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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꽃이 불편하다 / 박영근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뒹구는 꽃떨기

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

 

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저 꽃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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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문학상 운영위원회는 '5회 백석문학상'에 시집저 꽃이 불편하다(2002)의 저자 박영근(45)씨를 선정했다.

 

박씨는 1981反詩(6)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취업공고판 앞에서」「대열」「김미순」「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1994년 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박씨의 시가 세계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동시에 맨몸으로 감내하는 치열한 고투를 통해 지난 시대의 이념적 좌절을 넘어서는 감동적인 아름다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달 26일 오후 6시 서울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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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자 /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2007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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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오래 머물면 마음이 맑아지는 한편의 시

 

논의 끝에 마련한 심사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상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발견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응결 혹은 형상화의 미학이 있어야 한다. 셋째, 가독성과 흡인력이 높아야 한다. 넷째, 미당의 문학성과 상관성이 있으면 더 좋다. 다섯째, 독자의 나태한 일상을 흔들고 긴장케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최종 후보에는 젊은 시인과 원로급 시인이 두루 있었다. 이장욱·손택수·김행숙은 개성있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지만 연륜·안정성·가독성 문제가 제기됐다. 김경주는 비유와 시적 공간의 세련성에서 관심을 끌었지만 수상작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문재의 문명 비판시는 그것이 지닌 의미는 인정하지만 아직 출발선에서 멀리 못 간 것 같다는 지적, 다른 작품과의 연결이 불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고형렬의 달개비의 사생활은 찬사를 받았지만 그 외 작품에서 안이한 상상력과 언어가 엿보여 아쉬웠다. 김명인과 김신용에 대해서, 특히 김명인 시의 수사적 세련됨과 안정감을 다들 고평했다. 반면 한 자리에 머물며 같은 언어를 반복하는 듯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진규 시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가 나왔지만 미당문학상을 떠받칠만한 단 한편의 시를 선별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문인수가 남았다. 그의 시가 기준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태작 없이 대부분 높은 완성도를 가졌고, 원숙기에 들어섰으며, 그의 작품 몇 편이 계속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점이 그의 치열한 시 정신과 함께 인정됐다. 그 중 식당의자공백이 뚜렷하다를 놓고 마지막 격론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예사롭지 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발견의 충격과 시적 에스프리의 매력은 공백이 뚜렷하다가 더 강하다. 그러나 공백이 뚜렷하다는 더 높은 정신으로 응결되지 못한 개인적 삶의 허무를 노래한다. 이에 비해 식당의자는 언뜻 기시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삶의 근저에 닿아있다. 버려진 식당의자를 소외된 존재와 연결하는 비유적 상상력은 평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평범에서 비범의 긴장과 의미를 유지하는 것이 장점이다. 또 소외된 존재에 대한 연민이라는 주제는 멋진 허무의 포즈보다 신뢰감이 높다. 기발한 시적 공간도 아니고 목소리도 낮지만 겸손한 진정성과 섬세한 미학성이 잘 결합된 수작이다. 오래 머물면 마음이 맑아지는 예쁜 굴곡과 무늬가 숨어있다. 미당문학상의 영예는, 오래된 기억같은 작품 식당의자에 주어졌다.

 

심사위원 황현산·이시영·황지우·김혜순·이남호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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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근성의 승리, 비주류의 승리

 

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문인수(61)씨의 시 '식당의자',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으로 김연수(37)씨의 중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이 선정됐다. 미당 서정주(1915~2000) 선생과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된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은 중앙일보와 문예중앙이 주최하고 LG그룹이 후원한다.

 

미당. 황순원문학상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상이다. 미당문학상 상금은 3000만원, 황순원문학상은 5000만원으로 각 부문 국내 최고 액수다. 모두 26명의 심사위원이 투입됐고, 8개월 동안 81종의 문예지를 검토했다.

 

문씨 시의 매력은 야생성에 있다. 규범에 매이지 않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력은 그의 시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더욱이 그는 늘 저 낮은 세상을 바라본다. 번듯한 시 수업 한 번 받은 적 없는 시인이기에 외려 구현할 수 있는 작품세계다. 수상작 '식당의자'는 식당 천막 아래 놓여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시인은 허름한 의자에서 삶의 그늘을 찾아낸다.

