 

이 계절에 일어난 참혹한 사건으로 사슴은 태어났다. 누군가는 죽고, 사슴은 태어났다. 나는 죽은 이의 가슴을 사슴이라고 부른다.

 

사슴은 태어나자마자 눈 뜨고, 일어섰으며, 매일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한다. 나는 그 여정을 가슴에서 사슴까지, 라고 한다.

 

무너진 내 가슴에서 태어난 사슴 한 마리가, 자란다. 내 가슴은 사슴 따라 점점 커진다. 계속 커진다.

 

어느 날 가슴이 터지고 불타면 내 사슴을 어쩌나.

 

한순간 구름처럼 하얀 재가 된 내 사슴을 어쩌나.

 

사슴 한 마리 사슴 두 마리 사슴 세 마리…… 아무리 백까지 백번을 헤아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가슴에서 사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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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학교(총장 김혁종) 문예창작과 김중일 교수가 시집 가슴에서 사슴까지로 제19회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지훈문학상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결한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된 상이다.

 

김중일 교수의 수상작 가슴에서 사슴까지는 부조리한 삶의 면면을 섬세한 이미지와 담담한 언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는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신동엽문학상과 김구용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재19회 지훈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7일 나남출판사 창립 40주년 기념식과 함께 경기도 포천시 나남수목원 책박물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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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일 장석남 시인(53)이 제18회 지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 지훈상은 조지훈(19201968)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올해 타계 50주기를 맞은 조지훈은 한국 현대시의 경지를 넓힌 시인이자 문화사와 민족운동사 연구를 선도한 학자다.

 

18회 지훈상 심사위원회는 김기택·나희덕·이영관 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단은 장석남 시인의 시적 관심사는 자연, 인생, 사랑의 사건들에 더해 예인(藝人)의 감흥과 선취(禪趣)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면서 지훈 시의 고아한 탈속과 미당 시의 분방한 초월 사이 어디쯤에 그의 노선과 정처가 있을 듯하다고 했다.

 

장석남 시인은 인천 덕적도에서 출생했다. 서울예대, 방송통신대, 인하대 대학원(박사 수료)에서 수학했다. 계간 황해문화편집장을 지냈다. 한양여대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한다. 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 소감이다.

 

지훈상의 과분한 명예와 숙제를 안겨준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는 공교롭게도 제가 시를 발표한 지 30년째 되는 해의 그것이다. 시의 궁극에 충실한 것인지, 우리말의 원천을 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속된 욕망에 좌고우면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기도 했다. 부끄러움과 외로운 감이 왜 없었겠습니까만 지훈 선생이 지향했던 것의 희미한 한 가닥이라도 붙들고 있었다면 참으로 다행일 것이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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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는 시인 장석남(52)은 얼마나 조심스러운 사람인가. 최근 새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를 낸 장석남 시인을 지난 15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집 제목은 입춘 부근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끓인 밥을/창가 식탁에 퍼다놓고/커튼을 내리고/달그락거리니/침침해진 벽/문득 다가서며/밥 먹는가,/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오는 봄/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발이 땋에 닿아야만 하니까”(‘입춘 부근전문)

 

창가에 앉아 홀로 밥을 먹었습니다. 쓸쓸함이랄까, 원초적인 질문이 떠올랐죠. ‘삶이 뭐지’. 입춘 부근이라는 것은 겨울이 가는 것이잖아요. 기러기들은 떠나온 나라로 가는데, 봄이 오면 꽃이 피죠. 그러다 꽃 밟을 땐 열매 맺는 시절로 넘어가는 걸 의미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호시절도 가는구나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꽃길은 보통 축복의 이미지이지만, 그 꽃길에서 근심하는 시인. 그는 이번 시집이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좀 멀리 보려고 했던 시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인은 순리에 대해 생각했노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살면 아프게 되고 죽게 되고, 제 나이도 그렇고 그런 면들을 자꾸 보게 됐습니다. 시에서도 표시가 나지 않을까요.”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섬세한 감성과 감각적인 시어로 장석남표 시 세계를 일궈왔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자 2012년 김달진문학상 수상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이후 5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답은 더디고/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푸른 바다에 허기져 돌아왔지/답은 더디고”(‘소풍전문)

 

시집의 첫 시는 소풍이다. “인생은 신명나는 소풍과 같은 것이긴 하나 영원성(‘바위’)에 관해 물어보면 답은 더디다. 지난 5, 시인의 어머니가 연로한 기간이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면서 보내드려야 할 때가 됐나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저편은 뭘까, 출발에 대해서 생각했고요. 우리가 온 자리가 곧 갈 자리일 텐데 그 자리엔 뭐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좀 쓴 것 같아요.”

 

시인 장석남은 얼마나 소년다운 사람인가. 문학평론가 장석주 시인은 <장석주가 새로 쓴 한국 근현대문학사>(2017)에서 장석남을 두고 “‘순진한 눈의 시인이라 평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군불을 지피는 집, 굴뚝 위로 날아가는 연기,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적막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려내는시인이다. 시인은 바람과 바위와 꽃, 모과와 더덕, 물미역 씻는 소리에도 눈 마주치고 귀기울여 이름을 지어주듯 시를 써왔다. 이번 시집에도 모닥불’ ‘눈사람’ ‘악기’ ‘등을 소재로 한 여러편의 시를 선보인다.

