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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 김승희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 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프로이트의 박물관처럼 본심은 어둡고 원초적이고

진심 뒤에는 꼭 본심이 도사리고 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본심이다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지도 않고 숨겨진 본심이 나는 무섭다

과녁에서 벗어난 마음들을 탁 꺾어버릴 때 나오는 진심,

허심이란다

적어도 단무지는 뼛속까지 노랗고 베이컨은 앞뒤로 하양 분홍 줄무늬다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 지 오래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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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올해 제21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자로 현대시 부문에 김승희, 시조 부문에 김일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각각의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창비)과 시조집 ‘깨끗한 절정’(서정시학)이다.

열린시학이 주관하는 고산문학대상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시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김승희 시인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 대해 “진리가 부재하고 진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에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면서도 다층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며 날렵하고 재기 넘치는 언어로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이번 시집은 ‘모더니스트’ 김승희를 ‘리얼리스트’로 불러도 손색없을 다채로운 시 세계를 품고 있다”고 평가했다.

‘깨끗한 절정’에 대해서는 “운율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해 극서정을 최고치로 끌어올린 점과 정형시의 기품에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로 더욱 깊고 넓은 시 세계를 보였다”며 “짧은 시조에 화룡점정 자안(字眼)이 박혀있다”고 호평했다.

이밖에 신인상에는 현대시 부문에 김미향 시인, 시조 부문에 김재용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본상이 각 2000만원, 신인상은 각 3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5일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 있는 전남 해남군 고산유적지 땅끝순례문학관 문학의 집 ‘백련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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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 유정

 

 

잘 지내나요?

당신의 긴 속눈썹이 생각나요

속눈썹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당신은 그리움이 생기면 발뒤꿈치를 들고

먼 곳의 바다를 바라보곤 했죠

아직도 발뒤꿈치를 들고 있나요?

툭 누군가 건들면 당신은 수평선 쪽으로 쓰러지고 일어나곤 했어요

듣고 있나요? 항상 나의 속삭임이 닿을까 궁금해요

나는 그저 당신이 입었던 옷을 버릇처럼 떠올릴 뿐이에요

그때 당신의 옷에 붙은 가격표를 찾고 있었지요

가격을 확인하면 당신의 눈동자가 흔들렸어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표정 속에서

나는 높게 서 있는 유리창을 닦으며 지상으로 내려와요

당신은 자신의 알몸을 본 적 있나요?

나도 오늘 당신처럼 옷을 갈아입어야 했어요

건물 외벽에 튀어나온 못에 작업복이 찢겼거든요

이런 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인형처럼 누워

당신보다 먼 바다를 꿈꾸며 입술을 깨물곤 해요

당신도 뒤척이나요?

문득 당신의 눈가에 말라붙은 마스카라가 보이네요

불붙지 않는 목재처럼

처음부터 우리는 손을 잡아도 함께 바다로 갈 수 없었군요

아무렇지 않게

우리 사이에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고

마지막 인사 대신

오늘도 허공에 떠서

몰래 유리창에 손자국을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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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창밖 거리를 향하는 마네킹은 우리의 자화상

 

신인은 매너리즘에 물드는 사회와 시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움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새로움의 형상화와 작품 선정은 우리에게 삶을 투영하고 대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적 선물이며 사회적 공식이다.

 

본심에서 경합한 반려의 문장눈잣나무는 안정된 시상의 호흡을 보였지만 처음부터 예기한 결과가 나타나면서 선자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당선작은 적어도 한 편의 시 속에 입체적이면서 시공간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심리적인 갈등을 융합하여 관통하는 미학의 구조를 보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유정 씨의 마네킹은 현실적 슬픔과 포기할 수 없는 생의 그리움을 한계와 단절이라는 복선 위에 손자국의 흔적을 몰래남겼다. 그것이 설령 미결과 얼룩이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되고 소통되지 않는 삶과 모순을 반영한 것 이상을 넘어 마음에 오래 남을 시적 이미지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옷이 팔려나가면 새로운 옷을 걸치고 다른 가격표를 붙이는 마네킹그러한 상실과 희생을 넘어 다시 창밖의 거리를 향해야 하는 화자의 절실한 결의와 희망이 곧 우리 모두의 자화상의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평선에서 먼 어느 시가지의 코너에 서 있는 이 마네킹의 꿈은 하나의 선물이자 시인이 내재화한 사회적 공감이다. 유정 시인은 인내하면서 시의 길을 잘 살펴 밟아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고형렬·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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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순암 문학상 당선작 발표

