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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호텔 / 이문재

- 인도에서 소녀가 오다

 

 

*

 

옥상 위에 공무원들이 배치되었다

저녁 일곱시 구분 정각

꽃가루가 일제히 제국광장 상공에 흩날려야 한다

역기는 충분할 정도가 아니라 과도하기까지 하다

늙은 총독의 초대장에는 오랜만에 금박이 입혀져 있다

관저 주위의 병력은 충분하다

오늘밤에는 우선 샴페인을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다

 

*

 

나로서는 고맙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의 사회적 인프라는 순진함과 비열함이다

 

제국에서 공인한 종교에 종사하는 한 승려가

행사 기간 내내 반도 곳곳이 성소(聖所)였다는 글을 신문에 발표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치하했다

 

제국은 영원할 것이다

 

*

 

인도에서 축구공을 만들다 눈이 멀었다는 소녀가 왔다

다섯 살에 가장이 되어 이 년 동안 축구공을 꿰매다가

일곱 살 때 실명했다는 것이다

국제 시민단체들이 눈먼 인도 소녀를 초청해

세계배 쟁탈 축구대회를 지원하는 초국적기업들을 성토했다

스포츠용품을 생산하는 초국적기업들이

3세계 아동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이 먼 인도 소녀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에게 말했다

아저씨들이 차는 축구공에 가난한 어린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기사는 많이 나오지 않았고 나왔다 해도 작게 취급되었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며 성금을 내곤 하는 이곳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청 앞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디지털 강국의 이미지를 압축한 개막식 전야제가

제국의 전파를 타고 지구 반대켠까지 생중계되었다

 

*

 

광장에서 보았다

젊은이들은

관음증 환자인 동시에 노출증 환자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카메라가 있었다

 

새벽 세시 현재

본국 국기는 불태워지지 않았다

 

여름 휴가는 넉넉해질 것 같다

 

*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본국 언어를 배워놓지 않았다면

내 능력은 절반 이상 평가절하되었을 것이다

본국어 단어를 매일 세 개씩 외운 것이 벌써 몇 년째인가

이곳 언어는 아침 인사말 하나라도 구사해선 안 된다

(, 명예시민증을 호텔에 두고 왔다)

 

*

 

꿈은 이루어진다고?

제국에서

이루어진 꿈은 꿈이 아니다

그대들의 꿈은 늘 미루어지게 되어 있다

 

*

 

서쪽 바다에서 교전이 발생했다

교전이 끝나자 남쪽에서는 내전이 일어났다

전혀 새롭거나 복잡한 상황이 아니다

 

본국에서 온 애인은 체중이 조금 늘어나 있었다

내일 아침에는 푸른색 넥타이를 매라고 한다

 

 

 

 

제국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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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휴대전화를 통해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첫 마디가 무겁습니다였습니다. 저에게 조지훈 선생은 오래 전부터 크고 무거운 이미지였습니다.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만나뵐 수가 없었지요. 선생께서 돌아가시던 1968, 저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9살 짜리 코흘리개였습니다), 우연찮게도 제게는 고려대 출신 선배 문인이 많았습니다.

 

제가 나온 경희대 국문과가 황순원, 조병화 선생 운운하는 것처럼, 연배가 지긋하신 고대 출신 선배들은 지훈 선생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가령, 두루마기 차림으로 혼자 정문을 가로막고, 시위하는 대학생들에게 호통을 치셨다는 삽화 같은 것입니다. 그분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내 안에 오래 쌓여 크고 무겁다는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거운 상을 받으면서, 상이란 벌과 대단히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했습니다. 문화의 전 국면은 물론, 개별적 삶의 진전도 상과 벌 사이로 난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상과 벌은 우선, 공개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몰래 주는 상이나, 아무도 모르는 데서 받는 벌은 없습니다. 상과 벌은 대 사회적이고 또 매우 직접적입니다. 죽은 자에게 주는 상이나 벌은 없습니다.

 

상벌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강력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을 받는 자는 박수를 받고 벌을 받는 자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수상자나 수형자 모두 진지하게 자기 삶을 돌아보고 들여다 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서 얼마큼 와 있는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와 타자, 나와 자아는 서로 편안한가, 아니면 불편한가. 그리하여 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 순간, 당사자는 삶의 중심, 우주의 중심입니다. 상과 벌은 사랑이나 질병, 죽음처럼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상과 벌의 본질일 것입니다.