 

부엌문이 열리고/솥을 여는 소리//누굴까?//이내 천천히/솥뚜껑을 밀어 닫는 소리//벽 안에서/가랑잎 숨을 쉬며 누워/누군가? 하고 부를 수 없는 어미는//솥뚜껑이/열리고/닫히는/사이에/크고도 깊은 쓸쓸한 나라를 세웠으니//국경처럼 섰는 소년이여/아직 솥을 닫고 그 자리에 섰는 소년이여/벽 안의 엄마를 공손히 바라보던 허기여//그립고 그렇지 않은 소년이여/팔을 들어 두 눈을 훔치라”(‘녹슨 솥 곁에서-古代전문)

 

어머니의 병환을 지켜보는 와중에 떠오른 어린 시절. 시인을 울컥하게 만든 시다. “소년은 없어지지 않잖아요.” 이 말을 할 때에, 그의 얼굴에 소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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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백야 / 이윤학

 

 

화단을 지키는 고양이 밥그릇에다

성견 사료 한 알 한 알 떨어뜨려줬더니

골이 났는지 눈길도 주지 않더라

 

마름모꼴 방 끝의 티브이를 켰더니

화면 중심으로 불 꺼진 성냥골이

쏜살같이 떨어지더라

 

백합이 품은 짙은 백야를

필사적으로 걸어온 자

물소리를 틀어놓고

자갈을 뒤집는 잠이 들었다

 

한 번은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최후의 툰드라를 틀어놓고

잠이 들어버린 자

바가지에 틀니를 벗어놓고

옛날 맛 그대로인 김치 씹은 물을 오물거렸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

딱따구리조각마법사

세 시 반의 맨발을 위해

오동나무 상판에 가로의 숨구멍을 뚫었다

 

카페의 목조계단은 비좁았고, 반들거렸다

음울한 클래식이 지름길로 들어오고 나갔다

그만이 무덤에 갔다 돌아왔다

짙은 백야를 걸었다

 

천년만년 본드를 흡입하고

봅슬레이를 타고 내려갔다

죽은 자의 힘을 빌려 살지 않겠다

냉골 바닥 거대한 십자가 앞에 팽개쳐져

떨거지가 되지 않겠다

 

 

 

짙은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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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출판사에서 수여하는 지훈상의 제17회 수상자로 이윤학 시인과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가 선정되었다.

 

지훈상 심사위원들은 "신중하고 치열한 심사과정을 통해 문학·국학 두 영역에서 이같은 수상자를 냈다"24일 밝혔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문학적 업적과 한국학 연구로 보여준 고결한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한 지훈상은 문학과 국학 두 부문에서 시상된다.

 

문학부문의 상인 지훈문학상을 수상한 이윤학 시인은 196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해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고 2003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품은 지난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시집 '짙은 백야'.

 

국학부문 상인 지훈국학상은 이영미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책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푸른역사)에 돌아갔다. 이 교수는 1961년 서울에서 출생해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2003PAF 예술상, 2017년 노정 김재철 학술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각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520일 오전 11시 경기도 포천시 나남수목원 내 나남책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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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 / 김승원

 

 

1

 

젖줄을 토해낼 때마다 허공에 다리가 놓인다 격자무늬 그물 사이로 굵은 바람만 빠져나갈 뿐, 거미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2

 

모두 마을을 떠난 후, 여뀌며 끈끈이주걱, 바랭이가 무성한 빈집엔 도둑고양이와 생쥐가 떠나고 없다 밤이면 달빛을 풀어 추녀와 젖은 굴뚝 사이 무당거미가 슬그머니 나와 집을 짓는다 연통의 온기가 식어가면서 거미들은 재빨리 세간과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 집의 새 가장이 된 것이다 이제 거미는 썩은 대들보 살집을 파고 들어가 이 집의 내력과 가훈을 갉아먹는다 이 집엔 원래 실직한 사내가 귀향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내가 어느 날 아무도 몰래 밤 기차를 타버리고 그때부터 허물어진 집터를 배경으로 거미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집단 농장을 이루고 산다

 

3

 

무너진 것들을 배경으로 투명한 젖줄 풀어 길을 내는 저 무당거미의 삶, 여전히 팽팽하고 가파르다

 

 

 

 

재단법인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에서 출연해 운영하는 '1500만원 고료 진주신문 가을문예'의 여덟번째 수상자가 가려졌다. '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다음과 같은 심사 결과를 내놓았다.

 

'진주신문 가을문예'1995년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남성문화재단에서 상금을 비롯한 일체의 운영기금을 출연해 오고 있다. 시와 소설에 걸쳐 단 한 명만 당선작을 뽑아,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해 오고 있다.

 

'진주신문 가을문예'는 매년 가을에 공모를 마감, 심사를 거쳐 운영한다. 매년 시는 수백명이 수천편씩, 소설도 수십명이 수백편을 응모해 명실상부 전국 최고 수준을 인정받아 왔다.

 

당선작 "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 "신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능숙한 솜씨로 우리 시의 평균적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투고한 거개의 작품들은 오랜 숙련의 손길이 느껴질 만큼 안정적이며, 수준이 고르다"면서, "무엇보다 묘사가 적확하고 이미지 또한 선명하다. 말을 매만지는 솜씨로 보아 이미 기성 시인 아닌가 싶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올해 시 부문 '가을문예' 본심은 원구식(월간 <현대시> 발행인 겸 주간), 예심은 박노정(진주문인협회장) 정일근(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진영(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씨가 했다.

