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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길 / 김초혜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멀고 먼 길

 

nefing.com

 

 

 

[심사평] 늙은 아이가 바라본 신비한 세상

 

김초혜 시인은 한때 사랑 굿이라는 시편으로 세상을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작가다. 1980년대나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시인의 시편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도 청춘은 흘러 이제 노년이다.

 

노년에 이르게 되면 시도 따라서 노년에 이르게 마련. 그래서 시가 늙는가. 아니다. 시가 변한다. 변하더라도 좋은 쪽으로 변하는 데에 시인의 성취가 있고 독자의 기쁨이 있다. 가능하다면 시의 길이가 짧아져야 하고 그 내용이 깊어져야 하고 시선이 맑고 그윽해져야 한다.

 

딱 여기에 해당되는 시인이 바로 김초혜 시인이다. 그러기에 심사위원 세 사람은 쉽게 호흡을 같이 했고 이견 없이 김초혜 시인의 시집 멀고 먼 길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시 멀고 먼 길은 최근 시인의 시적인 노력과 근황을 한눈에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노년에 이른 시인의 해맑은 눈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겸허가 가득하다. 차라리 한 편의 기도문이다. 무릇 기도는 절대자에게 드리는 인간의 하소연과 소망의 표현. 여기서 시인은 즐겨 어린이가 되고자 한다. ‘늙은 아이가 그것이다.

 

정말로 좋은 시인은 젊어서는 젊은 노인이지만 늙어서는 늙은 아이가 될 수 있는 시인이다. 이야말로 시인에게 이른 신의 축복이요 선물이다. 늙은 아이가 되어서 보는 세상은 당연히 아름답고 신비하고 또다시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김초혜 시인이 바라본 세계, 김초혜 시인이 내놓는 시편들이 그러하다. ‘멀고 먼 길세상을 한 바퀴 돌아왔지만 시인의 숨결은 지쳐 있지 않고 시인의 마음결은 여전히 싱싱하고 촉촉하다. 뿐더러 고요하기까지 하다. 거기에다가 지혜에 가득 차 있다.

 

고요한 지혜의 바다, 그 바다에 꽃으로 피어난 겸허한 고요. 상이란 들쑥날쑥이다. 먼저 받을 수도 있고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으신 시인의 이름으로 받으시는 상에 마음의 꽃다발을 미리 전한다.

 

- 심사위원 이근배·신달자·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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