1. [대상] 동사강목도 : 권수진 시인 (상금 300만원과 시비 제작)

2. [금상] 이택재를 소리하다 : 김학중 시인 (상금 100만원)

3. [은상] 이택재 : 이은영 시인 (상금 50만원)

4. [동상]

1) 파문을 건지다 : 김향숙 시인 (상금 10만원)

2) 사부인곡 : 황은순 시인 (상금 10만원)

3) 순암일기 : 송금례 시인 (상금 10만원)

5. [장려상]

1) 순암을 만나다 : 신화정 시인 (상장 및 상패 수여)

2) 이택재의 별 : 최병규 시인 (상장 및 상패 수여)

3) 빛이 된 순암 : 곽인숙 시인 (상장 및 상패 수여)

4) 이택재에 물든 가을 : 이인환 시인 (상장 및 상패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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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 조정인

 

 

지금은 산사나무가 희게 타오르는 때. 나여. 어딜 가시는지?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내가 나를 경유하는 중이네.

 

흰 터번을 쓴 어린 수행자 같은 산사나무 수피를 더듬는다. 내가 나를 더듬고 짚어보고 헤아려 보듯. 나는 재에 묻혀 움트는 감자의 눈, 움트는 염소의 뿔, 움트는 붉은 승냥이의 심장, 봄 나무가 내민 팥알만 한 새순, 겨울 끄트머리에 걸린 시샘달* 방금 운명한 망자의 움푹 꺼진 눈두덩, 생겨나고 저무는 것들 속에 눈뜨는 질문. 나여, 나는 어디로부터 나를 만나러 산사나무 하얗게 타오르는 이 별에 왔나?

 

어제 나는 스물일곱에 요절한 나를 조문하고 왔네. 꽃 같은 얼굴이 웃고 있는 영정 앞에 예를 갖추고 향을 피우고 한 송이 애도를 놓고 왔네. 나는 나의 빈궁한 유배처, 나의 고적한 유적지, 불탄 폐사지, 내가 나를 답사하고 탐사 중이네. 휘돌며 흰 보선발을 들어 춤도 춰보네. 나는 파장한 거리의 불 꺼진 상점들. 나는 나의 목 쉰 장사치. 나는 나의 홍등가. 내가 나의 창부, 거간꾼이라네. 그렇다면 나여. 끝내 나의 무엇으로 나는 남으려는지? 나는 나의 번다한 그 모든 혼란과 혼돈. 일생 나를 따라다니며 명치끝을 건드리는 생각이라는 뿔로 한 줄 문장을 쓰는 나는 고작 나의 가냘픈 질서, 나는 오늘도 문득, 태어난 일의 기적을 사네. 나라는 가능성을 사네.

 

둑길에는 어린 산사나무가 한 광주리 꽃을 피웠네. 산사나무라는 해당화라는 이름에 묶인, 나무라는 꽃이라는 색()의 배열을 지나네. 몇 걸음 가다보니 못다 핀 꽃망울이 달린 채 부러진 꽃가지가 던져져 있네. 나는 찢겨져나간 나를 지나치지 못하네. 꽃가지를 주워 둑길을 걷네. 지난해 봄빛이 되비치는 둑길, 나는 나의 전생과 후생을 주워 둑길을 흘러가네. 빛과 그늘이 출렁이는 유리, 혹은 유리의 안쪽을 물고기들의 유영처럼.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네. 하나의 어항을 쓰는 두 마리 물고기의 동거처럼.

 

 

 

 

 

 

사과 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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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김해시는 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작에 조정인 시인의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가야문학상 수상작에 손성자 시조시인의 ‘가야의 거리’가 선정됐다고 8일 발표했다.