 

문인수씨는 이른바 '변방의 시인'이었다. 42세에 문예지 '심상'으로 등단한 늦깎이이고, 대구를 무대로 활동하는 지방 시인이다. 무엇보다 그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동국대 국문과를 6개월만 다녔을 따름이다. 시인은 "허위 학력 파동으로 소란스러운 이때 큰 상을 받게 돼 감개가 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당. 황순원문학상 시상식은 중앙 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1026일 오후 6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미당.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중앙북스)은 이번 주말께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한편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자는 20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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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 박성우

 

 

곡식 까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그렇게 굽은 몸으로

멍석에 차를 잘도 비비던 할머니가

정지문을 열어 놓고

누런 콩을 까부르고 있었다

키 끝 추슬러 잡티를 날려 보내놓고는,

 

가뜬한 잠을 마루에 뉘였다

 

하도 무섭게 조용한 잠이어서

생일 밥숟갈 놓고 눈을 감은

외할매 생각이 차게 다녀갔다

 

 

 

가뜬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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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전북지회(회장 이병천)가 선정하는 제3회 불꽃문학상에 박성우(37) 시인이 선정됐다.

 

지난해 5년만에 시집 ‘가뜬한 잠’을 출간하고 이 시집으로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했으며, 지역을 중심으로 대내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펼쳐 온 점이 높이 평가됐다. 상금은 300만원.

정읍 출신으로 지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거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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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 정호승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에 버리고 온 나를 찾아가지 못한다

의상대 붉은 기둥에 기대 울다가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제는 봄이 와도 내 손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

머리에 새들도 집을 짓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이미 잊은 지 오래

동해에서는 물고기들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고

별들도 떼지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지 않는데

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쳐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 종소리도 듣지 못한다

 

 

 

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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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아 상실의 깊은 성찰공초의 무소유 삶과 상통

 

우리 현대시의 새벽을 사자후로 활짝 연 공초 오상순 선생을 기려 제정된 제19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정호승 시인이 선정되었다. 수상작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가 내포한 자아 상실의 깊은 성찰이 동해의 드넓은 공간과 천년고찰 낙산사의 종소리 여운에 담아 웅장한 원음(圓音)으로 파장을 일으킨다.

 

올해로 시력 40년을 맞는 정호승 시인은 등단 이후 꾸준히 그리고 왕성하게 창작을 해 오며 독창적 시 세계를 열어 왔을 뿐 아니라 특히 감도가 깊은 시로써 오늘의 한국시 위상을 한 단계 높여 온 시인이다.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에서 저 공초가 일찍이 꺼내 들었던 허무혼의 선언이나 방랑의 마음에 어찌 그리도 맞닿아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으로 얻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이루어 내는 것을 실현하고자 했던 공초의 정신이 예순여섯 해 뒤에 태어난 정호승 시인의 뇌파에서 자장을 일으켜 더도 덜도 깎고 보탤 것 없는 완성품으로 되살아난 것 같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끝으로 수상작은 정호승 시집 밥값에서 가려냈음을 밝힌다.

 

- 심사위원 이근배·임헌영·이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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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달 / 천양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 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 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너무 많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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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965년에 등단한 천양희 시인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아픈 침묵 뒤 1983년 작품 활동을 재개, 쌓인 분노를 하소연처럼 토해냈으나,1990년대를 전후하여 그 고뇌를 도리어 새로운 삶의 원동력으로 바꿨다.

 

공초문학상 수상작이 실린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 후기에서 그녀는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며 시와 삶과 인간을 변증법적으로 일체화시켰다. 밖을 향한 증오와 염세의 기개를 내면을 향한 사랑과 위안의 정서로 바꾼 이 경이로움은 오상순 시인의 관조와 달관의 미학이 느껴진다.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새들이 언제 허공에 길 있다고 발자국 남기겠습니까/바람이 언제 정처 없다고 머물겠습니까”(‘좋은 날’)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각자의 운명을 보듬을 수밖에 없는 하잘 것 없는 인생살이의 실체를 만난다. 그 삶이란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 밑이다”(‘목이 긴 새’)는 한계 인식과 벗어날 길 없는 백팔번뇌의 굴레이기에,“생은 왜 눈물로 단련되나”(‘마음의 경계’)는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슬픔의 심연에서 이 시인은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희망이 완창이다’)라며 염세적인 낙천주의자로 변모한다.