 

상벌은 또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분명하게 나뉩니다. 스스로 상을 주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고, 또 스스로 벌을 내리면 신경정신 계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 쉽습니다. 큰 상일수록, 또 큰 벌일수록 그것을 받는 사람은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과 정면으로 마주 선다는 것은 아늑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선사가 말했듯이 진실이란 우리가 두려워 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상과 벌은 바로 그런 진실과 대면하게 합니다.

 

가장 성숙한 수상자는 상에서 벌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릇된 가치와 제도가 내리는 벌을 기꺼이 상으로 받아들이는 순교자나 혁명가, 예술가들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돌아보면, 역사의 방향을 바꾸거나 시대에 브레이크를 건 정신이나 운동들, 기왕의 질서와 개념을 뒤흔들며 끝끝내 인간과 생명을 옹호한 예술가들은 스스로 벌을 받기로 작정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상과 벌은 연속과 단절의 전위입니다. 상을 통해 기왕의 미덕이 전승, 유지되고, 벌을 통해 기왕의 악덕이 지탄의 대상으로 떠오릅니다.

 

오늘 저는, 제가 받는 상에서 벌의 의미를 굴착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무거운 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저는 지조론과 무관한 작은 삶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지적했듯이, 저는 선비, 즉 지사이기보다는 겨우 한 사람의 시민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작은 시인입니다. 제가 짧은 소견으로 이해하는 선비란, 자기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대단히 엄격하고, 세계에 대해 대단히 예민한 존재입니다. 글과 삶 사이에 시차가 없는 삶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량과 여유를 갖고 있는 향기로운 인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선비가 못 됩니다. 글과 삶 사이가 아득하게 멉니다. 신념이 많지도 않고, 있다 해도 분명하지 못합니다. 삶 또한 구차하고 옹색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선비적 삶은 저에게 유예될 것입니다.

 

지훈은 시 <낙화>에서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라며 바람으로 대표되는 외부적 요인을 일거에 일축하며 즉 자기 자신으로 온전하게 돌아가 있지만, 저같이 미욱한 시인은 꽃이 지지도 않았는데 바람을 문제 삼곤 했습니다. 낙화의 원인을 끊임없이 외부에 전가해왔습니다. 꽃이 지지 않는 아침에도 울고 싶다며 감상에 젖곤 했습니다. 지훈은 <낙화> 이후 전쟁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시대의 전면으로 나섭니다. <터져오르는 함성>에서 권력의 구둣발이 네 머리를 짓밟을지라도/(...)/절망하지 말아라 절망하지 말아라라며 민주주의를 희구합니다. 저는 지훈의 이 전환에 주목합니다. ‘목어를 두드리다/졸음에 겨워하던 청록파의 감수성이 어떻게 ‘1960년대의 포악한 정치와 맞서는 사자후로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당시 지훈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이번에 지훈상을 수상하게 된 제 시집 제국호텔은 제가 40대 초반에 쓴 시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시집의 상당 부분은 지사적 사유와 삶이 불가능한 시대에 대한 질문이고자 했습니다. 시의 사회적 효용이 용도 폐기되었다고 하는 판정에 대한 문제 제기이고자 했습니다. 갈수록 시가 작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시는 형용사와 부사의 울타리 안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는 곧 서정시였고, 어느 사이엔가 시인은 변방으로 물러난 인간문화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는 세상과 무관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별적 삶, 실존적 삶의 안쪽을 깊숙이 파고드는 시도 많지 않습니다. 시는 외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속삭이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시가 시인과 독자, 언어와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언어, 문학에 대한 언어, 문학을 위한 언어에는 패배주의적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낙화하는 시는 바람만 탓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탓하며 절망하고 절망하고 또 절망하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구둣발이 시의 머리를 짓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국호텔은 사실 제가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제목입니다. 요즘 우리 시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이미지입니다. 1990년대 이후 문학과 인문학이 내팽개쳐버린, 이른바 거대담론입니다. 저의 치기, 저의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거스르고 싶었습니다.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형용사, 부사도 우리 시를 구성하는 주요한 유전자이지만, 그것은 우리 시의 뼈이기 보다는 살이었습니다. 살만 있는 몸은 없습니다. 연체동물은 홀로 서지 못합니다. 저는 제국호텔에서 우리 모국어의 척추, 즉 명사와 동사의 힘을 구축해보고 싶었습니다. 거칠게 말해, 커다랗고 무거운 상상력을 동원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저 제국이 우리의 일상적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엄연한 현실을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하려 해도, 우리는 제국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들어 살고 있습니다. 냉전시대를 갈라 놓았던 장벽이 무너지자, 모든 것이 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시는 이 무수한 벽을, 우리 안에까지 들어와 있는 저 제국의 벽에 대해 발언하지 않습니다. 분단 현실도 그대로입니다.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40대는 물론, 우리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 합니다. 일이 없으면 꿈도 없어집니다. 이 사태는 치명적입니다. 여기에 종교 갈등, 민족 분쟁, 인종 차별, 문화 충돌, 그리고 이 모순과 갈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생태 환경 문제가 들씌워집니다. 저는 이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이 우리의 구체적 일상을 좌우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국은 더 이상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단위 국가가 아닙니다. 강대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제국의 황제가 아닙니다. 국가 위에, 초국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제국이 우뚝 서 있습니다. 정치적 동맹은 없습니다. 그것은 경제적 제휴의 포장지일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강대국의 국가 비전이 아닙니다. 초국적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세계 정책입니다. 초국적 기업의 현지 법인이 총독부입니다. 개별 국가는 초국적 기업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영토는 시장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인간의 시대는 벌써 끝났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백성과 국민, 시민의 시대를 거쳐 소비자로 진입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비자입니다. 소비 능력이 있는 인간과 소비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인간. 인간은 소비자입니다. 이것이 제가 거칠게 파악하고 있는 제국의 풍경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시는 이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사회적이며 심리적인, 그리하여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제국의 거대한 그늘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시대에 유일하게 소비자이기를 거부하고, 마지막 개인이기를 주창할 수 있는 인간이 시인입니다. 시는 자본주의 유통 구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종교와 학문, 그리고 예술이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 속으로 편입된 시대,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시인입니다. 시인이 서 있는 위치가 시인의 역할을 규정합니다. 시인은 제국의 안에서 제국의 전모를 조망하는 이중적 존재입니다. 시인은 소비자이면서, 자립하고 자존하고 자긍하는 시민이기를 고집하는 분열증적 상상력입니다.

