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아래 천년 / 배한봉
봄날 나무 아래 벗어둔 신발 속에 꽃잎이 쌓였다.
쌓인 꽃잎 속에서 꽃 먹은 어린 여자아이가 걸어 나오고, 머리에 하얀 명주수건 두른 젊은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허리 꼬부장한 할머니가 지팡이도 없이 걸어 나왔다.
봄날 꽃나무에 기댄 파란 하늘이 소금쟁이 지나간 자리처럼 파문지고 있었다. 채울수록 가득 비는 꽃 지는 나무 아래의 허공. 손가락으로 울컥거리는 목을 누르며, 나는 한 우주가 가만가만 숨 쉬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 꽃들의 길.
차마 벗어둔 신발 신을 수 없었다.
천년을 걸어가는 꽃잎도 있었다. 나도 가만가만 천년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고 싶었다. 한 우주가 되고 싶었다.
문학사상사는 금년으로 제26회를 맞이하는 ‘소월시문학상’ 의 대상 수상자로 배한봉 시인이 선정되었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수상작인 ‘복사꽃 아래 천년’은 배한봉 시인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생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진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배한봉 시인이 “한국적 서정에 뿌리를 두면서도 인간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통해 생명력의 본질적 순수를 새롭게 해석했고 평범한 자연 속에서 비범한 생명을 발견하는 시인의 깊은 통찰이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시적 긴장을 살려냈다”고 평가했다.
지난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배한봉 시인은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서정시의 자연을 새롭게 해석해 시집 ‘우포늪 왁새’,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등을 내놓은 중견 시인이다. 배시인은 또 2001년부터 매년 ‘우포늪 시생명제’를 주재하는 등 한국 생태주의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한편 우수상에는 고영민, 손택수, 여태천, 윤제림, 조용미 시인이 선정되었으며 대상 수상자는 1300만원, 우수상은 각각 100만원을 받는다. 시상식은 11월 초 열릴 예정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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