구지가 문학상을 선정한 심사위원단은 조정인 시인의 작품이 “근원적 마음의 생태학을 통해 ‘역동적 고요’를 자신만의 시적 자산으로 안아들이고 있으며 오랜 시간 다져온 근원적 역리를 공들여 사유하고 표현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번 수상으로 상금 1천만원을 받게 되는 조정인 시인은 199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해, 시집 ‘사과얼마예요’, ‘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등을 집필했으며 제14회 지리산 문학상, 제9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시인이다.

가야문학상을 수상한 손성자 시조시인의 작품은 “단정한 정형 미학에 ‘가야’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상상하게 하는 서정적 언어를 갈무리한 결실”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이번 수상으로 상금 5백만원이 주어진다.

손성자 시인은 ‘망덕포구’로 경남문학 시조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1회 구지가문학상은 대한민국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발상지 문학인 구지가의 문화사적 의의를 고취하고 문학의 저변확대와 역사문화도시 김해를 널리 알리기위해 김해시가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 김해지부가 주관하며 NH농협은행 김해지부가 후원하고 있다.

김해시의회 사회산업위원회 위원장 하성자 의원의 발의로 지난 5월 ‘김해시 구지가 문학상 운영 조례’를 제정했으며 구지가 문학상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제1회 구지가 문학상 공모 계획을 의결했다.

공모기간 동안 구지가 문학상에 810편, 가야문학상 260편이 접수됐으며 예심, 본심을 거쳐 구지가 문학상 운영위원회 심의를 통해 수상작이 최종 결정됐다.

시관계자는 “올해 처음 개최된 구지가 문학상이 역량있는 작가들의 참여로 힘찬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구지가 문학상이 권위있는 문학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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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간다 / 김인숙

 

 

붉은 캥거루가 집에 간다

사막의 끝에서 날이 저물면 집도 집에 간다

 

집이 있어 집에 가고 집에 든 채 집에 가고 집이 없어도 집에 간다

 

집에는 엄마가 있고 엄마 속에 집이 있고 없는 집에도 엄마는 있다

 

나무는 선 자리에서 잠이 드는 노숙이여서

바람을 덮으며 등을 붙이면 눕는 자리마다 집이다

 

붉은 캥거루 새끼는

앞발로 안고 뒷발로 뛰는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엄마가 있는 집에 간다

 

엄마도 나도

집은 비를 맞아도 집이다

비가 새도 집이다

 

엄마가 없어도 엄마는 있다 갈 데가 없어도 갈 데가 있다

 

사막에 널린 게 집이지만

성장이 멈추지 않는 붉은 캥거루는

사막 끝에 있는 자기 집으로만 간다

 

추위에 얼어붙은

붉은 몸이 들 수 있는 집

든든한 꼬리가 받쳐 주는 집

 

엄마는 아무리 멀어도 엄마여서

때가 되면 바람도 집에 가고 안개도 집에 간다

 

세상 모든 것이 집에서 나와 집에 간다 날이 저물면 껑충껑충 뛰어서 가는

 

붉은 캥거루의 집에는 붉은 캥거루의 붉은 엄마가 있다

 

 

 

 

 

소금을 꾸러 갔다:김인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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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제8회 석정시문학상’ 수상자로 안도현(60) 시인이 선정됐다. 미발표 시를 대상으로 공모한 ‘제8회 석정촛불시문학상’에는 김인숙 시인의 ‘집에 간다’가 뽑혔다.


“‘석정촛불시문학상’에는 192명 960편이 응모됐으며 최종 본심에 올라온 10명의 시 50편을 최종 본심에 상정해 심사했다”며 “많은 응모작 가운데, 김인숙 시인의 비약적 발성과 상상력과 언어기획을 높이 샀다”고 평했다.

석정촛불시문학상 수상자인 김인숙 시인은 경북 고령 출생으로 201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꼬리’, ‘소금을 꾸러 갔다’,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으며, 경북문협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구상문학관 ‘언령’ 지도교수로 활동 중이다.

