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심사평] 전통적 감각에 담긴 서정 미당의 ‘언어 마술’ 보는 듯
이미 자세히 보도된 바와 같이, 본심에는 비교적 젊은 시인에서부터 원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인 열 분이 올랐다.
원로시인들은 원숙하고 익숙하고 안정감 있는 시세계를 보여주었고, 비교적 젊은 시인들은 새롭고 패기에 찬 사유와 당돌한 언어를 보여주었다.
심사의 논의는 원숙함과 안정감을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움과 당돌함을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이 논란은 미당문학상의 성격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미당문학상은 그 해에 발표된 작품 중 가장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작품에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작품상이다.
이는 “개별 작품의 완성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인의 경력이나 원숙함 또는 새로움이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기준이 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미당문학상 수상작들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매우 아쉽고 불안한 마음으로, 원숙의 편안함과 당돌의 불편함을 우선 옆으로 미뤄두었다.
한편 원숙함 속에는 비슷한 높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 봉우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어 “하나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찾는 심사위원들의 눈을 오래 머물게 하지 못했다.
또 당돌함 속에는 매력과 힘에 미치지 못하는 거칠고 미숙한 표현들이 더러 있어 심사위원들의 눈을 피해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공기는 내 사랑’(정진규), ‘저수지 관리인’(김명인)같은 원숙함의 미덕과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심보선) 같은 새로움의 반짝임과 사유의 저돌성은 특히 포기하기 힘들어 자주 재론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논의의 테두리는 ‘겨울 시금치 밭’(장석남), ‘늙은 산벚나무’(송찬호), ‘가을’(송찬호) 등으로 좁혀지면서 다시 ‘완성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것은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고, 새로움과 안정감을 아우르는 개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통적인 형식성과 언어미학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이러한 기본 조건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충족시키고 있는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송찬호 시인의 ‘가을’을 선택했다.
‘가을’은 전통적인 감각과 언어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미당선생이 지녔었던 언어의 마술을 다시 한번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분위기와 어조에는 백석의 느낌도 있다.
장난기와 천진함도 있다. 또 요즘 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리와 운율의 미학이 특별한 수준에서 성취되어 있음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대가(大家)의 옛날작품을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을’은 복고적인 작품이다. ‘가을’ 속의 가을은, 오늘날 비현실에 가깝다. 그것은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는 현실이 상실한 미학을 복원해 보여준다.
해체와 잡종과 금속성의 21세기 전자시대에, ‘가을’이 보여주는 복고적 감각과 언어 미학은 뜻밖의 전위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송찬호 시인은 무거운 형이상학적 사유 대신에 명랑한 옛날식 언어유희를 추구하고 있다. ‘가을’은 그 가운데서도 수작이다.
‘가을’에서 멋지게 구현된 ‘명랑한 옛날식 언어유희’는, 사이버 세상에 대한 유쾌한 반란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 황현산·문인수·이시영·김혜순·이남호
“앓으며 시 쓰지만 내 운명”
미당문학상 수상작 ‘가을’은 사실 예심에선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코스모스’ ‘소나기’ 등 송찬호 시인의 다른 작품이 물망에 올랐었다. ‘가을’은 콩이 단단히 여물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젊은 세대들의 경험 밖 풍경이다.
“콩은 자기 씨를 퍼뜨리기 위해 콩깍지를 스스로 찢고 나옵니다. 가을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콩알이 1m 이상씩 탁탁 튀어나와요. 아주 역동적이죠.”
시선은 콩알총에서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에게로 옮겨간다. ‘이제 산등성이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는 콩밭 주인. 죽음을 이보다 더 환하게 예언할 수 있을까. ‘황두 두말 가웃’이면 부피론 40리터가 채 안 된다. 농사 규모로는 매우 적다. 그런데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라며 콩새에게 남은 콩을 주워가라고 재촉한다.
“적은 규모에서의 조화랄까…. 어릴 때 보았던 가장 아쉽고 따뜻한 풍경을 시로 옮길 수 있다면 이 정도이지 않을까합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모자란 대로 나누며 사는 삶.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도달했음에도 3만 달러, 4만 달러를 재촉하는 현대인들이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가치다.
사실 시인은 황두 두말 가웃의 소출에도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지녔다. 1987년 등단 후 여태 시집 세 권 낸 게 전부다. 시 청탁 마감을 잘 어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끙끙 앓으며 시를 써내는 편”이라서다. 그 흔한 산문집 하나 내지 않았다. 시적 완성도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건 그래서다.
“어떻게 해야 시와 내가 갈등을 빚지 않고 화해하며 오래도록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남들보다 워낙 적게 내고, 나이도 있으니 앞으로 얼마만큼 시를 쓸 수 있을까 싶어 한 편 한 편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되지요.”
KTX가 표준인 시대에 시인은 ‘비둘기호’같은 속도로 산다. 인터뷰를 하러 서울까지 오는 길에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기차를 한번 탔단다. 그가 사는 충북 보은군에서 서울까지 차로 한 시간이면 닿을 거리이지만 시인에겐 운전면허가 없다. 남들은 모두 서울로만 향하는데 고향에 머무는 까닭을 물었더니 “나고 자란 곳이라서”란 답이 돌아온다. 남들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할 뿐 자신은 불편할 게 없단다. ‘아무개골 시인’이란 수식어로 주목받을 수도 있을 텐데, 그에겐 오로지 시로써 이야기하겠다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시를 쓰게 된 게 운명적이라면 너무 비장하고, 그냥 시 쓰는 팔자입니다. 자연스럽게 시 쓰는 길로 들어섰으니 부지런히는 아니라도 꼼꼼하게 쓰자는 주의죠.”
시 앞에선 보통 꼼꼼한 게 아니다. 시인은 지난 겨울부터 동시에 손을 댔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에게 “시 좀 같이 만들어보자”며 살살 꼬였다. 같은 제목을 두고 부녀가 각각 시를 썼다. 딸에게 시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열댓 편 써봤는데 시가 썩 잘 됐단 생각은 전혀 안 들고, 딸은 말을 안 듣고…. 그래도 잘하면 올 겨울엔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가을’도 어른을 위한 동시라 할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시인은 잊혀져 가는 옛 풍경과 마음 씀씀이뿐 아니라 동심마저도 살려내고 있었다. 시 한 편으로 이보다 더 배부를 수는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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