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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키스1 / 신대철

 

 

물살 그림자

 

투명한 물살 밑에 일렁이는

희미한 문살무늬 그림자

 

창호에 무슨 소리 어리듯 나는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끝에 마른번개

스친 뒤 물은 금시 정강이까지 차올랐다. 콧수염 달린 사내가 달려와 소매를 잡아 당겼다. 맨발의 해맑은 얼굴, 나는 망설이다가 그가 미는 대로 밀려갔다. 모래밭이

끝나는 산비탈 중턱 자작나무 사이에 노란 텐트가 열려 있었다. 젊은 여자가 밖을 내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물도 그림자도 깊어서? 나도 환하게 웃었다. 모두 바이칼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나도 두 사람 사이에서 막 태어났다고 하니 소리 내어 웃었다.

 

바이칼은 호수 이름이 아니라

피와 영혼의 이름이죠?

 

사내는 내말을 되받아 바이칼은 영혼의 눈빛이라고 신파조로 중얼거렸다. 우리 앉은 자리는 어느새 가설무대가 되었다. 근 내 코에 코 비비고 볼에 볼 비비고 느닷없이 온몸에 서릿발 첫 키스를 날렸다. 아무도 없었지만 물과 바람과 햇빛 속에서 비명소리가 울려왔다. 황폐한 내 몸속에 누가 또 있었던가? 바이칼 소년이? 온몸에 문살무늬 그림자 어른거리고 하늘엔 흰 구름 한 점 기웃거리다 흘러간다.

 

아이두세 요하르 아리두세 헤이부룰라

 

검붉은 노을이 꺼지는 저녁, 우리는 장작개비를 들고 구릉에 올랐다. 하늘을 향해 장작불을 피워 불길을 올렸다. 샤먼이 북을 치자 가슴에 묻힌 영혼들이 불려나온다. 빙 둘러서서 춤추며 노래한다. 아이두세 요하르 아이두세 헤이루불라, 맑혀진 영혼들 불길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몸 타고 태초의 어둠이 내려온다.

 

피부도 족속도 모르지만

우리의 푸른 불기운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간다.

빙글빙글 도는 춤 속에

바이칼 뜨거운 피가 흐른다.

 

 

 

 

바이칼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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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아버님과 스크랩북

 

엊그제도 읍내 장터에서 국밥을 드시고 다방에서 친구분들을 만나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 중에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시사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조지훈 시인의 문학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나 제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제 창작이 지지부진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 시는 아직도 서투르고 풋내가 납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님은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님이 원하시던 길로 접어들어 계속 시를 쓰고 있고 이렇게 격려도 받기 때문입니다. 문득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아버님은 유품으로 시 스크랩북 세 권과 산문 스크랩북 한 권을 남기셨는데, 그 유품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아버님과의 갈등이 그 유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일정한 직업도 없이 동네 사랑방을 떠도시며 떠도는 소문과 함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따리에 넣고 오셔서 밤새 뭔가를 오리시고 풀로 정성스레 붙이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들여다보면 시, 시조, 수필, 평론 등 문예 작품들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땔감을 준비해 놓고 양식을 기다리는데 아버님은 철 지난 소문과 문예물들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스크랩북을 열어 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문학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매여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문학이 무슨 열병같이 느껴졌습니다. 문학이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하다니! 저는 그런 아버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 망설이다가 아버님이 나가신 틈을 타 마침내 그 스크랩북을 불쏘시개로 썼습니다. 며칠 만에 돌아오신 아버님은 습관처럼 구깃구깃한 신문 구석에 붙어 있는 일요시단과 오래된 잡지의 독자 투고시들을 오려 놓으시고 스크랩북을 찾으셨습니다. 그간 끼니 때문에 나무하러 가거나 팔러 가는 등 자주 집을 비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님은 그 스크랩북을 도둑맞은 줄 아셨는지 뜻밖에도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 아버님은 문학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꽃모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근처에서 얻어온 꽃들은 분꽃, 겹채송화, 장다리 등 낯익은 꽃들이었지만 타지에서 가져온 꽃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꽃들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멀리서 가져온 작품들을 스크랩북에 반듯하게 붙이듯이 네모난 화단에 몽울진 꽃들을 붙이셨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막 피어난 꽃들을 물러나서 보시기도 하고 바싹 다가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으셔서 보고 또 보셨습니다. 저는 생활과 취미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버님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관심을 가진 것들은 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집을 떠나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반 사춘기 소년들처럼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숲 속이나 바다, 혹은 사막이나 평야,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문학만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몇 달 지나자 다시 문학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문학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염세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씨트론이라는 이름을 주고 일방적으로 글(, 혹은 시적인 편지)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연가풍의 시편과 철학적인 산문도 간간 섞여 있었습니다. 그의 염세주의는 미수에 그친 자살 충동과 전학으로 끝났지만, 그를 업고 병원으로 다니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번 어느 글에서 친구 이름을 C라고 밝혔습니다만, 본인이 양해를 했으니 이젠 이름을 밝혀도 좋겠군요. 최운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지금 그는 미국에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에서 내려온 육촌형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방황하던 중 우연히 읍내 장터 길목에서 친할머니께 인사하던 낯선 육촌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육촌형은 엉거주춤 서 있는 저에게 진학에 대해서 물었고 저는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달 뒤 저는 졸업하면 산속에 들어가겠다고 좀더 구체적인 계획을 적어 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형은 글재주가 있으니 국문과에 들어가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합격이 되면 형 집에서 같이 지내자는 온정어린 말이 부기되어 있었습니다. 육촌형은 제 글을 처음 읽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준 첫 독자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대학도 학과도 형이 선택한 대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가정 형편이 더 나빠진데다 형에게 신세지는 게 부담스러워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하게 되었습니다. 칠갑산에 혼자 들어가 화전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흩어진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아버님도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다시 시 스크랩북을 만드셨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시들을 다 붙이신 다음 선반에 올리지 않고 잠든 제 머리맡에 가만히 놓아 두셨습니다. 저는 인기척을 느끼는 순간 잠결에 그러는 것처럼 스크랩북을 멀리 밀어 놓고 다시 잠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밖에 나오면 어둠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연기와 탄내가 훅 끼쳐 왔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화전 밭에서 가슴 설레며 본 불똥 같던 별들에서도 탄내가 났습니다.

