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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풀이 되어 엎드렸다

풀이 되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내 몸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2

 

 

풀이 몸을 풀고 있다

바람 속으로 자궁을 비워가는

저 하찮은 것의 뿌리털 끝에

지구라는 혹성이 달려 있다

사람들이 지상地上을 잠시 빌어 쓰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풀은 흙을 품고 있다

바람 속에서

풀이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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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개인 집단 간 화해 미학 서정적 묘사

 

수상자 김종해 시인은 40여 년의 시력(詩歷)을 지닌 시인이다. 그런 만큼 그의 시적 대응은 굴신자재(屈伸自在)의 도저한 경지와 폭을 지니고 있다.

 

특히 수상작으로 결정한 ·2’는 아직도 우리 시가 자유롭지 못한 개인집단의 수용 미학을 훌륭하게 성취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어 그 가치의 한전범(典範)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시의 마지막 행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2’풀이 몸을 풀고 있다.”로 각각 끝나고 있다. 여기에는 내가 풀이되고 풀이 내가 되는 개인과 집단의 소통, 화해가 있다. 에고의 초탈과 극복이 있다. ‘을 종속 개념으로부터 풀어내고 있다. 개체가 전체가 되고 있으며, 전체가 개체가 되고 있음의 이 생산 형국에서 우리는 해방과 자유라는 놀라운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은 단순 전위가 아니라 발견이며 놀라움이며 견자(見者)라는 시인으로서의 본성이다.

 

아울러 여기에 시인은 짧은시 형식을 통해 풀이의 늘어짐 그 이완을 막고 있고,또 다른 시편들을 통해서는 생명의 관능성과 우주적 황홀을 시로 구체화, 오늘의 우리 시들이 지적 통제에 경도한 나머지 잃고 있는 순수 서정의 감동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하늘을 들어가는 길을 몰라/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텃새’),“찰나 속에 스치는/황홀한 우주의 블랙홀을/오늘도 잡았다”(‘열쇠’),“이 별을 떠나기 전에/내가 할 일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고별’) 등의 시구를 보라.

 

- 심사위원 정진규(현대시학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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