 

김승원씨는 안양 평촌고를 나와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 2002 '한국여성문학상' 시 부문에 입상하고, 2002 여수해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김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뜻밖에 당선 소식을 받았다. 10월에 작품을 보내놓고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당선이라니 부끄럽고 설렌다", "이번 당선은 아름다운 글만 써온 저의 글쓰기에 대한 경고라 생각한다"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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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 / 김애란

 

 

엄마 지난 주말 백화점 쎄일 때 주문한 빨간색 원피스 어디 있어요? 글쎄 네 책꽂이에 보렴 책꽂이는 모름지기 삼단이 제일인데 네 지능은 너무 높아 내 가방엔 노란색 미니스커트 밖에 없어요 간밤에 성옥언니가 먹다 남긴 가스통 바슐라르는 내가 입기에 너무 무거운 걸요 미니스커트는 지나치게 가볍죠 큰언니 언니가 아끼는 주름치마 빌려줘 그거 철공소에 맡겼어 주름좀 피려고 한 시절 바람 잡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니 분식집은 오거리 분식집이 제일이야 거기 한쪽 말이 짧은 남자는 오늘도 화단 아래로 출근했어 작은 애야 그러지 말고 네 머리에서 좀 꺼내 입으렴 네 머리엔 문학 음악 설탕 쌀 없는 게 없쟎니 아니에요 엄마 제 서랍은 요즘 부재중이에요 이 나팔바지는 왜 이래요? 그거 너무 오래돼서 그렇다 자고로 사랑이란 건 오래 되면 빛이 바래거든 아니다 서글플 거 없다 세월이 흘렀거니 하면 그만인거야 얘 막내야 머리 좀 올려라 작은애 넌 손가락 좀 펴고 큰애는 얼굴 들어 안돼요 엄마 난 긴 문장이 좋아요 무릎이 안 펴져요 엄마 빨간색 메니큐어 좀 주세요 자꾸 발바닥이 갈라져요 모자를 써야겠어요 노란색 모자는 싫어요 엄마도 노란색은 싫어하쟎아요 우리 식구 모두 노란색이라면 모조리 토해내고 싶은 거잖아요 빨간색 원피스는 아무래도 모조리 토해내고 싶은 거쟎아요 빨간색 원피스는 아무래도 다른 집으로 잘못 배달되었나 봐요

 

햇살이 조명탄처럼 터지는 사월

나는 무도회 준비가 한창인 화단 옆을 지난다

개나리 가지가 나를 만진다

올해는 좀 색다른 옷을 입고 나올라나

혹 또 노란 미니스커트?

 

 

 

 

보란 듯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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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개미 한 마리 길을 잃었는지 백지 위에서 긴 더듬이를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는 내 혀처럼 황망히 움직이고 있다. 개미라는 움직이는 검은색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연필을 질질 끌며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따라다니고 있는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지는 온통 검은 색 길로 덮인다. 그물처럼 깔린 이 검은 색 길에 놀란 걸까. 개미가 갑자기 꼼짝도 않는다. 그래, 아무데로나 뻗어가던 내 이 물컹거리는 사유도 자주 검은 돌덩이처럼 굳어지곤 했지. 자신이 뱉아낸 길이 백지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낀 걸까. 개미가 곧장 가느다란 허리를 질질 끌며 백지 밖으로 사라진다.

 

개미처럼, 내가 따라다니고 있는 누군가가 무엇이 내 생 밖으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뱉아낸 길이 원점으로만 회귀하는 길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믿으면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불면의 밤을 지켜준 내 안의 밖의 사물들이 웃고 있다. 눈물을 질질 흘리며. 기쁘다. 이제 웃음을 질질 흘리며 살아도 될까.

 

늘 꽃밭을 가꾸시던 어머니, 내 시는 그 꽃밭에서 싹텄다는 걸 새삼 말씀드려야 하나. 꽃밭 옆에 지게를 세워두시던 아버지, 그래요 지게 가득 흙을 져 날라야지요. 이 작은 몸 속 태초로부터 그리움의 소용돌이를 휘돌리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드릴 것이 부유하는 꿈밖에 없다.

끈질기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두 아이들과 따뜻한 손으로 그 행복마저 재워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무엇보다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진주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할 것을 감히 약속 드리면서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난 학교 밖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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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서른 네 분의 300여 작품 중 시선을 끌었던 작품은 박진성의 <론강의 별밤><빈집>, 김애란의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매미가 나를 읽는다>, 강예림의 <7월의 도남리><산문(山門)이 열리다>, 그리고 박선영의 <냉장고> 등 네 분의 작품이었다.

 

이중 <론강의 별밤><빈집>은 금년도 선자가 타 문예지 심사에서 세 번 이상 만났던 작품이고 또 당선의 영예도 얻었던 분이다. <7월의 도남리><산문(山門)이 열리다> 또한 3회 걸쳐 만났던 작품이다. 사적 재산이 아니라 이미 유통화된 공적 재산이란 점에서 쉽게 부담 없이 제외시킬 수 있어 좋았다.

 

결국 맨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냉장고><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 두 편이었다. 두 편 다 개성도 있고 자기 정체성도 뚜렷하며 현실을 보는 눈이나 이미지를 정박(定泊)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그러나 시는 무엇보다 정서반응의 언어고 지극히 사적이고 고백적인 언어란 점에서 <냉장고>의 경우는 그 주제 즉 곡즉전(曲卽全)의 삶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해도 사물을 장악하는 표현의 묘미가 다소 뒤져 심미적 정서를 일으키는 쾌감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은 시에 나오는 그대로 바슐라르의 이른바 물질적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 존재태를 꽃밭으로 가져가 본 것인데 감수성도 신선하고 표현의 능력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햇살이 조명탄처럼 터지는 사월, 무도회의 준비가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조명탄처럼 터지는 새로운 언어와 도발정신은 늘 신인의 몫이다.