 

나는 부지런히 내 색깔을 바꾸었소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변신의 명수라 하오 변신 잘 하는 나를 변질 잘 하는 놈이라 착각은 마오(중략)/나는 잘 살 수 있소 나는 평생 변신하고 변모하면서 살려 하오”(‘카멜레온’)라는 새 다짐.

 

그러나 정작 그녀는 모나게 살 줄밖에 몰라 구르는 것들은 모서리가 없어 모서리/없는 것들이 나는 무섭다 이리저리 구르는 것들이 더 무섭다”(‘구르는 돌은 둥글다’)고 말한다.

 

변질이 둥근 것이라면 변모는 모난 것이란 은유에서 시인의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마음의 달’)라는 절창의 의미가 밝혀진다.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변질이 얼마나 호사스러운가를 절감하면서도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고요한 자태로 자신을 제어하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가. 뻔질난 변질로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짓밟히면서도 변모는 거듭하지만 여전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달에게 계속 빌어야 할 사항만 늘어나는 사람들에게 천양희의 시는 큰 위안이다.

 

- 심사위원 이근배·임헌영·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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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 신경림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들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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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깨달음 과정 속에 시인의 인생론 함축

 

공초문학상은 등단 20년 이상 되는 시인이 최근 1년 동안 발표한 작품(시 혹은 시집)중 공초 오상순 선생의 문학 정신과 이념에 걸맞는 시를 그 심사대상으로 삼고 있다.

 

심사위원 일동은 각자 후보자 2명씩 천거하여 그 추천의 변과 각 시인들의 특장 등을 논의한 뒤 3명으로 압축된 후보를 대상으로 면밀한 토의과정을 거쳤다. 심사위원 일동은 그간 공초문학상이 한국 시단의 대가급 시인들에게 수여된 점을 주시하는 한편 권위 있는 문학상일수록 중앙문단 중심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을 적시하면서 지방문단에도 앞으로 넉넉한 관심을 보일 것을 촉구했다.

 

충분한 토의 뒤 심사위원 일동은 저마다 충분한 수상 자격을 갖춘 3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무기명투표를 실시했는데 만장일치로 신경림 시인을 1998년도 제6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수상작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동명의 시집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지난 3월 간행됨)이다.

 

신경림 시인은 70년대 이후 어두웠던 한국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시종 서정성 짙은 인간주의적 문학사상으로 서민 대중들의 삶을 전통적인 민요 형식의 기법으로 형상화하여 현대 한국 시문학사의 한 흐름을 형성시켰다.

 

특히 이번 수상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은 시인 자신의 인생 여정이 이라는 이미지의 변모로 축약되어 있는데,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느낄수록 /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는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노래하여 그간 시인의 추구해온 인생론이 미학적으로 절묘하게 진테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공초사상이란 무엇일까. 식민지와 분단 시대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그 지향할 바를 허무혼을 화두로 삼아 암중모색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그 허무혼이 이제 신경림 시인의 인생론과 접점을 이룬다는 게 오늘의 우리 시문학을 위하여 얼마나 큰 축복이겠는가.

 

심사위원 일동은 공초의 문학사상이 신경림 시인의 수상을 계기로 더 큰 지평으로 열릴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 심사위원 章湖 李根培 任憲永 宋秀權 李憲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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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다 / 유홍준

 

 

깜박.

