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사과/ 나희덕
어떤 영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나온 듯한 그들과
목소리는 바람결 같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풀을 뜯고 있는 말,
모든 그림자가 유난히 길고 선명한 저녁이었다
그들은 붉은 절벽으로 돌아가며
곁에 선 나무에서 야생사과를 따주었다
새가 쪼아 먹은 자리마다
개미들이 오글거리며 단물을 빨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을 훑어내고 한입 베어물었다
달고 시고 쓰디쓴 야생사과를
그들이 사라진 수평선,
내 등 뒤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바람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그들이 건네준 야생사과를 베어 물었을 뿐인데
[수상소감]
어찌된 일인지 시쓰기의 어려움과 시인으로 사는 일의 고단함은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시를 그만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올리곤 했던 지훈 선생의 말이 있습니다. “시인이 시를 버리고 무엇으로 생각하며, 시를 잃고 무엇으로 사랑하며, 시를 버리고 무엇으로 무기를 삼을 것인가.” 이 말은 도망치려는 저를 다시 시 앞으로 불러 앉혔고, 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집 《야생 사과》를 낸 지 꼭 1년이 지났습니다. 지훈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사실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과분한 격려인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어떤 불편함이 따라붙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불편함의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수상소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되새김질하는 동안 이 상이 저에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헤아려보고자 합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야생 사과》라는 시집은 독자적인 새로움이나 성취를 보여주었다기보다는 과도기를 지나는 한 인간의 내면적 고백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과도기란 한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자, 파괴와 혼란을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되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그 시들을 쓰는 동안 저는 ‘어떤 시’를 써야겠다는 지향보다는 ‘다른 시’를 쓰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혀 지냈습니다. 하지만 한 세계를 깨뜨리는 일은 그것을 축조해나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막막한 노릇이었습니다.
시집을 낸 후에 저는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처한 삶의 조건이 시에 집중할 수 없도록 몰아치기도 했지만, 그것은 한편 의도적이고 긴장 어린 직무유기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시를 완전히 내려놓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낯선 자신을 붙잡고 끙끙거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의 파편들을 받아적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을 계속했지만, 단 한 편도 제가 시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파편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료하는 일을, 그리고 시라는 완제품을 여기저기 납품하는 일을 제 안의 또 다른 ‘나’는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거부는 완강했고, 그 앞에서 저는 무력했습니다. ‘다른 시’ ‘새로운 시’를 원하고 있는 그에게 저는 예전의 타성대로 따르기를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와 함께 묵묵히 침묵의 시간을 견디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편함의 또 다른 이유는, 제 내면적 요구에 따라 전통의 자장(磁場)에서 멀어져가고 있을 때 ‘지훈’의 이름으로 다시 호명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등단 이후 제가 줄곧 속해 온 시의 영토는 지훈이 지향한 질서와 조화의 세계에 비교적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전통을 바탕으로 한 균형감각은 저에게 부정해야 할 덕목으로 느껴졌고, 재현적 언어에 대한 회의도 강해져 갔습니다. 그런 저에게 지훈상이 주어졌다는 것은 전통으로의 회귀를 환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학상의 목적은 그 상이 기리는 시인과 아류의 시인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새롭게 확장하라는 권유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지훈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지훈을 비롯한 청록파에 대한 이해는 상당부분 전통과 현대성의 도식적인 이분법에 기초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훈의 시와 시론을 읽다보면 그가 현대성에 둔감한 시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전통과 현대성을 결합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했던 흔적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지훈이 서구사상을 받아들여 동양전통과 접맥하는 지점에서 논리의 모순을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혼란을 향한 감행이 오히려 안정된 고전주의자의 신념보다 한결 시인다운 모색이라고 생각합니다. ‘芝薰’이라는 ‘풀초( )’자가 나란히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며, 그의 〈풀잎斷章〉이라는 시를 떠올려 봅니다.