 

'몰락의 길은 평이하고 향상의 길은 간고하다'는 지훈의 금언을 되새기며 무거운 수상소감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훈 선생님의 유족 분들, 상을 제정하고 운영하시는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님과 지훈상 운영위원회 선생님들, 그리고 시가 아니려고 애쓰는 어설픈 시에 후한 점수를 매겨주신 세 분 심사위원 황동규, 김인환, 최동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무거운 상을 무거운 벌로 달게 받겠습니다.

 

 

 

 

혼자의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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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 조동탁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지훈 문학상이 어언 제 5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에 출간된 시집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먼저 작품의 완성도와 성취도를 중요한 척도로 삼아 논의하였으나, 지훈 선생의 시가 지닌 조형성, 전통성, 사회성도 간접적인 기준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318일에 모여 심사위원 각자가 세 권의 시집을 추천하기로 하고, 48일에 추천된 시집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우수한 시집 한 권을 선정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우리는 중복 추천된 시집들을 중심으로 최근에 다른 상을 받았다든가, 등단 시기가 얼마 안 되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든가, 반대로 노대가에게 상을 드리기는 편안하지 않다든가 하는 이유를 제시하여 대상 시집의 수효를 줄여나가면서 작품의 질에 대한 평가를 병행하였습니다. 최후로 남은 시집은 이문재 시인의 제국호텔이었는데, 이 시집을 선정하기로 한 데 대하여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합의하였습니다.

 

강인한 자기반성과 심오한 비판의식으로 이문재 시인은 우리 시사의 한 맥을 새롭게 탐구해 왔습니다. 이미지를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의 문체는 언제나 일반화된 도식을 떠나서 발생상태의 감각적 인상을 참신하게 포착하였습니다. 자기표현을 극도로 절제하여 자신을 작게 나타내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마음을 열어놓는 비판적 애정이 이문재 시인의 시에 견고한 의미의 구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지만 나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이문재 시인의 질문은 우리 시대와 우리 시대의 불교에 대한 예리한 비판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파악하려고 하면 자기를 전보다 더 모르게 되는 존재입니다. 바로 이 자기와 다른 존재가 허위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초월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면에서나,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세계화를 비판하는 면에서나, 이문재 시인의 시는 전통문화와 불교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지훈 선생의 시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훈 선생의 선비의식에 대비되는 이문재 시인의 시민의식에도 유의하였습니다. 우리들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그의 시를 통하여 우리 시사가 새롭게 조명될 수 있도록 이문재 시인이 자기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기를 기대하면서 이문재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심사위원 황동규(시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김인환(고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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