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512일 장석남 시인(53)이 제18회 지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 지훈상은 조지훈(19201968)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올해 타계 50주기를 맞은 조지훈은 한국 현대시의 경지를 넓힌 시인이자 문화사와 민족운동사 연구를 선도한 학자다.

 

18회 지훈상 심사위원회는 김기택·나희덕·이영관 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단은 장석남 시인의 시적 관심사는 자연, 인생, 사랑의 사건들에 더해 예인(藝人)의 감흥과 선취(禪趣)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면서 지훈 시의 고아한 탈속과 미당 시의 분방한 초월 사이 어디쯤에 그의 노선과 정처가 있을 듯하다고 했다.

 

장석남 시인은 인천 덕적도에서 출생했다. 서울예대, 방송통신대, 인하대 대학원(박사 수료)에서 수학했다. 계간 황해문화편집장을 지냈다. 한양여대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한다. 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 소감이다.

 

지훈상의 과분한 명예와 숙제를 안겨준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는 공교롭게도 제가 시를 발표한 지 30년째 되는 해의 그것이다. 시의 궁극에 충실한 것인지, 우리말의 원천을 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속된 욕망에 좌고우면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기도 했다. 부끄러움과 외로운 감이 왜 없었겠습니까만 지훈 선생이 지향했던 것의 희미한 한 가닥이라도 붙들고 있었다면 참으로 다행일 것이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nefing.com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는 시인 장석남(52)은 얼마나 조심스러운 사람인가. 최근 새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를 낸 장석남 시인을 지난 15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집 제목은 입춘 부근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끓인 밥을/창가 식탁에 퍼다놓고/커튼을 내리고/달그락거리니/침침해진 벽/문득 다가서며/밥 먹는가,/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오는 봄/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발이 땋에 닿아야만 하니까”(‘입춘 부근전문)

 

창가에 앉아 홀로 밥을 먹었습니다. 쓸쓸함이랄까, 원초적인 질문이 떠올랐죠. ‘삶이 뭐지’. 입춘 부근이라는 것은 겨울이 가는 것이잖아요. 기러기들은 떠나온 나라로 가는데, 봄이 오면 꽃이 피죠. 그러다 꽃 밟을 땐 열매 맺는 시절로 넘어가는 걸 의미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호시절도 가는구나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꽃길은 보통 축복의 이미지이지만, 그 꽃길에서 근심하는 시인. 그는 이번 시집이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좀 멀리 보려고 했던 시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인은 순리에 대해 생각했노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살면 아프게 되고 죽게 되고, 제 나이도 그렇고 그런 면들을 자꾸 보게 됐습니다. 시에서도 표시가 나지 않을까요.”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섬세한 감성과 감각적인 시어로 장석남표 시 세계를 일궈왔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자 2012년 김달진문학상 수상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이후 5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답은 더디고/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푸른 바다에 허기져 돌아왔지/답은 더디고”(‘소풍전문)

 

시집의 첫 시는 소풍이다. “인생은 신명나는 소풍과 같은 것이긴 하나 영원성(‘바위’)에 관해 물어보면 답은 더디다. 지난 5, 시인의 어머니가 연로한 기간이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면서 보내드려야 할 때가 됐나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저편은 뭘까, 출발에 대해서 생각했고요. 우리가 온 자리가 곧 갈 자리일 텐데 그 자리엔 뭐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좀 쓴 것 같아요.”

 

시인 장석남은 얼마나 소년다운 사람인가. 문학평론가 장석주 시인은 <장석주가 새로 쓴 한국 근현대문학사>(2017)에서 장석남을 두고 “‘순진한 눈의 시인이라 평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군불을 지피는 집, 굴뚝 위로 날아가는 연기,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적막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려내는시인이다. 시인은 바람과 바위와 꽃, 모과와 더덕, 물미역 씻는 소리에도 눈 마주치고 귀기울여 이름을 지어주듯 시를 써왔다. 이번 시집에도 모닥불’ ‘눈사람’ ‘악기’ ‘등을 소재로 한 여러편의 시를 선보인다.

 

부엌문이 열리고/솥을 여는 소리//누굴까?//이내 천천히/솥뚜껑을 밀어 닫는 소리//벽 안에서/가랑잎 숨을 쉬며 누워/누군가? 하고 부를 수 없는 어미는//솥뚜껑이/열리고/닫히는/사이에/크고도 깊은 쓸쓸한 나라를 세웠으니//국경처럼 섰는 소년이여/아직 솥을 닫고 그 자리에 섰는 소년이여/벽 안의 엄마를 공손히 바라보던 허기여//그립고 그렇지 않은 소년이여/팔을 들어 두 눈을 훔치라”(‘녹슨 솥 곁에서-古代전문)

 

어머니의 병환을 지켜보는 와중에 떠오른 어린 시절. 시인을 울컥하게 만든 시다. “소년은 없어지지 않잖아요.” 이 말을 할 때에, 그의 얼굴에 소년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