끝으로 당선자에게 드릴 말씀은 재능박덕이란 말이 있는데 요즘 시류를 타고있는 패러디나 재치놀음의 감각 유형에서 덫을 스스로 걷어낼 줄만 안다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한국시는 지금 두 가지 방향에서 크게 오도되어 본말이 전도되어 있음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현대시가 노래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와 있다고 해도 결국 시는 노래일 수밖에 없고, 그 둘은 기발한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로 선의 인지적 충격보다는 민족 정서를 회복하는 말가락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송수권, 박노정 송희복 김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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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 김형미

 

 

초여름 저녁, 등꽃 향기 밀려온다

 

아아, 배고픈 욕정이여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안주도 없이

술로 채워지는 위를 생각하기엔 나는 아직 젊다

이미 오래전부터 칫솔질을 할 때마다 구토가 일었으나

따지고 보면 고통이 나를 치유하고 있다

묵직하게 젖어오는 아랫도리

아릿한 아픔으로 부풀어오는 유두

담배 한 대로 삭히기엔 무척 오랫동안 굴풋했다*

빈 방에 누워 자위를 즐기는 일만큼 가슴 허한 일 또 있으랴

이불이 마른 땀으로 축축해질 때 쯤

세계가 내 안에서 밑동 째 뽑혀져 나가는 두려움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욕정이라면

내 그리움은 절망인가

절망인가, 술집의 객들은 서서히 비워지고

출구 쪽으로부터 등꽃 향기 밀려와 다시 자리를 채운다

사아랑은 나의 행복 사아랑은 나의 운명

천박하지 않을 만큼만 젓가락 장단 맞추는 등꽃 향기

발끝이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빈 잔을 채운다 결국

세상의 낭떠러지는 매일같이 마주 대하는 술잔 속일지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끝내 귀가하고 마는,

 

잔인한 초여름 저녁

등꽃 향기에 젖어 젖어

 

* 굴풋하다 : 속이 헛헛한 듯하다.

 

 

 

오동꽃 피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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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느리다 / 김남용

 

 

486 낡은 세대를 부팅한다

오늘은 느리다

바탕화면에 뜰 워드를 기다리는 동안

시상이 달아나다 쓰러진다.

고장나면 나의 생명도 시든다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손상될 때

말없는 기계에 폭언하는 일은

죽은 친구에게 우정을 말하는 것처럼

싱거운 느림이다.

새로운 시상도 사라진다

결연히,

전원을 끈다

486 낡은 세대를 접는다

첨단 기술이 녹슬지 않은 노트북,

그러나 이미 이 세대는 느리다

586은 돼야신제품이란 있는 것일까?

 

폐지더미에 깔려 있던 색바랜

원고지를 빼내오고

중학교 시절 기초 언어를 연습하던

만년필을 꺼내 잉크를 채운다

잠들었던 선들이 일어나고

맑은 점들이 알알이 번진다

지금까지 이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일은 두려웠고돌아볼

거울이라도 있었던가?

 

새로운 것을 바란다면 잊고 있던

기억의 서랍을 열어 뒤적여 보라

 

486세대를 서랍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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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비 / 김영산

 

 

순간, 골목 어귀에서 어둠이 비틀거린다 플라타너스와 체르니 사이 흩뿌리는 가랑비에 자정의 목덜미가 젖는다 푸른 선풍기 느리게 돌고 있는 주점은 칠부쯤 눈을 감았다 빗물 낯바닥에 어리는 불빛 아무리 밟아 뭉개도 꺼지지 않는다 우우 데모하여 바람의 꽁무니 쫓아다니는 적막이여 국제건강약국 낡은 입간판에 붐비는 부식의 시간이여 벼룩신문 어느 광고에 중고 희망 매물은 나온 게 없을까 가슴에 꽂힌 향기로운 절망도 시들어 버린 지 오래다 수천 갈래 생의 교차로에 녹색 신호등 플러그가 빠져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막차 보내고 난 장의자에 길게 드러 눕는다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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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囚人)번호 5705, 그녀는 애벌레를 키운다 / 유영금

 

 

그녀는 감옥 안에서 노래한다

노래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노래는 자폐(自斃)를 살해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

간수의 눈빛이 그녀를 옥죄일수록 흑()

노래가 애벌레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른 수인(囚人)들도 노래를 부르며 견딜 것이다

[견딤]보다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아름다움의 끝에 닿으면 노래에게서 버려질 것이다

노래로부터 버려지고 싶은 그녀를 위해

누더기같은 수인(囚人)번호를 가위로 자른다

자르는 순간 다시 엉겨 붙는 속성을 지닌

더러운 번호, 징그럽게 알을 깐다, 오글거린다

그녀는 알았다, 감옥 안의 노래가 감옥 밖의

노래보다 살인적으로 자유롭다는 걸,

 

 

 

봄날 불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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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 이영수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맑은 날과 희뿌연 날들의 차이는 엄청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가 그렇듯 안경은 그 위험수위를 꼼꼼하게 따져 혼돈으로부터 날 구해 준다 내가 안경을 쓰면 안개들이 걷히고 아프리카 코끼리 들소떼가 막 몰려온다 안개가 몰려와 코끼리도 잡아먹고 들소떼도 잡아먹고 아프리카도 잡아먹힌다 내안경과도 흡사한 대식가의 입나도 세상을 먹고 있는 거지 걸신들려

 

안경을 벗으면 세상들이 안개처럼 빠져나간다 건물들이 흔들리고 서 있는 길들마저 꺼져 도시에는 늙은 바람만 몰려다닌다 내가 통째로 삼킨 아프리카 코끼리가 안경알을 깨고 정글 속으로 달아난다 핏줄을 따라 들소떼가 빠져나가자 서 있기가 힘들다 나 흔들리고 있는거니 저 보기 싫은 빌딩들의 정글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니? 식인종들의 종친회의는 누가 해골지팡이를 집어던져 난장판이 되었지 미친 사람들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어느파가 몰표를 던졌니 그 무식한 족장들의 추격대가 날 발견했을까 안개의 정글은 흰 나무들만 돋보기 안경을 쓴채 나뭇잎을 읽고 있다