 

김인숙 시인은 “순수 서정시의 본령이자 고결한 인품의 표상이신 석정 선생님의 시 세계를 또 하나의 집으로 삼아 탄력을 얻게 되었다”고 당선소김을 밝혔다.

시상식은 9월 25일 오후 3시 부안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더불어 석정문학제(9월 26일 전북보훈회관), 석정문학 세미나(10월 9일 석정문학관) 등도 이어진다.

석정시문학상은 근·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4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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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 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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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제8회 석정시문학상’ 수상자로 안도현(60) 시인이 선정됐다.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는 9일 “제8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로 안도현 시인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며 “지난 2013년 절필 선언 후 8년 만에 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속의 시들이 보여주는 섬세한 관찰과 발견의 묘미, 절묘한 표현이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고 밝혔다.

 

신달자 심사위원장 등은 “해방 후 교원노조 활동을 하고 독재의 탄압에 고초를 겪은 신석정 시인의 이력과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과 정치적 신념으로 한동안 절필을 했던 안도현 시인의 이력이 어느 부분 겹친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수상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안도현 시인은 경북 예천 출생으로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북항’ 등의 시집을 냈고,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등의 동시집과 다수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됐다.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받았다.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안도현 시인은 “스무 살 이후 40년 동안 전북에 살면서 신석정 시인을 흠모하며 따랐던 분들에게서 문학을 배웠다. 그 문학이 저의 뼈대를 만들어주었다”며 “신석정 시인의 이름으로 상을 주신다니 두 손으로 받겠다” 큰 시인이 앉아 계시던 언덕과 시인의 눈에 들어간 그 바다를 잊지 않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9월 25일 오후 3시 부안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더불어 석정문학제(9월 26일 전북보훈회관), 석정문학 세미나(10월 9일 석정문학관) 등도 이어진다.

석정시문학상은 근·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4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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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맨 끝 방 / 김정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새기려 할수록 점점 지워져만 갔다 내 몸 곳곳

 

허기의 냄새 같은 게 통증처럼 쌓여 있었다 지하철 한구석,

 

한나절 깨부쉈던 건물 부스러길 입 안 가득 우물거리다 집 앞까지 오면

 

어느새 밤의 입구였다 무심히 내다 버렸던 생일을 허겁지겁 식어 빠진 미역국에 말 때

 

마음 언저리 슬며시 커졌던 어떤 불빛은 내가 불어 보기도 전에

 

꺼져 버렸다 가만히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으면 누군가의 살갗에서 맡았던 냄새 설핏,

 

구겨진 가슴 한쪽이 욱신욱신하면서도 조금 퍼지는 듯도 했지만

 

결국 슬픔도 나를 잠시 어루만지다 슬며시 떠나 버렸다

 

종일 나르던 벽돌 한 장처럼 쓰러져 간신히 잠이 들면 아침은 매번 추락하듯

 

당도해 있었다 새벽 끝자락 뭉뚝한 절벽 꼭대기 내가 사는 방 한 칸에서 내려다본 이 도시는

 

푸르스름하게 입 벌린 채로 혼곤히 잠들어 있는 무지갱처럼 생겼고

 

나는 언젠가 가파르게 뿌리내린 계단에서 선연히 굴러떨어지며

 

심장 한편에 가까스로 불을 밝히려는 어둑어둑한 사람의 영혼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비로소 내 이름 적힌 집 한 채 쓸쓸히 얻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내가 어디 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누구나 다 아는 듯해 나는 늘,

 

남몰래 번진 곰팡이처럼 눅눅하게 빈방을 떠났다가 아릿아릿

 

빈방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심사위원 문동만, 안현미, 김현(이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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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큰고니 / 김은순 

 

 

[최우수상] 둥근 것들은 달의 입술을 / 김현주 

 

 

[우수상] 내성천 물발자국 / 김은정 

 

 

 

 

[가작] 물의 번식 / 길덕호

 

어여쁜 누이의 치맛자락 같은

내성천 기나긴 강줄기

어머니의 굴곡진 삶처럼 회룡포를 에돌아나가면

저 면면히 흐르는 강물들도

번식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울진 곳 산란하는 소리가

투명한 하늘 위 데칼코마니처럼 번지고

골짝 골짝 걸어 두 발 부르튼 물의 자국들이

양수로 가득 들어찰 때

내성천은 회룡포 구부러진 곳

자궁에서 피어난 탯줄과도 같은 꽃길을 따라

물방울을 닮은 모래알을 낳는다.