눈을 붙였다

깼을 뿐인데 누가

내 머리를 파먹은 거야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누가 내 눈동자를 쪼아먹은 거야 수박덩어리처럼

누가 넝쿨에서 내 꼭지를 잘라낸 거야 배꼽이

빠지도록 웃는다 숟가락으로 파먹다 만

뒤통수를 감추고 웃는다

이렇게 파먹힌 얼굴

이렇게 파먹힌 뒤통수로

이렇게 쪼아먹힌 눈 이렇게 갈라터진 흉터로

누가 내 뒤통수에 빨간 소독약 묻힌 솜뭉치를 쑤셔넣다 놔둔 거야

누가 내 웃음에 주삿바늘을 꽂아놓은 거야 누가

내 웃음에 링거 줄을 꽂고 포도당을 투약하는 거야

누가 바퀴 달린 이 침대를 밀며 달리는 거야

복도처럼 아득하게 웃는다 미닫이처럼

드르륵 웃는다 하얀 시트가 깔린 이 수술대 위에서

배를 잡고 웃는다 이 흉터 같은 입술

이렇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흉터 같은 입술로 누가

흉터 위에

립스틱을 바르는 거야

누가 이 흉터끼리 뽀뽀를 시키는 거야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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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제는 진주시가 주최하고, 이형기 기념사업회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동 주관하는 이형기문학상에 유홍준(45) 시인을 선정했다. 유 시인은 지난 1시작문학상첫 수상자로 선정된데 이어 이번에는 이형기문학상을 받는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두 번째 이형기문학상 수상시인으로 유 시인을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단체는 2005년 작고한 이형시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제정된 문학상으로, 지난 1년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했다. 수상시집은 <나는, 웃는다>(창작과비평).

 

심사는 이승훈 한양대 교수와 강희근 경상대 교수, 노향림 시인, 원구식 <현대시> 주간, 박주택 경희대 교수가 했다.

 

강희근 교수는 유홍준 시인은 작년 한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은 표현의 의외성으로 내면과 현실을 결합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그러면서 현대시가 가는 길인 진보적 세계와 서정의 어울림을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

 

경남 산청 출생인 유 시인은 현재 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제지공으로 있다. 진주 출신인 이형기 시인은 제1회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으며, 유 시인은 제41회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받았다. 진주시 신안동 녹지공원에는 이형기 시인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유홍준 시인은 1998<시와 반시> 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2004년 봄 첫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을 펴냈으며, 지난 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유 시인은 2005년 한국시인협회가 제정한 젊은시인상첫 수상자로 선정되어 문단 안팎에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고, 지난 1월에는 상금 1000만원의 시작문학상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홍준 시인은 개천예술제 백일장 1회와 41회 장원을 받은 인연으로 만난 것 같고, 진주 출신인 이형기 선생의 이름으로 된 상을 받게 되어 더 기쁘다면서 선정 소식을 듣고 진주에 있는 이형기 시비 앞에 가서 맥주를 놓고 한참 앉아 있다가 오기도 했는데, 시를 똑바로 써야 한다는 다짐이 들었다고 말했다.

 

2회 이형기문학상 시상식은 52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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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천국 / 이영광

 

 

101동과 103동 사이 탄환처럼 새들이 빠져나간 자취가 몇 가닥 활로活路 같다.

 

세 들어 사는 자의 까칠한 눈으로, 나는 내가 먼 빛의 명멸을 봤다는 생각이 든다. 쨍한 무심결의 일순, 아연실색할 악착이 유리 같은 불안이 심증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깃털처럼 파란이 남아 아물대는 허공.

 

눈 그친 뒷산 잡목 숲이 생가지 분지르는 소리 이따금씩 들려오고 놀던 아이가 별안간 넘어져 크게 울고,

 

젊은 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뛰어나오기도 한다. 다친 몸을 더 다친 마음이 뜨겁게 여미어 안고 간다.

 

실직과 가출, 취중 난동에 풍비박산의 세월이 와서는 물러갈 줄 모르는 땅,

 

고통과 위무가 오랜 친인척 관계라는 곤한 사실이야말로 이 생의 전재산이리라. 무릎 꿇고 피 닦아주던 젖은 손 우는 손.

 

사색死色이란 진실된 것이다. 아픈 어미가 그라했듯, 내 가슴에도 창백한 그 화석 다발이 괴어 있어 오그라들고 까무러치면서 한 잎 두 잎 쉼 없이 꺼내 마침내 두려움 없는 한 장만을 남길 것이다.

 

이 골짜기에는 돌연이었을 건축들 위로 출렁이는 구름 전함들이 은빛 닻을 부리고 한 호흡 고른다. 깨뜨리고 싶은 열투성이의 의식 불명을 짚고 일어나, 멀고 높은 곳에 불현듯 마음을 걸어 두는 오후.