한 줄기 바람에 조잘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이 구절을 읽으며, 풀처럼 섬세하게 흔들리는 감각이 있었기에 바위처럼 굳은 정신과 지조 또한 가능했으리라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지훈 선생이 남긴 삶의 자취와 예술적 풍취 앞에서 제 문학의 자리는 아직 볼품없지만, 그 오롯한 길을 따라 걸으려는 마음만은 간절한 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저의 재능이나 성취보다는 스스로의 무력함과 싸우면서 통과하고 있는 혼란의 여정에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절기를 앓고 있는 제 시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베풀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나남출판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10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 선생의 시가 도달한 언어의 드높은 품격과 고아한 향기는 이후의 한국 현대시가 넘어야 할 뚜렷한 봉우리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훈 선생의 시를 넘어설 수 있는 시가 나타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훈 선생의 시가 보여준 품격과 향기는 재주가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뛰어난 지성인이 지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며 풍기는 인품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삶의 품격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한다. 지훈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지훈 선생의 시가 지닌 이같은 성격을 염두에 두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의 많은 부박한 시들이 보여주는 깊이의 결여를 걱정하면서 심사에 임했다.
지훈문학상 심사 위원들은 송찬호, 나희덕, 최승자, 이병률 등 6~7명의 시인들이 생산한 시집을 대상으로 삼아 논의한 결과 수상 후보자를 어렵지 않게 송찬호와 나희덕 두 사람으로 좁힐 수 있었다.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에서는 그의 반성적 상상세계가 이미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시어구사 능력에 힘입어 한층 자유롭게 구사되고 있으며, 나희덕의 《야생 사과》에서는 ‘나’에 대한 응시와 ‘나’에 대한 성찰로 귀결되는 고통의 시간을 팽팽한 언어로 줄기차게 형상화하는 집요함과 성실함이 들어 있다. 그래서 세 사람의 심사위원들은 이 두 시인의 시집 중 내용의 깊이와 형상화가 보여주는 미덕으로 미루어 보아, 어느 쪽이 수상작이 되든 유감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송찬호의 경우 동일한 시집이 중복수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결국 나희덕의 《야생 사과》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나희덕의 《야생 사과》는 20여 년에 걸친 시작생활이 만들어낸 여섯 번째 시집이다. 그의 이 시집은 과거를 과거로 만들기 위한, 그러나 과거를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건설하려는 의지가 만들어낸 반성적 언어의 집합이다. 나희덕의 그 같은 의식을 우리는 “나는 바늘이다/하얀 무명의 장막 속으로/떨리는 몸을 밀어 넣기 시작한다”라든가 “나는 박쥐다/나는 새가 되지 못한 게 아니라/쥐가 되지 못했다”라는 말 속에서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또 “나는 이미 지워졌다”라는 말 속에서 과거와 결별하려는 자세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안개 속에 숨겨진 형체와 같기 때문에 완전한 결별을 손쉽게 이루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읽을 수 있었다.
나희덕의 《야생 사과》는 이런 강렬한 반성적 성격 때문에 주어가 ‘나’이다. 서정시의 일반적 화자인 1인칭보다 훨씬 강도 높은 주관적 1인칭으로서의 ‘나’가 그의 시를 지배하는 주어이다. 그리고 이 ‘나’는 반성적인 의식과 자세 때문에 긴장되어 있으며, 이 긴장은 이 시집의 미덕을 이루는 팽팽한 언어, 팽팽한 의미로 나타난다. 특히, 나희덕이 〈결정적 순간〉이란 시에서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빛이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듯이 결정적 순간이란 게 있다. 잎맥을 따라 흐르던 물기가 한 꼭짓점에서 일제히 끊어지는 순간,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제 발목을 내리쳐야 한다”고 쓰고 있는 시구가 바로 그런 미덕의 소산일 것이다.
또한 나희덕은 이어지는 시구에서 “그러면 짧으면서도 아주 긴 순간 한 생애가 눈앞을 스쳐갈 것이다”라고 썼는데, 이 순간이야말로 그의 반성적 의식이 만들어낸 완전한 결별이며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그의 이번 시집은 이런 완전한 순간을 향해 자신의 내면을 비우고 게우는, 그리고 시간과 풍경과 삶을 재인식하고 재정비하는 줄기찬 노력의 성과이다.
시인 조지훈의 시와 정신과 생애에 부합하는 길을 걸어간 시인에게 이 상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금까지 심사위원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소망은 지훈 선생이 걸어간 길을 편협하게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올곧게 자신의 삶을 추스르며 최근의 경박한 시어에 대응하는 팽팽한 의미의 언어를 만드는 작업에 지훈상을 수여하는 것은 이 상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 심사위원들은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나희덕 시인에게 지훈상을 수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시인이 희망하는 새로운 세계가 시를 통해 우리 앞에 환하게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오생근 정현종 홍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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