 

안경을 벗으니 배가 고프다 안경을 쓸까 말까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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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어곡[別於曲] 1 / 김일남

 

 

그대가 깃들고도 눈 맞는 가문비나무 숲처럼 오래오래 쓸쓸하다 천지엔 아득한 눈발을 몰고 길 재촉하는 바람이 언 손 부벼 길들을 부르다 깊은 산울음에 몸 숨기고 너와집집 한 채 눈보라에 떨고 있다

 

그리워할수록 폭설 그치지 않는 내 가만한 그대, 겨운 내가 뚜욱뚝 부러져 실한 가지 한 짐 가득지고 어두운 눈길을 비츨거리며 그대 부를까 불러볼까 무장무장 깊은 산울음 가문비나무 나무 사이로 산은 산을 불러 추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고 그대 부르던 오랜 내 기다림은 눈과 눈들의 저 한사코 퍼붓는 눈발로 나를 가둔다 바라보면 그대 탁탁 튀는 불꽃 너머로 사위고 어지러운 발자국 함부로 남긴 채 쓰러진 나를 가만히 들추면 아아 잉걸 속, 다시 눈 뜨는 그대

 

그대가 깃들고도 눈 맞는 가문비나무 숲처럼 오래오래 쓸쓸한 것은 내 기다림에 익숙한 숲길과 그 기다림 속에 어느새 지어 버린 너와집 집 한 채 그대에게 내건 등불을 그대가 모르기 때문이다 가문비나무 나무숲 오오 너와집 내 그리움에 갖힌 오오랜 그대, 그리워할수록 퍼붓는 눈과 눈들의 희디흰 아우성이, 그리움이 지은 집 한 채 허물듯이 허물듯이

 

내 그리움에 갖힌 슬픈 그대

내 그리움이 울어버린 눈보라

눈덮힌 깊은 산 가문비나무숲

내가 지은 너와집

 

 

 

 

주머니 속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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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신문의 95년도 가을문예공모 당선자로 시부문에 <別於曲 1>을 낸 김일남씨(32), 소설부문에 <언어의 형식>을 응모한 문재호씨(28)가 선정됐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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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 / 손택수

 

 

뽈찜을 먹습니다 대구는 볼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는 버릇이 있다지요

 

한때 저도 그러하였습니다 이쁜 것이 보이면 먼저

볼을 부비고 싶었지요

볼에 불을 일으키고 싶었지요

 

볼이 떨어져나갈 듯 추운 날이었어요

大口처럼 벌어진 진해만과 가덕만 사이

한류와 난류도 볼을 부비면서

살이 오르는 곳

 

동백처럼 탱탱 언 볼에 감아드린

목도리도 제 살갗이었습니다

동해 시린 물을 맞던 남해 물결이었습니다

 

대구 알처럼 붉은빛이

당신 볼에도 여전합니까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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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를 펴낸 손택수(사진) 시인이 2회 조태일 문학상수상자로 선정됐다.

 

8일 전남 곡성군과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공모와 추천을 통해 접수된 132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해 손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 상패와 상금 2천만원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2회째는 맞는 조태일 문학상70~80년대 어두운 시대에 맞서며 강건한 목소리를 낸 저항시인이자, 자연과 하나된 순정한 정서를 아름답게 노래한 죽형(竹兄) 조태일(1941~1999)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이다. 이는 곡성 출신 조태일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기리는 것은 물론 한국문학의 새로운 성과를 보여준 시인을 발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올해 심사위원회는 손 시인의 시는 독자의 가슴에 부딪히는 서정을 갖추고 있고, 자신의 상처에 엄살을 피우거나 상처를 언어의 기교로 구축하려는 지적인 유희에 빠지지 않는다이 시집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기록이면서도 이 사회와 부딪치는 저항을 그치지 않는 서정시로서 위의를 보여준다라는 심사평을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손택수 시인은 대지로 돌아간 죽형 조태일 시인의 시에서 대나무의 곧음과 탄력을 알게 됐다더딘 걸음을 응원해준 심사위원, 기념사업회 관계자분들 그리고 시인을 사랑하는 곡성 군민들께 머리 숙인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한편, 2회 조태일 문학상 시상식은 시상식은 오는 12일 오후 3시 곡성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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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조태일문학상 / 이대흠  (0)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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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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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과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1회 조태일문학상 시상식 및 2019 죽형 조태일 문학축전이 오는 7일 오후 3시 곡성레저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죽형 조태일 시인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선박>이 당선된 이래 서슬 퍼런 언어로 정치모순과 사회현실에 온몸으로 맞선 저항시인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빼어난 서정시로 보여준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1941~1999) 20주기를 맞아 시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마련된다.

 

이번 행사는 조태일 시인 타계 20주기를 맞아 우리의 삶을, 우리의 숨결을을 주제로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먼저 시인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시 낭송이 이어질 예정이다. 조태일 시인이 발행하던 <시인>지로 등단한 권혁소 시인은 무뚝뚝한 사나이라는 시를 통해 불의에 맞섰던 조태일 시인을 추억한다. 강대선, 김숙희, 박관서, 석연경, 주명숙 시인도 시낭송을 통해 조태일 시인을 떠올린다. 또한 곡성의 어린이들도 조태일 시인의 시 <임진강가에서>를 낭송할 예정이다.

 

70년대부터 민중문학 진영을 이끌어온 염무웅 평론가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면서도 개성적인 목소리가 확고한 시를 썼던 조태일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염 씨는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평론 부문 당선자로 조태일 시인과는 신춘문예 동기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공연도 마련된다. ‘씨쏘뮤지컬컴퍼니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월드뮤직그룹 루트머지는 전통음악 산조에 자유스러운 형식을 접목한 퓨전음악을 선보인다.