 

저 허공은 한 번쯤 폭발하거나 크게 부서지기 위해 언 멈 가득 다시 청색의 피톨들을 끌어 모으는 중이지만, 전운戰雲이란 끝내는 피할 수 없다는 것, 다만 무성한 속절의 나날에 대하여 나는

 

괴로워했으므로 다 나았다, 라고 말할 순 없을까.

 

살 것도 못살 것도 같은 통증의 세계관世界觀 가지고 저 팽팽한 창밖 걸어가면 닿을까, 닿을 것이다. 환청처럼 울리는 하늘의 먼 빛.

 

가시 숲에 긁히며 돌아오는 지친 새들도, ‘아까징끼바르고 다시 놀러 나온 아이도, 장기 휴직중인 104동의 나도 사실은 실전의 정예들,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 중이었으니.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이었으니.

 

 

 

 

아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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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시 원고를 마무리해 막 잡지에 보내려던 참에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혼자 놀고 있는데, 누가 잘 놀고 있다고 말해준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 시 쓰기는 혼자 열렬한 시름으로 노는 일일 텐데, 과연 힘을 다해 놀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고심 끝에 저는 우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상에는 원래 상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라는 숙제가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알아내어 한 번의 기회로 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진심을 다해 열심히 놀면 알게 될 것이다.”

 

저는 학창시절을 지훈 선생님의 절조와 시혼이 숨 쉬는 캠퍼스에서 보냈습니다. 그분은 그때 이미 거기 계시지 않았으나 교정 곳곳의 돌비()들이며 여러 기념노래 속에, 학교 앞 술청의 때 절은 탁자와 벽에, 그리고 수업에서 전해 듣던 숱한 회고와 인용의 갈피에 마치 빛과도 같은 그늘로 살아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분의 부재를 아는데 아무도 그분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던 이상한 배움터를 떠올리자니, 높은 정신과 섬세한 감성의 한 자락이나마 현장 취득한 행운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곳에서 배우고 헤매면서 작은 뜻을 세워 지금에 이르렀기에 저에게는 이 상이 각별하고도 무겁습니다.

 

저는 지훈 시의 고전주의적 기품과 세심한 언어 조형, 애수 띤 낭만적 감수성에 눈길이 가면서도, 초기작인봉황수(鳳凰愁)나 나중의 한국전쟁 종군시편들, 그리고 병고를 의연히 생의 일부로 거두어들이는()에게와 같은 작품에 특별히 끌렸습니다. 그 시편들에는 여지없이 몸의 깊은 주름을 비집고 나온 불가피한 정념의 일렁임이 있고, 시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이 한데 겹쳐서 생겨나는 떨림이 있고, 그래서 시와 인간이 동시에 간절하고 위태로워지는 어떤 뜨거운 순간들이 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 육성 아닌 육성들은 가누기 힘든 것을 가누어내는 영혼의 품위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길지 않은 저의 시력에도 지훈 시의 이 힘센 맥락이 저류의 하나로 흘러왔지만, 때로 제 시작(詩作)의 난맥상을 확인하는 날이면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을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말의 계획적인 운용에서 생겨나는 낯선 느낌을 시의 본래 효과로 생각하던 데서 낯선 느낌 자체에 말과 의식을 개방하자는 쪽으로 움직여온 것이 제 시의 역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근자에는 이 계획성을 표 나게 누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과도기적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 것이 이번 시집이 아닌가 합니다. 마음의 어두운 충동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혼란과 우울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낳은 힘은 뚜렷하지 않은 데 반해 그것이 나와 남에 대한 낯선 적의로 드러났을 때가 이 시집에서 가장 낯이 뜨거워지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의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의식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더 귀 기울이다 보면, 인간의 결여와 세상의 결핍에 대한 애타는 말들이 새롭게 태어나지 않을까,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기대를 걸려고 합니다.

