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 이춘호
칼을 맞는다 오늘도
이마엔 식은땀이 흐르고
누군가에겐 넉넉한 저녁나절
나의 몸은 야위어간다
짧은 다리로 버티며 칼을 맞고 자란다
누군가의 부활을 위해, 나의 반듯한 이마에서는
간밤의 이십 대 객기와 숙취도 나자빠지고
몸뚱아리 선듯 칼끝에 내어주고
칼끝에 남루해진 마늘 한 쪽도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허물까지도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 야윈 알몸으로
닳고 닳아 낸 몸에 작은 언덕이 생기면
그때서야 그리움이
마악 내 몸을 떠난 자들아
재화는 없고
항상 등 뒤엔 어둠만 켜켜이 남았다
자꾸만 박혀오는 훈장 같은 문신 혈관 가까이 새기며
서툰 몸짓으로 찢기고 나브끼고
신음과 통곡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모두들 귀가를 서두를 즈음
어느 저녁나절 내 몸이 목탁 소리로 익어갈 즈음
이 몸을 빌어 모두들 부활을 꿈꾸고
결코 칼은 나를 배반하지도 떠나지도 않는다
끝내
낭자한 칼자국 소리 다정해지면
뽀얗게 원시의 건강한 나뭇결
본래의 무늬로 되살아나고
칼은 또 다른 내 몸이다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주관하고 부안군이 후원하는 ‘제6회 석정시문학상’의 수상자로 신달자 시인이 선정됐다. ‘석정촛불시문학상’에는 남원 출신인 이춘호 씨의 시 ‘도마’가 당선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운룡 석정시문학상 심사위원장과 박찬선·구재기·최동호·김종섭 시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지난 9일 토의를 거쳐 이 같은 결과를 내놨다고 13일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31일 오후 3시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개최된다.
‘석정시문학상’은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 시인의 인품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4년 제정됐다.
신석정 시인의 첫 시집 ‘촛불(1938)’의 간행을 기념해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신작시를 응모한 후 당선자를 뽑는 ‘신석정촛불문학상’은 ‘석정촛불시문학상’은 1명당 응모작 5편씩 응모를 진행했다.
예심위원은 모두 215명의 1075편에 달하는 응모작을 살펴본 후 12명의 시 60편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위원은 각자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시 2편을 집계한 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춘호 씨의 시 ‘도마’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찬선 심사위원은 이춘호 씨의 시 ‘도마’에 대해 “빼어난 상상력과 언어미로 함축된 시적 기량을 흠잡을 데 없이 표상했다”고 평했으며 최동호 심사위원은 “이미지가 간결 명쾌하며 작품의 전체적인 언술 형태의 밀도나 완성도가 좋다”고 말했다.
이춘호 시인은 남원 출신이며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고 시집 <그대 곁에 먼지로 남고 싶습니다>와 산문집 <내일의 태양은 오늘이 빚는다>를 썼다. 현재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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