모래알이 밀리고 밀려 휘돌아가고

밭을 가는 지아비의 거친 손등처럼

나물 캐는 지어미의 둥근 등허리처럼

당신의 섬으로 번식을 하면

물의 어두운 사타구니에선 바위가 울고

송사리, 모래무지, 꺽지가

지느러미 꿈틀대며 비늘로 태어난다.

아, 저 강이 숨을 한번 들썩일 때마다

윤슬을 등에 업은 바람은

내성천이 낳은 싱그런 수풀과 꽁냥꽁냥대고

양귀비, 사루비아, 금계국은 꽃대를 흔들며

강의 젖줄을 힘차게 빨아들이나니

생명은 저 물에서 아가미를 감추고 올라오는 것인가

물비늘 굽이칠 때마다 조약돌 같은 목덜미에선

맥박의 소용돌이가 푸른 정맥과 함께

여울져 흐르나니

해가 질 무렵이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회룡포

노을로 번지는 내성천의 출산혈

하나 둘 별을 물고 날아가는 철새들은

벌거벗은 기도로 하룻밤을 지새운다.

희붐한 새벽녘의 안개가 수면 위를 맴돌고

부엌 한 귀퉁이 달그락거리는 물소리에

기지개를 켜며 다시 일어서는 목숨들

그곳에선 마을도 사람들도 송아지도

모두 내성천을 닮았다.

 

 

 

 

[가작] 종택의 종부 / 신혜순

 

 

죽림리 대수마을 권씨의 종부가 작년 돌아가셨다

그래도 마을 종택은 방문객을 받아 종가집을 구경했다

자그마한 종부사진

조금 큰 키인 우리도 올라가기 벅찬데

오르락내리락 돌계단에 오르내린 시간 윤기가 자르르하다

일 년 지난 부엌 가마솥에

윤이 반질반질하다

방금 종부가 장독대에 간 듯한 착각에

솥을 지금도 쓰나요 물으니

종부님이 부지런하셨습니다 하신다

동지 지난 칼바람 탓도 있지만 집 뒤 댓바람 소리가

종부의 살아 있는 소리처럼 차랑차랑하다

고된 삶이었을까 보람이었을까

아래 사랑채에는 방이 열 칸쯤

무슨 반찬들을 맛깔나게 올렸을지

시간을 익혀낸 그녀,

오는 내내 이제 편안하게 쉬고 계실 그곳에 안부를 묻는다

죽림리 내려오는 길옆 억새 바람 스치는 소리는

차마 종택을 떠나지 못한 종부의 풀 먹인 치맛자락 소리다

어둡고 힘든 터널을 들어가는 나의 길잡이인 듯

일상의 무한 반복이 또 다른 것에 도착하며

작은 것이 더 큰 것이라는 지혜를 배운다

 

 

 

[가작] 강물의 문장 바깥에서 / 조미희 

[가작] 강물 수리공 / 하승훈 

[가작] 회룡대에서 / 장선아 

[가작] 석송령 / 이은영 

[가작] 동제가 있는 저녁 / 심상숙 

[가작] 불후不朽-초간정에서 / 정민희 

[가작] 말을 묻다 / 김진희 

[가작] 선몽대를 필사하다 / 김은혜 

[가작] 모래의 책 / 김영욱 

[가작] 내성천을 읊다 / 김미향 

[가작] 취급주의 / 황은순 

[가작] 윤장대를 돌리다 / 황순각 

[가작] 주막안에서 / 유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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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 동인이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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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 댁 할머니 손가락엔 구구단이 산다 / 오서윤

 

 

동호 댁 할머니 손가락엔 수상한 장부가 산다

계산법을 알 수 없는 덧셈과 뺄셈이 숨어 있다

수리에는 없지만 가끔 세상에서 발견되는 셈법

옆집 상처와 몹쓸 사람에겐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숫자를 솎아내는 속 깊은 구구단이다

