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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존재 / 김행숙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 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제16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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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제 우리 시는 부드러운 집요함 알게 됐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들에 나타나는 두 가지 특징에 대해 우선 동의할 수 있었다. 첫째, 예년에 비해 비교적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대거 본심에 올랐다는 것과 이를 반영하듯 실험적 형식을 개진하는 작품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둘째,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것이지만, 자신만의 방법론을 개진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작품들은 때로 형식의지만을 지나치게 드러냈으며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의 경우는 때로 태도가 문장보다 훌쩍 앞서 나갔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방법론을 개성적으로 고수하면서도 주관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드러내면서도 문장의 탄력을 잃지 않는 작품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심사위원들은 어렵지 않게 김행숙 시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당선작인 유리의 존재는 특유의 다감한 어조 안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장들은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간격들을 정확하게 유지하면서 작품 전체의 사상(事象)에 깊이와 긴장을 부여한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와 같은 문장은 감수성과 지성의 통합이라는 현대시의 과제가 한국시에서 어떻게 달성되어 가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이 문장에 심사위원들의 탄복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이제 한국시는 부드러운 집요함을 알게 되었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오생근·김혜순·송찬호·이영광·조강석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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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굉장히 잘 깨지는 존재아픔 함께 슬퍼할 수 있다면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봄은 온다고 했던 이성부(19422012)의 시구절을 비틀어 이렇게 사용할 수 있을까. 벅찬 기쁨, 오랜 소망 같은 것들은 그것들을 바란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때라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라고.

 

단단하면서도 가슴 아린 시 유리의 존재로 올해 미당문학상을 받는 시인 김행숙(46)의 경우가 꼭 그렇다. 김씨는 13일 인터뷰에서 더운날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서늘한 세숫대야 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최근 1년 새 병명조차 모른 채 아팠다고 했다. 심할 땐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 뼈와 관절들의 고통이었는데 진통제, 신경계통 약들을 오래 복용하자 시 쓰는데 필요한 예민함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당선작 유리의 존재를 포함해 최근 1년간 간신히 쓴 8편 은 그런 몸과 마음의 악조건 속에서 건진 것들이다. 그래서 올해 수상을 전혀 예상 못했다는 것. 시라는 정신의 영롱함은 생살을 찢는 아픔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문학의 역설이 다시 한 번 어깨를 드러낸 셈이다.

 

당선작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김씨는 인간은 굉장히 잘 깨지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힘들 뿐더러 충분히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떤 간격,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김씨의 등장은 시단(詩壇)의 사건이었다. 견고하고 단일한 시의 화자나 주체가 사라진 이상한 감각들의 세계에서 김씨는 오히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인간 주체를 대신해 시의 주인 노릇을 하는 건 종종 귀신과 사춘기 악동, 혹은 분열된 시선 자체였다.

 

당선작은 그런 흔적을 품고 있다. 현실과 꿈의 질서가 교란돼 있고 심지어 죽은 자의 시선까지 상정한다. 살아있는 시인이 상상하는 시체의 시선, 그 시선에 비친 풍경은 그 이미지만으로도 섬뜩하고 참혹하다. 어떤 슬픔, 울음기마저 느껴진다.

 

시에 슬픔이 많은 이유를 묻자 김씨는 요즘 들어 부쩍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슬퍼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천사는 천사이되 고통을 대신하는 천사가 아니라 곁을 지키며 함께 슬퍼해주기만 해도 좋을 천사가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슬퍼한다는 건 단순히 우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이건 아니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현실의 개선을 꿈꾸는 슬픔, 그래서 힘이 센 슬픔이라는 거다.

 

김씨의 문학도 결핍에서 출발했다.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 꺼려하는 성격을 고치는 데 시 쓰기가 도움이 됐다. “지금도 시를 쓸 때 가장 큰 충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의 슬픈 시는 아팠던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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