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은 용의 홈 타운 / 최정례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 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 대 놓치고, 그 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세상사 대하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야?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 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들이 창궐하여 다시 사해는 해충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 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니?
[심사평] 대상들이 서로 비추고 산란, 매혹의 경지
산문시는 우리 시사에서 개척되지 않은 영역에 속한다. “행갈이하지 않은 시, 운율이 없는 시”라는 형식적인 규정이 오해를 낳았다. 그동안의 산문시가 느슨한 시작 메모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최정례의 산문시에서는 한 이야기가 자유로운 연상을 타고 다른 이야기로 건너가고, 한 이미지가 변신담의 주인공처럼 모습을 바꾸면서 다른 이미지가 된다. 시가 진행되면서 중첩되어 있던 이야기들은 하나의 큰 이야기로 통합되고, 이미지들은 계열을 이루면서 중심 테마에 수렴된다. 이것은 한 번에 여러 개의 삶을 사는 일이자 여러 개의 현재가 이곳에서 웅성거리고 있음을 증언하는 일이다.
이번 수상작도 그렇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뒤틀어 얻어낸 저 유머는,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라는 현실주의에 의해 부정되고, 화를 내는 한 사람(그는 ‘용용 죽겠지?’의 대상이다)에 대한 묘사로 옮겨가며, 장례식장 가는 길에서의 상념(우리는 모두 죽으러 가거나 죽은 자를 위로하러 가는 길 위에 서 있다)을 거쳐, 참새/해충이라는 알레고리로 귀결된다. 여기에 이르면 어느새 해충은 사라지고 참새와 용의 대립이 민중과 권력자의 대립으로 전환된다. 누가 해충이니? 참새들이니, 아니면 참새를 멸절시켜 재앙을 부른 자니? 흥, 화내는 너도 개천에서 났잖니?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모든 대상들이 서로를 비추며 무수한 의미들을 산란시킨다. 이 매혹적인 경지에 수상의 영광이 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권혁웅·고형렬·김기택·이시영·황현산
지리멸렬한 일상의 고통 … 시라도 써 탈출을 꿈꾸다
저지방 우유, 고등어, 고무장갑…, 자질구레한 쇼핑 물품을 차 트렁크에 싣는데 외국 사는 친구가 국제전화로 한가한 소리를 늘어 놓는다. 방심한 사이 웬 사내가 내 차를 들이받고, 친구는 전화를 끊지 않는다. 설상가상 동전을 돌려받겠다며 카트를 반납하러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건너편 차 안에 갇힌 개는 차창을 긁으며 울부짖는다. 제발 날 놓아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가사가 오늘 따라 가슴을 친다.
최정례(60) 시인의 200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의 내용 일부다. 최씨는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실감나게 그리곤 한다.
요컨대 지리멸렬해 고통스러운 삶 혹은 일상이 그가 즐겨 사용하는 시 소재다. 언제라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함정 같은 일상, 그곳에서 시인은 탈출을 꿈꾸거나 자주 신세 한탄에 빠진다.
수상작 ‘개천은 용의 홈타운’도 마찬가지다. 흔하디흔한, 그래서 일상적인 속담 ‘개천에서 용 난다’를 비틀었다. 시효가 지난(요즘은 어려서 잘 살아야 성공하기 때문에) 속담에 대한 반감을 익살로 버무렸다.
시인은 왜 일상을 고집하는 것일까. 최씨는 “일상성이 힘이 세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의 언어는 관념적이기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강렬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일상을 담다 보니 시가 산문화된다는 점. 시인은 “내 산문시와 그냥 산문은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가령 “결론을 대놓고 말하지 않고 주변을 건드린다”고 했다. 일종의 에둘러 말하기다. 그러기 위해 잘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단어들을 갖다 붙이는 경우도 있다. ‘레바논’이라는 중동의 나라 이름에 ‘감정’이라는 단어를 이어 붙여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시 ‘레바논 감정’(2006년 시집 『레바논 감정』의 표제시)은 그렇게 태어났다.
최씨는 “평소 불만이 시에 나타나는 것 같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경제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개인 사정도 있지만 ‘북창동식 미시꿀통’ 같은 낯 뜨거운 이름의 술집이 버젓이 번화가에 자리잡은 우리의 천박한 유흥문화에 대한 불만도 있다. 사회적 불만이다. “시인이 그런 걸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래서 시라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거침 없이 활달한 시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큰 상을 받아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데, 어렵거나 지겹지 않아 젊은이들도 좋아하는 시를 쓰고 싶다.” 그의 후속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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