 

할머니의 손가락엔 천기를 읽는 두꺼운 달력이 산다

팥꽃이 피는 시기와 산을 넘어오는 장마

콩이 여물어 갈 때마다 할머니는 더 바쁘다

복잡한 족보와 길흉의 절기와

식구들의 생일과 오래전에 죽은 나이도 다 기억한다

 

갑골문자처럼 단단한 할머니의 손등

주판알 튕기듯 못생긴 손가락 하나하나 세어 왕복할수록

할머니의 곳간이 풍성하다

이른 봄 멀리서 오는 소식을 감지하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릴 때도 있지만

어느새 넓적한 손등이 어지러운 마음을 덮어버린다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주먹구구식이지만

할머니의 몸엔 여러 곳의 교문이 있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름 없는 할머니의 졸업장

 

동호 댁 할머니 돌아가시고

그 집 식구들 모두 가막눈이 되었다

 

 

 

- 오서윤 시집 <체면>(시작시인선 0413)

 

체면

 

deg.kr

 

 

 

‘2021 목포문학박람회’ 목포문학상의 영예의 수상작품이 결정됐다.

시는 31일 김종식 목포시장,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채희윤 목포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목포문학상 당선작을 발표했다.

국내 단일부분 최대상금 1억원인 장편소설 부문에는「보트 하우스」(이숙종, 64세)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시 부문에는「동호 댁 할머니 손가락엔 구구단이 산다」(오정순, 64세) △희곡 부문에는「행진곡」(박소연, 58세), △문학평론 부문에는「돌봄의 위기 속에서 문학이 윤리를 말할 때」(강도희, 27세)가 선정됐으며 상금은 각 1천만원이다.

문학을 주제로 전국 최초로 개최되는 목포문학박람회(10.7~10)의 대표 프로그램인 목포문학상은 전국의 문학인과 해외 6개국(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호주, 캄보디아) 교민 등 총 1,136명이 3,728편을 응모해 뜨거운 참여 열기 속에서 진행됐고, 한층 높아진 성장성과 잠재력, 브랜드가치를 나타냈다.

「보트 하우스」는 문장의 묘한 리듬으로 작품이 필요로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능력, 감각과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한 문체, 원거리에 사회적인 상처를 배치해 두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쓸쓸하고도 담담한 삶을 그려내려는 작가의 윤리적 태도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작가 이숙종씨는 “미국 허드슨 강가의 별장인 보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의 불, 물, 꿈, 영혼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양한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은희경 장편소설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승우, 우찬제, 김별아, 김형중, 편혜영)은 “1억원이라는 상금과 목포문학상의 향방을 가르는 첫 회 심사라 부담이 컸다. 모든 심사위원이 3회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고, 본심에 오른 9편의 작품을 5번 투표하는 등 숙고 끝에 최종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목포문학상을 한국 굴지의 문학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목포 출신의 한국 문학사의 거목들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은 ‘오로지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라 믿고 예상 응모수의 두 배가 넘는 작품들을 읽으며 뜨거운 8월 한 달을 기꺼이 심사에 헌납했다”고 심사소회를 밝혔다.

향후 장편소설 수상작은 문학박람회 기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된다. ㈜문학과 지성사는 최종 당선작 발표와 함께 목포지역 소외 계층 문학 꿈나무를 위해 출판 도서 605권을 시에 기증했다. 

목포문학상 시상식은 목포문학박람회 기간이자 한글날인 10월 9일 평화광장 해상무대에서 개최되며, 심사위원과 심사평은 목포문학박람회 홈페이지에서 9월 1일 확인할 수 있다.

김종식 시장은 “목포문학상에 보여준 국내외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드린다”면서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목포문학상 수상을 발판삼아 한국 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목포문학박람회는 ‘목포, 한국 근대문학의 시작에서 미래문학의 산실로’라는 슬로건으로 목포문학관, 목원동 일대, 평화광장 등 목포 전역에서 문학전시관, 4인4색문학제, 골목길 문학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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