 

또한 행사장에서는 그리운 쪽으로 고개를이라는 이름으로 서양화가 한희원 씨의 시화전도 펼쳐진다. 조태일 시인의 대표시를 비롯해 박남준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추모시들이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천년고찰 태안사 문학기행, 세미나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 시문학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마련된다.

 

1회 조태일문학상 수상자로는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을 펴낸 이대흠 시인이 선정돼어 이 날 시상식을 진행한다. 심사위원들은(신경림 시인, 염무웅 평론가, 최두석 시인)남도의 지역말을 맛깔나게 쓰는 데 오랫동안 공들인 시인인데 이번 시집의 경우 그 방언의 구사가 더욱 활달하고도 적실하다. 한국시의 융융한 흐름을 염원하던 조태일 시인이 살아계셔서 이 시집을 읽더라도 반겼을 것 같다.”라며 심사평을 밝혔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2천만 원이 수여된다.

 

한편 문학축전에 앞서 이날 1시 곡성레저문화센터 대황홀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지향의 시문학>을 주제로통일을 준비하는 젊은작가 심포지엄이 열린다. 심포지엄에서는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가진 조태일 시인의 시를 조명하고, 통일문학의 현주소를 진단할 예정이다. 동의대 하상일 교수가 분단극복과 통일지향의 재일조선인 시문학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조태일 시의 통일 담론적 고찰’(이동순 시인, 문학박사, 충남 아산), 조태일의 글쓰기와 통일적 상상력(정민구 전남대 BK연구교수),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白頭山의 창작토대’(김낙현 중앙대 교수)를 주제로 한 발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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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조태일문학상 / 손택수  (0)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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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와 청마문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5청마문학상에 부산에서 활동중인 허만하 시인이 선정됐다.

 

청마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종길)는 최근 허 시인의 작품집 청마풍경(, 에세이집, 2001)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시집, 2001)를 청마문학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청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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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청마풍경병리학자인 저자의 과학적 수련과 방법론이 작용, 특이한 깊이와 날카로움을 더해줘 청마시를 빛나게 해부 진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마문학상은 유치환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지난 5년 동안 출간된 시집 및 평()론집을 대상으로 한다.

 

허 시인은 1932년 대구 출생. 1957문학예술지 추천 등단. 시집으로 해조(1969),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2002) 등과 산문집낙타는 십리 밖 물냄새를 맡는다(2000), 길과 풍경과 시(2002)

이 있다.

 

시상식은 323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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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출신의 시조 시인 서우승(57) 씨가 제4회 청마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청마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윤성)는 제4회 청마문학상 수상자로 2001년에 시조선집 카메라탐방(태학사)을 펴낸 서씨를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청마문학상은 유치환의 시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제정됐으며 시·시조·문학평론 부문에 걸쳐 수상자를 뽑는다. 그간 김춘수, 김윤성, 조영서씨 등이 수상했다.

 

시상식은 내달 25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리며 서씨에게는 창작지원금 1천만원이 주어진다.

 

서씨는 통영 수향수필문학회 회장과 충무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제30회 경상남도 문화상과 제6회 이호우시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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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영서(70) 씨가 제3회 청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 하늘에 날개를 달아주다(문학수첩)이다.

 

시인의 세번째 시집인 새, 하늘에 날개를 달아주다에는 만월」 「알바트로스」 「나그네 새등 간결한 구절 속에 은은함이 배어 나오는 시 80여 편이 실려 있다.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의 제자와 후학들의 모임인 청마문학회(회장 문덕수)가 제정한 청마문학상은 시, 시조, 문학평론 분야에서 등단 20년 이상 된 문학인의 최근 5년 이내 발간된 저서를 대상으로 주어진다. 1회 수상자는 김춘수, 2회 수상자는 김윤성 시인이었다.

 

시상식은 312일 청마의 고향인 통영 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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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청마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김윤성(76)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선집 바다와 나무와 돌이다.

 

김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45년 정한모 등과 문예종합동인지 白脈발간에 이어 동인지 詩塔(46)를 발간했으며 연합신문, 경향신문 등에 근무했다.

 

1회 한국문학가협회상(55), 월탄문학상(72)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산길〉 〈예감〉 〈애가〉 〈자화상〉 〈저녁노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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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김춘수씨(78)가 제1회 청마(靑馬)문학상을 받는다. 청마 유치진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상을 제정한 청마문학회(회장 문덕수)는 최근 신작 시집 의자와 계단을 펴낸 김씨를 20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214일 오후 2시 통영시민문화회관 개관식과 함께 열리며 창작지원금 1천만원이 주어진다.

 

김씨는 청마와 함께 1945년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1946년 등단한 이래 15권의 시집을 냈다

 

 

 

 

의자와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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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김춘수씨가 새 시집을 내며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로 78세인 김씨는 의자와 계단(문학세계사 펴냄)을 통해 새로워진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펼쳐보였다.

 

시집에 실린 작품은 <의자> <계단>을 비롯해 모두 50여편. 그는 이들 작품에서 '마음가는대로, 느끼는대로' 사물을 관조하며 그 모습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했다.

 

김씨는 시적 실험과 자아 부정을 통해 '무의미시'라는 문학적 지평을 열었던 시인. 그는 언어파괴라는 극한작업으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번 시집은 이같은 그의 작품세계에 변화를 몰고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어실험보다는 서정성 넘친 시적 미학으로 인간의 감성을 잔잔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것.

