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 홍경나
할머니와 나들이를 갔다 흰 머릿두건을 두른 할머니는 꼬신내 나는 콩고물 묻힌 주먹밥과 호미 담은 대광주리를 옆에 끼고, 나는 할머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재 너머 할아버지 묘가 있는 콩밭
할머니 묏등 위 다보록이 돋은 성깃성깃 자란 띠풀을 뽑아 들고 가만히 봉숭아꽃물 진 얼굴로 저 먼 데 하늘을 점두룩 바라봤다 해 들면 덥다 여기서 놀거라 잎 큰 아주까리 아래 나를 데려놓고 예닐곱 이랑이랑 콩밭을 맸다
가끔 때까치들이 할머니가 김을 매는 밭고랑 사이를 푸르릉 푸르릉 다녀갔다 나는 혼자서 붉은 흙을 쑤시고 파고 다독여 아주까리 이파리로 지붕 얹은 개미집도 만들고 달개비꽃 따다 꽃밥 짓고 콩이파리 따다 콩잎자반 재고 새금파리 그릇 삼아 상을 차렸다 맛나지 할머니, 우리 할머니 냠냠 묵자 할머니가 내게 그러듯 할머니께 밥 떠먹이는 숭내를 냈다 이도 저도 시장스러지면 아주까리 그늘에 엎드려 콩고물주먹밥을 오물거렸다 되새김질하는 우리 집 누렁소처럼 입을 놀리다가 거물거물 잠이 들었다 꼼지락꼼지락 콩밭귀로 내려오던 산그늘이 두툼해지면 젖은 등더리에 업혀 어느덧 집으로 돌아왔다
내 나이 열여섯 살 때 할머니는 색동원삼 명주옷 곱게 차려입고 꽃상여 타고 혼자 나들이를 떠났다 믈그름 감또개 툭! 툭! 떨어지는 고샅길을 돌아 나랑 다니던 나들잇길로 재 넘어 할아버지한테 가버렸다 새벽부터 는개가 듣던 그날 삼베두건을 쓴 상두꾼 직동할배가 그날은 할머니를 따라가면 못쓴다고 타일렀다 오호오 오호오 상엿소리가 나 대신 재 너머까지 할머니를 길게 길게 따라갔다
아주까리 너른 그늘로 때까치 왕개미 떼지어 놀고 할머니 백목 치맛자락 꼭 쥐고 콩밭으로 나들이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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