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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 이향아

 

 

바람이 불자

안개가 실크스카프처럼 밀린다

밀리고 흘러서 걷힐지라도

도시의 뒷골목 넘치는 하수구와

한 길 사람 속과

오래 가지 못할 거짓말과

무던한 안개가 품고 있던 것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개와 친해져서

사거리 터진 마당의 애매한 취기

불확실한 경계

용서할 수 있는 미결의

꿈속 같은 그늘이 불편하지 않다

 

안개 걷혀도 미지수의 괄호들은 남을 것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차라리 자욱할 때 평안들 하신지

어슴푸레 열릴 듯한 은은한 천지.

 

 

 

안개 속에서

 

nefing.com

 

 

[심사평] 삶에 대한 깊은 성찰

 

5회 신석정문학상 후보작으로 예심에서 올라온 시인은 모두 일곱 분. 그리고 참고해 줄 것을 당부한 시인은 서른한 분이었다. 그만큼 최고의 수상자를 선정하고픈 운영위원회의 고심이 느껴졌다. 심사위원들은 그 가운데 이향아 시인의 시집 <안개 속에서>를 뽑아 들었다.

 

이향아 시인은 삶이 문학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정도로 문학적 생애가 경건하다. 또한 삶이 육화된 중량감 있는 시로 문학적 전이를 거쳐 무한 형성되었다. 수상 시집에 실린 나무는 숲이 되고 싶다는 함께 살아야 하는 자연의 섭리를 조용하게 일깨워준다.

 

누구를 내쫓거나 돌려세우지 않습니다/나무는 다만 숲이 되고 싶은 꿈/그 꿈 하나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는 결구는 시인의 인생관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 밤나무’, ‘왜 이렇게 얼었어같은 작품도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향아 시인은 화가로도 활약하며 시화일률(詩畵一律)의 전통적 예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분이다. 이번 시상은 이 시인의 문학 생애에 대한 총체적 평가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신인상인 신석정 촛불문학상은 예심에서 올라온 10명의 후보 가운데 조경섭 시인의 태평동 살구꽃을 뽑았다. 이 작품은 시작 체제 갖춤이 매우 빼어났다. 시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 심사위원 : 김규화·김주완·이숭원·유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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