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그 언저리 / 김지하
절,
그 언저리 무언가
내 삶이
있다
쓸쓸한 익살
달마(達摩) 안에
한매(寒梅)의 외로운 예언 앞에
바람의 항구
서너 촉 풍란(風蘭) 곁에도
있다
맨 끝엔 반드시
세 거룩한 빛과 일곱별
풍류가 살풋
숨어 있다
깊숙이
빛 우러러 절하며.
[심사평]
‘황톳길’(1969)로 등단한 이후 김지하의 시력(詩歷) 34년은 그 어느 영혼의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사상사의 나침반에 시혼을 내맡긴 채 표류하는 미학적 항해사였다.
출항 때의 저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투지로 다져진 저항시들이 받았던 지지와 갈채와 성원은 세계문학사상 희귀한 혁명시의 성공사례였다. 그는 언어의 마술사로 군부독재에 단독자로 맞서,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으로 견인해냈다. 유신통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김지하 시인은 ‘저항시인’에서 ‘사상시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했으며, 이후 오늘까지도 그의 지적 편력의 허기증은 지속되고 있다. 그는 변혁의 사상사적 원동력을 토착적인 민중신앙에서 탐구하면서 밥, 생명사상, 율려(律呂)사상 등등을 창출, 전개해 왔다.
그는 저항시를 뒤로 자리바꿈시키고도 끊임없이 변혁(개벽)에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세계사와 민족사를 응시하면서 간헐적인 발언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유도해 냈다. 그의 행동과 작품은 당대의 민중이 원하든 않든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파장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설사 반역사적인 발언일지라도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야기되어 역사적인 진보에 도움을 주는 역기능까지 가진 이 미묘한 시인의 역할은 다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는 바로 김지하 시인의 몫이다.
‘절,그 언저리’는 시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슬픔의 정치학”인 ‘화개’에 이은 “새로운 문화 정치학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인 방향 전환의 시도이다. 절에 가서도 절의 모습을 못 찾는 이 시인의 처절한 궁극적인 시대정신의 갈구 자세가 바로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어쩌면 김지하의 긴 항해 앞에 곧 새 미학적 항구가 보일 듯한 예감이 든다. 아마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시경(詩經)’의 세계로의 귀환일지 모른다.
- 심사위원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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