 

대표작으로 꼽히는 <>은 유년 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을 한편의 회화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어머니가 어떤 동작을 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도 무심코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 서쪽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쪽은 온통 놀로 물들어 있습니다 // 놀로 물든 하늘이 어머니의 볼에 적십니다. 어머니의 볼도 놀빛으로 볼그스름 물들어갑니다>(<>에서)

 

팔순을 바라보는 김씨는 치열한 삶과 편안한 안식을 동시에 갈구하고 있다. 시집의 제목을 <의자와 계단>이라고 붙인 것도 이것과 직접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의자는 안식의 표상이다. 거기 가서 내 엉덩이를 놓아 한번 푸근해지고 싶다. 나는 지금 의자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제아무리 올라간다 해도 계단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말로 삶의 고단한 필연을 강조했다.

 

시집 뒷부분에 나오는 다섯편의 짧은 시에서는 그 특유의 익살과 기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제목이 없는 이들 시는 마치 동화같은 분위기를 안겨준다.

 

<달도 말고 별도 말고 / 해 지면 슬금슬금 / 뒷집 영감 불알이나 따러 가세>

 

<우루무치는 내 동생 / 누루무치도 내 동생 / 한 놈은 쩔룸발이 / 한 놈도 쩔룸발이 /왜 두 놈이 다 쩔룩거려야 하나 / 한 놈과 쩔룩거리면 안 될까>

 

김씨는 등단 무렵의 상황과 작품세계 형성과정 등을 들려주는 산문 <시인이 된다는 것> 등 두 편의 산문도 시집 끝에 덧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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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가정 / 박선희

 

 

열무 썰어 소금 뿌리자 숨이 죽었다

한길을 흐르는 물관과 체관

뻣뻣한 아빠의 티격을

태격으로 되받는 엄마의 말끝처럼

소금은 단단한 쪽과 부드러운 쪽을 오가고 있었다

 

삐죽삐죽 고개 드는 열무는 다독여 재우고

햇살을 팽팽하게 당겨 질겨진 잎은 흔들어주고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서 건너와

한국말 익히며 김치라는 발음을 섞어 만든 김치를 익히는 여자들

그들의 어둔한 말투만큼 싱거워진 김치맛에 주고받는 눈빛은 짜다

 

소금을 머금고 뱉으면서 수위 조절하며

단단한 성질 절여질 때를 기다리는 엄마

펄펄 뛰던 숨 부드러움에 절여지는 아빠

기세 조금씩 역전되고

소금은 열무를 통째로 뒤집게 만든다

이국땅서 온 저들도 곧 이렇게 버무려질까

 

풀 죽은 아빠의 등 뒤,

물속으로 녹아들지 못해 오소소한 소금들

갓 취직한 나는 언제쯤 숨죽여야 하는지

자꾸만 태어나지도 않은 베트남 엄마 아기가 걱정된다

 

하늘로 땅으로 뻗던 힘 다 빼고

함께 버무려져

아! 아른한 맛

밀물도 썰물도 모세도 다녀간

모래펄을 맨발로 걷는 해변의 맛

모래알이 숨죽일 때까지 

바다는 소금을 뿌릴 것이다

 

 

 

 

그늘을 담고도,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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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은 제11회 천강문학상 수상자와 제5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결정, 발표했다. 11회 천강문학상 부문별 대상으로 소설 부문에는 노경자(필명 노령)<의령, 의령>이 차지했다.

 

시 부문 안광숙(필명 안이숲)<나비정첩>, 시조 부문에는 서희정(필명 서희)<지금 함박눈이>, 아동문학 부문에는 최영란의 <산이> 수필 부문은 김희정(필명 조이)<러시아워>가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 부문별 우수상은 소설 부문에 정남일의 <냉장고의 미래>, 시 부문 박선희의 <가정>, 시조 부문에는 김성애의 <다시 쓰는 자술서>, 아동문학 부문은 조현미(필명 조은결)<배추흰나비>, 수필 부문은 문경희의 <겨울소리>가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5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대상은 초등학교(저학년부) 부문에 부림초등학교 박준효의 <달리는 눈썰매>, 초등학교(고학년부) 부문에 유곡초등학교 김다희의 <까칠이 왕자님 드디어 김치를 드시다이>, 중등부 부문에 의령여자중학교 김도원의 <개인주의 사회>, 고등부 부문에 신반정보고등학교 강해솔의 <그날의 감정을 기록하다>가 영광을 차지했다.

 

대상 이외에도 초등 저학년, 초등 고학년, 중등부, 고등부 각 학년별로 최우수상 1, 우수상 2, 장려상 3명이 수상했다.

 

지난 131일까지 접수한 제11회 천강문학상은 1164명에 5951편이 접수, 5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은 175명에 272편이 접수됐다.

 

분야별로 보면 시에 3292329, 시조에 1421007, 소설에 183308, 아동문학에 2881640, 수필에 222667편이 접수됐다.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 1000만원, 우수상 500만원,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각 대상에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다.

 

심사는 곽재우 장군의 생애와 사상, 철학, 문학의 업적 등에 대해 비중을 두었으며, 비공개로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 수상자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결정되었다.

 

한편 제11회 천강문학상 및 제5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422일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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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까치 / 허형만

 

 

보슬비 오시는 날

날마다 찾아가는 산길을 걷는데

저만치 산까치 대여섯 마리

보슬보슬 젖는 길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다

나도 함께 뛰고 싶어 우산을 접고

비에 젖으며 가만가만 다가가는데

눈치 빠른 산까치들

후르르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른다

하이고 못 본 척 뒤돌아갈걸

미안해하며 비에 젖어 걷는다

젖어라 시여

심장 깊이 젖어라 시여

산까치도 젖으며 노래하나니

산딸기도 젖으며 붉게 익나니

보슬보슬 젖는 시는 부드럽나니

젖어라 시여

뼛속까지 젖어라 시여

 

 

 

 

바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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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산딸기처럼 도 부드럽게 젖어들어

 

자유와 허무, 방랑의식과 민족혼을 커다란 스케일로 노래했던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적 위의(威儀)는 오늘날 한없이 왜소해진 우리 삶의 성찰적 역상(逆像)이 되어 주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삶과 시를 기리는 공초문학상 제29회 수상자로 선정된 허형만 시인은 맑고 고운 순수 모국어를 섬세하게 가다듬어 온 우리 시단의 대표적 중진이다.