 

불길 번지는 소리 같던 물소리들에서도 탄내가 났습니다. 당시 자연도, 스크랩북도 저에겐 너무 무겁고 가혹했습니다. 화전생활은 아주 고달팠습니다. 산속 좁은 산비탈에서 터전을 잡으려면 한동안 풀과 나무와 거기 깃든 생명붙이들과 땅을 빼앗고 빼앗기는 혈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돌과 바람과 나무와 생명붙이들이 친구처럼 이웃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면 화전시기는 끝납니다. 우리 가족은 칠갑산 합대나뭇골에서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은 화전생활은 고통만 남겨 줬지만 대학 1학년 때 제가 혼자 시작하여 10여 년을 지속한 화전생활은 인간 삶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깊은 말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지만 아버님과 밭일을 같이 하며 조금씩 같은 하늘 밑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잠시 아버님과 깊은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대학에 복학하면서 아버님과 스크랩북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합대나뭇골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아버님은 다시 떠돌기 시작하여 행동반경을 점점 넓혀 가셨습니다. 그만큼 스크랩북의 시들도 다양해지고 많아졌습니다. 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오리지 않은 신문들이 방구석에 차곡히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시들을 읽고 선택하여 스크랩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불쏘시개로 사라진 첫 스크랩북보다는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각종 신인상 당선시들과 신춘문예시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서울 가서 보라고 스크랩북을 짐 꾸러미 속에 챙겨 넣으셨지만 저는 언제나 짐이 너무 많다는 핑계를 대고 빼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에게 문학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시인이나 작가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공무원처럼 관문을 거쳐 문단에 등단한다는 일도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연을 맺는 사람은 모두 문학과 관련을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때 시골집으로 내려가던 중 천안역에서 우연히 같은 과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도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온 시인 지망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아내가 되었지만 그 여학생과 자주 만나면서 문학과 친숙하게 되었고 아버님의 스크랩북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가 어렵기도 했지만 그땐 아버님의 한없는 사랑이 가슴 깊이 느껴져 시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불쏘시개로 태워 버린 첫 스크랩북은 아버님의 삶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그 이후의 스크랩북은 아버님이 온전히 저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게 일어났던 그 숱한 우연적인 일들은 능력이 부족한 저를 한 시인으로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일들이었을까요? 아버님에게나 저에게나 그때그때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제 삶의 무게를 시로 느끼기 시작한 지 40여 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니 제 시의 원천은 아버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스크랩북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아버님 말씀이 생생히 울려옵니다. ‘피와 눈물이 없는 시도 시냐?’ 하시던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세상이 달라져도 사람 사이의 일을 시로 쓰라는 말씀이었을까요? 아버님 영전에 졸시집 바이칼 키스<지훈상>을 바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평소 아버님이 스크랩북에서 즐겨 읽으시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이 글을 그치겠습니다.

 

 

풀잎 단장(斷章) /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 시집 풀잎단장(창조사, 1952)

 

 

 

 

극지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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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문학상의 심사 대상은 관례와 규정에 따라 지난 2년간 출간된 시집의 목록에서 후보작을 선정하였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각기 추천한 후보작은 중복되는 시집을 포함하여 신대철의 바이칼 키스, 장옥관의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전동균의 거룩한 허기, 이원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였다. 각각의 시집들은 지훈상의 후보로 손색이 없는 시적 개성을 보여주었다.

 

장옥관의 시집은 전통적 서정시의 틀 안에서 사물의 본질적 측면을 간파하는 시적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동균의 시집은 삶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온도를 보여주는 소박하고 정갈한 서정성이 주목할 만하였다. 이원의 시집은 사물에 대한 특유의 상상력이 시의 내부에서 기계와 생에 대한 다른 상상적 차원에 이르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들 시집이 훌륭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신대철의 시집 바이칼 키스가 보여주는 새로운 서정성의 영토를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주목했다.

 

이 시집은 신대철 시인이 사십여 년의 세월 동안 네 번째로 출간한 시집이다.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1977년 출간한 뒤 23년 동안 절필했던 시인은 2000년 다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전개한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바이칼, 알래스카, 시베리아, 몽골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서정성을 재정립한다. 그는 이전 시집에서 화전민 경험과 청년 시절 DMZ와 실미도 군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을 쓰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더 넓고 황량한 대자연 속에 삶에 대한 보다 심원한 시적 통찰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몽골과 알래스카에서의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바이칼호와 몽골 초원이라는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시인은 개인적 체험과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문제의식을 넘어서, 생명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라는 보편적 주제와 그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성을 담아낸다. 시인은 자연의 깊은 순결성으로부터 역사의 비극성을 껴안고 그것을 넘어서는 생의 숭고성을 자각한다. 이것은 신대철 시인의 시적 확장으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 서정시의 지평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심사위원들은 지훈문학상이 시인 조지훈의 미학과 정신에 부합되는 작품을 반드시 뽑아야 한다는 전제를 갖지 않고 심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시단에 대한 상황을 참고하면서 신대철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조지훈의 미학에 가장 가까운 시인을 선택한 것이 되었다. 그것을 단지 우연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조지훈의 문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심사위원 홍신선 황동규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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