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때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 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해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 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 다니는 하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청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담장을 허물다
nefing.com
(사)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수여하는 ‘제4회 신성정문학상’의 수상자로 공광규 시인이 선정됐다고 30일 발표했다.
발표 하루 전 한겨레 신문사 특별실에서 열린 본상 심사에는 문효치 심사위원장, 정희성 심사위원, 김종 심사위원이 참여해 수상자를 확정했다.
‘신석정문학상’의 영예를 안게 된 공광규 시인은 2013년 발표한 작품집 ‘담장을 허물다(창비)’로 최종 선정됐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시인은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데뷔했다. 시집으로 ‘대학일기’‘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가 있으며 신라문학대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동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신석정촛불문학상’에는 심옥남 시인이 작품 ‘표면 장력’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북 임실 출생인 시인은 전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8년 ‘전주일보’ 신춘문예, ‘자유문학’에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상, 너에게’, ‘나비돛’ 등이 있으며 ‘전북시인상’을 받는 등 전북 문단에서 각광을 받아온 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공광규 시인의 시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문예성을 빚으며 순정적 투명한 서정이 깃든 융숭한 내면적 성찰이 돋보이는 시를 창작했다”고 평했다.
이어 “심옥남 시인은 인간과 우주, 생과 사 등의 대칭적 상황을 한 화면에 융합시키며 또한 관통하고 넘나들며 형상화가 빼어난 시를 창작, 창의적 발상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한편, 시상식은 9월 23일 오후 3시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이날 오전에는 전국 규모의 ‘신석정 시낭송대회’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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