 

그의 시 세계는 근원적 보편성을 일관되게 탐색하고 추구함으로써 존재의 기원에 대한 원형적 사유를 줄곧 축적해 왔다. 사물들을 향한 경험적 관찰과 그리움의 에너지를 통해 다양하고도 심원한 형상을 얻어 온 것이다. 이번 수상작 산까치또한 이러한 허형만 브랜드의 정점에서 발화된 결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인은 보슬비 내리는 산길에서 산까치들이 뛰노는 장면을 만난다.

 

그네들과 함께 뛰고 싶어 우산을 접고 다가가는데 산까치들은 어느새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른다. 그때 시인은 젖어라 시여/ 심장 깊이 젖어라 시여라고 산까치들이 젖으며 노래하는 환청을 듣는다. 산딸기도 젖으며 붉게 익어가고 시인이 상상한 ’()도 부드럽게 젖어간다. “젖어라 시여/ 뼛속까지 젖어라 시여라는 마지막 외침은 산길=산까치=산딸기를 살아 있는 형상으로 만들면서 그 형상이 아름답고 처연하게 젖어 가는 순간을 실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는 서정시의 광맥을 지속적이고 균질적으로 일구어 온 그만의 미학적 성취다. 허형만 시인이 노래하는 이러한 생명 지향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경험적 진정성과 함께 사물의 존재 형식에 대한 발견에 깊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 심사위원 이근배·오탁번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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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 / 오탁번

 

 

간밤에 비 오고 바람 불어

새벽에 지팡이 짚고

밤 주우러 나간다

알밤은 다

한발 빠른 다람쥐 차지

나는 송이밤 몇 개

 

해가 뜨면

풀밭이 된 마당에서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버마재비

제 세상 만난다

고추잠자리 떼

혼자 어지럽다

 

낮곁 내내

보행기 미는 노인 한둘

텅 빈 동네

벼 익는 논배미마다

지는 해

더디다

 

 

 

알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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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미덥게 펼쳐진 순수회귀의 시학

 

자유와 허무, 방랑의식과 민족혼을 처연한 감성과 큰 스케일로 노래했던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적 위의(威儀)는 오늘날 한없이 왜소해지고 사사로워진 우리 삶의 성찰적 역상(逆像)이 되어주기에 족하다.

 

선생을 기리는 공초문학상 제28회 수상자로 선정된 오탁번 시인은 이러한 공초 선생의 면모에 최대한 부합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활달한 언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실물적으로 포착하고 재현하는 능숙한 역량으로 이미 우리 문학사의 고전이 된 분이다. 그의 시세계는 기억 속의 유년과 고향에서 시작하여, 가장 순수한 원형을 간직한 원서헌근처의 생명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져온 과정을 담아낸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우리 기층언어에 대한 지극한 헌신을 이루어낸 시집 알요강’(2019)은 이러한 만유 공존의 상상력을 극점에서 드러낸 명품이다. 거기 실린 수상작 하루해하루해아래서 때로 부지런하고 때로 느리게 움직여가는 자연의 풍경을 부조하면서도 낮곁 내내/보행기 미는 노인 한 둘을 대조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더디게 스러져가는 삶을, 쓸쓸하지만 환하고, 비어 있지만 가득한 삶의 역리(逆理)로 노래하고 있다. 오탁번만의 천진성과 반()근대적 시법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순은(純銀)이 빛나는 아침으로부터 뉘엿하게 기울어가는 해거름까지, 하루해의 시간을 근원적 시선으로 발견한 순수 회귀의 시학이 미덥게 펼쳐진 것이다.

 

- 심사위원 이근배·유자효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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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너 / 나태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거리에도 없고 집에도 없고

커피잔 앞이나

가로수 밑에도 없는 너를

내가 사랑한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네 모습 속에 잠시 있고

네 마음속에 잠시 네가

쉬었다 갈 뿐

 

더 많은 너는 이미 나의

마음속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너!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한다

너한테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마음이 살짝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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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에 나태주 시인(74)'마음이 살짝 기운다'가 선정됐다.

 

문학사상은 지난 8월 소월시문학상 본심을 거친 신작 시집들 중에서 '풀꽃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마음이 살짝 기운다'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소월시문학상은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김소월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6년 제정된 상이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작가 겸 교육자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50여 년간 수천 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쉽고 간결한 시어로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담은 시로 사랑을 받아왔다.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일상의 경험과 밀착시켜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모든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최근 펴낸 시집들을 통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언어에 명징한 심상을 실어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나태주 시인은 흔히들 김소월 선생의 시를 쉽다고, 연애시 어름이라고 그러는데 그건 시를 제대로 깊게 읽어보지 않아서 그렇다, 가슴으로 느끼면서 영혼으로 무겁게 읽으면 그분의 시처럼 어려운 시도 드물 것이라며 언감생심, 김소월 선생의 작품을 따를 수는 없겠지만 보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부단히 마음을 모으고 실수하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이상문학상 및 신인문학상과 함께 12월 열릴 예정이며 상금은 1000만원이다. '2019년 제30회 소월시문학상 기념 시집'은 내년 상반기 발간되고 나 시인과의 인터뷰 등은 월간 '문학사상'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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