 

시에는 내일이 있어도 시인은 내일이 없어야 한다고 여기기에 저에게는 쓰다가 쓰러질 일말의 각오가 없지 않습니다만, 품은 역량이 미미하여 혼란과 몽매에 시달릴 때가 많습니다. 인생이 약해지고 마음에 기갈이 드는 것은 어쩌면 제가 아직도 시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곤 합니다. 시에 몸을 내어주는 순간의 괴로운 희열에도, 시를 의지하여 환영인 듯 악몽인 듯도 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인간 수업에도 용맹하게 젖지 못했음을 털어놓아야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체와 두절의 시간에 지훈의 이름으로 저에게 내려지는 상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지침이, 지도(地圖)가 아니라면 원기가 되어 주리라는 생각에 여러 날을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이 상이 고맙습니다.

 

업적을 칭찬하는 일에도 괴력이 필요해진 세태에 하물며 미흡을 격려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몸부림을 애씀으로, 헤맴을 모색으로 헤아려주신 최승호, 이남호, 김기택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지훈상 운영위원회나남문화재단의 관계자분들을 비롯하여,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인간에게 뭔가를 주려고 애쓰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놓지도 주지도 않고, 심지어 받지도 않는 것이 현실의 도덕이 된 메마른 곳에서 이 아름다운 행사가 길이 의연하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건 대개 선한 법이고, 언제나 선한 영혼이 삶을 더 깊이 향수합니다. 나는 과연 살 만한 인간인가,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곳인가 하는 물음을 어떻게 물을까에 대해 더 전전긍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늘과 사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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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문학상 심사는 지훈이라는 이름이 붙은 문학상에 걸맞은 수상자를 내는 일과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는 일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지만, 두 조건은 서로 부딪칠 수도 있다. 따라서 수상작을 선정하는 기준은 후자에 더 무게를 두었다.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시집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7권의 시집이 심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후보작을 수상작으로 한다 해도 좋을 만큼 모두 만만치 않은 성취를 보여 주었으므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긴 논의 끝에 이영광의 시집아픈 천국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이영광의 이번 시집이 가진 미덕은 도저히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쓰는 데서 나오는 강렬한 힘이다. 그의 시들은 제 몸을 억압하는 삶의 부조리한 현실과 환경을 조금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수화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인은 들리지 않는 몸의 말”, “터질 듯 입 다문 마음”, “대화를 포기하고 몸속으로 들어가 돌아눕는 말에 끈질기게 다가가 끝내 발설되지 않는 몸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기꺼이 몸을 쥐어짜서 마음의 눈빛을 뽑아내고 마음을 뽑아내고 싶은 자/ 마음을 쥐어짜서 붉은 혀의 목청을 꺼내고 싶은 자가 된다.

 

그의 몸말은 제 몸을 끊임없이 닦달하여 안락과 편안함이 제 몸 안에서 드러눕지 못하게 하고, 귀찮아서라도 삶과 인간 속에 들어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대답, 끝내고 싶어 하는 대답을 끝나지 않게 만든다. 굳건하고 확고하고 당연한 듯 보이는 안전한 세상의 정답들을 들쑤셔 불안한 질문으로 만들려 한다. 다시는 질문이 들어오지 못하게 질문이 들어올 틈을 단단하게 막아놓은 정답들에게 균열을 가하려 한다. 이 정답과 질문 사이에서 과장과 왜곡, 반어와 역설이 풍부한 이영광식 유머가 나온다. 거칠고 투박해서 웃지 않을 수 없는 이 슬픈 유머는 마음에서 최단거리로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기에 강렬한 힘이 느껴지게 한다. 이 블랙유머가, 마음껏 내지르는 비명과 거친 야유와 날것의 감정이 시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붙들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영광의 시집은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감정이나 정서로 크게 소리 지른다는 점과 설명이 많아 산문적이라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수상작으로 결정하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함께 논의된 다른 작품들도 높은 완성도와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논의는 서로 부딪치며 길어졌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그의 몸말의 진정성과 힘이 상을 받을만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여 수상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심사위원 이남호 최승호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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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위하여 / 임영조


면벽 100일!
이제는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여!

나도 그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지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達磨)가 될까?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體位) 바꾸듯 그 섬 내쫓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 섬 될까?
한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磨崖佛) 같은.

