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 / 유홍준
- 까마귀
어제 앉은 데 오늘 앉아 있다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고 바람이 날아다니고
계속해서
무얼 더 먹을 게 있는지,
새카만 놈이 새카만 놈을 엎치락뒤치락 쫓아내며 쪼고 있다
전봇대는 일렬로 늘어서 있고 차들은 휑하니 지나가고
내용도 없이
나는 어제 걸었던 들길을 걸어 나간다
사랑도 없이 싸움도 없이, 까마귀야 너처럼 까만 외투를 입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낸다
원인도 없이 내용도 없이 저 들길 끝까지 갔다가 온다
하동 이병주문학관 사무국장을 맡은 유홍준(51·사진) 시인이 제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문학사상사는 유홍준 시인의 '북천-까마귀' 등 24편을 제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11월 초 열리며, 상금은 1000만 원이다.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김남조·오세영·김승희·문태준·권영민)는 "죽음에 관한 시인의 사유방식이 그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 현대시 가운데 주목되는 성과에 해당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심사위원회는 "시인은 '북천'을 죽음의 거처로 단순화하지 않고 생명의 종말과 그 새로운 탄생이라는 순환적 의미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덧붙였다.
소월시문학상은 지난 1년 동안 문예지 등에 발표된 전국의 시인 100여 명의 작품을 1차로 심사하고 나서 이 중 10여 명의 작품을 추려 2차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유홍준 시인은 "내 시가 심사 대상이 되는 줄도 몰랐다. 다른 어떠한 말도 필요 없다. 그러나 금방 이 상을 잊어먹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냥 지금 나한테 주어진 북천의 삶과 시로 살겠다"고 독특한 소감을 밝혔다.
1962년 산청에서 태어난 시인은 1998년 '시와반시' 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 <喪家(상가)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가 있다.
그는 2005년 한국시인협회 '제1회 젊은 시인상'에 이어 2007년 제1회 '시작문학상', 제2회 '이형기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순천대 문예창작학과와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한편 소월시문학상은 향토성 짙은 서정으로 한국시의 영역을 넓힌 소월 김정식의 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1987년 문학사상사(文學思想社)가 제정한 상으로, 해마다 수상작을 선정·시상한다.
제1회 오세영 시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송수권, 정호승, 황지우, 천양희, 김용택, 안도현, 문태준 시인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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