 

 

 

귀로 웃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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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8회 소월시문학상에 임영조 시인이 선정됐다. 대상 수상시인 임영조의 <고도를 위하여> 등 작품 20편을 싣고, 시인 6인의 추천 우수작 57, 기수상시 인의 시 8편을 함께 묶었다.

 

소월시문학상 선정위원회(구상 · 김남조 · 오세영 · 이어령 · 조남현)에 따르면 임영조는 우리 시대의 시가 산문에 압도당하고, 또 산문화로 치닫는 것을 자랑삼는 시류에도 불구하고, 이에 휩쓸리지 않고 고고히 언어의 창조 행위에 몰두해 왔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시인이다. 그의 시에 제9회 소월시문학상의 영예를 안겨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임영조 시인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출항',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의 노래'가 당선되었다. 1991년 제1회 서라벌문학상, 1993년 제38회 현대문학상, 1994년 제9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바람이 남긴 은어] [그림자를 지우며] [갈대는 배후가 없다] [귀로 웃는 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등이 있다.

 

인간 욕망의 흔적을 지워 버린 달관과 무욕과 탈속의 한 경지를 드러내는 자아 성찰과 존재 탐색의 시세계를 보이는 임영조 외에도 강은교, 김혜순, 송재학, 이기철, 천양희, 홍신선의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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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산다 / 천양희

 

 

나 먹자고 쌀을 씻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았습니다

꽃 다 지니까

세상의 三苦

그야말로 시들시들합니다

 

나 살자고 못할 짓 했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잘못 다 뉘우치니까

세상의 三毒

그야말로 욱신욱신합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

욕심 다 버리니까

세상의 三蟲

그야말로 우글우글합니다

 

오늘밤

전갈자리별 하늘에

여름이 왔음을 알립니다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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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제8회 째를 맞는 이육사문학축전의 주제는 "그대의 숨결이 새벽하늘 무지개로 서리라!". 육사선생의 문학적 혼과 나라사랑이 우리들 가슴에 무지개로 빛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번 여름 문학축전엔 청포도사생대회가 오전 10시부터 이육사문학관주변지역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K-water 안동댐관리단이 후원을 맡아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미래의 꿈이자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대회를 개최한지 3회째를 맞고 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이육사문학관 낭독회엔 박형준 시인을 초청하여 지역문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의 순수한 독자인 시민들과 시와 함께 소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오후 4시에는 안동병원과 TBC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고 있는 제8'이육사시문학상' 시상식이 이육사문학관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됐다. 수상자는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는 작품집을 발간한 천양희 시인이 영광을 안게 되어 2천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진솔한 시어와 서정적 울림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천양희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소월시문학상, 박두진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올해엔 만해문학상을 수상하여 2관왕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육사선생의 따님인 이옥비 여사를 비롯한 후손들과 권영세 안동시장, 김광림 국회의원, 김병일 국학진흥원장, 이재춘 안동문화원장, 이상정 소망교회원로장로, 이동수 성균관청년유도회장을 위시한 많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특히 직전까지 안동시부시장을 지냈던 김태웅 전부시장 내외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으며 권오을 국회사무총장을 대신해 부인 배영숙씨가 자리를 메우기도 했다.

 

오후 5시엔 산문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현대시동인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현재 <현대시학> 주간으로 있는 정진규 시인의 문학 강연이 이어졌다.

 

작년도에 장소 문제로 중단이 되었던 '이육사문학캠프'를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이육사 여름 문학학교'로 개칭하여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열리고 있다. 730일부터 81일까지 23일로 치러지는 이번 이육사 여름 문학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80명 정원 선착순 마감하였는데 지난 20일 종료되었다.

 

이번 여름문학학교에선 문인담임제에 참가한 문인들로는 박형준 시인, 주병율 시인, 고영 시인, 서영처 시인, 배영옥 시인 등 젊은 시인들이 참여하여 글쓰기 및 독서에 대한 지도를 맡아 진행한다.

 

이육사문학축전 가을 행사는 1029일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린다. 가을엔 저항시인 시노래 패 공연을 시작으로 젊은 유명여류시인들의 난상토론, 이육사백일장, 시낭송대회 등 알차고 유익한 행사가 다채롭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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